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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 3 / 평민의 부지중 범죄
레 4:27-35
27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28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32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33 그 속죄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잡을 것이요
34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 제단 밑에 쏟고
35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떼낸 것 같이 떼내어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 4:27-35 / 백성 중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실수로 어겼는데 28) 한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 달라는 뜻으로 아무런 흠이 없는 암염소 한 마리를 여호와께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 29) 그 사람은 그 암염소를 끌고와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잡아라. 30)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들고 손가락에 찍어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붙어 있는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그 번제단 밑바닥에 쏟아라. 31) 그 다음 암염소의 몸뚱어리에서 떼어 낸 기름 덩어리를 모두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 여호와를 흐뭇하게 해드려야 한다. 기름 덩어리를 떼어 내는 방식은 화목제물에서 기름 덩어리를 떼어 내는 방식과 똑같아야 한다. 이렇게 제사장이 제물을 불살라 바치면 제물을 갖다 바친 그 사람의 허물이 가리어질 것이다. 32) 만일 어떤 사람이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바치려면 아무런 흠이 없는 것을 끌고 와 33)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그 어린 양을 잡아라. 34)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들고 손가락에 찍어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붙어 있는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그 제단 밑바닥에 쏟아라. 35) 그런 다음 어린 양의 몸뚱어리에서 떼어 낸 기름 덩어리를 모두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야 한다. 제물에서 기름 덩어리를 떼어 내는 방식은 화목제물에서 기름 덩어리를 떼어 내는 방식과 똑같아야 한다. 이렇게 제사장이 속죄제물을 불살라 바치면 그 사람의 허물이 가리어질 것이다.
평민이 부지중에 죄를 범했을 경우 속죄제를 통해 사함 받아야 했습니다.
평민이 부지중에 허물을 범한 경우(27) 평민이 모르고 죄를 범한 경우 그 또한 속죄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용과 절차는 족장을 위한 속죄제와 동일하였지만 제물이 달랐습니다. 족장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 숫염소를 제물로 드렸으나 평민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 암염소나 암양을 제물로 드렸습니다(32). 알고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은 물론, 모르고 지은 죄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경미한 죄까지도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죄와 마찬가지로 가정주부, 하인, 농부, 혹은 길거리 청소부의 죄도 동일한 희생제물로 용서받아야 합니다."(스펄전)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28-29) 죄를 범한 평민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한 후 짐승을 죽였습니다. 랍비들에 따르면 제물을 끌고 온 자들이 온 힘을 다해 머리를 눌러 안수했는데, 이는 마치 "내가 내 죄의 모든 짐, 무게, 세력을 이 흠 없는 희생제물 위에 내려놓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회개할 때 그리스도를 간절히 의지하고 그에게 죄의 모든 짐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의 짐을 능히 져주실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피 흘리는 희생제물(30-35) 여기서 또 제물의 피가 언급됩니다. 그 피는 전부 제단 밑에 쏟으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속죄제의 제물들은 우리 주님의 피 흘림에 대한 모형입니다. 구약의 상징적인 모형들이 더 좋은 제물이시자 원형이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서 완성되었습니다(히 9:23-26). 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구약으로 돌아가 일일이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으며 어린 양 되시는 구주 앞에 죄를 자백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9). 제사장은 속죄제물의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살랐고 나머지 짐승의 고기는 먹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레 6:24-30).
적용: 하나님 앞에서는 제사장이나 족장뿐 아니라 지극히 작게 보이는 평민도 하나하나가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평민을 위한 속죄제의 규례까지 세세하게 언급하십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한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각자 자신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두 마리의 강아지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꾀 많은 원숭이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참견했습니다. "내가 공평하게 나눠주는 건 어때?" 강아지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원숭이에게 고깃덩어리를 주었고 원숭이는 일부러 한 덩어리는 작게, 한 덩어리는 크게 나누었습니다. 작은 것을 받은 강아지는 자기 것이 훨씬 작다고 불평하자 원숭이는 큰 쪽을 한 조각을 베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입을 베어 먹은 부분 때문에 자신의 고기가 더 작다며 불평했습니다. 원숭이는 또 다른 고깃덩어리를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하니 남은 것은 작은 고기 한 점이었습니다. 그제야 강아지들은 자신들의 싸움을 후회했습니다.
