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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인간들은 키가 작았을것이라는 시각이 많이 퍼져있다.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속히 들어나고 있다. 과거 인간의 키에 대한 연구는 주로 18세기 부터 소급할 수 있는 징병검사 기록에 의존했다. 17~18세기 유럽의 평균신장은 징병검사에 의하면 165cm 안밖의 작은 키였고 따라서 17~18세기의 서유럽인들보다 가난했었을 그 이전의 인간들은 이보다 더 작았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러한 관념이 과거 유골의 키를 장골(long bone)의 길이만으로도 거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으로 유럽에서는 서기 0~17세기로부터 출토된 9500여구에 달하는 성인유골의 키를 측정했다. 그 결과로 17세기 이전의 유럽인의 평균신장은 지역, 시기에 따라 대체적으로 168~173cm에 이르는 작지 않은 키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산업혁명과 의학혁명으로 평균신장이 급신장한 20세기 초, 중반의 평균신장과 맞먹는 키이다.
인간의 키는 유전적인 요소보다는 환경적인 요소에 결정되는 바가 크다. 구체적으로 성장기의 영양상태와 건강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즉 성인의 최종키는 성장기에 섭취한 영양분 특히 단백질의 양에 좌우지 된다. 반면에 성장기의 질병은 몸에서 많은 영양소를 뺏어가기 떄문에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성인의 키를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갔다.
성인의 키= 영양섭취 - 질병 (에 의한 영양감소)
현대 특히 20세기 초반 이후의 평균키의 급성장은 영양상태의 급향상보다는 성장을 방해하는 질병이 의학의 발달로 대부분 사라진 것에 의한 것이 크다. 어쨋거나 전근대 사회에서는 질병예방의 수준이 세계 어느곳이나 열악했기 때문에 전근대 사회의 평균키는 당대의 인간이 어느정도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느냐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인간들의 생활수준이 어느정도였냐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러면 전근대사회의 평균키가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1. 고대와 암흑시대 유럽인의 평균키
고대인의 평균키는 대체적으로 남자는 170cm 안밖, 여자는 158cm 안밖의 키를 보인다. 유럽 고대인의 키에 대한 연구는 그리스와 서유럽에서 출토된 유골의 연구가 많이 연구된 편이다. 고대 그리스 지역의 평균신장은 유골의 측정값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신장 (단위 cm, Reden, 2007) 남자 여자 청동기 시대 미케네 171.5 159.1 레르나(Lerna) 166.3 154.2 초기 철기시대 피드나(Pydna) 168.8 152.8 고전시대 그리스 전체 169.8 156.3 아테네 171.3 159.2 아칸토스 169.2 157.1 메타폰툼 166.6 157.5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전체 171.8 156.6 아테네 171.1 155.5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테네인들이 타 그리스 지역보다 큰 신장인 171cm 안밖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아테네의 번영이 당대인의 키에 영향을 미친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는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던 지중해연안의 주민 밑 서유럽인들은 상대적으로 평균키가 작았고, 로마바깥에 있었던 게르만 족등의 이른바 야만인들이 살던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균키가 큰 편이다. 서기 1~10 세기 의 유럽인들의 키를 지역별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 표에서 서부, 중부유럽은 독일, 프랑스, 벨기에 지역이고 지중해 연안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남유럽, 북, 동부유럽은 그 나머지 지역이다. 이중 북부, 동부유럽이 로마제국 영향권 바깥에 있던 지역으로 로마제국 치하에 있던 서유럽, 지중해연안 보다 큰 신장을 보여준다.
