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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계층갈등과 웨슬리적 답변
이 원 규 교수
(감신대/종교사회학)
I. 머리말
한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기본적인 분석의 틀은 그 사회가 한마디로 통합(integration) 구조인가, 갈등(conflict) 구조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구조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 사회의 계급 혹은 계층 구조의 성격, 그리고 계급간 혹은 계층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계급(계층) 구조의 성격과 계급(계층)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계층 문제에 있어 전문적인 학자는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쓰여지는 말은 “계층간의 위화감”, “계급모순”, “계급갈등”이라는 용어들이다. 또한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사회 과학도들과 학생운동, 노동자운동, 농민운동을 주도하는 제 세력들의 이념적 토대가 되고 있는 근본적인 개념도 “계급모순”이라는 개념이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1인당 GNP가 6천불에 달하는 기적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점차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으나, 다른 한편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하여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안정을 누리고 있는 지배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통합구조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계급문제와 관계되는 한 한국사회는 오히려 “계급모순”으로 인한 갈등구조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서도 우세한 것 같다. 그렇다면 계층 갈등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복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 하겠다.
계급모순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다양한 입장에서 여러 사회 과학도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그 방안이 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론적 시각에서 제시되어 온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주로 이념적 논쟁으로 그치거나 혹은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김으로 오히려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계층갈등 문제를 다시 한번 조명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특히 한국교회로서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계층갈등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당면한 중요한 사회적 과제의 하나라고 하겠다. 상극보다는 상생, 분쟁보다는 조화, 갈등보다는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사랑과 의의 본질이라면, 갈등구조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책임은 막중하다고 하겠다.
논자는 여기에서 계층 갈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존 웨슬리 (John Wesley)의 사회 신학과 그 실천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시대적, 상황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계층 문제에 대한 웨슬리적 답변이 오늘날 우리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방안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다. 따라서 본 강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될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계층 갈등의 사회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계층갈등 문제에 대한 관점과 그 실상 및 원인을 밝힐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계층 문제에 대한 웨슬리의 신학 사상과 실천 내용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웨슬리적 대안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II. 계층 갈등의 사회학적 의미
먼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inequality)을 뜻하는 개념으로서의 계층(stratum)과 계급(class)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회 계층이란 사회 분화(역할 분화)에 대한 사회적 평가(분화된 역할,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산물을 뜻하며, 사회 계급이란 사회 성원의 이해관계(생산 관계, 소유 관계, 분배 관계, 권위 관계)의 차이에 의하여 대립되는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1/ 계급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입장은 주로 갈등이론(conflict theory)에서 보여지고 있고, 계층이란 용어는 주로 기능이론(functional theory) 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자의 이론은 계급론이라고 불리우고, 후자는 계층론이라고도 불리운다.
사회 어느 영역의 갈등은 그 사회를 붕괴시키고 오염시키는 질병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기능론적 관점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은 각기 다른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고,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되는 불가피한 사회적 결과이다./2/ 이 이론에 따르면 계층 갈등은 사회 통합에 역행하는 긴장의 증후군 혹은 사회 병리현상으로 간주된다. 이 이론은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부조화와 갈등의 실체를 바로 규명하지 못하고, 사회 변동은 사회 갈등과 모순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3/
갈등이론은 사회가 기능적 체계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하부 단위들(계급, 정당, 이익집단 등)이 지속적인 갈등과 투쟁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본다. 사회 갈등에 공헌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힘, 재화, 용역, 위광의 지배관계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하위 단위 사이의 부조화와 갈등의 결정적인 근거라고 본다. 계급론은 마르크스에게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의 계급 이론은 자본주의 이론에서 나오는 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하에서는 생산 수단의 소유 및 경제적 잉여의 통제 여부와 관계되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현존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하면서, 소수에 의한 대중의 착취가 모든 역사에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두 커다란 적대적 진영, 즉 부르즈와(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사이의 양극화를 강요함으로 계급투쟁을 일으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고 보고 있다./4/ 마르크스도 양대 계급 외의 다른 계급들의 존재를 인정하긴 하지만 중간 계급은 결국 자본가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의 어느 한 쪽으로 흡수될 것이고, 양대 계급은 양극화되어 심한 적대적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계급 갈등은 경제적 보상의 분배에 대한 갈등이며, 여기에는 지배 계급이 억압과 착취로 계급 이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반면에 경제 구조를 통제할 수 없는 피지배계급은 불만족이 심화되어 계급 투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동자 계급은 즉자적 계급(class in itself)에서 대자적 계급(class for itself)으로 계급의식이 바뀌어야 하며, 따라서 생산 수단에서 제외되어 고통받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을 적대 계급에 대한 하나의 계급으로 의식하여 이념과 행동이 일치될 때에 혁명을 성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5/ 이와 같이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계급은 양극화되어 그 관계는 상극이고, 이것의 극복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베버(Weber)는 계급 분석에 있어서 마르크스가 강조하는 경제적 요소(계급)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소(지위), 정치적 요소(권력)도 고려되어야 하며, 따라서 마르크스식의 양극화된 계급 모델은 좀 더 다양한 계층모델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6/ 다렌도르프(Dahrendorf) 도 역시 사회를 갈등 구조로 보기는 하지만 계급 갈등의 근거는 물질적인 생산수단 소유 여부라기보다는 권위(authority) 배분이라고 주장한다./7/ 즉 권위가 박탈된 이들은 권위 구조의 변형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정당성을 공격하면서 계급 갈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한편 계급간에는 적대적인 관계만 존재하는가 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계층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아이젠슈타트(Eisenstadt)는 계층 구성의 요소로 첫째, 비슷한 사회적 보상을 받는 제도화된 위치나 역할의 소유, 둘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근원들에 대한 비슷한 정도의 통제 소유, 세째, 역할과 지위를 통제하고 전달할 수 있음, 네째, 다른 범주 사람들에 대해 위계적인 관계를 가짐 등을 말하면서 계층간의 관계를 갈등보다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life style) 의 정형화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8/