< 설 교 >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레 4:27-34 / 명성교회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수도원에 있을 때 꿈을 꾸게 되었는데, 사탄이 루터에게 나타나서 책을 펴 보이더랍니다. 그 책에 기록된 것을 보니까 루터가 지은 죄가 전부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어릴 적에 지은 죄, 젊었을 때에 지은 죄..., 사소한 죄까지 다 적혀 있는 거예요. 그래 놀래 가지고 있는데, 사단이 이러는 겁니다.
“네가 이렇게 더러운 죄를 짓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죄를 지어도 어느 정도이지, 자신이 그렇게 많은 죄를 지은 줄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낙심해서 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네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네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 루터가 이 소리를 듣고는 용기를 내서 사탄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사탄이 이 소리를 듣고는 물러갔다는 겁니다.
성경 속에는 두 가지 큰 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피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보면 계속해서 죄와 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를 넘겨보면 3장에서부터 죄를 지은 이야기가 나오지요. 레위기에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을 듣고도 사탄에게 속아서 따먹습니다. 죄를 지은 겁니다. 여러분, 죄는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보세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영적으로 너무나 힘들어요.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죄를 짓고 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압니다.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여서 치마를 해서 입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밑에서 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지요.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 내가 벗은 몸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벗은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왜 먹었느냐” “예 하나님, 하나님이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주신 여자, 저 여자가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하와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절렀느냐?” “예 하나님,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핑계를 댔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비참합니까?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서 입는다고 수치가 가려집니까?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밑에 숨는다고 숨겨집니까? 엉뚱한 것으로 대답한다고 하나님이 넘어가시나요? 핑계를 댄다고 용서가 되는 건가요?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무서운 거예요. 변명, 거짓 술수..., 이런 것이 죄의 산물입니다. 나중에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멸망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하잖아요.
여러분, 죄를 짓고 멸망하는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다시 사는 길은 없을까요? 하나님은 피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서 입었는데, 해가 비취니까 쪼르르르 오그라드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무화과나무 잎이라고 해도 나무에서 떨어졌으니 생명이 없게 되잖아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기시고 가죽옷을 지어서 입히십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화과 잎으로는 자기의 죄를 가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피를 통해서만 인간의 죄를 덮을 수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가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는 “율법을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진다고 했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를 통하여 죄지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는 자기가 만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부끄러움을 덮을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양의 피로 아담의 하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는 피의 종교입니다.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 구원받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피의 은혜로 구원받는 종교인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노릇합니다. 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습니다. 많은 매를 맞고 헐벗고 굶주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구출하게 하십니다. 이제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모세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바로가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지요. 피의 재앙을 비롯해서 개구리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나중에는 바로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것은 다 죽이는 장자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장자가 죽지 않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흠 없는 1년 된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는 겁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다니시다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다 죽일 것인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가겠다는 겁니다. 양의 피가 있으면 살려주시겠다는 거예요. 구원시키시겠다는 거예요. 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 백성들을 구별하시겠다는 겁니다. 결국 그날 밤에 피가 뿌려지지 않은 집에는 멸망이 왔지만,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 백성은 한 가정도 해를 입지 않고 보호 받고 구원 얻은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제사는 예배지요. 크게 다섯 종류의 예배가 있어요. 첫째로 번제가 있어요. 