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
요한복음 4장 21-24절 /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과 예배의 전통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배 :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1)하나님께 예배할 수 특정의 장소가 있어야만 하고 (2)그 특정한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특정의 건물인 성전이 있어야만 하고 (3)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의식으로 희생제사를 바쳐야 하고 (4)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의식의 희생제사를 집례 할 제사장이 필요했는데 (5)이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시행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예배할 유일한 장소였으며, 그곳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성전에서 제사장이 행하는 희생제사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의식(儀式)이었습니다.
성전의 변천 : 그런데 국가의 분열과 멸망의 과정을 겪는 이스라엘 왕국 역사의 변천에 의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와 건물이 처음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말씀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목적과 편리주의에 의해서 예루살렘 외에 단과 벧엘이 추가되었고, 후에는 그리심산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배의 전통 : 그러나 구약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예수께서도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라고 말한 바인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인대로 조상 대대로 하나님께 예배해 왔던 전통을 인정하셨습니다.
성전 예배의 목적 : 그러니 하나님께 예배할 장소와 건물이 한 곳이든 그 이상이든지는 시시비비를 따져 잘잘못을 가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게 하시고 율법과 제사장직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외의 또 다른 곳인 단이든 벧엘이든 그리심산에서이든 그 어떤 곳에서든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는 것에서 하나님의 백성 됨에 있어야 합니다.
사마리아인의 예배와 유대인의 예배에서 보게 되는 다른 점
유대인도 사마리아인도 모두 그들의 조상을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여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각각의 예배는 같은 예배에 있어 오지 않았습니다. 예배에 서로 차이가 나는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예배를“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예배 : 사마리아인도 하나님께 예배하여왔지만 유대인이 하나님께 예배하여 온 것과는 달랐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우상 숭배에 있는 이방종교의 신앙으로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한 백성이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오경의 율법과 함께 선지자가 예언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같이 받은 자들이지만 여기에서 약속으로 주신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를 받음에 있는 믿음에서 오직 여호와이신 하나님만을 섬김에 있는 예배에 있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있으므로 우상 숭배 신앙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으로 가져나갔습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 신앙이 혼재된 예배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가 아닌 헛된 예배였습니다.
유대인의 예배 : 그러나 유대인은 언약의 자손에 의해 영원한 구원을 이루실 것의 약속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예배하여 왔습니다. 그런 그들은 메시야를 소망하여 그 때의 기다림 속에서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임하였으므로 소망한 메시야를 맞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사의식에 의한 예배에서 더 나은 영과 진리에 의한 참된 예배로 새롭게 됨
메시야가 오심으로 그 메시야를 계시해 주시기 위해서 존재했던 구약시대에서의 희생제사에 의한 의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어 오게 한 방식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됨으로 폐지가 되고, 더 나은 새로운 방식에 의해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영과 진리로’하나님을 예배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감동하시는 바에 따라 예배하여야 할 것인데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사에서 하나님이 계시해 오신 진리에 의해서 예배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배를 참된 예배로 규정하시며, 이렇게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참된 예배의 요소는 단 두 가지인‘영과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할 특정의 장소, 건물, 형상, 의식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5:5-8에서 말한 바인 물과 피와 성령이 증거해 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분의 진리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이 되는 것에서입니다. 그러하다면 사마리아인들이 예배하고 기도하던 그리심산이 아니어도 되고 유대인들이 예배하고 기도하던 예루살렘이 아닌 어떤 장소에서도 되며, 그곳의 건물이 가정집이든 다락방이든 다수가 회집할 수 있는 건물이든 또는 건물이 없이 마당에서도 들에서도 산에서도 되며, 예배 의식을 질서 있는 순서에 의해서 행하든 전혀 예배 의식의 순서 없이 다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있든 구애받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주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의 연합을 이루고서 진리를 알아감에 있어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충만함에 있음은 마음에 큰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사니, 이는 곧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에 있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참된 예배에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그 교회로 하나 됨에 있는 연합체를 기독교라고 불립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연합에 의해 그리스도의 교회로 지어짐에 있음
