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6.20(일) 09;30-18;00
★코스; 의정부역-중랑천-부용천-민락천-귀락천-민락로-귀락마을-구리,포천hw/자금지하차도/문화공원-찬우물골-
무림리-광릉수목원로-이곡초교-고모루성길-고모저수지-고모천-포천천-화산서원-백사 이항복 묘-포천로-
우금저수지-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진금로-진목천-왕숙천-크낙새축구장-부평생태습지/봉선사천-
왕숙천 자전거길-내각대교-진관교-퇴계원역(60km)
★참가; 쉐도우수, 홍토마, 아스트라전, 스머프차
어느덧 봄이 지나가고 성하의 계절이 돌아왔다. 중국 속담에 '땡볕에 오리알이 익는다는 6월'이다. 6월은 나라를 위해 묵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포천에 위치한 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를 답사하게 된 배경은 쉐도우수가 2020년 10월25일 사전 정찰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라이딩은 의정부역에서 퇴계원역에 이르는 여정(60km)으로 백사 이항복 선생 묘소와 백사서원을 경유하는 행로다. 중랑천으로 진입하고 부용천, 민락천, 귀락천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귀락천 상류에서 민락로로 들어서서 휴업중인 고방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달콤한 휴식을 하면서 카보로딩하고 페달링을 재촉하였다. 쉐도우수가 귀락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보고 '저 고개 봐, 경사가 엄청나. 고갯길은 640m야'. 이 말한마디가 심리적 압박으로 포기할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기질여풍으로 어머니 젖먹던 힘까지 다쏟아내면서 정상을 극복하였다.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며, 등줄기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대열잔차 전사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청춘이었다. 아스트라전은 100% 성공이라고 기쁨을 만끽했다.
귀락마을은 의정부시의 최동북단에 위치한 마을로 600여년 전에 형성된 마을이다. 평안도 지방의 선인들이 이곳 마을 거능굴을 지나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구리,포천 고속도로 위를 통과하여 농로길을 따라가면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에 이른다. 포천(抱川)이란 명칭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이 없고 외부로 흘러나가기만 한다고 하여 포(抱), 내천(川)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포천지역은 한양과 가깝고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어 왕족과 사족들의 묘가 많다. 무림리 마을을 통과하여 광릉수목원로를 타고 이곡초등학교에서 한 박자 쉬어갔다.
이곡리 전원마을을 따라가면 산자락에 그림같은 집들이 펼쳐진다. 유황수목원요양원을 지나면 고모루성길을 만난다. 고모루성길은 포천 고모리산성에서 따온 명칭이다. 포천고모리산성은 백제산성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고구려가 남진하는 것을 비득재고개(고모리에서 직동리로 통하는 고개)에서 막겠다고 쌓은 토성이다. 북으로 철원, 포천 일대와 남으로 한강일대를 연결하는 통로를 장악하기 위한 고대의 군사상 요충지이다. 고모루성길을 따라가면 고모호수공원에 도착한다. 고모호수공원은 아담한 호수공원으로 제법 운치가 있었다.
수변데크길, 분수, 쉼터 등이 조성돼 있고, 저수지 주변에는 펜션, 모텔, 식당,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아스트라전은 6공병 여단장 시절에 이곳에서 회식을 주로 하였다고 하였다. 여행은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음식은 빼놓지 않는다. 고모호수공원 근처 식당인 구이구이 생선구이집에서 생선구이와 갈치조림으로 꿀맛 같은 식사하면서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화산서원으로 향했다. 식비는 쉐도우수가 해결하였다. 쉐도우수가 새 타이어로 교체하여 기분이 좋다고 하여 한 턱을 쏜 것이다. 대원들은 새 타이어에 손을 대고 쉐도우수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였다.