번제는 올라간다는 의미인데,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과 승천을 상징합니다. 둘째는 소제가 있어요. 소제는 제사 중에 유일하게 피가 없어요. 피 있는 제사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에는 고운가루, 기름, 유향, 소금의 네 가지를 사용합니다. 셋째로 화목제가 있어요. 화목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화목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제사장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제사입니다. 넷째는 속죄제가 있고 다섯째로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고의로 죄를 짓고 보상이 필요할 때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속죄제에 대한 말씀인데, 속죄제는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드리므로 죄가 씻어지고 저주와 불행이 씻어집니다. 이 제사는 이렇게 드립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흠 없는 양이나 염소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제물인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죄를 지은 사람이 안수하고 죽이는 거예요. 제사장은 피를 받아서 휘장 앞에 7번을 뿌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7은 완전수이기 때문에 내 죄가 완전히 깨끗하게 용서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속죄제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제물은 아무나 안 된다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특징이 있지요.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물에 이상이 있으면 안 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제물에 내가 직접 안수한다는 거예요. 안수는 전가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염소나 양에게 안수할 때에 내 죄가 양이나 염소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거예요. 세 번째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겁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해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사함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정해 놓으신 룰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실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에 대하여 30여 회에 걸쳐서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제물이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흠이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제물이 되셔서 피를 쏟으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제물에 직접 안수하여 피를 흘려서 죽으면 죄가 전가되어 정결하게 되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고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세상에 그 어떤 부모가 못된 짓을 하라고 가르칩니까? 험한 말을 하라고 가르칩니까?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어디에서 배웠는지 못된 말, 못된 버릇을 얼마나 빨리하고 잘하는지 모릅니다. 하라는 것은 잘 하지 않아도 하지 말라는 것은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 Original sin이라고 말하지요.
호주에 가면 ‘딩고’라고 하는 야생 개가 있습니다. 고양이보다는 조금 크고 진돗개보다는 작은데, 4-50마리씩 떼를 지어서 다닙니다. 호주에 있는 과학자들이 이 야생 개를 집에서 키우는 개로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어요. 태어나자마자 데려다가 우유를 먹이고 사랑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고... 이렇게 1년 동안을 몇 사람이 노력을 했어요. 그야말로 개를 개같이 사랑해 주었어요. 놀라운 것은 1년 6개월이 지나니까 본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사람을 물고 공격하고 그래서 야생 개를 집에서 키우는 개로 만드는 것을 실패했어요. 그냥 들로 돌려보냈어요.
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이래요. 어렸을 때에는 얼마나 예쁩니까? 방긋방긋 웃고 부모의 마음을 쏙 빼놓지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성장해가면서 미운 짓을 해요. 옛날에는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미운 다섯 살이래요. 조금 더 있으면 미운 세 살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짓 굳은 짓을 하는지, 나이가 들면서는 무서워집니다. 미움과 시기와 생겨요. 판단하고 원망하고 정죄까지 해요. 어떤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저질러요.
많은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나 윤리학자들이 이런 것을 막아보려고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해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거예요. 유아기에는 어떻고 아동기에는 어떻고, 성인기에는 어떻고 해도 인간이 변화되지는 않는 거예요. 변화되는 것 같은데 변화되지 않는 거예요. 시대가 가면서 더욱 포학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사람이 새롭게 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피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씻어준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저절로 새로워지는 거예요. 내 죄가 용서받고 내가 깨끗해졌는데,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으며, 어떻게 변화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 만일에 예수님의 피를 믿기는 하는데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우리는 보혈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내 죄를 씻기 때문입니다. 내 몸에 묻은 더러운 것은 비누로 씻으면 깨끗해집니다. 산을 무너트리려면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내 심령 속에 있는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뉘우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 지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서 가능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해진다.” 인간이 지은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을 수가 있고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해질 수가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는 아무도 없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보혈은 능력이 되는 겁니다.