그리스도인은 매주일에 갖는 공예배의 회집을 통해서‘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이룸에 있는 모습을 세상에 나타냅니다. 매주일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진 온전한 교회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매주일에 예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매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를 다닌다는 표현의 말을 쓰는데, 이는 주일마다 산속에 있는 교회나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교회를 찾아다닌다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매번 어떻게 의미 있는 날로 가져가는가 하면, 한 성령으로 한 믿음에 의해서 한 분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교회 된 자임을 예배를 통해서 그 정체를 세상에 나타냄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교회됨은 다름 아닌 예배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이 예배는‘영과 진리로’합니다.“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영이신데, 사마리아인이 행하여 왔던 산당에서 우상 숭배하듯이 하나님께 예배해서야 되겠는지요.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 부음이 되신 성령의 충만한 권능에 의해서 하나님의 복음인 그리스도의 진리가 주는 기쁨에 함께 함이 있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앎으로 믿음으로 하나 됨에 더욱 굳건히 함께 함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는 예배의 요소는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는 하나님 말씀의 전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우리 믿음의 주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께로부터 받은 말씀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전함으로 전함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1)그리스도께 순전한 믿음에 있는 교회로 하나 됨에 있으며 (2)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장성하니 (3)잘못된 복음, 또는 이단 사설로부터 성도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교회는 이를 예배에서의 설교를 통해서 하며, 성경공부에 의한 가르침을 통해서 합니다.
환각의 뽕 맞은 자와 진리의 말씀으로 은혜 입은 자
지난 주간에 한 분의 글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뽕 맞은 자와 은혜 입은 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의 뽕은 환각 성분의 마약 대신에 쓰이는 속어(은어)입니다. 가스 흡입을 하고 대마초를 피우고 히로뽕 주사를 맞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 정신이 몽롱하며 기분 좋은 환각 상태는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정상에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하며, 정신이 혼미하여 제정신으로 있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교회를 다니는 신앙을 그렇게 뽕 맞은 듯이 하는 것이 우리네 주변 이곳저곳의 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보는 모습입니다. 그 신앙에는 교회가 주께로부터 받은 복음이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헌금하며 기도하고 찬송을 즐겨 부르며 봉사도 하고 선한 일도 하는데 말이죠. 그것을 왜 하는지요! 교회가 설교란 주사기에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넣은 것이 아니라 뽕이란 혼미케 하는 말들을 넣어서 중독 시키는 악한 독성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뽕을 또 안 맞으면 사람이 우울해지며 거칠고 난폭해집니다. 이 뽕을 맞아야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 뽕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것일 뿐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닌 탐욕이 가득 찬 사악한 자의 입에서 나온 사람을 홀리는 거짓된 말인데도 뽕이 주입된 거짓말의 설교를 구합니다. 뽕을 탄 설교를 하는 거짓 목사들이 왜 판을 치겠는지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보는 바인 뽕을 탄 설교를 원하는 거짓 신자들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으로 은혜 받은 자는 환각 성분의 뽕을 탄 있는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뽕 성분의 말씀을 찾을 마음을 품지도 생각을 갖지도 않으며 뽕 맞은 기분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들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다가오신 주를 알기 때문에 아는 지식을 부정할 수가 없으며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고 하며, 알면 아는 것이 있으니 아는 것에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영과 진리로’예배하게 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 충만하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시지, 뽕이란 다른 복음으로 예배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교회가 매주일 갖는 공예배에서 순전한 전파의 설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공허한 이야기거리의 말로 하지 않고 허탄한 신화나 우스갯스러운 재밌는 말로 하지 않고 세상사 만사가 형통하는 비결의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시며, 이 의를 오직 믿음으로 얻음을, 오직 의인은 이 믿음으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살 것임을 알려주시는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