마르크스 계급론에서 제기되는 다른 문제는 계급의 양극화 문제이다. 즉 계급 갈등의 문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의 두 계급 모델을 거부하는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계급 구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간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를 전개한다. 예컨대 풀란차스(Poulantzas)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전통적인 쁘띠 부르즈와는 계속 감소했지만 이 자리에 화이트 칼라의 신 중간 계급이 등장했다고 보며, 이 계급을 “신 쁘띠 부르즈와”라고 부르고 있다./9/ 기든스(Giddens)도 마르크스의 이분법적 계급 모델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중산층의 성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계급 체계를 사회적 관계들이 대부분의 생산적 재산을 통제하는 상층 계급,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은 없지만 시장에서 교환할 만한 특별한 교육을 받았거나 기술을 소유한 중간 계급, 그리고 판매할 것이라고는 자신의 육체 노동력 밖에 없는 하층 노동자 계급으로 구분하고 있다./10/ 중산층(중간계급)의 출현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비록 계층간의 갈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갈등적인 이익 집단이 양대 계급으로 양극화되어 적대적이고 투쟁적인 관계가 그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다는 명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중간층 혹은 중산층 이론을 표방하는 한국 사회과학도들은 한국 사회의 변형 문제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론에 기초해서만 그것이 성취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논자도 이 입장에 동조하기 때문에 “계급 갈등”이라는 용어보다는 “계층 갈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계층 갈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갈등 이론의 “갈등”개념과 기능 이론의 “계층”개념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III. 한국사회의 계층갈등 문제
한국의 사회학계에서도 계층(계급) 문제를 다루는 입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계급론자들은 중간 계급을 생산관계의 측면에서,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 자신의 노동력 판매 여부, 타인의 노동에 대한 통제 여부 등의 기준을 생산 방식의 종류와 관련지어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구중간 계급(소규모 자영업자 등)과 신중간 계급(화이트 칼라)으로 구분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중간계급이란 하나의 과도기적 존재로서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함께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로 양극, 분해될 운명이며, 그 물적 토대가 확고하지 못하므로 사회적 실천 역량을 지닐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11/ 한편 계층론자들은 중산층을 교육, 소득, 직업, 재산 등의 요인을 적절히 종합한 지표를 통해서 범주화한다. 이들은 중산층이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형성하는 독자적인 사회 집단으로서, 역사적으로 시민 사회의 핵심적 주체가 되어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계층론자는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경제 발전과 함께 중산층화(embourgeoisement of working class)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의 부르즈와 중심사회로부터 중산층 사회로 바뀔 것으로 보는데 비해, 계급론자들은 노동자가 중산층화된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zation of middle class)되는 것이라고 본다./12/
1. 계급론적 양극화 모델과 그 비판
김영모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뿐이고, 가운데 있는 중산층 범주는 ‘종속적’, ‘주변적’계층이라고 보고 있다./13/ 구중산층이 감퇴되고 있으며, 신중간층은 독자적인 정치 지향과 능력이 없어 의미있는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영 농업 인구를 구중산층의 범주에 넣어 농업 인구의 감소를 구중산층의 감소 현상으로 설명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서관모도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세 계급범주(자본가, 노동자, 쁘띠 부르즈와)로 설정하고 있으나, 결국은 양극 분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4/ 즉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종속화의 국가독점 자본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있는 그는 중간 제 계층이 양극분해 과정을 거쳐 일부는 자본가 계급으로,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화되며, 그리하여 양극화된 계급구조는 대립구조로 철저화해 간다고 주장한다./15/ 마르크스 도식에 충실하여 서관모는 계급 이론을 변혁이론으로 발전시킨다.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의 체현자인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통일물로서의 주요모순(제국주의와 독점자본 대 민중간의 모순)의 가장
집중적인 체현자, 따라서 가장 주요한 해결주체이다./16/
노동자 계급은 변혁 주체로서 계급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며, 그 방법은 연대 투쟁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에 대하여 구해근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계급은 계급투쟁과 이를 통한 사회주의 변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비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는 계급투쟁의 문제가 계급분석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사회 계급은 계급투쟁을 떠나서도 사회생활과 정치적 변화와 관련하여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비판하고 있다./17/ 한편 송복은 계급론자들의 양극화 모델에 대하여 한국사회는 아직 계급이 구조화(structuration)되지 못한 상황임을 지적하며 이를 비판한다. 즉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내 등급화된 층들 간에는 공속의식이 높고 계급 이동률이 낮으며 양극에 위치한 층들간 상하의 단절 개념을 전제로 하는데, 한국적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계급의 구조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18/ 한국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계급적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시기를 1960년대 이후로 잡는데, 20-30 년이란 기간은 경직적인 계급단절이 이루어지거나 공속의식이 생길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해근도 이와 비슷하게 한국의 산업화가 다른 어느 사회에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계급인 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 그리고 신중간 계급 모두 극히 짧은 기간 안에 등장하게 된 점에 주목하면서, 이와 같이 급속한 성장과정 속에서 이 계급들은 성숙된 사회적 계급으로 발전할 시간이 없었으며, 또 중요한 점은 한국의 정치적 여건이 계급형성을 위축시켜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계급이 아직 구조화되지 못한 더 중요한 이유는 사회 이동이 너무 급격히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20/ 예컨대 직업이동을 보면 1963 년의 경우 1차산업(농,어업) 종사자가 63%, 2차산업(공업,제조업) 종사자가 8%, 3차 산업(사회 간접자본,서비스업) 종사자가 29%였으나, 1988년에는 그것이 각각 20%, 30%, 50% 로 그 이동이 극심했다. 또한 계급 이동에 있어서도 1960-80년 사이에 비농가의 경우 도시 상층은 2배, 신중간층 2.7배, 구중간층 1.6배, 노동자는 2.5배 증가했고, 도시 하층은 10% 감소되었다. 절대 빈곤층은 1965년 41%에서 1980년 10%로 감소되었다. 즉 늘어난 네 계급은 계급을 이루기에는 시간적 거리가 짧게 상당수 다른 층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21/ 증가되는 중산층 귀속의식도 계급 구조화가 실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1980년 41%, 1985년 53%, 1988년 60.6%). /22/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계층구조는 마르크스적으로 양극화된 계급 대립구조는 아니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2. 계층과 의식구조 및 실천성
계급론자들 가운데서 중산층의 존재를 인정하는 학자들은 중산층의 의식을 보수적이고 체제동조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장집은 중산층이 유신체제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경제성장을 택했다고 하며, 중산층은 오직 안정기조 위에서만 체제 개혁을 선호할 뿐이지 그 기초가 허물어지면 보수화된다고 지적하고 있다./23/ 김보균도 비슷하게 중산층은 체제동조적이라고 보면서, 심지어 체제의 정당성까지도 중산층의 보수성 때문에 유지된다고 혹평하고 있다./24/ 즉 중산층은 노동계급 혹은 민중과 대립되는 것으로 전제함으로 여전히 양극화 모델의 틀을 이들은 지키고 있다. 결국 계급론자들은 노동자 계급만이 계급모순을 반영하는 노동운동의 주체일 뿐 아니라, 반군부독재, 민주화 운동, 반외세 자주화 운동, 통일운동의 기본세력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층 민중의 계급적 역량이 최대한 조직화될 때 운동의 독자성이 확보되고, 운동 지도세력이 바른 변혁 노선을 갖추고 민주변혁 운동에 헌신할 때 중간 제계층은 민중 진영에 획득된다”는 것이다./25/ 결국 이들의 주장은 폐쇄적 계급 혁명론이요 민족 해방론이며, 마르크스적인 이분법적 대립관계로 계급갈등을 이해하여 양극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계급론자들의 이러한 중산층 비판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발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한상진이다. 계급론적 관점의 양극화 모델에 대하여 한상진은 소위 중민화(中民化) 모델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26/ 그는 양극화 모델이 부르즈와의 길과 프롤레타리아의 길을 양분화시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양자택일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중간집단이 기층 민중에 의해 획득되어야 할 전략 전술의 대상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음을 비판한다./27/ 그는 사회제도, 조직, 산업의 중심 부문에 근대적 성격을 갖는 집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집단들에 비해 능력, 조직, 보상의 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으며,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았지만 한편 이들은 높은 비판적 인식 능력과 언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법적, 물질적, 이념적, 폭력적 강압 수단들에 의해 아직도 강고하게 버티고 있는 구질서에 대해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에 도전하면서 기득권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8/ 한상진은 이러한 사회의 중심 부문에 있는 민중을 중민이라 부르며, 그들은 변혁을 추구하되 양극화를 경계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사회변혁 운동의 중심을 키워간다고 본다./29/ 그러나 그들은 사회 변혁을 요구하면서도 지나친 급진주의와 체제 부정을 원하지 않고 체제 개혁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 따라서 그들은 체제에 안주하기보다는 반대로 관료적 권위주의의 실체와 부딪히면서 체제 모순에 노출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당하며, 그러기에 비록 노동계급과는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다같이 체제 변혁을 향한 열망을 갖는다고 본다./30/
