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k5Ih-lAeq0
* 찬송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 5:1-11>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10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사사기 5장은 사사 드보라와 드보라의 명령으로 전쟁을 수행했던 바락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함께 부른 노래입니다. 2절에서도 ‘여호와를 찬송하라.’ 3절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라는 명령과 찬송하리로다라는 찬송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지요.
바람은 불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에 의해 흩날리는 것들이 있듯이 하나님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곳에는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4절에서는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다고 말하고, 5절에서는 산들이 진동했다고 말하지요. 이 세상이 정지되어 있지 않고 밤과 낮이 교차하고 계절이 바뀌고 물이 흐르고 공기가 순환되는 모든 자연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셨고, 그래서 이 노래는 자연만물의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역사하심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여러 성도님들께서는 언제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활동하고 계심을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시는지요? 가장 가까이는 바로 내가 멈춰 서 있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여전히 움직이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활동하셔서 내가 이렇게 살아있게 하시고 활동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지요. 또는 본문의 노래처럼 자연만물의 움직임 속에서, 그리고 역사를 보는 안목이 있다면 이 세상의 역사가 정지된 역사가 아니라 계속 흘러가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중요한 메시지들을 말해 주는 것을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지요.
만일 누군가의 주장처럼 하나님이 죽었다면 세상 만물은 무엇을 의지해서 생명이 유지될까요? 하나님이 죽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며, 무엇을 향해서 살아야 할까요? 결국 하나님이 죽었다면 우리도 죽은 것이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해 봐야 결국 언젠가 죽음으로 끝날 허무한 존재 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사사이며 선지자였던 드보라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본문 앞부분 3절에서처럼 가나안 왕 야빈의 폭정과 학대 속에서 20년 동안이나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죽어 지내던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 민족을 향한 선하신 뜻을 여전히 가지고 계심을 믿었지요. 그래서 죽음의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에서 참된 생명의 의지로 살아갔던 진실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사사가 되어 나라를 구했고, 그 승리의 기쁨을 지금 노래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살아계셨는데 이스라엘은 죽은 자처럼 지냈습니다. 그 현실을 6절에서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라고 표현합니다. 오솔길로 다녔다는 것은 피해 다니고 주눅들어 살아가는 현실을 표현한 거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못하면 세상의 대로 같은 높은 장벽 앞에서 그 장벽을 넘어 대로를 가지 못하고, 대로를 피해 본문의 표현처럼 오솔길로 피해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라는 대로, 권력이라는 대로, 지식과 정보라는 대로, 잘생긴 외모라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대로의 현실 앞에서 가진 게 없고 힘이 부족해서 결국 대로에 들어가지 못하고 옆으로 나 있는 오솔길에 움츠리며 들어가 숨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7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마을 사람이 그쳤다는 것은 난외주의 설명을 보면 지도자들이 그쳤다는 의미라고 되어 있지요.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지도자를 잃어 버린 겁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나 세상의 지배자들이 우리의 온전한 지도자이겠습니까? 또 그들이 나를 지도한다면 나를 어떤 세계까지 지도해 주고 이끌어 주겠습니까? 정치지도자가 나를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해 줄까요? 이념과 사상으로 선동하는 자들이 나를 참된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해 줄까요?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재벌들이 나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까요?
요즘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자기들이 지지하는 지도자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드보라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철저히 따르는 선지자였지요. 드보라가 말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손길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하나님의 지도를 받지 못하는 자들은 8절 첫 부분에서처럼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새 신들을 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과 잡다한 신을 섬기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 우상들은 전쟁을 해야 할 상황에 아무 것도 이끌어 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즉 삶의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지못하고, 현실과 바르게 싸울 수 있는 참된 지혜도 주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지금 드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고,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셔야 하는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믿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말로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고 왜 하나님이 나에게 계셔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 본문과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첫댓글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 내게 먼저 오사 내 맘을 만지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날 먼저 안으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모든 걸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안아 주시는
내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 부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모든 걸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안아 주시는
내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 부르죠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