한국사 이야기 594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압록강 이천 리는 서러운 눈물
압록강은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 지방 사이 국경을 이루면서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압록강1)은 “물빛이 오리의 머리 색과 같아 압록수(鴨淥水)라 불린다”라는 『신당서』의 기록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압록강의 길이는 일제강점기에 항공 촬영한 수치에 따르면 790킬로미터이고 북한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803킬로미터인데,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 근처 8킬로미터 부근에서 발원하며, 상류 쪽에서 심한 곡류를 이루므로 실제 강 길이는 직선 길이의 2배에 가깝다. 『송사(宋史)』에는 “고려가 압록강으로 한계를 삼았다는 강의 너비가 300보이고, 그 동쪽에는 바닷물이 맑아서 열 길 물속이 내려다보이고, 동남쪽으로는 명주와 바라보며, 물이 다 파랗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압록강 밖 2개의 큰 강이 저편 동북으로부터 모여와서 의주(義州) 북쪽에 이르러 3개의 강이 되는데, 매번 홍수가 지면 물이 넘치게 되어 3개의 강이 하나로 합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중환이 말한 2개의 큰 강이란 서강(西江)과 애하(愛河)를 말하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백두산은 압록강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수백 리를 흐른다. (······) 그것을 압록강이라고 부르는데 물빛이 오리 머리의 푸른빛과 같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 한다.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서강이 되고, 다른 하나는 가운데로 흐르는데 소서강(小西江)이라고 부른다. 금동도에 이르러 다시 모여서 하나로 되었다가 청숫돌[청수량(淸水梁)]에 이르러 또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 적강(狄江)과 합류하고, 다른 하나는 남쪽으로 흘러서 튼강이 되어 위화도를 감돌아 암림곶(暗林串)에 이른다. 여기서 서쪽으로 흘러 미륵당(彌勒堂)에 이르러 다시 적강과 합류하여 대총강(大總江)이 되어 서해에 들어간다.
압록강은 김일성의 항일 유적지였던 보천보 부근에서 높은 하안단구를 이루고, 가림천ㆍ오시천 등을 합하여 함경남도의 신갈파진과 혜산을 지나면서 서쪽으로 그 물줄기를 바꾼다. 서쪽으로 흐르면서 수력발전으로 유명한 허천강ㆍ장진강을 비롯하여 평안북도에서 후주천을 합한 압록강은 중강진에 이른다. 압록강의 상류는 강폭이 비교적 좁고 유속이 빠르나 중강진 부근에서 남서쪽으로 물줄기를 바꾸면서부터는 강물의 흐름이 갑자기 느려지고 여울도 많이 나타난다. 중강진에서 하류 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자성강, 독로강, 위원강, 충만강, 삼교천 등과 중국 쪽의 훈강을 합하여 서해로 들어간다.
진압근교에서 바라본 압록강
조선시대의 문인 강희맹은 「과압록강(過鴨綠江)」이라는 시에서 “학 나는 들 저문 산은 푸르러 눈썹 같고 압록강 가을 물은 쪽빛보다 더 진하네”라고 하였고, 유도순은 「압록강 뱃사공」에서 “이천 리 압록강에 에야듸야 노를 저으며 에야듸야······ 가는 이 수심 지니 한숨의 배요, 오는 이 서럽나니 눈물의 배라. 압록강 이천 리는 서러운 눈물, 오늘도 슬픔 속에 배를 띄우고”라고 하여 압록강을 넘나드는 애처로운 삶의 일상을 슬픔으로 노래하였다.
압록강에는 항상 강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섬’이 40여 개 있고, 강물이 드나듦에 따라 사라지고 나타나는 하중도(河中島)가 205개 있다.
1962년에 맺은 것으로 알려진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북한과 중국은 강은 서로 공유하되 섬은 공유하지 않는다고 합의하였다. 북한의 섬과 북한의 영토 사이는 내하(內河)라 하여 북한이 영유권을 가진다. 하중도의 소유권은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다. 압록강 하구의 큰 섬들인 위화도(12.27제곱킬로미터), 황금평(11.45제곱킬로미터), 다지도(9.55제곱킬로미터), 구리도(6.6제곱킬로미터), 우적도(4.3제곱킬로미터), 유초도(2.82제곱킬로미터) 등은 모두 북한 땅이다. 한때 섬이었던 우적도와 황금평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흙이 쌓여 중국에 맞붙어버린 ‘내륙 섬’이지만 현재도 두 섬은 모두 북한의 땅이다.
중국이 소유한 섬들 중 쓸모 있는 섬은 없고 다만 위화도에서 3킬로미터 정도 아래에 있는 월량도만이 현재 개발 중이다.
민족의 비원을 안고 유장하게 흐르는 압록강 철교를 따라가면 만나는 신의주시는 평안북도의 도청소재지로, 압록강 하구 좌안에서 상류 쪽으로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축면산(縮緬山) 구릉 밑에 펼쳐진 범람원 위의 사주(砂洲)에 건설된 신의주는 압록강이 홍수 질 때마다 흙탕물이 범람하여 농사조차 불가능한 강기슭이었다. 그러던 신의주가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주위에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제방을 쌓고 다시 그 바깥쪽에 큰 제방을 축조하면서부터였다.
압록강 철교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동을 잇는 다리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압록강변의 습지를 간척한 강안 지역에 신의주공업지구를 개발했는데 2002년 4월 신의주시와 의주군 일대를 묶어서 신의주특별행정구가 설치되었다. 신의주의 전신은 의주군인데, 의주군은 단군조선과 한사군을 거쳐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가 발해가 망하자 거란의 근거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정주 또는 의주라 불렀다.
압록강 철교 너머로 보이는 위화도에서 한 나라의 명운을 가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바로 위화도 회군이다. 위화도 회군은 1388년(우왕 14) 5월 요동 정벌에 나선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서 군사를 회군한 사건이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고, 조선 창업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백마산, 금강산, 삼봉산 등의 낮은 산이 펼쳐지는 의주군에는 금강산의 경치와 비길 만하다는 의주 금강산(석승산)과 의주8경이 있다. 의주8경은 압수춘파(鴨水春波, 봄바람이 일고 있는 압록강의 파도), 골령모운(鶻嶺暮雲, 골령의 저녁 안개), 송산욱일(松山旭日, 송산의 일출), 해문비우(海門飛雨, 비 내리는 해문 모습), 조도황로(鳥道黃蘆, 조도의 가을 갈대숲), 요교송객(凹橋送客, 요교에 오고가는 나그네의 모습), 평원엽기(平原獵騎, 들판의 수렵 광경), 용연취벽(龍淵翠壁, 구룡연 주변의 이끼 낀 절벽)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