한완상 등도 경험적 연구 자료를 통해 중산층의 진보적 의식 성향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31/ 즉 한국의 중산층은 정부, 사회구조, 자본주의 체제, 특히 부유층과 기업인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며, 지도층의 부정부패, 민주화의 지연, 빈부격차의 심화에 대해 불만이 많고, 인권과 사회적 안정과 균형을 무시한 맹목적인 경제 성장에 대하여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실인식에서 비판적이며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을, 제도적 모순의 해결방법으로는 진보적 정책을 선호한다. 정치의식에 있어서는 노동자들보다도 오히려 더 비판적이다. 생존권 옹호라는 기본권에 대해서도 노동자들 못지 않게 강력한 지지를 보임으로써 한국의 중산층은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는 의식의 동질성을 확인하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면 왜 중산층의 의식은 진보적인가? 왜 그들은 정당성 문제를 포함하여 정치적 민주화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지배 계층의 경제적 독점에 대하여 비판적인 성향을 갖는가? 우선적으로는 그들의 높은 교육수준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현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심하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 때문일 것이다. 한 연구에서 한상진은 중산층 가운데서 절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9.9%에 불과하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43.0%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32/ 그러면 왜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나는가? 우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기대가 상승하지만 결과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이유는 경쟁과정의 비정상화이다. 즉 정치권력과 재벌의 특혜로 기회의 불균등성을 느끼고 경쟁의 폐쇄성이 나타날 때 그리고 무위도식자가 증가할 때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난다. 나아가서 잉여가치의 급격한 증대, 즉 땅값, 집값, 건물값, 증권값이 폭등할 때도 그것이 생겨난다. 최근 한국의 사회상황은 이 3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상황이었고, 이에 중산층은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이것이 비판적인 사회의식, 계층의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33/
3. 중간계층 사회론
계급론적 계층 갈등 이해를 수정하기 위해 논의되고 있는 것이 중간 계층(시민) 사회론이다. 이 이론은 “중산층의 육성은 각종 생활의 기회를 보다 많은 계층에 확산시키는 것”/34/이라고 보면서, 중간계층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홍두승은 중간계급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양 극단에 존재하는 계급을 구성하는 인구가 감소하는 반면에 중간적 계층의 위치에 있는 인구가 증가한다면 계층, 계급간에 야기될 지도 모르는 사회적 갈등의 빈도는 따라서 감소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라고 보면서, 중산층 귀속의식의 증가 역시 정치사회적 안정의 중요한 원인이며 지표라고 지적하고 있다.35/ 실제로 중산층에 대한 계층분석에 있어서 한상진은 중산층이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예컨대 경제적 기준(수입)으로 보면 중산층이 1980년의 53.9%에서 1985년의 59.7%로 증가했고, 경제적 기준과 사회적 기준(직업, 교육, 주택변수)을 종합한 지표에 따라서도 같은 기간에 36.1%에서 41.1%로 중산층이 증가되었다./36/ 중산층 귀속의식도 증가하고 있음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분명히 중산층이 실재하며, 그 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중산층 시민 사회론을 표방하는 김성국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예컨대 부의 불평등과 이에 따른 계급간의 갈등 등)들은 중산층이 주축이 되어서 점진적으로 (즉 비폭력적, 비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규정되는 시민사회란 계급투쟁 대신에 계급적/계층적 공존이 가능한 다원적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산층이 주축이 된” 개혁이라는 말은 중간층이
특정사회 내에서 어떤 특권적 내지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
니라, 소득 분배상의 대폭적인 개선을 통하여 노동자, 농어민을 중산층화시켜서 중
산층이 사회 세력의 중추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37/
이렇게 그는 과거의 부르즈와 시민사회로부터 중산층 시민사회에로의 변화를 강조한다. (급진적 의미에서의) 민중사회에 대비되는 시민사회는 이처럼 자본주의의 자체수정 능력을 믿고, 서서히 자본주의 혁명(Capitalist Revolution)을 완성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김성국은 지적하고 있다./38/ 나아가서 그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천적 책임은 소수의 지배집단과 그를 둘러싼 특권층에 있는 것이지, 중산층에게까지 그 책임의 소재를 전가하는 것은 지나친 도덕적 요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39/
이상의 모든 논의를 종합해 본다면 한국사회의 계층갈등의 문제는 분명하리라고 본다. 즉 한국사회의 계층구조를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모델로 보면서 양극화된 계급의 대립적, 투쟁적 갈등구조로 보는데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이분법적으로 계층구조를 보기에는 중산층의 실체가 너무 커졌고, 그 성격이 독자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즉 중산층은 독립된 하나의 계층으로서 독특한 의식과 행동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사회의 계층구조는 크게 3 구조, 즉 상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구해근의 분류가 적합해 보인다./40/<표 1>
<표1> 부문 간의 구분에 기초한 계급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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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계급 | 기업부문 | 관료부문 | 비공식부문 | 농업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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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층계급 | 자본가 | 정치엘리뜨 | -- | -- |
| 중간계급 | 화이트칼라 | 일반관리 | 쁘띠 부르즈와 | 부농 |
| 하층계급 | 공장노동자 | -- | 주변계급 | 소작,농업노동 |
└////////////┴/////////////┴////////////┴////////////////┴////////////////┘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중간계급이라는 구분 대신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공장 노동자, 주변계급, 소작농의 일부는 중산층에 귀속된다는 사실이다./41/
둘째로 비록 중산층과 하류층이 사회경제적 지위와 보상의 수준은 다르다 하더라도 변혁지향적이며, 상층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계층갈등이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 계층과 나머지 계층(중산층과 하류층) 사이에서 주로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갈등이 중산층에게서는 주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하류층에게서는 절대적 박탈감 때문에 생겨나는 차이는 있으나, 체제 변혁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로, 그렇다고 해서 중산층과 하류층 사이에는 계층 갈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은 주로 이념적 의식과 실천적 방법이 대립될 때 주로 성립된다. 즉 하류층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노선을 취하면 중산층과의 갈등이 생기지만, 그들도 점진적 개량주의 입장을 수용하면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은 크게 해소될 것이다. 한편 중산층이 지배계층의 지배 논리에 동조하면 하류층과의 갈등이 생기지만, 그들도 체제에 비판하고 도전하는 입장을 취하면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은 약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상층의 어떤 양태가 한국사회에서 계층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IV.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1. 경제적 불평등의 실태
한국사회 계층갈등의 문제는 무엇보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유래한다고 하겠다. 한국사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분명히 불평등 사회이다. 여기서는 먼저 두 가지 점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불평등 상황이 지난 몇십 년간 과연 악화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등의 정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심한가 하는 문제이다. <표2>는 한국사회에서의 경제적 불평등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표2> 한국 비농가 분야의 소득 분배의 변동
( % )
┌/////////////┬/////////┬//////////┬//////////┬/////////////┐
| | 1965 | 1970 | 1976 | 1982 |
├/////////////┼/////////┼//////////┼//////////┼/////////////┤
| 최저 60% | 29.7 | 34.7 | 29.8 | 30.1 |
| 중간 30% | 41.9 | 38.5 | 40.1 | 40.5 |
| 최고 10% | 28.3 | 26.8 | 30.1 | 29.4 |
└/////////////┴/////////┴//////////┴//////////┴/////////////┘
자료: 주학중, 윤주현. “1982년 계층별 소득분배의 추계와
변동요인”, 『한국개발연구』, 1984. 봄.
