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30일(본 여행기에 나오는 정보는 극히 믿을 게 못돼 읽는 즉시 망각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게르 앞에 엉청난 분량의 말똥이 널려있다.
새벽에 어렴풋이 들려오던 말울음.
말이 지나고 나면 소가 지나고 또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허공에 공명되어 들린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 게르촌 뒷산을 넘으면 거북바위가 있는 동네라 개들이 짖으면 그 소리가 산에 부딪혔다가 다시 허공으로 메아리치는 것이다.
개소리가 들리고 나면 이번엔 새소리. 새 종류도 많은지 여러 소리가 들린다. 특이한 놈은 <테,테,테,테,,,,,>하는 놈이다. <테>란 소리를 어찌나 크게 하는지 자세히 살피니 손톱만한 벌레다. 어떤 놈은 아예 게르 안에 들어와 한바탕 휘젓고 나간다.
이번 여행은 그야 말로 아주 한가한 여행이다.
아침 식사시간도 대충이고 관광지 출발, 도착도 대충 대충이다. 가이드들의 설명도 그냥 대충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올 퇴직하신 모 선생은 벌써 산책을 나가셨다.
사모님께 물어보니 산책 나가신지 시간 반이나 됐단다.
뒷산으로 오른다.
아주 거친 산이다.
아래에서 볼 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오를수록 강하게 저항한다. 자칫 잘못하다 실족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하산한다.
괜히 1시간이나 헛김 뺐다.
샤워하고 식당으로 가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일정을 변경하여 승마체험을 한 번 더 하자는 의견이 나온 모양이다.
‘여자 입 하나는 남자 입 열을 더 한다’.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승마체험을 더 하자는 여선생의 의견을 정면에서 반대할 용사는 아무도 없다.
결국 낙마를 한 모 선생과 몇 여선생은 톨 강 산책을 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승마체험장으로 향한다.
코스는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정한다. 문제는 말들 구하기가 어렵다.
갑자기 말 40마리 정도를 수배하려니 아무리 국민 1인당 말 수가 10이라고 하나 갑자기 훈련된 말을 구하려니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 말 40마리를 수배 다 못하고 출발하는데 몇몇 마부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가야 할 상황이 되는데, 아이고 맙소사. 내 경우가 이런 경우를 당한다. 마부는 자기 말을 나에게 주고 자기는 걷는데 도저히 안스러워 더 이상 타지를 못 하겠다.
고삐를 받아 쥐고 츄, 츄하고 가는데 마부는 끝까지 따라 오는 것이다.
약 1시간의 승마. 반환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는 마부를 보니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다.
언어도 안 통하니 말도 안 되고. 내가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돈밖에 없는데 그것도 다른 마부 모르게 줘야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 마부는 50정도의 뚱뚱한 여자인데 너무 안쓰럽다.
다시 출발. 더 이상 타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내자 그것도 안 된다는 표정.
할수 없이 그는 걷고 나는 말을 타고 걷는다. 조금 자신이 생기자 연신 츄, 츄, 소리를 지른다.
말이란 놈도 참 불쌍하다. 파리 떼가 급습을 하는데 코에 파리가 들어가는지 연신 푸드럭 거린다. 꼬리로 연신 파리 떼를 쫒는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2시간의 승마체험이 끝나고 거북바위로 이동.
“테를지 여행은 별 것 없죠. 자연 풍광 감상과 승마체험 정도랄까요. 그냥 푹 쉬었다가는 느낌이 중요하죠”
거북바위 앞 잔디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가이드가 건네는 말이다.
점심은 역시 울란바토르 사장이 공수한 음식.
이제 울란바토르로 이동.
이동 중 징기스칸 동상을 방문.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 마동상인데 높이가 무려 100미터 에 달한다.
동상은 텡스텐으로 제작된 것인데 벌판 한가운데 우뚝 쏟아있어 위용을 더한다.
입구는 독일 00000의 문을 본 뜬 것으로 보이는데 조잡한 수준이다.
오는 도중 낙타타기 체험. 낙타 타기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준비된 낙타는 총 3마리.
