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귀한 즐거움은 이해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가 살던 이탈리아는 내전과 프랑스 침공
이 있었다. 그러기에 폴리스 국가였던 이탈리아 군주들은 그림보다는 전쟁무기에 관심이 컸고
생계를 위해서 후원자가 필요했던 다빈치는 후원자들의 필요에 의해 전쟁무기인 탱크, 총알, 교량 등을 만들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열린 다빈치 얼라이브전은 다빈치의 수기인 코덱스를 보고 이탈리아 장인들이 10년에 걸쳐
재현하여 만든 복제품들과 정교하게 찍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천재라는 수식이 붙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발명가, 예술가, 과학자 , 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인체의 황금비율 원리에 따라 그려진 '비투르비루스의 인체비례도' 그리고 '최후의 만찬' 등으로 화가로 더 알려졌다. “구세주'라는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보다 많은 액수의 경매로 낙찰되었다.
"비행을 한번 맛보면 하늘을 바라본 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 다빈치는 새와 박쥐의 비행패턴을 보고 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으나 나중에는 바람의 속도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높은 곳에 도달할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글라디어와 비행기, 헬리콥터, 낙하산은 다빈치의 수기 노트(코덱스)에 그려진 스케치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19세기 상징주의 화가들이 그 가치를 높이 사고 신비한 여인상으로 연관시킴으로써 알려진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고친 그림이라고 한다.
파스칼 코데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를 2004년 10월에 멀티 스펙트럼 카메라로 ' 디지털화한 지 10년 후, '모나리자'는 네 개의 단계를 걸쳐 그려진 것을 알아냈다. 첫 번째 그림을 가리고 두 번째 그림을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을 가리고 세 번째 그림을 그리고 또 세 번째 그림을 가리고 그 위애 네 번째 모나리자를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세 번째 모나리자 주인공은 피렌체 부자 프란체스코 델지오콘도의 부인인 리자 게라르라니였다.
프랑스 프랑수와 1세가 4000 에큐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구입하여, '모나리자'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다빈치 얼라이브 전시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레오나르도가 당시 밀라노 통치자였던 루드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스포르차 공작이 추진하는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낸 이력서였다.
이루 말할 나위 없이 빛나는 존재이신 공작님'이라고 서두에 시작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공작님께 자신을 추천하는 바입니다'라고 끝나는 이력서였다.
통과가 되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0년 후 루두비코 요청에 의해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화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다빈치의 어록 하나 옮겨 본다
"때론 일을 떠나서 잠시 쉬어라. 돌아왔을 때 더 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일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을 때, 전체가 한 눈에 보여 어디에 조화와 균형이 부족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