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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보석감정원 구창식 원장 인터뷰
월곡재단과 주얼리 전문 교육과정 운영
"24.7캐럿 천연 다이아몬드 기억 남아"
"세계적인 국산 주얼리 브랜드 배출 꿈"
조선시대 서울 종로 큰 길에는 육의전(六矣廛)을 비롯한 다양한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육의전은 나라에 필요한 여섯 종류의 물품을 공급하던 큰 상점이다. 모시, 명주, 무명, 비단, 종이, 생선 등 6대 물품을 취급하여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비단과 모시가 거래되던 종로는 지금 한국 주얼리 산업의 핵심 기지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인근에서 생산되는 주얼리가 전국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제조, 유통뿐만 아니라 보석 감정기관, 연구기관 그리고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모여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보석 감정과 주얼리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미래보석감정원 구창식 원장(64)을 지난 1월 18일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이 바로 종로 ‘육의전 빌딩’에 있다. 건물을 짓는 공사 중에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에 있었던 건물의 터와 시장 터가 땅 속에서 발견됐다. 빌딩 지하에는 그대로 복원해 놓은 '육의전 박물관'이 있다.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주얼리 분야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한국 주얼리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주얼리 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손톱만한 다이아몬드가 수천만원을 호가하고 해외 특정 브랜드의 주얼리는 수천만~수억원에 거래됩니다. 이제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눈을 돌려 그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성 세대와 미래 세대의 협업, 세대 융합이 필요합니다. 기성 세대의 노하우와 경험, 미래 세대의 젊은 감각과 열린 생각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인재 양성입니다. 우리 미래보석감정원에서 진행하는 JBM(Jewelry Brand Management) 교육 과정이 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BM 교육 과정이란 무엇인가요.
“’JBM 과정’은 주얼리 브랜드 개발 및 마케팅 교육을 통해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장학 과정입니다. ㈜리골드 창업주인 이재호 회장님(80)이 2009년에 사재 200억원을 털어 비영리공익법인인 (재)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을 세우셨습니다. 월곡재단은 교육, 창업, 연구, 학술, 지역 봉사 사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학 사업을 제일 비중 있게 펴나가고 있습니다.
JBM 과정은 월곡재단에서 우리 원의 미래주얼리연구소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장학 교육 과정입니다. 해외에는 불가리에서 까르띠에까지 명품 주얼리 브랜드가 그렇게 많은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는 해외에 알려져 있는 게 없지 않느냐, 학교나 일반 학원에서 가르치지 않는 실무 교육을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재호 회장님의 뜻이었습니다.
저 또한 이 교육 과정이 5년, 10년, 20년 계속되면 우리 졸업생 중 누구 하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것이다라는 일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올해 지원자를 1월 16일~1월 29일 모집 중입니다.”
—JBM 교육 과정의 성과를 꼽는다면.
“JBM은 2021년에 초기 창업자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도록, 정부지원사업을 멘토링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아이디어를 함께 개발하려는 목적이었죠. ‘주얼리’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정부와 민간 주도의 사업을 획득했습니다. 최초 3000만원에서 1년만인 2022년에 600% 가까이 상승한 1억7800만원을 수주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구창식 원장의 사무실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유리 아래에는 JBM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이 작성한 글귀들이 간직되어 있었다. 사랑, 배려, 세심 등의 단어와 함께 하트 모양과 보석 모양이 그려진 종이였다. /민은미
(‘월곡(月谷)’은 재단 설립자인 이재호 이사장의 호(號)다. ‘어두운 계곡의 조그마한 달빛’이란 의미다. 월곡재단은 ‘우리나라 주얼리 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공익 재단이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는 그 부설로 국내 유일의 주얼리 연구기관.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구 원장의 사무실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유리 아래에는 JBM 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이 작성한 글귀들이 간직되어 있었다. 사랑, 배려, 세심 등의 단어와 함께 하트 모양과 보석 모양이 그려진 종이였다.