찬송가에도 있잖아요.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여러분, 구약은 동물의 피로 정결하게 되지만, 신약은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겁니다. 구약은 동물의 피로 제사 드리지만, 신약은 예수의 피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집트 사람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를 보지 않으세요. 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는 거예요. 만일에 이집트 사람들도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뿌렸다면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얼마나 다녔느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목사나 장로냐, 권사냐 집사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를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 사람에게는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직분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예수님의 피가, 예수님의 보혈이 그 사람의 심령속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죄가 용서받고 안 받고가 달라지는 거예요.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피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진홍 가슴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몸이 온통 잿빛이었습니다. 이름은 진홍 가슴새인데 몸은 잿빛인 거예요. 새끼를 낳아도 여전히 잿빛인 겁니다. 이 잿빛 새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붉은 새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이 새가 갈보리 산 위를 날고 있었는데,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갈보리산 위에 세 명의 죄수들을 십자가 형틀에 묶여 있는 겁니다. 가까이 내려가 보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셔야 하는가!”하는 말을 합니다.
잿빛 새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에 왠지 마음이 끌렸습니다. “죄가 없는데 왜 십자가에서 죽는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더욱 가까이 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시가 온통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 가시 면류관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잿빛 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잿빛 새는 예수님의 머리 쪽으로 가까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리로 예수님의 머리에 박힌 가시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날개 짓을 뒤로 하면서 힘껏 뽑아냈습니다. 그렇게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피가 솟아나서 이 작은 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잿빛 새는 자신의 가슴에 묻는 빨간 피를 씻기 위해서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물가에 앉아서 물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 안으로 들어가서 날개 짓을 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묻힌 피를 씻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의 몸에 묻혀진 빨간 피는 씻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씻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잿빛 새는 자신의 모습을 물위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색깔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답게 변해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잿빛 새가 낳는 새끼마다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을 가진 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잿빛 새는 오랫동안의 바람이 이루어져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삶이 축복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름 그대로 진홍 가슴새가 된 것입니다.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라게를뢰프가 쓴 ‘진홍가슴 새’라는 동화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슴에는 진홍 가슴 새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새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사망을 생명과 구원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속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원죄의 뿌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단번에 끊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다 예수님의 보혈 때문입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를 새롭게 했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십자가 보혈의 흔적으로 은혜를 듬뿍 받아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제물이 되셔서 피를 흘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주의 보혈 안에 살게 하시고 보혈의 능력으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보혈의 능력으로 헌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피로 씻어 거룩해집니다.
레위기 4장 27~35
계속해서 속죄제에 대한 말씀이다.
기름부은 받은 제사장의 속죄제, 이스라엘 온 회중의 속죄제, 지도자인 족장의 속죄제에
대해서 3일간에 걸쳐서 보아 왔고
오늘의 본문에는 평민을 위한 속죄제에 대한 말씀이다.(27)
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에서는 똑같이 흠 없는 수송아지를 드렸다.
백성의 지도자인 족장의 범죄에는 숫 염소를 제물로 드렸다.
평민의 속죄제에는 두가지 제물을 드릴 수가 있다.
1. 흠 없는 암 염소를 예물로 삼을 수가 있다.(28)
2. 흠 없는 암컷의 어린 양을 예물로 드릴 수가 있다.(32)
레위기 3장에서 화목제를 드릴 때에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드렸는데
평민의 속죄제에 암염소나 암컷의 어린 양을 드리는 구나.
드리는 방법은 백성의 지도자인 족장의 속죄제와 비슷하다.
먼저 제사를 드리는 자가 흠 없는 암 염소나(28) 흠 없는 암컷 어린양을 끌고 온다(32)
희생 제물의 머리에 죄를 전가하는 안수를 하고(29, 33)
누가 대신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번제소에서 희생 제물을 잡는다.(29, 33)
나는 어릴 때 산토끼를 많이 잡아봐서 안다.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갈라내고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장만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줄....
작은 산토끼도 그런데 염소나 양을 직접 잡는 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한번 직접 칼을 들고 잡아보면 다시는 죄 짓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지 모르겠다.