유럽인들의 평균키 (1~10세기, 단위 cm) (Kopeke, 2005)
이렇게 로마제국 치하의 주민들이 더 낳은 생활환경에도 불구하고 동, 북유럽인에 비해 키가 작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로마제국 내의 높은 인구밀도와 식생활의 차이 때문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높은 인구밀도 특히 도시화 비율이 높은 지역이 평균키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도시에는 사람이 밀집되 있어 위생환경이 열악하고, 도시의 특성상 소에서 나오는 치즈, 우유 등의 유제품을 접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치즈, 우유등은 도시로의 수송이 어렵다.) 전자는 질병을 유래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후자는 도시인들의 단백질 섭취량을 줄여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반면에 비로마화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아 1인당 경작면적 밑 목초지 면적이 로마보다 넓고, 특히 높은 목초지 비율은 소, 돼지들의 사육비율을 높일 수 있어 성장에 필수요소인 단백질의 섭취에 유리하다. 또한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구조는 비로마지역의 평균신장을 높이는 또 다른 요소였다.
또한 로마인들의 곡물위주의 식단도 로마인의 평균키를 낮추는데 한 몫을 했다. 현대 독일 지역에서 발굴된 유골에 따르면 로마인과 게르만족의 평균신장의 차이는 4cm에 육박하는데 이 평균신장에 큰 영향을 미친것이 바로 식단이다. 게르만족을 비롯한 북, 동유럽인들은 고기 위주의 식단을 먹었고, 로마인들은 곡류의 의존률이 높았다. 실제로 로마화 지역보다 비로마화지역에서 나오는 소의 뼈가 월등히 많다는 것은 이른바 야만인들이 로마인보다 월등히 많은 육류를 섭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직전인 5~6세기 에는 유럽인의 평균키가 172cm (로마제국 시절에는 약 169cm) 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는 로마제국의 급격한 붕괴와 이어 유럽을 강타한 전염병에 의한 대규모 인구감소 때문으로 보인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도시들이 붕괴되거나 축소되었고, 사람들 대부분은 영양섭취에 유리한 농촌지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급격한 인구감소로 남는 땅에 소, 돼지 등 단백질 섭취에 필수적인 가축들을 대거 사육하게 되면서 오히려 평균신장은 급격한 상승을 이루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한 14세기에도 다시반복 되는데 유럽의 인구가 3분의 1이상 사라진 14세기 이후의 유럽인의 평균신장은 흑사병 발생 이전에 비해서 2cm 가량 상승했다. (평균 169에서 171cm 로 상승)
그러나 정치적인 혼란과 전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반인들의 삶이 계속어려워진 암흑시대에는 꾸준히 평균신장이 하락했다. 서,중유럽인의 평균신장은 171cm에서 169cm로 동,북유럽은 173cm 에서 170cm로 하락했다.
2. 고중세시대 (10~15세기)
암흑시대가 지나가고 봉건제로 안정을 찾은 고중세기는 유럽인들이 산업혁명 이전에서는 가장 키가 컸던 시기 중에 하나이다. 대부분 지역에서의 평균키는 170cm 이상이었고, 북유럽인은 특히 173.4cm에 달하는 큰 키를 자랑했다.
이 시기의 대략적인 평균키를 알 수 있는 연구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고고학 연구가 활발한 영국지역에서의 유골조사 결과이다. 중세영국인의 유골을 평균치를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기 850~1066년: 남자 평균키 172.5cm 서기 1200-1500년: 남자 평균키 171cm, 여자 평균키 158cm (Caidan, 2003)
또한 Steckel교수가 정리한 중세 북유럽의 신장도 마찬가지로 큰 편이다. 특히 바이킹의 전성기라 불리는 9~11세기는 북유럽인의 키는 173.4cm로 거의 현대인에 육박하는 크기이다.
북유럽인 평균신장 (9~14세기) 연대 장소 평균신장(cm)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9~11세기 북유럽 173.4 12~14세기 북유럽 171.5 (Steckel, 2004)
10~15세기의 유럽인들의 신장이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경작지의 확대 및 식량생산 증가 (12~13세기), 안정된 정치상황, 농업기술의 발달 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기의 상류층과 일반인의 신장차가 크지 않다는 것으로 보아 근대에 비해 빈부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도 중세유럽인들의 큰 키를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기 직전(14세기 초반)에는 늘어난 인구와 부족해진 경작지, 전쟁의 증가 등으로 유럽인의 키가 다시 169cm 안밖까지 하락한다.