<표2>는 비농가 부문에서 가장 부유한 10%의 가구가 차지하는 소득의 몫과 가장 가난한 60%의 가구 및 중간에 속하는 30%의 가구의 소득의 몫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과 1982년을 비교해 본다면 상대적 분배분(分配分)은 큰 변동이 없다. 이것은 널리 인식되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명제와는 맞지 않는다. 적어도 소득에 있어서는 불평등의 상황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악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표3>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표3>에 따르면 비록 70년대 후반에는 높아지지만 지난 20여년간 지니 계수는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표에 의하면 한국의 소득 분배는 그동안 악화된 것도 개선된 것도 아니며, 대체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5분위 분포를 보아도 거의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즉 상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1965년에는 41.8%였으나 1988년에는 별 차이없는 42.2%인 한편, 하위 60%의 소득 점유율도 1965년의 34.9% 에서 1988년의 36.0%로 그 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히 소득에 있어서는 불평등의 정도는 심각하다. 88년의 경우 상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42.2%나 되는 반면에 하위 20%의 점유율은 7.4%에 불과하고, 하위 60%를 모두 합쳐도 그것은 36% 밖에 안된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20여년간 불평등의 정도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한편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상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인도네시아(1976년)가 49.4%, 홍콩(1980년)이 47.0%, 멕시코(1977)가 57.7%, 대만(1979)이 37.5%, 이태리(1977)가 43.9%, 영국(1979)이 39.7%, 프랑스(1975)가 45.8%, 스웨덴(1981)이 41.7%, 미국(1980)이 39.9%, 일본(1979)이 37.5%인 것을 보면, 한국의 소득 점유율 분포는 오히려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42/
<표 3> 한국의 계층별 가구소득 분석
┌////////┬////////////////////////////////////////////////┬///////////////┐
| | 5 분 위 계 층 | |
| 연도 ├////////┬/////////┬/////////┬/////////┬/////////┤ 지니 계수 * |
| | 1 | 2 | 3 | 4 | 5 | |
├////////┼////////┼/////////┼/////////┼/////////┼/////////┼///////////////┤
| 1965 | 5.8 | 13.6 | 15.5 | 23.3 | 41.8 | 0.344 |
| 1970 | 7.3 | 12.3 | 16.3 | 22.4 | 41.6 | 0.322 |
| 1976 | 5.7 | 11.2 | 15.4 | 22.4 | 45.3 | 0.381 |
| 1980 | 5.1 | 11.0 | 16.0 | 22.6 | 45.4 | 0.389 |
| 1982 | 6.9 | 11.9 | 16.2 | 22.0 | 43.0 | 0.357 |
| 1985 | 6.1 | 11.6 | 16.2 | 22.4 | 43.7 | 0.363 |
| 1988 | 7.4 | 12.3 | 16.3 | 21.8 | 42.2 | 0.336 |
└////////┴////////┴/////////┴/////////┴/////////┴/////////┴///////////////┘
* 지니(Gini) 계수는 그 값이 클수록 소득분배가 더 불평등함을 나타낸다.
자료 : 김대모, “분배문제의 현실 진단과 개선방안”, 『분배의 격차 노사문제
의 근원적 해결 방안』(국제문화연구소,1990), 19쪽.
소득의 불평등도 문제이지만 정작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자산 분배에서 나타나고 있다. <표 4>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표 4> 자신분포에 관한 지니 계수 (1988)
┌////////////┬///////////////////////////////////////////┐
| | 자 산 |
| 소 득 ├///////////////////┬///////////////////////┤
| | 금융 자산* | 실물 자산** |
├////////////┼///////////////////┼///////////////////////┤
| 0.336 | 0.770 | 0.596 |
└////////////┴///////////////////┴///////////////////////┘
*금융자산은 예금, 주식, 채권, 보험, 사채의 합계임.
**실물자산은 주택, 토지, 자동차 및 기타 재산의 합계임.
자료 : 김 대모, 앞글, 27쪽
<표 4>에 따르면 소득 분배보다 자신 분배가 더 불평등하며, 또 자산 중에서는 실물자산보다 금융자산이 불평등도가 더 크다. 이것은 <표 5>와 <표 6>에 의하여 크게 뒷받침되고 있다.
<표 5> 총자산의 소유 규모별 분포 (1988)
┌////////////////////////////┬////////////////////////┐
| 소유 규모별 십분위 | 점 유 율 (%) |
├////////////////////////////┼////////////////////////┤
| 1 | 0.5 |
| 2 | 1.3 |
| 3 | 2.2 |
| 4 | 3.4 |
| 5 | 4.9 |
| 6 | 6.6 |
| 7 | 9.0 |
| 8 | 12.0 |
| 9 | 17.0 |
| 10 | 43.1 |
└////////////////////////////┴////////////////////////┘
자료 : 권 순원,『소득 분배 문제의 실상과 분배구조의 개선 방향』,
한국개발연구원, 1990.7.14.
< 표 5>에 따르면 총 자산에 있어서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계층의 자산 점유율은 각각 43.1%와 0.5%이며,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하면 각각 60.1%와 1.8%로서 그 불평등도는 소득의 경우보다 훨씬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유지 소유에 있어서 더욱 심하다 <표 6>.
<표 6> 민유지의 소득 규모별 분포 (1988)
┌////////////////////////////┬/////////////////////┐
| 소유 규모별 십분위 | 점 유 율 (%) |
├////////////////////////////┼/////////////////////┤
| 1 | 0.0 |
| 2 | 0.2 |
| 3 | 0.3 |
| 4 | 0.5 |
| 5 | 1.0 |
| 6 | 1.9 |
| 7 | 3.2 |
| 8 | 5.4 |
| 9 | 10.8 |
| 10 | 76.9 |
| (상위 5%) | (65.2) |
└////////////////////////////┴/////////////////////┘
자료 : 토지 공개면 위원회, 『토지 공개념 연구위원회 연구 보고서』,
국토개발연구원, 1989.5
<표 6>에 의하면 하위 60%의 계층의 민유지 점유율은 3.9%에 불과한데, 상위 10% 계층은 76.9%를 점유(상위 5%가 65.2%)하고 있다. 상위 20%의 점유율은 87.7%나 되지만, 하위 80%의 점유율은 12.3%밖에 안된다. 더우기 대도시의 가구별 토지 소유 불평등도는 훨씬 심해서 서울의 경우 하위 70%까지의 계층은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위 10% 계층의 점유율은 80.5%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43/ 이렇게 본다면 소득보다는 자산과 토지 소유에 있어서의 불평등이 계층간 위화감의 결정적 요인이라 하겠다. 특히 토지 불평등도는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즉 토지 소유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기 쉽고,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급속하게 오르게 된다. 예컨대 1988년의 경우, 소비자 물가는 7.1% 상승했는데 비하여 주택 가격, 전세 가격, 토지 가격은 각각 15.4%, 22.8%, 27.5% 상승했다./44/ 이와같이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면 부동산 소유자는 막대한 자본 이득을 올리지만, 그것은 일종의 불로소득으로서 공식통계에서는 소득으로 잡히지도 않는다. 반면에 일반 서민, 특히 무주택자는 ‘내집 마련의 꿈’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전/월세 가격이 올라서 곤란을 겪게 된다.
