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7일 (일) 촬영.
인천역에서 월미도로 가는 길, 철길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8부두쪽으로 가면 이런 숲길로 걸을 수 있다.
숲길에는 드문드문 동물들의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찻길을 내려다 보며 걷는 것도 괜찮았던 산책길.
산책길 끝에는 8부두 개방 주차장이 있다.
주말이라 관리사무소는 문을 열지 않았지만 평일에는 관리자가 있을듯 싶은 주차장으로 들어 갔다.
8부두 개방구역으로 들어 가는 길이다.
휴일임에도 주차장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유는 차이나타운에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를 이곳에 주차하기 때문이다.
엄청 넒은 주차장 모습.
이곳 주차장에선 내항과 세계최대벽화가 그려진 곡물창고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내항에 정박 중인 배와 세계최대벽화.
(주차장과 내항은 철망으로 막혀 있어 내항사진들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임)
내항 부두.
주차장을 나오며...
월미도 가는 길에서 다시 본 벽화.
월미공원 입구의 신랑, 신부의 조형물이다.
귀여운 어린이들의 조형물도 있다.
월미공원 입구에서 우측길로 오르면,
성벽이 있다.
성벽에서 내려다 본 공원 입구, 세계최대의 벽화는 월미공원내 어느 곳에서나 보인다.
뒤에 보이는 산은 월미산이다.
월미문화관,
성안에는 월미문화관외에도 해군2함대주둔비, UDU충혼탑, 몽금포작전전승비가 있다.
월미문화관 전면
월미문화관에는 전통생활문화전시실과 궁중문화전시실 등이 있다.
전통생활문화전시실이다. 그런데 전시된 자료들은 일반 백성의 생활 모습이 아니고 백성의 10%도 안되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생활 모습들이다.
남과 여의 금줄이 다르다.
(이 곳에 수록된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혼례 상차림.
회갑연 상차림.
문관, 무관, 기술관 과거시험.
궁중문화전시실.
임금의 수라상.
규방다례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님이시여 !
結氷(결빙) 속에 숨 죽이시며
祖國守護(조국수호) 위해
峻嶺(준령)의 境地(경지)를 넘나들던
님이시여
그 수렁의 悲境(비경)에
우리는 沈默(침묵) 하옵니다.
옷깃여며 님들의 靑靑(청청)한
모습을 떠 올립니다.
님을 향한 짙은 그리움이
가슴을 아리옵니다.
부식되지 않는
영혼의 소리를 듣습니다
朔風(삭풍)을 몰아낸 자리에
이제
꽃씨를 뿌리옵니다
님이시여
편히 쉬옵서소 -박정근작-
몽금포작전 전승비 / 국가보훈처 지정 헌충시설.
몽금포작전은 정부수립 전후 지속된 반란, 폭동, 납북, 침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17일 적 항구 몽금포를 기습한 납북선박 구출 및 응징 작전이다.
우리 해군은 PG-313(충무공), JMS-301(대전), 302(통영), 307(단천), 309(대동강), YMS-503(광주)등
함정 6척과 20명의 특공대원으로 구성하여 8월 17일 새벽 6시 몽금포 해역에 도착, 전투를 개시하였다.
JMS-302(통영/정장소령공정식)은 빗발치는 적의 총탄을 무릅쓰고 항내로 돌진하여
부두에 계류중인 경비정 4척을 격침 또는 대파시켰고,
끝까지 저항한 경비정 1척에 대해서는 승선하여 육박전으로 인민군 장교 등 5명생포, 경비정 1척을 나포하는
다대한 전공을 거두었으며 작전 중 중상을 입은 함명수 소령을 구출해 냈다.
대한민국 해군은 몽금포작전 승전을 통해 함정납북사건으로 실추된 명예회복과 함께
반란, 폭동, 납북, 침투 등 북한의 도발을 감소시켰음은 물론 우리 국민의 반공정신강화에 기여하였다.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46년 4월 15일 이곳에서 발족한 인천기지는 불과 수 척의 상륙용 주정으로 연안 경비를 맡다가
1949년 6월 인천경비부로 개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아군의 전세 약화로 군산을 거처 목포로 주둔지를 옮겨 목포경비부에 통합되었다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3개월 후 다시 이 자리로 복귀하였다.
1953년 7월 정전과 더불어 인천경비부는 조직을 재정비하여 수도권 서측 해상 방위를 맡았으며
1973년 7월 제5해역사령부로, 1986년 2월 제2함대사령부로 각각 증강, 개편되었다.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 가기까지 월미도와 함께 한 세월은 53여 년이었으며
해군 역사가 살아 숨쉬던 한 터전이자 제2함대와 동거동락했던
해군 장병들의 마음의 고향인 이곳에 부대 주둔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조형물을 남긴다.
2004년 10월 5일 해군참모총장.
해양경찰 오진석경감과 이청호경사의 흉상.
월미공원의 풍경.
옛 생각이....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이는 꿈속의 고향같은 풍경에 마음이 촉촉해진다.
어릴적 부모형제 옛 친구들 모습도 어른거리고....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