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제법 센바람이 키 큰 나무들의 머리를 후루룩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스카가 몸을 흠칫하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룬 역시 바람에 실려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스카가 눈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낮게 둘러보았다. 풀벌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불안한 고요가 그들이 있는 공터를 겨냥하여 천천히 죄어들고 있었다. 스카가 작지만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주위를 살펴 볼 테니 너는 조용히 일행을 깨워."
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룬과 엠버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카도 바로 기척을 지우며 빠르게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룬은 까만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엠버트에게 다가갔다. 그는 드르릉~ 드르릉~ 하는 애교나 귀엽다고 봐 줄만하게 코를 골며 꿀잠을 자고 있었다. 룬은 어쩐지 미세한 불안감을 느끼며 가만히 엠버트를 흔들어 깨웠다.
...그의 불안은 적중했다! 엠버트는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몇 번 흔들어 보던 룬은 다급한 마음에 갑자기 짜증이나 잠깐 멈칫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짜증나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가득 담아 있는 힘껏 째려보며 엠버트의 심장을 목표로 검을 찔렀다.
순간 엠버트가 그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굴러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재빨리 일어나며 자신의 검을 잡더니 카륵 소리가 나도록 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룬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당황하며 작은 소리로 외쳤다.
"야, 안돼! 잠깐."
"이야~"
이미 늦었다. 엠버트는 일어나는 즉시 눈에서 살기를 뿜으며 칼을 휘둘렀다. 룬은 몸이 오싹하는 것을 느끼며 몸을 숙여 피하는 동시에 속으로 비명을 질러... 마이에게 보냈다.
[우악! 공주님 일났어요. 일어나요!]
마이는 처음 듣는 엄청나게 크고 다급한 룬의 목소리에 다행히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뜸과 동시에 룬의 귀에 왠지 익숙한 날카로운 소리가...
"쉬잇~ 핏, 피빗!"
셋 모두 하나도 맞지 않았다는 게 기적일 정도의 수십 발의 아이스 애로우였다. 엠버트는 잠결에 칼을 휘둘렀다가 주위와 사방 풀숲으로 떨어지는 화살들에 기겁을 했다.
"으앗~ 뭐, 뭐얏??"
[마이! 빨리 메이르 들고 '매직 디펜스'... 아니, 잠깐.]
[네? 매, 매직...]
그녀는 주의에 정신 없이 날아드는 화살들 속에서 아직 상황파악을 못해 어리둥절해 하며 다급히 하던 말을 끊고 자신에게 바람처럼 달려오는 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공주님! 메이르!]
"네, 네!"
그녀가 룬의 무서운 기세에 깨어나듯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마법석을 황급히 꺼냈다. 룬이 달려들어 그것을 가로채듯 뺐어들며 외쳤다.
"매직 디펜스!"
다시 마이의 주위에 결계가 둘러졌고 그것을 확인한 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직 디펜스는 마이가 제정신이 아닐 때 걸었으므로 룬이 첫 시동어를 말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룬!"
룬의 등뒤에서 날아오는 마법 공격을 보고 마이가 비명처럼 룬을 불렀다. 룬이 다시 그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옆의 나무 뒤로 뛰어들어 피했다.
"크윽~"
"꺄악, 룬 맞았어요? 맞은 거에요?"
룬은 자신의 허벅지를 스친 차가운 공격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저 화살이 스치며 조금 찢어지고 주위가 약간 얼어붙은 상태였지만, 그냥 칼에 스친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아팠던 것이다. 룬은 욱신거리는 고통에 어쩐지 화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별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가장해야만 했다. 그것은 물론 어쩔 줄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대혼란 상태의 마이 때문이다.
"괘, 괜찮아요. 살짝 스친 것 같아요."
'분명 아까는 다른 쪽에서... 설마.'
룬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공격에 불안을 예감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지끈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엠버트가 있는 확 트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계속 날아드는 마법 공격을 역시 가볍게 피하거나 쳐내며 스카가 공터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가장 화려한 액션을 취하는 엠버트와 나무 뒤에서 얼굴만 내민 룬, 그리고 멍하니 주위를 살피는 마이를 하나씩 확인하듯 쳐다본 후 외쳤다.