3. 근대
근대유럽인의 신장은 전반적인 하락세라고 볼 수 있다. 흑사병의 여파로 인구밀도가 급격하게 줄었던 15세기 전후를 제외한다면 유럽인의 키는 계속 하강곡선을 그린다. 특히 30년 전쟁의 여파가 유럽을 강타했던 17세기는 유럽역사상 유럽인들의 신장이 가장 작았던 시기이다. (일예로 프랑스인의 키는 17세기에 최저 161cm 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8세기 들어서 유럽인의 키는 17세기보다는 회복세를 보이나 여전히 고대나 중세에 비하면 작은 키 였다.
18세기의 유럽 각국의 평균신장은,
18세기 유럽인의 평균신장, (단위 cm, Komlos, 2003)
로 대체적으로 164~169cm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상류층과 하류층의 키 편차는 어느정도였는가?
빈부격차에 따른 신장의 차이를 알려면 일단 상류층이 어느정도의 키였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로마시대의 무덤은 정확히 상류층의 무덤이 어느것이었는지 구분하기 힘들고 남아있는 상류층의 무덤들도 그 숫자가 일반화 시키기에는 부족한 편이다.
중세유럽의 경우는 네덜란드에서 조사한 성당의 유골의 키로 당대 귀족의 평균키를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울체렛 성당에서는 사회유력 인사들만이 성당에 묻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당에서 나온 서기 1000~1500년 경의 유골의 평균키는 약 174cm 이다. 이에 비춰 생각한다면 당대 귀족의 키가 약 174cm 정도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치는 1980년 대 영국인의 평균키와 거의 동일한 수치이다.)
또한 중세유럽의 귀족들의 키가 현대인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는 것은 중세 영국 국왕의 키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영양과 의료해택을 받을 수 있었던 중세영국의 국왕의 키는 현재까지 조사가 된 바에 따르면,
중세영국왕의 키 (Caidan, 200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리차드 1세 (Richard I): 183cm 존 (John, 1199-1216): 166cm 헨리 3세 (Henry III, 1216-1272): 175cm 에드워드 1세 (Edward I, 1272-1307): 188cm 에드워드 4세 (Edward IV, 1461-83): 191cm 헨리 6세 (Henry VI, 1422-71): 177cm 헨리 8세(Henry VIII): 188cm
로 키가 작기로 유명했던 존 왕을 제외하면 중세영국의 국왕들은 최소 175cm 이상 그리고 180cm 를 넘은 국왕도 드물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어쨋거나 중세귀족의 평균키를 174cm 로 보면, 당대인의 키가 약 171cm 안밖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상류층과 일반인의 키 차이는 약 3cm 정도 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유럽의 상류층 키는 18세기 프랑스의 징병검사 기록으로 알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징병검사 기록에 따르면 귀족이 대부분이었던 장교층의 평균키는 174.6cm 에 달한다. 당대의 의료기술이 현대와는 비교도 안되게 열악했던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귀족층은 현대인보다도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프랑스인은 대체적으로 166cm 안밖이었음으로 상류층과 하류층의 키 차이는 무려 8cm 에 이른다.
중세에 약 3cm 정도였던 상하류층의 키 차이가 근대에 들어서 8cm 로 증가한 것은 근대사회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요약 1. 근대사회 이전 유럽인의 평균신장은 남성을 기준으로 약 168~172cm 정도였다. 2. 전근대 유럽에서 평균신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는 인구밀도 이다. (인구밀도가 낮으면 키 상승, 높으면 키 하락) 3. 고대, 중세는 비교적 양호한 키를 유지하던 유럽인들이 근대 들어와서 작아졌다. 4 . 중세, 근대의 상류층의 키는 174cm 안밖으로 일정한 키를 유지했으나 극심해진 빈부격차로 상하류층간의 키 차이는 3cm 에서 8cm 로 증가했다.