약 50m 쯤 걸어갔다오는 게 체험의 전부. 낙타 등에 타는 사람은 오로지 사진이 목적.
나는 아예 포기.
마지막 행사는 발마사지.
요즘 여행에서 발마사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어쩐다?
나는 발마사지만큼 싫은 것도 잘 없다. 아프고, 간지러운 게 시원함의 10배는 더 되리.
“전신 마사지 정도의 수준”이라는 가이드의 말을 믿고 용기를 내어보는데, 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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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31.
조식 후 차에 오르자 사장이 멘트를 한다.
“오늘 가이드 00를 짤랐어요.”
오늘 일찍 와서 손님들 아침식사를 챙기랬더니 “‘어린애도 아니고 챙겨 논 밥 먹는 게 뭐가 어려워 내가 일찍 나와야 한단 말이죠?’ 이런단 말이죠. 내 마인드와는 전혀 맞지 않아요. 하여튼 이게 몽골인이예요.”
오늘은 시내 구경.
남한 17배나 되는 나라를 몇 일만에 돌아본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겨우 울란바토르 주변을 탐색하다 가도 부족할 정도.
더구나 몽골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온 여행이니 아쉬움이 많다.
적어도 <몽골비사>라도 들고 올 일이다. 하다못해 lonely planet 몽골편이라도 지참했어야 했다.
자이상승전탑 이동 중 텔런트(?) 모모 씨 이야기를 꺼낸다.
하여튼 자슥이 여러 나라에 국가 똥칠을 하고 돌아다닌다.-이 자슥은 여러 나라에서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자이상승전탑은 몽러 연합군이 일본군을 상대한 전투를 기념해 세운 탑으로 울란바토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구릉 위에, ‘이름없는 군인들의 영웅’들을 추모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건립하였다.
곳곳이 아파트 공사다. 가이드 말을 들으니 일반인들은 아파트 구입은 거의 불가능이다. 1채에 1조원.(가이드와 대화가 불확실하다보니 이런 가격이 나온다) 사장과 이야기 해보니 20평 정도가 10억 정도? (울란바토르는 50만 거주의 계획도시. 지금은 150만이 넘으니 주택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말이다)
눈을 돌려 보니 야산에 불상을 모자이크한 그림이 보인다. 아주 큰 불상인데 울란바토르 정도 800년을 기념해 조성한 곳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자리를 옮긴 곳은 이태준 열사 기념 공원.
처음 듣는 애국 열사 이름이다.
보그드칸 8세의 주치의로 1921년 2월 러시아 백위파의 ‘미친 남작’ 운게른의 부하들 손에 교살된다.
외국인에게 몽골정부는 2,000여평의 땅을 기꺼이 내 놓은 것은 그만큼 열사의 공이 컸기 때문이리다.
다음은 몽골 마지막 황제의 겨울궁전인 북후드항 방문과 황제 유물, 그리고 여름궁전 및 탱화 감상.
이곳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엔 궁전 안에서만 찍을 수 없는데 모두들 겁을 먹었는지 밖에서도 찍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무도 카메라를 안 꺼낸다.
궁전은 아주 낡고 초라하지만 찬찬히 보려면 반나절은 잡아야할 정도다.
궁전을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요즘 울란바토르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많아졌어요. 기상이변이죠”
점심을 하러 매니져 식당으로 향하며 술 문화 하나를 전한다.
“울란바토르엔 매월 1일 술판매가 금지죠. 시골은 15, 30일. 그래서 이날은 호텔 잡기가 어렵죠. 많은 사람이 술을 사서 호텔로 향하기 때문이죠.
내일이 1일이니 오늘 한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대낮인데도 한 잔 식은 별 사양 않는다.
간딩(‘완벽한 기쁨이 있는 위대한 장소’란 뜻) 사원으로 이동.
26m나 되는 불상은 위압감을 주기 충분하다.
lonely planet을 보자 .