죽엽산로와 고모천, 포천천을 따라가다가 포천천 농본교에서 페달을 멈추고 아스트라전은 6공병 여단을 바라보면서 옛 추억을 회고하였다. 전역하는 날에 화랑대에서 6공병여단까지 36km를 마라톤하고 퇴역식을 했다고 하였다. 36km 마라톤은 36년 군대생활을 의미한다. 그리고 6공병 여단장 시절에 무장 탈영병이 발생하여 노심초사하였는데 어느 회사 사장이 탈영병을 차에 태우고 회사로가서 해결한 덕분에 시름을 놓았다고 하였다. 가산면 방축리로 접어들면 화봉산(179,1m) 자락에 위치한 화산(백사)서원에 당도한다.
화산서원은 오성대감으로 알려진 이항복(1556-1618)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인조 9년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46년(1720)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화산'이란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71년 지방 유림에서 복원하였다. 경내의 언덕각에 이항복의 위폐를 모시고 있다. 이항복 선생 묘소는 화산서원에서 남쪽으로 약 2km 거리 내에 위치해 있다. 이항복(1556-1618) 선생은 포천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로 1580년(선조13)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도승지로서 선조를 호종한 공을 세웠고 광해군 때 인목대비 김씨 폐위를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봉분은 쌍분이며 부인 안동권씨(권율장군 딸)와의 합장 묘이다. 이항복 소년과 퇴계 선생의 일화가 유명하다. 조선 왕조 14대 임금인 선조 때의 일이다. 퇴계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선조의 부름으로 입궐하기 전에 퇴계 선생을 남문 밖의 한가한 곳으로 안내하였다. 어린 소년 이항복이 퇴계에게 절을하고 질문하였다. 우리말에 여자의 소문(小門)을 '보지'라 하고 남자의 양경(陽莖)은 '자지'라고 하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퇴계선생은 대답하기를 여자의 소문은 걸어다닐 때 감추워진다고 해서 걸음보(步), 감출장(藏), 갈지(之) 세자로 '보장지'라 한 것인데 말하기 쉽도록 감출장(藏)을 빼고 '보지'라 하였으며, 남자의 양경(陽莖)은 앉아 있을 때에 감추워진다고 해서 앉을 좌(坐) 감출장(藏)을 빼고 '좌지' 한 것인데 잘못 전해져서 '자지'라 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리고 이항복이 또 다시 질문하였다. 여자의 보지를 '씹'이라 하고 남자의 자지를 좇(좆)이라고 하는 무슨 까닭입니까? 퇴계 선생이 말하기를 여자는 음기를 지녀 축축한 습(濕)자의 발음을 따라 습이라 한 것인데
우리말에는 되게 소리를 내는 말이 많아 '씁'자가 되었고 이것이 발음이 편하게 '씹'이 된 것이다. 남자는 양기를 지녔으니 마를조(燥)의 음으로 조라고 한 것인데 이것 역시 된소리로 '좆(좇)으로 변한 것이라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금현1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우금저수지를 경유하여 육사생도 6.25 참전 기념비에 당도하였다. 마음이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기념비 앞에는 육사 31기 동기생일동의 조화가 놓여있었다. 귀감이 될 정도로 정말 훌륭한 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71년 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사관학교 1,2기 사관생도 539명은
생도대대 소속으로 계급과 군번없이 최전방 격전지였던 포천전선에 투입되었다. 1기생 262명 전원은 졸업을 불과 20일 앞두고 있었으며, 2기생은 입교한지 한 달도 채 안된 상태였다. 당시 박격포와 자동소총을 손에 들고 포천지역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전차 등으로 무장한 북괴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에도 태릉전투, 금곡리전투, 수원전투 등에 투입돼 육사혼을 불살랐다. 치열한 전투 속에 1기생 65명, 2기생 86명 등 151명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세계사에도 유래가 드문 사관생도 전선 투입및 희생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전하고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8년 생도 1,2기 동기회 모금사업으로 1979년 12월1일 건립됐다. 육사생도 6.25 참전비 앞에서 거수경례와 묵념으로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넋을 위로하였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던 육사 생도 1,2기 선배님들의 6.25 격전지를 돌아보게 되어 감회가 깊었다. 그 당시 선배님들은 꽃다운 나이였다. 꽃을 다 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이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 길만이 통일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육사 1,2기 생도 선배님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일별하고 퇴계원역으로 향하였다. 진금로에서 87번 도로를 타고 가다 내진로와 진목천을 따라가면 진목3리회관이 나온다 진목3리회관 옆 표지석이 눈길을 끌었다. 죽엽산 마을 유래였다. 조선 선조 시대의 학자 이지함이 진목리 마을이 매년 수해가 극심하여 마을 뒷산 순산 중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대나무 잎으로 덮은 후로는 수해가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죽엽산이라고 칭하였으며 이 마을 역시 죽엽산이라 하였다. 광릉 크낙새 축구장을 거쳐 왕숙천 자전거길을 따라 진관교에서 퇴계원역에 18시에 당도하였다. 이번 여행길은 초행이지만 의미가 남달랐다.