학생들이 쓴 글귀를 보면서 이재호 이사장이 월곡이라는 보석 광산을 만들었고 구 원장은 광산에서 원석(주얼리인)을 캐는 광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캐낸 원석이 빛을 발하도록 다듬는 연마사이기도 했다. 지난 36년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구창식 원장은 ‘2022년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주얼리 업계에는 어떻게 입문하셨나요.
“20대 후반이던 1986년, 친한 친구에게서 모 보석감정기관에 결원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분하고 꼼꼼한 제 성격을 알던 친구가 보석감정사로 취업을 권유한 거죠. 합격해서 보석감정원에서 15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이때 보석에 대한 안목을 많이 넓혔죠.”
—1980년대 국내에서 국제 보석감정사 자격증 취득은 드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처음 감정원에 입사해서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1986년 당시에는 국내에서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미국 보석 감정/교육 기관) 자격을 취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일본에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근무가 끝나면 야간에 일본어를 독학했습니다. 일본에서 국제 보석감정사를 취득했습니다.”
(1986년도 친구의 전화를 받았던 곳은 제주도, 신혼 여행지였다. 그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그때만 해도 그의 주위엔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가는 것이 큰 호사였다고 한다.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을 때. 숙소인 호텔로 전화가 걸려왔을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었던 그가 우연히 보석감정사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꿈같은 허니문 중 걸려온 전화가 그의 운명을 확 바꿔 놓았다.
구 원장뿐만 아니라 가족의 운명에도 그날의 전화 한 통이 결정적이었다. 36년이 흐른 지금 구 원장은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그중 첫째 아들 구현우 미래주얼리연구소 감정 실장(35)이 대를 이어 보석감정사의 길을 걷고 있다. 구현우 실장은 대한민국 유일 4년제 대학(동신대) 보석 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JBM 장학 과정 3기를 수료했다.)
—미래보석감정원이 올해 24년째인데,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이던 1999년에 설립하셨다는 점이 눈길을 끄네요.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로 인해 금모으기운동, 다이아몬드 매입 행사가 일어났습니다. 되팔기 위해 감정해야 할 보석 물량이 쏟아져 나왔으니 주얼리 업계엔 큰 기회의 시기였죠. 당시 국내 다이아몬드 감정서는 최고 등급이라는 것이 컬러 G컬러, 클래리티(투명도) VVS1, 커트 GOOD으로만 획일화되어 있었습니다. 더 다양한 전체 등급이 있는데도 국제 기준에 맞는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를 위한 ‘정도(正道) 감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획일화된 감정서의 난립을 바로잡고, 국내외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국제 기준에 맞춘, 정도 감정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겠다는 마음으로 미래보석감정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미래’로 한 이유가 있나요.
“1999년 10월 1일이 저희 회사의 창립기념일입니다. 당시에는 IMF를 맞이하여 매우 혼란의 시기였고, 새로운 밀레니엄인 2000년을 맞이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보석감정원을 개원하기 5개월 전에 사명을 정하기 위해 포상금 100만원을 걸고 업계 신문에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로고도 공모를 통해 정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공모 결과 채택된 이름이 ‘미래’였습니다. 설렘, 그리고 희망을 의미합니다.”
—지난 36년 동안 원장님께서 주얼리업계에서 경험하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궁금합니다.
“희(喜)라면 긍지, 자부심, 보람, 그런 게 기쁨 아니겠어요? 나는 보석을 진짜 몇 바가지를 봤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톨이라도 평생 애지중지해 온 소중한 물건 이지요. 대를 물리는 가보입니다. 그분들에게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감정서가 찍혀 나가는 겁니다. '정확한 감정으로 책임있는 감정원 구현', 저의 원칙입니다. 내가 죽어서도, 내 이름 찍힌 감정서를, 누구나가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 감정사들에게도 그래서 항상 얘기합니다. ‘이 양반 I 컬러밖에 안 되는데, (더 높은) F로 (감정서를) 뗐네. 그런 욕은 절대 먹지 말자’고. 나중에 되팔 때 분명히 문제가 생깁니다. 내 이름 석자가 찍힌 감정서인데, 저는 늘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怒), 화나는 일은 없었나요.