이렇게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 사유지 소유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으며, 이것은 분명히 계층 갈등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불평등에 있어서는 중산층도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경제적 혜택을 받으면서도 중산층의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소득, 자산,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따라서 다수 한국 국민의 공통된 입장으로 나타날 것이다.
2. 경제적 불평등 의식과 그 의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은 서울대학교의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1986)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45/ 즉 소득 격차에 대한 설문에서 그것이 “아주 심각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49.8%, “조금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9.8%로 모두 89.6%의 응답자가 그 문제를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아마 소득과 부의 분배 결과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것이다. 경제 성장의 결과에 대해서는 82.1%가 경영주에게 유리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주택 문제에 대해서는 76.7%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응답자의 56.5%가 부자들은 좋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국민의 80.3%는 개인이나 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토지를 갖지 못하도록 세금을 많이 물리거나(41.3%) 또는 토지 소유의 면적을 제한해야 한다(39.0%)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국민의 85.5%는 재산의 일부(68.5%) 또는 대부분(17.0%)을 상속하지 말고 사회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989년의 다른 조사/46/는 소득 격차가 심하다고 보는 응답자가 무려 95.5%(“아주 심각” 66.8%, “조금 심각” 28.7%)나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택 문제에 대해서도 93.8%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어서 지난 86년의 경우보다 악화된 불평등의식을 국민이 보여주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는 국민의 65.6%가 “노력에 비하여 그 댓가가 낮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바 이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국민들 사이에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노총의 한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무려 93.5%가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투기나 정권과의 결탁에 의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47/
이러한 조사 결과들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로 최고 상류층에 대한 국민들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재벌 기업은 탈세, 금융, 세제상의 특혜, 정부의 지원, 중소기업 착취, 문어발식 이윤추구, 부동산 투기, 지하경제 불로소득, 뇌물 수수등으로 인해 부의 축적 과정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실상을 반영하는 결과라 하겠다./48/그럼에도 부의 사회 환원에는 인색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둘째로 상류층 가운데 상당수가 부동산 투기, 고리대금, 건물임대, 주식매매 등으로 유한 계급 즉 불로소득자로 나타나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중산층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49/ 셋째로 상류층에 있어서는 부의 획득 방법 뿐만 아니라 소비도 문제가 된다. 즉 그들의 과소비와 사치 낭비 풍조는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며, 역시 계층간 위화감을 만들어 내게 된다.
결국 한국 사회의 계층 갈등의 근원은 분배정의 부재와 관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특히 상류층들이 경제적 부도덕성과 이를 조장하는 정부 시책과 구조(예를 들면 정경 유착)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50/ 이러한 분배 정의의 확립을 위해서는 중산층과 하류층이 연대하여 변혁을 촉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사 관계에 있어서 계층 갈등의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송복은 정경유착 탈피, 소유의 대중화, 기업윤리 확립, 공생적인 노사관계, 과시적 소비행위 억제, 문화 창달에의 기여, 인간화 회복(환경오염, 산업재해 방지)등을 들고 있다./51/ 한편 계층 갈등의 해소 방안으로 김대모는 공정한 ⌈경기의 규칙⌋ 정립, 부동산 투기 억제와 민유지 소유 집중 완화, 금융실명제 도입, 교육기회 균등 제공, 사회보장제도 확충, 상위 계층 특히 재벌들의 부의 사회 환원등을 지적하고 있다./52/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하나는 중류층과 하류층이 연대하여 사회 변혁, 특히 경제적 불평등의 극복을 지향하되 그 변혁은 급진적인 체제 전복이나 계급 투쟁식의 방법보다는 확대되는 중산층을 의식하는 점진적인 개량주의 방법이 보다 현실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전자의 방법을 택할 때에 중산층은 변혁보다는 안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계층 갈등 극복은 중산층 시민 사회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변혁 운동의 목표는 상류층의 지나친 부를 사회에 환원시키는 반면에 하류층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중도적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이러한 변혁 과정에 있어서 중산층은 하류층에 대하여 어떤 우월의식을 갖거나 혹은 상류층의 경제적 부도덕성(예컨대 과소비 등)을 닮아가는 일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하류층을 경멸하면 하류층의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증대될 것이고, 그들이 상류층과 동질화되려고 하면 하류층의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산층, 그들은 하류층 사람들을 예비적 중산층으로 알고 그들과 함께 사회 변혁 운동에 참여하여 계층 갈등 극복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V. 계층 문제에 대한 웨슬리적 답변
우리는 앞에서 한국사회 계층갈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비록 계급론적 시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하더라도 분명히 계층간, 특히 소수의 지배 계층과 나머지 계층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하며, 그 갈등은 주로 경제적 불평등에 기인한다는 것을 논의했다. 그 갈등의 해소 방안이 사회학자들에 의해 제시될 수도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갈등 극복이 신앙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이것을 통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재확인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논자는 그 하나의 구체적 대안을 웨슬리의 사회 신학과 실천성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계층 문제에 대한 웨슬리적 대안은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를 밝히려는 것이다.
1. 사회적 배경
웨슬리가 활동했던 18세기 영국은 산업 혁명의 결과로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고 있었다. 공유지의 사유화 법령(Enclosure Acts)의 제정으로 농토가 소수의 지배계층의 손으로 넘어갔고, 가난한 농민들은 대부분 농노의 지위로 신분이 격하되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 빈민층을 구성하게 되었다./53/ 더구나 산업 기술의 발달은 가내 공업에 종사하던 이들을 파멸시켰다. 이들은 이제 미숙련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여 열악한 작업 조건과 환경 가운데서 비참하게 살았다. 사회계급 피라미드에 있어서 대지주들, 높은 관리들, 부자가 된 무역상들이 정점에 있었고, 다음에 장인들, 기술공이 있고 그 아래로 빈민들이 있어서 계급의 격차는 현저했다. 특히 하류 민중 계층은 비정규적 노동에 의존하여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았고, 영양실조와 굶주림은 그들의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54/ 일을 한다 해도 이들은 15시간 이상의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어려움을 겪은 반면에 고용주들은 끝없는 욕심과 경쟁심으로 그들을 착취하였다. 상류층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에 비해 볼 때 가난한 이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이러한 생활은 도시 빈민이나 농민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으로 제조업과 무역이 신흥 부유층을 만들었고, 이들과 정치가의 결탁으로 상류층의 욕심과 사치는 극에 달했던 반면에 노동자들의 삶은 안전이나 보상은 외면된 채 억압과 착취의 고통을 겪는 삶이었다. 부와 가난의 양극화된 사회, 즉 소수의 지배 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으로 양극화된 사회가 18세기 영국의 사회였다. 이 가운데 중산층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약간의 쁘띠 브르즈와 계급이 있을 뿐이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곧 사회적 무규범의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상류층은 사치와 방탕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소외된 계층들은 한편으로는 희망을 상실한 채 도박, 음주, 폭력 등의 무질서한 삶을 살며 자포자기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하여 그 억압 감정이 폭발할 상황이었다./55/ 이렇게 하층 민중들 사이에서는 렉키(Lecky)가 ‘혁명의 가장 위험한 징후’(the most dangerous symptoms of revolution)라고 불렀던 상황이 도래하였다./56/ 마르크스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양극화된 계급 갈등이 계급 투쟁과 혁명을 초래할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 신앙의 열정도 없었고 오히려 상류층의 노동자 계급 착취에 동조했으며, 성직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버리고 가진 자들 편에서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57/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웨슬리는 민중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죄책으로부터의 구제와 삶의 가치의 의미를 가지고 들어왔다. 웨슬리는 틀림없이 복음주의자/경건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회운동, 특히 계층갈등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혁명이나 계급투쟁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고, 기독교적인 사랑을 토대로 한 점진적인 변혁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그 자신이 온건 개량주의자였다. 영국사회와 교회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그것을 뒤집어 놓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변형 운동의 확산을 통해 영국사회와 교회의 변신을 추구했던 것이다.