<이 조각상은 1911년 제 8대 복드칸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 복드항은 매독으로 눈이 멀었는데 이 불상으로 시력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불상은 1937년 러시아인들이 실어가고 말았다. -불상을 녹여 총알을 만들었다고 함- 새로 만든 불상은 1996년 일본과 네팔의 기부금을 받아 만들어졌다. 높이가 26m나 되고 구리를 사용했으며 금을 입혔다. 조각상 안은 비어 있는데 27톤의 약초, 334개의 경전, 200만 개의 만트라가 들어 있다>
이런 볼거리인데도 안 보는 이가 있다.
교회에 나가는 00인데, 쩝,,,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마라---현 교황의 행복 10가지 중에서.
수쿠바타르 광장으로 이동. 1921년 ‘혁명의 영웅’ 수쿠바타르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광장 가운데 으르그, 노밍 후레 등 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이 적힌 명판이 있다는데 찾지를 못한다.
광장 끝에 있는 거대한 대리석 건물은 2006년 800회를 맞이하는 징기스칸의 즉위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국회의사당이며, 지하는 일종의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동상 양 옆은 오고타이와 쿠빌라이가 지키고 있고, 기념탑을 지키고 있는 것은 두 명의 몽골 전사인 보루추와 무흘라이이다.
오늘 마지막 관광.
전통공연. 머린오린, 허밍, 전통 기예와 춤 등을 선보이는데 ‘허밍’이 압권이 아닐까한다.
1시간 20분 동안 모두들 흥분상태.
석식. 소고기 샤브샤브.
몽골에 와서 간 곳 중 가장 화려한 식당.
몽골에 이런 식당이 있었나할 정도다. 모두들 흡족힌 듯.
식사 후 뒤풀이는 숙소 지하 노래방으로 이어진다.
징기스칸보다 몇 배나 비싸 보이는 술을 겁도 없이 마신 모양이다.
결국 자충수에 빠진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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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일
호텔 조식은 생략.
공항으로 향하며 비로소 사장이 몽골에 정착한 이유를 설명한다.
기대되는 내용이다.
-일본 가이드 5년 후 우연히 몽골 고비사막에 갔다가 암흑 속에 차 전복. 기적적으로 구출 후 몽골 발전에 위해 생을 바칠 걸 결심.
공항 도착.
출국수속을 밟는데 사무총장이 자꾸 눈웃음을 보낸다.
어제 실수를 제법 한 모양이다.
12시 10분-KE8868
16시15분 인천도착
17시 15분 인천출발-KE1405
18시 20분 부산도착
속은 쓰리고 몸은 말이 아니다.
승전탑 오르는 길에서 사다. 전통공연장 앞에서 파는 작품에 비하면 초보수준. 가격도 1/10수준.
징기스칸,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가? 정복자인가 단순한 약탈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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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형제를 죽인 놈들,
내 뜨거운 곳에서 힘차게 나올 때
이놈이 제 손에 검은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
제 모태를 물어뜯는 카사르 개처럼,
바위에 덤벼드는 표범처럼,
제 분을 누르지 못하는 사자처럼,
산채로 삼키려는 망고스처럼,
제 그림자에 덤벼드는 송골매처럼,
소리 없이 삼키는 꼬치고기처럼,
제 새끼의 뒤꿈치를 물어뜯는 수낙타처럼,
눈보라 속에서 밀려드는 이리처럼,
제 새끼를 쫓아내다 못해 잡아먹는 원앙처럼,
소굴을 건드리면 떼지어 덤벼드는 승냥이처럼,
잡아서 길들일 수 없는 호랑이처럼,
이유 없이 덤벼드는 바룩 개처럼
제 형제를 죽였다.
그림자밖에는 다른 동무가 없고,
꼬리밖에는 다른 채찍이 없을 때
타이치오드 형제들과의 한을 풀지 못하고, 원수를 누가 갚겠느냐
하고 있을 때, 어떻게 살자고 네놈들이 이 따위 짓을 했느냐, 네놈들이?”
*형제를 죽인 테무진을 보고 테무진의 어머니가 절망하며 꾸짖는 말. -몽골비사-중에서.
첫댓글 몽골 투어 2 기행문 감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