“내 감정서가 악용되고, 내가 언급하지도 않는 가상의 평가 금액으로, 심지어 사기 수단으로 사용됐을 때는 정말 화날 일 아닙니까. 비록 작은 종이 한 장이지만 내 감정서가 악용될 때, 정말 화가 나죠. 엊그제도 화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애(哀)의 순간은.
”주얼리가 참 작은 물건인데, 이게 인생의 특별한 행사에는 꼭 빠지지 않아요. 순간을 빛나게 하죠. 사랑은 표현할수록 배가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도 특별한 선물을 합니다. 내가 그 비싼 다이아몬드를 사줄 수는 없잖아요? 대신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지인들에게 옆면(거들)에 특별한 글귀를 새겨 드려요.
특별한 단어를 하나 얘기해달라고 해서 글귀를 레이저로 각인해 드리는데요, D칼라 최상 등급보다 더 특별한 거예요. 그 순간부터는 다이아몬드 등급이 아무 상관이 없어집니다. 3부, 5부 같은 크기나 D, E, F 같은 칼라나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게 됩니다. 그걸 받고 감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가 가슴 찡하죠.“
—락(樂), 즐거울 때는.
”보석을 통한 사랑의 언어는 한 권의 책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진주 귀걸이를 선물한다고 칩시다. 진주 한 톨은 쪼그마하죠. 하지만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비싸고 싸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작은 보석 하나를 통한 사랑의 표현은 막강한 힘을 가집니다. 그런 힘을 볼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즐겁습니다.”
—그동안 감정했던 보석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11년에 24.7캐럿의 대형 천연 다이아몬드를 감정한 적이 있습니다. 보석 수집가로 유명한 분이 해외에서 직수입한 다이아몬드였는데, 인천세관 공무원 세 분이 마치 007 작전 수행하듯이 동행해서 감정을 의뢰했어요. 11년 전, 당시 관세만 수억원을 냈다고 했으니 실제 가치가 아마 수십억원을 호가했을 겁니다.
24.7캐럿 다이아몬드를 메인 스톤으로 해서 ‘동방의 빛’이라는 이름의 목걸이가 탄생했어요. 보조석으로 3캐럿, 2캐럿, 1캐럿을 포함해 총 1197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제가 만든 감정서만 30페이지가 넘었어요. 거의 책 한 권 분량이었습니다.”
—직업적으로 수많은 보석을 보셨는데, 보석이 질리지는 않나요.
“일언지하에 말씀드리지만 질리지 않습니다. 매우 행복합니다. 흥미롭고 아름답고, 때로는 긴장되고 허탈하고, 보석을 둘러싼 분쟁도 있고··· 하지만 멋진 직업 세계입니다. 현미경을 통해 천연 보석의 내포물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제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영롱하고 오묘한 빛에 의한 효과는 마술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천연과 대비되는 합성, 인조, 모조 보석들도 천연의 모습과 같다고, 제발 천연이라고 인정해 달라고 하는 듯 귀여움을 핍니다. 나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보석하고 저하고 ‘나 잡아봐라’며 서로 대화하면서 알콩달콩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숨바꼭질하고도 비슷하죠.”
—올해 목표와 계획은.
“2023년은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모두가 예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보석감정원, 미래주얼리학원, JBM 장학 과정의 발전을 꼭 이뤄 내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주얼리인들이 꿈꾸는 ‘미래’가 ‘현재’가 될 때까지. 우리나라에도 세계를 매혹시키는 주얼리 브랜드가 탄생하는 그날까지.
그날이 오더라도 우리의 이름은 계속 ‘미래’겠지만···.”
출처 : 여성경제신문(https://www.womaneconomy.co.kr)
원문 : [신년기획] 주얼리 교육 불모지에서 인재 캐는 광부 < 주얼리 찾기 < 연중기획 < 기사본문 - 여성경제신문 (womaneconom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