2. 웨슬리의 사회신학
계층 갈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웨슬리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사회운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많은 설교와 사회적 실천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사회신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비록 웨슬리의 근본 목적이 개인에 대한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회심과 구원은 사회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 종교가 아닌 종교는 알지 못하며, 사회적 거룩함이 아닌 거룩함은 알지 못한다”고/58/ 말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결은 사회적 성결이고, 그것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역동적인 것이다. 즉 기독교인의 완전에 대한 추구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운데서 자신의 일을 따르는 동안 추구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다.”/59/
웨슬리는 기독교인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며 죄인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맛있게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본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음으로써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은총이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신 이유인 것이다.”/60/ 따라서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경건은 하나님의 구속행위 안에 있는 근원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성화 혹은 기독교인의 완전은 행위로 표현되는 능동적인 사랑의 현존인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선행을 믿음의 열매라고, 교회는 행동으로 가장 잘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인간들의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책임성을 말하면서, “믿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한 수단이며, 믿음은 사랑하기 위해 있다”/61/ 고 역설한다. 다른 이들을 향한 선한 의지와 그들의 향상을 위한 실천적 봉헌을 강조함으로 그는 복음의 사회적 의미를 제시했다. 카메론(Cameron) 은 이것을 ‘사회적 책임의 침투적 의미’라고 부르고 있다./62/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실천은 구체적으로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종교는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
은 삶의 약이고, 부조리한 세계의 모든 악과 인간의 비극 및 악의 완벽한 치료임을
믿는다. 우리는 이 종교가 이 세계에 수립되는 것을 보기 원한다./63/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 악과 불의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사랑이며, 그것은 변혁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웨슬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즉 오직 변혁주의적 신학만이 성화의 교리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구원의 특성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웨슬리의 복음 이해이며 구원 이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통주의(orthodoxy) 가 아니라 정당한 실천(orthopraxis) 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웨슬리는 가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실업의 문제, 사회복지, 직업윤리, 사회구제와 봉사, 제도의개선, 도덕적 생활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논의했고, 또한 그 영역들에서의 변혁을 위하여 구체적인 실천을 운동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은 암묵적으로(latently) 사회갈등, 특히 계층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3. 계층 갈등 극복의 실천
웨슬리 당시 계층 갈등의 근원은 경제정의의 부재였고, 이것은 사회의 부도덕성과 관계되어 있었다. 천민적 물욕주의에 빠져 억압과 착취를 일삼고 사치와 낭비에 젖어있는 소수 지배층과, 가난에 찌들리고 고역과 질병에 시달리며 무기력해져 있으며 한편으로는 서서히 저항의식이 생겨나는 다수 하층민중들의 첨예한 대립은 상극의 갈등 관계였다. 마르크스식으로 표현하면 지배계층은 경제적 수단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다른 정치적 권력,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이념까지도 독점하면서 힘에 의해 자신들의 계급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으며, 바로 이것이 계급갈등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웨슬리의 처방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통한 체제전복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밑으로부터의, 또 한편으로는 위를 향한 점진적인 변혁운동의 확산이었다.
우선 웨슬리는 모든 이들에게 강한 직업적인 소명의식을 불어넣어 줌으로 청지기적인 직업 윤리관을 확립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근면, 성실, 청결, 절제를 역설했다. 그의 전도의 우선적인 대상은 도시의 빈민들, 노동자들, 광산 농부들, 산업지역의 직조공과 같은 천민들이었다./64/ 그러나 웨슬리는 도피 기제로서 종교를 그들에게 소개하기 보다는 종교신앙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도록 권고했다. 즉 희망과 의욕을 불어넣어 주면서 밑바닥 생활에서 위로 향상하는 모든 노력을 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너의 부르심에 모든 가능한 부지런함을 사용하라...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할일을 찾는 대로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하라. 그것을 가능한 한 빨리 하라! 지체하지 말라!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그리고 그것을 가능한 한 잘 하라. 그것이 수고와 인내로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지 말라”/65/고 권고하고 있다. 좌절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살 것을 권면함으로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했던 것이다.
직업적 소명의식에 더하여 웨슬리는 사치와 낭비를 버리도록 경고했는데, 이것은 특히 부유층들을 향한 질책이기도 했다. 가진 자들의 탐욕과 허영심이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음식, 의복, 가구의 모든 사치와 낭비를 금했고 재화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인간은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위임받은 청지기라는 종교신앙을 거듭 강조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간청하노니 여러분의 소명의 부름에 따라 행동하라! 더 이상
게으르지 말라! 유행이나 육체가 요구하는 모든 경비를 절약하라! 탐욕을 버려라!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가능한 선을 행하라!/66/
그가 기독교인으로 가르쳤던 근면과 검소의 덕들은 기업 세계에서 필요한 경제적 덕들이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른 감리교도들의 금욕주의적 실천은 영국의 근대 자본주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67/
직업에의 소명의식과 이에 따른 근면과 검소의 생활은 곧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웨슬리는 강조하고 있다. 즉 근면과 성실, 절제와 검소의 생활로 얻어지는 것은 결국 개인적 탐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벌어라. 할 수 있는대로 많이 저축하라. 그리고 할 수 있는대로 모든 것을 주라”/68/고 권고하고 있다. 이것이 웨슬리가 생각했던 금욕주의였던 것인데, 그 뒤에 있는 생각은 영혼의 적인 게으름과 사치를 피할 뿐 아니라 크고 지속적인 자선적 활동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물질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사재(私財)보다는 공재(公財)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웨슬리는 중요한 직업윤리의 원칙을 첨가하고 있다. 그것은 재화를 획득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정당한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69/ 이렇게 그는 남을 해치거나 속이면서 부를 축재하거나 착복하는 부정과 불의를 배격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지배계층에게는 경고성 권면인 것이다.
