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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10-17 빈들에서 2007. 6. 3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틈逑構煮?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한 경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항복하고 병도 고쳐지더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이것이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동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처음부터 자세하게 살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핀 결과 나사렛 예수가 행한 모든 일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까지가 누가복음이고 그 이후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 한 내용이 사도행전입니다.
신학자들의 최대의 숙제가 무엇인가 하면 평범한 한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던 한 사람이, 갑자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온갖 논증과 추측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이 복음서를 보면서 무엇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까?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수많은 박사들도 믿지를 못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의 초점이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면,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자체도 그러합니다. 군중들이 놀랍니다. 그 당시의 통치자 헤롯이 놀랍니다. 함께 따라다니는 제자들이 역시 놀랍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바람과 풍랑을 꾸짖으매 잠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고 부처고 간에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까?
10절을 봅니다.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예수님께 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들을 데리시고 따로 뱃새다라는 곳으로 가십니다. 왜 따로 가셨을까요? 그리고 뱃새다라는 지역으로 가셨지만 마을로 가신 것도 아니고 빈들로 가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이 놀라운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개척하고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자꾸만 무리들과 분리를 시킵니다. 제자들을 빈들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빈들에조차 사람들이 알고 따라왔습니다. 사람들이 따라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기적을 행하니 그들을 따라온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려고 온 것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구약의 기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기적들이 수 백 년 동안 나타나지도 않았고 선지자도 없었는데 이제 드디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어디서 임하였습니까?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왜 빈들입니까? 이스라엘을 새롭게 출발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출애굽 하였을 때에 광야를 거쳐서 약속에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빈들이란 아무것도 없는 광야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 위하여 왔습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소경이 보고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대답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고 하십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한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선지자를 보려고 갔느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옳다고 하시면서 선지자 보다 더 나은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소개한 광야의 외치는 소리요 주의 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시작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빈들에서 사역이 시작이 됩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려 빈들에 가십니다. 빈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십니다.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는데 마귀가 와서 유혹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빈들이니 먹을 것이 없습니다. 늘려있는 것이 돌이니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이후의 유혹들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종교적인 기적과 세상의 영광을 준다는 유혹입니다. 다 물리 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능력과 권세를 받아서 기적을 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들떴겠습니까? 그렇게나 오랫동안 기다린 메시아가 왔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군중들이 이들을 따라 나왔는데 예수님은 이 모두를 빈들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라온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영접하셨습니다. 빈들에서 다른 곳으로 피하여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가장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무엇을 전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빈들에서 이야기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도시의 화려함입니다. 수련회 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남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해남으로 나오지만 해남의 인구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남에서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광주로 간다는 것입니다. 광주에서 능력이 되는 사람은 또 서울로 간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외국도 가겠지요!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예수님께서 빈들에 세우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 세우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시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해는 저물어가고 저녁때는 다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는 빈들입니다. 제자들이 걱정이 됩니다. 그들에게는 가진 음식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께 건의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보내서 두루 마을과 촌으로 보내어 먹을 것을 얻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을 무슨 수로 먹인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조금 전까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로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친 경험이 있는 자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직도 파악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은 계속 빈들로 밀어붙이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 복음에서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부활의 사건이 다 기록되었는데 그 외에 사 복음에서 다 기록된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뿐입니다.
다른 복음에서에서 보면 빌립이 재빨리 계산을 해봅니다.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겠다는 것입니다. 성인 하루 품삯이 일 데나리온이니 이백일을 일해야 되는 돈입니다. 성인 남자만 오 천 명이나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과 여자들을 포함하면 만 명도 넘을 군중입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먹을 주라고 하니 이보다 더 아득한 빈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빈들을 경험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광야를 경험하는 것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 서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빈들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지금 사방이 황량한 빈 들판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총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무른 불편이 없고 오히려 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퇴근해서 저녁에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것은 싫다는 것입니다. 그 집이 지금 빈들입니다. 각자가 경험하는 빈들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여기서 제자들의 답변이 나옵니다. 우리가 구한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뿐입니다. 이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더 절망스러운 빈들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어린이의 도시락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원어로 따져서 물고기가 상품가치가 없어서 버려지는 그런 것으로 마련된 어린 아이아이의 도시락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 뻥튀기 하듯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성전을 건축하자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도가 나서 다른 곳에 넘어간 교회당 건물이 창원에도 몇 개가 됩니다.
이 어린아이가 도시락을 바친 것에 대하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어린아이가 왜 도시락을 내어놓았을까요? 제자들이 누가 먹을 것이 없느냐고 찾아 다녔겠지요! 그러니 어린애라서 멋모르고 내어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있으면서도 없는 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어린아이가 도시락 내어놓는 것을 보고 어른들이 양심의 가책이 되어 자기 먹을 것을 내어놓았기에 먹고 남았다고 합니다. 상상은 자유입니다만 이 기적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문제도 기도하면 해결하여 주십니다. 간절히 기도해서 우리나라 부자나라 되고 우리교회 부자교회 되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자는 기도를 하는 것이 오병이어의 내용입니까? 그런 기도는 있는 것을 더 있게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내용이 아닙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신령한 것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늘에 모든 신령한 보화들이 다 담겨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기적의 의미와 뜻을 증거 한 요한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합니다. 왜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이후에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였습니까? 구약에서도 양식이 늘어나는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흉년이 지나기 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보리떡 20개로 백 명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모든 기적들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제 그 어떤 선지자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15절을 봅니다. 예수님이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렇게 임금 삼으려는 자들을 피하여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기적의 바탕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빈들이란 어디까지 가야하는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부르짖음에도 아무른 도움도 없는 처절하게 버림받은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군중들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군중을 따돌리시기 위하여 제자들은 저물 때에 배타고 건너가게 하십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이 호수를 돌아서 찾아옵니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가 나를 따라 온 것을 먹고 배불러서 따라 온 것이지 표적을 보고서 따라 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여주실 표적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표적을 요구하였을 때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표적은 십자가의 표적입니다. 그 나머지의 표적은 십자가로 가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차원입니다.
그 무리들을 보시고 너희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합니다. 그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위하여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까? 경제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 종교적인 기적을 베풀어주고, 세상의 영광을 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려서 자기 백성에서 영생을 주시는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빈들도 못되는 곳입니다. 골고다 해골의 언덕입니다. 고개를 도리질 치고 침 뱉고 돌아설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빈들의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믿고 의지하였던 것들이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주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굽은 갈대지팡이라라서 의지하는 자들의 어깨를 찌르게 됩니다. 그를 의지하다가 갈대가 부러져서 허리를 상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로 내보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세상의 자리에서 불러내셔서 빈들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짜 우리게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나 열심히 사십니까? 결국에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둘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성령을 위하여 심을 육체가 없기에 오늘도 주님은 자기 백성을 빈들로 몰아세우시는 것입니다.
성도를 나그네라고 합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날마다 빈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빈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