아무튼 속제죄를 드릴고자 하는 사람이 직접 제물을 잡아야하고
기름을 갈라내야 하고 콩팥등을 채취해야 한다.
물론 피는 따로 받아야 한다.
피는 제사장에게 드린다.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 뿔에 바른다.(30,34)
남는 피의 전부는 단 밑에 쏟는다.(30,34)
모든 기름은 화목제의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한다.(31,35)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린다.(31,35)
제사장이 그의 범죄한 죄에 대하여 속하면 그가 사함을 받는다.(31,35)
희생 제물 가운데 염소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김소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배웠다.
특히 레위기 16: 8~16 아사셀의 염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속죄일에 두 마리 염소 중 제비를 뽑아 한 마리를 광야로 내어 보냈는데
이것이 아사셀 염소이다.
아사셀이란? '떠나보냄" 이라는 뜻이라 한다.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져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가 남아 있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아사셀 염소가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예루살렘 밖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셨던 바로 그 예수님의 모습이다.
두번째 희생 제물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 바로 어린 양이다.
어린 양 역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로다" (요1:29) 말씀하셨고
"너희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 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벧전1:18~19)
말씀하셨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신 분이시다. 아멘.
그 분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어린 양이 되시고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는데
나는 우리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죄 사함을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어린 양과 같이
희생 제물로 삼아서 큰 희생을 하셨는데 나는 주님 앞에 작은 희생도 버겁다.
피흘림이 있는 생명의 희생은 못하더라도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새 생명을 생명 전하는데 사용되는 통로로 쓰임 받아보자. 아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낌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대속의 제물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나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희생의 제물로 드려 주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십자가에 피 흘림이 나의 구원이요 새 생명임을 찬양합니다.
나를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그렇게 피를 흘리시고 희생하신 주님
그 사랑에 나도 반응하는 사람 되게 하시고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를 깨우쳐 주면 기뻐하라
레 4:22-35
◈ 주 해
1. 속죄제는 “의무제”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반드시 드려야 한다.
1) 부지중에, 무의식적으로, 실수로 행한 잘못이어도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 “실수였다. 알지 못하고 했다”며 변명하지 말고,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 한다.
2.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그 벌이 백성에게 돌아가게 된다(레4:3).
1) 그러므로 제사장의 죄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2) 속죄제를 드리면 우리도 사함 받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정결해 진다.
3. 우리가 죄를 짓고도 깨닫지 못하다가 죄 지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축복이다.
1) 말씀의 빛으로 “실수로,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달아보혈로 씻는 것은 복이다.
2) 성령께서 말씀의 빛과 환경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드러내심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게 하려 하심이다.
3) 그러므로 우리의 죄와 악이 드러나는 것, 들키는 것은 은혜요 감사요 기뻐할 일이다.
4. 레 4: 22-26은 족장이 부지중에(실수로,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하는 규례이다.
1) 족장(나시)은 지파의 지도자나 가족의 지도자다.
2) 그가 부지중에 죄를 지었는데, 누가 그의 죄를 깨우쳐 주면흠 없는 숫염소를 제물로 속죄제를 드린다.
4:23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숫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5. 레 4: 27-35은 평민의 한 사람이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하는 규례이다.
1) 평민도 자기가 범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가 범한 죄를 깨우쳐 주면속죄제를 드리라는 말씀이다.
4:28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6. 사람이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닫는 경로는 크게 3가지이다.
1) 첫 번째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의 죄를 자각하게 하신다.
EX) 비난받게 하심으로 나도 남을 비난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7.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예배(묵상) 가운데 죄를 깨닫게 하신다.
1) 이것을 히브리서는 말씀이 성령의 검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말씀의 검을 통하여 우리의 죄는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동기까지도 드러내시며, 가장 깊은 죄도 드러내신다.
3)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드러나듯이, 우리를 벌거벗기신다.
4)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말씀은 또한 복음이신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한다.