"완전히 포위됐다."
'제길, 역시...'
룬은 자신의 설마가 맞았음을 알고는 왠지 더더욱 짜증성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스카의 말에 엠버트가 급히 되묻는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지?"
"한 쪽을 뚫어야지! 포위망이 더 두터워지기 전에! 그건 그렇고 누구야? 조용히 조금씩 죄어오던 저것들을 자극한 게!"
엠버트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칼을 휘두르게 유도한 룬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짐짓 못 들은 체 하며 스카를 향해 외쳤다.
"그래서 어느 쪽?"
"어디든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스카의 그 말은 포위망에 특별히 약한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룬은 어처구니없음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후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스카와 엠버트를 바라보았다. 룬은 불만스러움에 이제는 짜증이 턱밑까지 차 오르는 것을 느꼈고 결국엔 내내 속에서 갈등하던 무언가가 툭 끊어지며 한꺼번에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가 갑자기 스카들이 달려오는 쪽으로 튀어나갔다. 달려오던 둘은 갑작스런 룬의 행동에 움찔 했고 마이도 깜짝 놀라 외쳤다.
"야! 너, 기껏 이쪽으로 정했더니...."
"룬? 왜 그래요?"
룬은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는 일행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공터 중앙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방에서 서서히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이가 시커먼 그림자를 어른이며 사방에서 나타난 괴물들을 보고는 낮은 비명을 질렀고, 스카는 그 모습에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래. 어차피 뚫고 나가기엔 늦었어. 한쪽을 뚫는 동안 전부 몰려들어 다시 포위될 테니... 그렇다면 숲보다는 공터가 대응하기 쉽겠지."
그렇게 말하며 스카도 다시 공터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그의 말에 동의한 듯 엠버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았다. 마이는 모두가 다시 공터 쪽으로 되돌아가자 자신도 엉거주춤 둘을 따르려다가 엠버트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안아들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엠버트는 아무 말 없이 스카 뒤를 따랐고 고맙게도 스카는 엠버트와 마이 쪽으로 날아오는 화살들까지 쳐내 주었다.
괴물들은 사방에서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룬은 뭘 하려는지 엄청나게 짜증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괴물들을 노려보더니 엠버트와 함께 마이가 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으앗~ 공주님!]
그가 막 엠버트에게서 내려서는 마이에게 얼른 다가왔다.
"룬? 왜요?"
[매직 디펜스는 3토르드 이상 움직이면 해제되는 공간제약 마법이에요.]
그는 다시 주문을 외운 후 안심했다는 듯이 그대로 마이를 감싸며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움직일 때는 마법 공격이 불가능한 모양인지 마법 공격은 멈춘 채 서서히 그들을 둘러싸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까 와 동일한 회색거인 괴물들이었는데 전과는 다르게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나 몽둥이 등 허접하긴 해도 흉기를 들고 있었고 그 거대한 몸이 약간 구부정한 모습은 달빛아래 더욱 크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괴물들은 그 사이에 나름대로 준비를 한 모양이다.
그들은 길고 검은 그림자를 일렁이며 꽤 체계적인 대형으로 빈틈없이 죄어오고 있었고 긴장 속에 괴물들을 바라보는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심각하고 암담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들의 울퉁불퉁한 피부는 선명한 음양대비에 따라 더욱 거칠어 보였고 회색 몸빛도 노란 달빛에 괴괴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조금은 불안한 걸음걸이와 납작한 머리, 그 속에서도 작고 까만 눈동자가 언뜻언뜻 빛을 내곤 하면서도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씁니다. 기껏 생각난 줄거리 빼먹을까봐 대충 마구 써 내리죠.
그리고 몇번의 수정을 차근차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죠.
그런데 이게 거의 안 되고 요즘은 그냥 올려 버립니다.
물론 엉망진창이겠지만 절대 안 보이죠.
그래놓고 나중에 허걱, 웁스, 후끼약~ 거리면서 고치겠죠, 아마도.
게다가 요즘엔 노느라 더 안 쓰고 있습니다.... 아햏햏~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