계층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두번째 대안은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조직적으로 사회봉사와 구제를 통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웨슬리는 이것을 위하여 돈, 의류, 식량, 연료 및 생활 필수품을 모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자립, 자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기도 했고 그 자신이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70/ 나아가서 그는 자선단체를 만들고, 사회복지 시설들을 세워 운영했다./71/ 여기에는 의료시설 및 탁아소, 양로원, 고아원, 구빈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72/ 무료 진료소를 열었고/73/ 학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운영했다. 이렇게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인도주의적 개혁방법을 통해 인류애적 희생과 봉사, 헌신의 구체적 열매들을 맺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성화 교리에서 발전된 것으로써의 사회적인 사랑의 윤리가 조직적으로 적용된다면 그 때에는 사회질서 자체가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74/ 계층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이와 같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 자조적이고 적대적인 계급적 감정을 완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셋째로 계층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한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 변화는 분배 정의를 확립하기 위한 제도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웨슬리는 토지의 지나친 사유화와 독점을 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75/ 또한 노예처럼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76/ 그는 나아가서 정경유착을 유발시키는 부정선거 제도의 철폐를 외쳤다./77/ 세금문제에 있어서는 하류층의 세금과 채무가 감면되어야 하며, 그들을 위해서는 식량, 생활 필수품의 가격이 하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부의 상속을 반대하여 상속법의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78/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노사해결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79/ 무엇보다 그는 계급 차별의 철폐를 촉구했고, 그 자신이 하류층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그의 종교운동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도록 일을 맡겼다./80/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운동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기존 사회체제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웨슬리는 분명히 개혁자이기는 했으나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따라서 점진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해결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들 그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똑같다면 무슨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급진적 체제 변화보다는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통한 점진적 사회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분명히 웨슬리의 이러한 인간개조, 제도개선, 그리고 사랑의 실천 등은 일반적으로는 사회문제, 구체적으로는 계층갈등을 해소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인 것 같다. 이것은 파괴적이 아니라 건설적인 것이며, 상극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조화관계를 통한 문제 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이러한 사회적 실천은 어떻게 계층 갈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는가? 웨슬리의 사회신학과 그 실천은 먼저 하류층의 의식을 개혁시켜 그들로 하여금 적대감이나 좌절감을 딛고 일어나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민중의 아편’과 같이 가난의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 즉 민중들의 중산층화(embourgeoisement)를 초래했다./81/ 웨슬리적 교훈과 실천을 따른 사람들은 자기훈련과 절제, 근면과 검소의 생활을 했고, 그 결과는 생활수준의 향상이었던 것이다. 즉 성취 동기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청지기 관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생겨나는 결과는 부의 증대였던 것이다. 웨슬리적 사회실천은 또한 영국에서의 유혈 계급혁명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렉키는 웨슬리 부흥운동이 영국에서 프랑스 유형의 혁명을 종교운동, 사회운동으로 전환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82/ 헤일(Hale) 도 18세기 웨슬리 부흥운동과 사회운동이 중산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연계를 맺게 해서 폭동을 막았다고 설명한다./83/ 알레비(Halevy) 도 비슷하게 감리교 운동의 안정시키는 영향을 통해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정치형태와 경제의 모순이 야기할 수도 있었을 혁명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84/ 노동계급의 엘리뜨와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중산층은 확립된 질서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정신을 가진 웨슬리 운동에 감화를 받았고, 이에 따라 비폭력과 질서있는 사회 개혁의 성취를 위임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계층 갈등의 문제를 극복했던 웨슬리적 대안, 즉 그의 사회신학과 실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웨슬리적 방법은 곧 양극화된 계급의 투쟁을 함축하는 상극모델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상층계급은 양보하고 절제하면서 자신의 부를 사회에 많이 환원하고 다른 계층에 나누어 주는 한편, 하층계급은 최선을 다해 노력함으로 점차 계층 향상이 이루어짐으로 양대 계층이 가운데로 수렴하게 되는 상생의 모델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웨슬리의 사회신학과 실천은 결국 대립이 아닌 공존의 삶 가운데서 하류층의 중산층화를 초래할 수 있었다. 물론 웨슬리 자신도 중산층화를 신화화(mythification) 하지는 않고 있다. 중산층화되면서 생겨날 수 있는 부정적 결과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85/ 왜냐하면 재화가 늘면서 교만, 분노, 육의 욕망도 증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웨슬리는 청지기 교리가 지속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86/
VI. 맺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사회의 계층갈등 문제를 보는 시각과 갈등의 실상에 대해 논의했고, 영국사회의 계층 갈등 문제에 대한 웨슬리적 대안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한국사회가 양극화된 계급적 대립모델로 설명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분명히 계층간의 갈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고, 그 주요 원인은 경제 정의 부재에 있음을 밝혔다. 18세기 영국사회의 상황도 계급 갈등 상황이었으나 웨슬리적인 대안은 개인의 의식개혁, 사회봉사 활동, 제도적 개선을 통한 점진적인 개혁이었음을 논의했다. 웨슬리적인 이러한 사회복음은 그의 사회신학과 실천성에 근거했음을 보았다. 웨슬리적 대안에는 이미 토지 공개념, 세금감면,부정 상속 금지, 합리적 노사관계, 정경유착 방지, 계급차별 철폐, 식량가격 조정 등의 사회제도 개선과 자선, 봉사, 구제 등의 인도주의적 사회운동, 그리고 청지기적 직업윤리와 소명감, 그리고 이에 다른 근면,절제, 검소의 생활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대안들은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사회 덕목들이요 제도적 개선책들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러한 문제들이 계층갈등의 구체적인 해소 방안이라 한다면, 그 중요성은 더욱 분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웨슬리적 대안은 분명히 상극적인 투쟁과 대결을 통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상생적인 조화와 협력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는 방안임에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계층 갈등 상황은 웨슬리 시대의 영국상황보다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의 계층 갈등은 단순히 계층간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라, 분단이라는 민족모순과 대외종속이라는 국제적 역학관계에도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배계층이 기득권을 포기하기에는 이미 정경유착이 심화되었고, 상층계급의 의식이 부도덕성으로 경직화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된 대립 모델이나 계급투쟁적인 극한적 방법을 가지고는 계층 갈등의 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웨슬리적인 개량주의적, 인도주의적 변혁운동도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생(相生)의 길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중산층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하며, 또한 하층 계급의 중산층화가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 하겠다. 웨슬리가 꿈꾸는 계층간의 상생, 그것은 믿음의 실천이요 사랑의 구현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짊어져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지금 때가 찼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 이 땅에서 전쟁이 끝나
고... 형제들이 서로 대적하여 일어나지 않으며, 어느 나라나 도시도 분열되어 그
내부가 찢기는 일이 없다... 심지어는 “현명한 사람을 미치게 할 ” 억압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에 맷돌질하는” 착취도 없으며, 강도질이나 학대, 약탈이나
불의도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
다. 그래서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게 되었다.”... 의로움 혹은 정의와 더불어
자비도 발견된다... 믿는 가운데 화평과 기쁨이 충만해지며, 한 성령에 의해 한 몸
으로 결합되고, 모두 형제들처럼 사랑하며, 한 마음과 한 영혼을 갖게 된다. 아무
도 부족한 사람이 없다. 모두 자기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87/
이러한 계층간의 상생이 한국사회에 이루어질 날이 오기를!
註)
1. 이 개념들에 대하여는 다음을 보라. Richard Bendix and Seymour M. Lipset, Class, Status and Power(New York : Free Press, 1966).
