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째 날이 되었어도 장마철의 기세는 사라지지 아니하고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비를 뚫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어쩌다 이번 오키나와 여행은 비님을 동반한 여행이 되었는지 몰라도 나쁘지는 않았다.
거세게 내리다가 다시 그치기를 반복하는가 싶었더니 천둥 번개가 우르릉 쾅쾅이라 일정에 차질이 생기나 싶었지만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기예보 덕분에 일정이 꼬여가도 또 다른 대안이 생긴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로웠다.
그래서 찾아든 곳은 오키나와 요미탄촌에 위치한 "자키미성".
류큐왕국의 치열한 역사와 천재 건축가의 지혜가 담긴 아름다운 성곽이다.
화려한 궁전 건물이 남아있는 슈리성과 달리 이곳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돌벽과 독특한 아치형 정문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곳이고 일반 관광객은 잘 찾지 않는 곳이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주 찾기도 하는 성으로서
들어서는 순간 온화하고 평화롭다는 물론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종일 그곳에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자키마성은 15세기-1416년에서 1422년 경- 초 류큐 왕국 통일기의 전설적인 무장이자
최고의 축성가-성건축가-였던 "고사마루"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오키나와는 북산, 중산, 남산 등 3세력으로 갈라져 싸우던 삼국시대 였으나
중산이 북산을 멸망시킨 후 나머지 잔당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이 지역의 영주였던
"고사마루"에게 성을 짓도록 명한 것인데 아무리 봐도 성을 쌓은 축조 방식이 우리나라 것과 거의 같아서 애정이 가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백성들이 인간띠를 만들어서 손에서 손으로 돌을 전달하며 이 견고한 성을 완성했다는 사실에는 감동.
자키미성을 보면 파도가 치는듯한 부드러운 곡선형태를 띠고 있어 보는 순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야말로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카메라는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닌 고사마루의 천재적인 계산이 들어간 고도의 군사공학은
성벽을 곡선으로 구부려 지탱하는 힘을 분산시켰다는데 사각지대 없는 방어력도 뽐낼 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공격력도 극대화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키미성의 정문은 오키나와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쐐기돌-Arch Keystone- 의 아치문으로서
문 한가운데에 쐐기 모양의 돌을 박아 넣어 보강하므로써 문이 무너지는 것을 완벽하게 방지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가치와 독창적인 축성기술을 인정받아 "자키미성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쨋거나 들어서는 순간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던 자키미성에서의 반나절은 그야말로 행운 그 자체였고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잔디의 황홀함과 오키나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그야말로 횡재 수순이었다.
잠시 부는 바람에 자신을 내어맡긴 채 그냥 서있어도 좋을 성곽 위에서 바라보던 주택단지의 모습조차도 어찌나 아름답던지...
자키미성의 전쟁사는 관심도 없었고 그저 황홀지경의 잔디와 곡선 성곽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그 시간.
갑자기 억수로 내리는 비를 피해 숲속을 지나면서도 한 컷....열정의 에너지가 다시 불붙기 시작하고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비도 피할겸 왼쪽에 자리한 "윤탄자 뮤지엄"으로 들어선다.
어딜 가던 개인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자키미 성터 바로 옆에 있는
"윤탄자 뮤지엄"은 웬 횡재냐 싶어서 비 온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도 꼭 들어가 보고 싶었다.
역시나 자키미 성터의 역사와 구조는 물론 요미탄의 유적과 문화 자연 등을 사진과 영상, 모형.
복제품, 박제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카나와의 오래 된 민가와 무덤, 가마 방공호로 사용된 "지바치리가만"의 모습을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재편해 놓았으며 요미탄이나 오키나와 출신 작가의 그림, 조각,
공예품등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었고 인간국보 "고긴조지로"씨의 전시코너에서는
쓰보야 지역 작품부터 요미탄으로 이전 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내리는 비를 뚫고 돌아나오면서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화덕 피자집을 찾았다.
작은 듯 보였으나 1층 전시실과 카페, 2층에서도 피자를 비롯한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조촐한 공간이
은근히 비와 함께 어울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화덕 피자 구이 중에서도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라스 피자"는 완전 강추.
늘 먹는 피자 일지라도 어디에서 누구와 먹는가는 분명히 다른 법....화덕 피자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린 피자 맛도 굿.
내리는 빗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발은 그야말로 해피바이러스를 유발하니 장대같은 비 일지라도 매우 해피해피.
자키미성에서 돌아온 후유증은 오래도록 길게 갔다.
한마디로 너무 좋았다...라고나 할까?
그리고 다시 다음날 일정을 위한 숙면모드 전환, 천천히 일어날 에정인고로 그동안의 여행자 모드를 잠시 꺼두기로 한다.
첫댓글 덕분에 동행한듯 오키나와 여행 잘했네요. 즐거웠네요.
ㅎㅎ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 완전 만족했던 여행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