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있어서 전쟁의 역할이라 할수 있는게 있다면 바로 역사의 진행을 빠르게 한다는 거라고 모더니즘 사학자들은 애기합니다. 즉 평화시에 100년이나 200년에 있을 과학, 역사, 정치의 변화가 단지 몇년간의 전쟁기간중 일어난다는 거죠. 물론 요즘 있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국지전은 이런 공식에 맞질 않지만요. 소수 과격파나 민족주의를 표방한 독재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 혹은 개인적 야심만을 충족시키려고 극단적인 전쟁이란 방법을 도입합니다.
암튼 1930년대까지 스페인 사회는 전근대성이란 한 단어로 성격지어집니다. 바로 18세기 19세기의 유럽에서의 산업혁명, 시민혁명시기를 묘하게도 스페인만 빗나간거죠. 1차대전도 무사히 중립으로 그것도 왕이 다스리는 전제 군주제 체제로 넘겼죠. 이는 아마도 나폴레옹 전쟁덕인것 같습니다. 식민지를 경영하던 스페인의 황금기에 스페인은 정말 유럽최강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 나폴레옹전쟁에서 전제왕정이 힘없이 프랑스인들에게 무너지는데 대해 식민지와 본국 스페인의 반응은 틀렸습니다. 식민지에선 이제 자신의 본국도 못지키는 약한 본국에 반란을 꽤하는데 본국에선 조국을 지키기위해 게릴라전이 전개되죠.
이는 아마도 식민지 경영의 차이라고 봅니다. 즉 스페인은 원래 혼혈민족이고 아랍지배를 받다가 1592년 아랍을 축출할때까지 민족주의란게 없었습니다. 이를 빨리 생성시키기 위해 강력한 언어정책(유럽어중 가장 현재의 문법체계를 갖춘게 스페인어고 그러다보니 15세기 고전도 외국인인 우리도 현대스페인어만 알면 읽고 쓰는데 지장이 없습니다)과 아랍, 신교세력에 대항한 강한 카톨릭중심운동이었습니다. 현재도 스페인 카톨릭교회는 가장 보수적이고 친 우익적입니다. 한예로 교황청내 유명한 사조직인 Opus Dei와 네오카다코무니스타운동은 스페인에서 시작됬고 현재도 교황청의 강력한 비호를 받고 있습니다.
암튼 이런 유럽대륙의 변화를 원천적으로 막은 세력이 종교세력인건 사실이고 그러다보니 내전에 교회가 휘말리는 불상사가 났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도 잘한건 없습니다. 아마도 교육 문화의 혜택을 받은 보수 상류층이 본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은 개탄을 자아냈다고 봅니다.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도 전혀없었고 무기를 얻기위해 프라도박물관에 있는 명화와 스페인 중앙은행(마드리드는 공화파 영역이었습니다)을 스탈린에게 넘겨주고 몇푼않되는 낡은 구식 무기와 바꾸는 모습이 지서인들(프랑코 파가 다수였슴)눈에는 매국행위로 보였겠죠.
그리고 일단 카톨릭교회를 제 일의 적으로 봤습니다. 당시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는데 교회소유 부동산을 몰수하는게 그들의 첫째 목표였습니다. 스페인 내전당시 50명의 주교와 약 3000명의 신부들이 학살당한게 좋은 예라 할수 있습니다.
Land and Freedom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처럼 감독이 친 사회주의 성향이 있는 영화에서 눈에 띄는 오류이자 사기극이라면 바로 공화파는 부족한 무기로 영웅처럼 싸워 월등한 무기의 프랑코파와 대등한 싸움을 했다란 식의 논리가 자주 눈에 띄는데 이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우선 독일과 이태리가 프랑코를 지원했지만 소련도 독일도 자신들의 무기를 실험하는게 목적이었죠. 그래서 싸움에 적슷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인으로서 프랑코의 경력을 본다면 당시 귀족출신이 장악하던 스페인 군부에서 갈리시아지방 농부의 아들이던 프랑코는 타고난 재능으로 34세에 장군이 되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를 따르는 군부세력을 두려워한 공화파 정부는 프랑코를 지브롤타 너머의 스페인 식민지인 모로코의 세우타에 있는 외인부대사령관으로 전출시킵니다. 하지만 쿠데타세력의 요청으로(애초부터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진 않고 관망만하고 있었죠)해협을 건너 외인부대와 아랍인 기마병 용병들을 거느리고 프랑코가 참전하면서 전세가 역전되게 됩니다.
이는 공화정 정부의 군사적 무지함으로 인해 내전을 패배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줍니다. 그후 스탈린이 전비를 빼낼 목적으로 금과 예술품을 도둑질한것처럼 히틀러도 프랑코에게 2차대전 참전(영국의 지브롤타를 장악하면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을 잇는 항로에서 영국군함들의 이동이 어렵고 독일 군함들의 득세가 예상됨으로)을 종용하지만 프랑코는 식량공급을 전비로 대신하고 다만 3000명의 자원군을 독일로 보내 소련전선에서먼 싸운다는 조건하에 군사적으로 독일을 돕습니다. 마치 아일랜드가 영국에 아일랜드인 자원병을 허락한것처럼요.
2차 대전시에 엄정한 중립국은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위스는 다분히 친 연합국적으로 연합국포로의 탈출도 도우면서 나치가 뺐은 유태인금괴를 보관해서 돈을 벌었고 스웨덴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히믈러가 청한 서방연합국과의 단독 강화(독일은 소련과의 전쟁은 끝까지 하려했다)를 주선해서 스웨덴 적십자총재인 베르나데토백작이 아이젠하워에게 의향을 묻지만(이 사람은 친 독일적이고 반유태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스웨덴귀족이었고 나중에 1947년 팔레스타인에서 아랍과 유태인을 중재하다 반유태적언사에 분노한 유태인 특공대에 의해 암살되고 국제법상 국제기구 요원이 죽을시 외교관과 똑같이 해당국에 책임을 묻는다는 판례를 남김. 이때 UN은 이스라엘에 손해배상금을 요구했음)실패하고 아일랜드는 다소 영국편을 스페인은 독일 U-boot에 식량, 연료를 공급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암튼 프랑코는 내전으로 피폐한 스페인이 다시 전쟁을 치를수 없도록 히틀러를 상대로 탁월한 외교전을 벌인것으로 유명합니다.
: 음..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인것 같습니다.
: 젊은 시절의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순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죠.
: 이 작품을 처음보았을때가 초등학교 다닐때였는데 전 그당시만 해도 영화의 배경이 어딘지도 잘 몰랐습니다.
: 그냥 전쟁영화라서 총싸움이나 한다고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심지어 스페인의 프랑코군을 독일군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죠.
: 크크크...
: 스페인 내전을 심각하게 다시 바라보게 된 작품은 "랜드 앤 프리덤"이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입니다.
: (권영훈님이 말씀하신 작품이 아마 이작품일겁니다)
: 전쟁의 혼돈이 너무도 잘그려져 있어서 영화를 보고나서도 도대체 어느쪽이 정의의 편에 섰는지 혼란스럽더군요.
: 지금도 역시 답을 못얻고 있습니다.
: "랜드 앤 프리덤"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성당에서 총을 쏘다 잡혀나온 어떤 신부님의 모습이었습니다.
: 마을 앞 공터에 끌려가서 바로 총살을 당하는데 이 사형을 집행한 병사들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들이었죠.
: 왕당파, 성직자, 고급직업군인, 대지주가 프랑코쪽에,
: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의회민주주의자, 노동자 등이 공화국쪽에 서서 싸우다보니 이런....
: 도대체 어느쪽이 정당하였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