2. Kingsley Davis, Human Society(New York: Macmillan, 1949),pp.366-67.
3. Pierre L. van den Berghe, "Dialectic and Functionalism : Toward a Theoretical Synthesi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28(Oct. 1963), pp.697-98
4.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 ed. by Samuel H. Beer (New York : Appleton-Century Crofts.Inc.1955), pp.9-22
5. K. Marx,The Poverty of Philosophy (New York :InternationalPublishers,1963), pp. 172-74.
6. Max Weber, From Max Weber:Essays in Sociology. eds. and trs. by H.H.Gerth and C.W.Mills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1946), pp. 180-195.
7.Ralf Dahrendorf, Class and Class Conflict in Industrial Society (Stanford,Cal:Stanford Univ. Press, 1959 ).
8. S.N.Eisenstadt, Social Differentiation and Stratification (Glenview, Ill:Scott,Foresman and Co.,1971),pp.77-79
9. Nicos Poulantzas, Classes in Contemporary Capitalism (London:New Left Books,1975) .
10. Anthony Giddens, The Class Structure of the Advanced Societies (London : Hutchinson, 1973).
11. 김성국, “중산층 위주의 사회”, 『민족지성』 1987.10. 77쪽
12. 같은 글, 같은 쪽.
13. 김영모, “한국의 사회변동과 계층구조”,『사상과 정책』 1(2),6-18 쪽.
14. 서관모, “현대 한국사회의 계급구성 : 쁘띠 부르조아지의 추세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학 연구』 7,113쪽 이하
15. 서관모, “한국사회의 계급구조” 김진균,조희연 편 『한국 사회론』 (한울,1990),117-121 쪽.
16. 같은 글 140 쪽.
17. 구해근, “한국 중간계급 연구의 이론적, 방법론적 문제점.” 서울대학교 사회학 연구회 편, 『사회계층 : 이론과 실제』 (다산 출판사,1991), 144 쪽.
18. 송복,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현대문학,1990), 88-89 쪽.
19. 구해근, 앞글, 148쪽.
20. 송복, 앞책, 21-23 쪽.
21. 같은 책 92쪽.
22. 경제기획원, 『사회지표』 1981, 1986, 1989.
23. 최장집, “해방 40년의 국가, 계급구조, 정치변화에 대한 서설” 최장집 편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 (한울,1985), 52-54.
24. 김진균,조희연, “분단과 사회상황의 상관성에 관하여,” 변형윤 등, 『 분단시대와 한국사회』 (까치, 1985), 427-28 쪽.
25. 서관모, “중간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 『8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현단계와 전망』 (역사와 비평사, 1988), 264 쪽.
26. 한상진, “『중심화』 변혁 모델의 탐색,” 『사상』 1989 (여름),172-232 쪽.
27. 같은 글, 212 쪽.
28. 같은 글, 213 쪽.
29. 같은 글, 214 쪽.
30. 한상진, 『민중의 사회과학적 인식』 (문학과 지성사, 1987), 105 쪽.
31. 한완상, 권태환, 홍두승, 『한국의 중산층』 (한국일보사, 1987), 32-40 쪽.
32. 한상진, 앞 책, 110-11 쪽.
33. 송복, 앞 책, 102-105 쪽.
34. 한완상 등, 앞책, 10쪽.
35. 홍두승, “직업 및 계층구조의 변화와 전망,” 한국사회학회 편,『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현대사회 연구소, 1983), 73 쪽.
36. 한상진, “한국 중산층의 개념화를 위한 시도 : 중산층의 규모와 이데올로기 성격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학』 21. 여름(1987), 130-31 쪽.
37. 김성국, 앞글, 81 쪽.
38. 같은 글, 같은 쪽.
39. 같은 글, 79 쪽.
40. 구해근, “현대한국 계급구조에 관한 시론” 박현채 외 공편, 『한국사회의 재인식』 (한울, 1986), 296 쪽.
41.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다음을 참고하라. 한상진, “중간(산)층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민족지성』 1987. 10, 42-58 쪽.
42. 김대모, “분배문제와 현실 진단과 개선방안.” 『분배의 격차,노사문제의 근원적 해결방안』 (국제 문화 연구소,1990), 20-21 쪽.
43. 강봉균, 『한국의 경제개발 전략과 소득분배』 한국개발 연구원, 정책연구자료 89-96, 1989, 85 쪽.
44. 김대모, 앞글, 30 쪽.
45.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환기의 한국사회-국민의식 조사 자료집』,1987.
46. 한국노동연구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노사관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1989.3.
47. 한국노동조합 총연맹, 『한국 노동자 의식연구』 노동신서1,1990.
48. 이정우, “소득분배,노사관계와 중산층의 의식.” 『민족지성』,1987.10, 같은쪽.
49. 같은 글, 같은 쪽.
50. 이원규, “도덕성의 위기를 알리는 지표들,” 『기독교 사상』 1990.11, 52-64 쪽.
51. 송복, 앞의 책, 169-172 쪽.
52. 김대모, 앞글, 47-48 쪽.
53. 이원규, “웨슬리 전통과 사회운동,” 『신학과 세계』 17, 가을 (1988), 61 쪽.
54. Ray A. Sturm, Sociological Reflections on John Wesley and Methodism (Indianapolis, In. : Central Publishing Co., 1982), pp. 31-40
55. 이원규, 앞글, 62 쪽.
56. W.E.H. Lecky, A History of England in the Eighteenth Century, Vol. II (New York, 1878), pp. 692-93.
57. Sturm, op.cit., p.44.
58. The Poetical Works of John and Charles Wesleys Vol.1 (London:Wesleyan Methodist Conference Office, 1868), p. xxii
59.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5 (Grand Rapids :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58), p.296. (이하 Works 로 약술함)
60. Ibid., p. 299
61.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London : Epworth Press, 1787), p. 45.(이하 Sermons 로 약술함)
62. Richard M. Cameron, Methodism and Society in Historical Perspective (New York : Abingdon Press, 1961), pp. 34-5.
63. Works, Vol. 8, p.3.
64. Werner Stark, The Sociology of Religion, Vol II, Sectarian Religion (New York : Fordham Univ. Press, 1967), pp. 23 ff.
65. Cameron, op.cit., p. 67 에서 인용.
66. Sermons, p. 440.
67.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tr. by T. Parsons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8).
68. Works, Vol.7, p. 317.
69. Sermons, p.440.
70. Nehemiah Curnock (ed.),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ol.7, pp. 42-3.
71. Eric M. North, Early Methodist Philanthropy (New York : Columbia Univ. Press, 1914), p. 119.
72. Cameron, op. cit., pp. 63-4.
73. North, op. cit., pp.42-3
74. Thomas W. Madron, “ 존 웨슬리의 경제관.” Theodore Runyon 편 (변선환 역) 『웨슬리와 해방신학』, (전망사,1987), p.106.
75. Runyon, “서론:웨슬리와 해방신학” Runyon 편, op. cit., p.9.
76. Works, Vol.11, pp. 72-4
77. Cameron, op.cit., p.56.
78. Works, Vol.6, pp.132-33
79. Works, Vol.7, p.31.
80. 이원규, 앞글, 74-5 쪽.
81. H. Richard Niebuhr,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New York:Meridian Book,1957), pp.43-5, 55-6, 71-2.
82. Lecky, op.cit., pp.637-38.
83. Sturm, op.cit., pp. 51-2 에서 인용.
84. Elie Halevy, The Birth of Methodism in England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71).
85. Works, Vol.7, p.317.
86. Ibid.
87. Works, Vol.5,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