호곡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육사생도 1,2기 선배님들의 6.25 참전에 대한 훌륭한 역사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항복 선생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전거 여행은 때로는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하다. 대열잔차 전사들과 함께하는 여인동락은 언제나 재미가 쏠쏠하고 행복감을 안겨준다. 이번 여행을 직접 기획한 쉐도우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홍토마, 아스트라전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대열잔차 브라보!
의정부역에서 출발 전
중랑천 자전거길에서 부용천 자전거길로 들어서기 직전
부용천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
민락천 초입에서 1차 휴식
민락로로 들어서서 고방 음식점(휴업중) 야외 테이블에서 2차 휴식
저 멀리 보이는 고갯길(640m)을 향하여
고개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아스트라전과 홍토마
귀락마을 표지석에서 3차 휴식
이곡초교 앞에서 4차 휴식
고모루 산성길 고개를 향해서
고모루산성길 고개 정상에서 5차 휴식
고모루산성으로 가는 들머리
고모 호수공원에서
구이구이 생선구이 식당 앞에서
생선구이와 갈치조림으로 식보
아스트라전은 포천천 농본교에서 6공병여단을 바라보면 그 당시 시절 회고
화산서원에서
이항복 선생 묘소를 배경으로
이항복 선생 묘소 참배
우금저수지를 배경으로
육사생도 6.25 참전 기념비 계단 입구에서
육사생도 6.25 참전 기념비 앞에서 거수경례
육사생도 1,2기 6.25 참전 활약상
진목3리회관
진목리 죽엽산 마을 유래
GS 25 편의점에서 게토레이로 더위를 식힘
광릉 크낙새 축구장에서 왕숙천 자전거길 시작점으로 진입
왕숙천 자전거길 쉼터에서 6차 휴식
왕숙천 자전거길에서 아스트라전 자전거 상태 점검 '뒷브레이크 이상 발견'
왕숙천 자전거길
왕숙천 진관교를 건너는 중
퇴계원역에서 상황종료(60km, 18;00)
첫댓글 대열 잔차대장 스머프 차! 어젠 제법 긴 여정이어서 피곤했을 텐데도, \ 이리 상세하면서도 이날 보훈 라이딩의 취지와 의미를 잘 살려준 후기를 신속하게 쓰시고 카페에 올리느라 수고 많았네요! 늘 감사드리네요! 우리도, " 브라보 대열 잔차부대!!"
아스트라전이 퇴역식하는 날에 화랑대에서 6공병여단까지 36km 마라톤, 36년 군생활과일치하다니 믿기지 않네. 정말 신기한 일이지
그리고 여단장 시절에 무장 탈영병을 민간인 회사 사장이 해결해 준 점도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아스트라전은 착실한 불교신자로 부처님께서 무장탈영병에게 영향을 미쳐 꿈직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나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네. 이번 라이딩은 힘들었지만 인생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기억에 남는 멋진 라이딩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