8.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경을 통해서(예를 들면 광야)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고 탓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오지 않는 자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마지막 수단은 “다른 사람의 조언과 책망”을 통해서이다.
1) 겸손한 자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죄에 대하여 조언을 듣거나 책망을 들으면 기뻐한다.
- 하나님과 막힌 관계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보혈로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2).
9. 그러나 교만한 자는 자기변명과 합리화를 통하여 드러나는 죄를 감춘다.
1) 더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사람을 비방하고, 그 사람을 비방하면서 의로운 척 한다.
2) 이렇게 되면 부지중에 죄를 지은 족장과 평민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 즉 죄를 깨닫게 함으로 속죄제를 드려 죄사함을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3) 오늘날에는 죄에 대한 책망과 조언이 “상처를 받는다는 이유”로 금기시되고 있다.
- 상처로 받는다면 어차피 죄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며, 속죄제를 드리지 않을 것이므로 조언하거나 책망할 필요는 없다.
4) 그러나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현실은 서글픈 일이다.
10.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나의 죄를 깨우쳐 줌으로 인하여 드리는 속죄제사를 “향기로운 제사”로 받는다고 하셨다.
4: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심은 정죄를 위함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2) 하나님의 이 사랑, 생명의 교제를 안다면, 죄를 깨닫는 것이 복이며 기쁨으로 알게 된다.
- 그러면,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책망으로 나의 죄가 드러날 때 우리는 “인정하고 감사”하게 된다.
3) 그리고 이렇게 겸손한 자가 속죄제를 드릴 때, 주님은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신다.
11. 우리가 기억할 것은 속죄제사를 드리면 자동적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1)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는다(26, 31, 35).
2) IF 속죄제물을 드려도 제사장이 죄를 사해주지 않으면 죄사함은 없다.
- 즉, 속죄제물을 속죄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의 의, 우리의 공로, 죄사함을 받는 자격이 될 수 없다.
3)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자백했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께서 그 회개와 자백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심으로 죄사함을 받는다.
4) 그러므로 회개, 자백, 비참함을 인정하는 것을 나의 의로 여기면 안된다.
12. 족장의 속죄 예물은 숫염소이고 평민의 속죄 예물은 암염소나 어린 암양이다.
1) 그 외에는 족장과 평민의 속죄 제사를 드리는 방식이 같다.
2) 족장과 평민의 속죄제는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속죄제(수송아지)와도 제물이 다르다.
- 또한 제사장과 온회중의 속죄제 피는 지성소 휘장과 성소안의 향단 뿔에도 발랐지만, 족장과 평민의 속죄 피는 번제단 뿔에만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는다.
3) 제사장과 온회중의 속죄제물을 기름을 태우고 나머지는 진영 밖에서 태웠지만 족장과 평민의 속죄제물은 화목제처럼 기름을 태운 후에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먹었다(레10:16-18).
4) 이런 속죄제사의 차이는 책임에 따라서 죄로 인하여 오염되는 성소의 범위가 다르고, 미치는 영향도 다름을 말한다.
13. 하나님은 예물만 다르고 속죄제의 방식이 같음에도 3번이나 속죄제의 방법을 반복한다.
1) 이하 동문...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강조한다.
2) 속죄제 즉 몰랐던 죄를 깨닫고 보혈로 씻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14. 주홍같이 붉은 죄, 존재적인 죄인이 정결하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죄를 깨닫고 보혈로 씻어야 할까? 이에 대하여 고백한 찬양이 있다.
-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15. 속죄제에서 깨달아야 할 죄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의 죄가 아니다.
- 여호와의 계명 중에서 하나라도 어긴 죄를 말한다.
1) 하나님이 보실 때, 죄가 되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2) 예를 들면, 교만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작은 죄이거나 죄가 아닐 수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교만(하나님 노릇)은 가장 큰 죄다.
- 교만은 인간의 타락의 시작이며 정점이다. 또한 모든 죄들의 근원이다.
16.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판단된다.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지은 죄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 51:4).
1) 다윗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
2)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 모든 죄의 삯은 사망이다.
-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죄들은 죽을 죄가 아니다.
3) 나를 기준으로 죄를 깨달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방법(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으로 죄사함을 받아야만 한다.
4)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충족시키며, 동시에 우리를 의롭게 한다.
◈ 나의 묵상
비참한 존재
나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책망을 통하여 나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저항하는 자다. 자기변명과 합리화에 능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조언할 자격이 없음을 증명해 준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죄들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이 되어 있겠는가?
또한 나는 사람들이 상처받을까봐 그들의 죄를 보고도 조언하거나 책망하지 못한다. 그들을 생명으로 나아가는 하는 것 보다도 갈등이 없는 것, 나를 좋게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속죄제가 나에게도 없고 남에게도 없다. 나는 의무제, 반드시 드려야 할 속죄제를 이렇게 소홀히 여기고 있다.
게다가, 하나님이 보시는 죄를 간과한다. 교만이 가장 큰 죄, 마귀적인 죄, 죄들의 뿌리라는 것을 지적으로 동의할 뿐, 교만의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통곡하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 죄를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통한 죄 깨달음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말씀의 빛으로 나의 죄를 날마다 보는 것을 하지 않았었다. 매일 큐티를 했지만 말씀의 빛으로 나의 죄를 깨닫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주장의지, 교만이 하늘을 찔렀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죄를 깨닫지 못하였었다.
날마다 죄를 깨닫고, 날마다 보혈로 씻어도 부정한 자인데...
그래서 주님은 메마름을 주셨다. 그리고 나의 죄를 폭로하셨다.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내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내 안에 감추어졌던 죄들을 드러내게 하셨다. 그 비참함을 생명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자, 그 비참함은 생명이 되지 못하고 우울과 불안이 되었었다.
2. 복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용납받은 자
하나님은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날마다 나의 비천함을 말씀을 통하여 보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납됨”을 알게 하여 주셨다. 오늘도 주님은 교만한 나, 나의 죄를 보기 싫어하는 나조차 용납하신다. 그리고 나의 폭로된 죄를 인정하면 주의 보혈로 씻으시고 기뻐하신다.
날마다 세리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된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죄인인 줄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를 억지로라도 말씀 앞으로 이끄신다. 그리고 나의 비참함을 담당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나의 죄를 드러내신 부요하신 주님 앞에 나의 교만과 자기합리화와 탐욕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드린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담함들... 주님은 주의 보혈로 이 모든 죄들을 씻고, 내 영혼을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존귀하게 여기시고 십자가의 사랑안에 거하게 하신다.
3. 생명: 아버지 품안에 거함
하나님, 수많은 죄가 내 안에 있고, 깨닫지 못하는 자...어찌 아버지 품속에 거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긍휼이 나를 품어 아버지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어찌 이 죄인을 기뻐하심으로 맞아주시는지요.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을 용납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의 주인, 나의 생명, 나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기쁨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주님의 인자하심, 말씀앞으로 나오게 하신 주의 신실하심을 봅니다. 그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는 내가 아는 죄도 토설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많아서...부끄러워서 토설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지중의 죄를 어찌 다 토설하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는 죄, 죄덩어리 이면서도 남을 판단하고 주장하려고 했으니 어찌합니까? 율법을 다 지키지도 않으면서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주님, 날마다 세리처럼 주의 긍휼을 구하며 죄인임을 자각하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하옵소서.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말씀의 검으로 내 속 깊은 죄들이 빛 가운데 드러나며 십자가의 보혈로 사함 받게 하옵소서. 주님, 죄를 깨닫게 하고, 깨닫게 된 죄를 기뻐하는 성숙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감추어진 죄, 깨닫지 못한 나의 죄가 드러날 때마다 기뻐하며 십자가의 사랑을 누리게 하옵소서. 회개가 사라진 저와 저희 교회와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속죄제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