참고문헌: Caidan Pentathlon, Felinah Memo Hazara Khan-ad-Din., 2003. Old Age, Height, and Nutrition: Common Misconceptions about medieval England. Koepke, Nikola and Joerg Baten., 2005. The Biological Standard of Living in Europe during the Last Two Millennia. European Review of Economic History 9(1):61-95. Komlos, John., 2003. An anthropometric history of early-modern France. European Review of Economic History 7(1): 159-189. Morgan, Stephen L., 2004. Economic growth and biological standard of living in China, 1880-1930. Economics and Human Biology 2(2): 197-218. Steckel, Richard H., 2004. "New Light on Dark Ages" The Remarkably tall stature of Northern European men during the Medieval Era. Social Science History 28(2):211-219. Reden, Sitta Von. "Classical Greece: Consumption" In Walter Scheidel, Ian Morris, and Richard Saller(eds.), The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the Greco Roman Worl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p. 385-406. Richard H. Steckel. "Health and Nutrition in the Pre Industrial Era: Insights from a Millennium of Average Heights in Northern Europe." In Robert C. Allen, Tommy Bengstsson and Martin Dribe (eds.), Living Standards in the Past: New Perspectives on Well-Being in Asia and Europ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p. 227-53. |
첫댓글 오 개념글입니다. 확실히 전근대 사회에서 집약적 농경화와 이로인한 인구증가는 오히려 개인의 영양 공급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향이 있죠. 오히려 자연경제에 크게 의존한 중세 전기나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 감소한 중세 후기가 영양의 균형과 단백질 공급의 증대에 긍정적이었습니다. 흑사병 이후 15세기의 고기소비량은 매우 높아서, 독일 일부 지역은 연평균 100킬로에 달했지만 인구의 회복으로 인해 목초지의 비중이 낮아져 점차 고기 소비량도 감소,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 초반엔 연평균 17킬로그램으로 낮아집니다. 영국은 그나마 농업 경영의 자본화로 나은 사정이었기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규모 비농업 인구부양이 가능했지
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못했죠.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원인중 아주 큰 것이 프랑스 농업의 영세성이었습니다. 분익 소작제가 기본인 프랑스는 소농가 경영이 지배적이라 생산성 증대에 한계가 있었지만 인구는 계속 늘어 결국 멜서스적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죠. 이게 세기말의 경제 혼란과 프랑스의 재정 악화와 연결, 폭발한 겁니다.
참고로 초기 농경민과 수렵민의 뼈를 비교하면 농경민의 영양상태가 더 않좋음을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농경민은 수로 수렵민을 압도하니 결국 승리). 자연생태계가 풍부한 유럽이나 한반도에서 농경이 먼저 발생하지 않은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 자연경제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는 인구압으로 인해 한계점에 이른 곳(서아시아, 이집트, 북인도) 농업인구가 집중하기 쉬워서 문명이 탄생하기 쉽죠
개념글 감사^^
근데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구는 더 많았죠?
동양을 예로 들어보면 몽골인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유제품과 고기를 먹었지만, 금나라인은 거의 묽은 죽을 먹었다고 합니다. 인구부양력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영양의 양적인 면을 강조해서 질적인 측면은 크게 감소한 것이죠.
인구증가와 영양공급은 반드시 정비례 하지 않습니다. 특히 전근대 사회에선요. 사회적 안정과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에 영향을 주지만, 반대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면 식량 생산이 이를 못따라가서 영양 상태는 낮아지죠. 그리고 인구압이 늘어나면 곡물 생산의 비중이 올라가는데, 한정된 땅에서 곡물 생산의 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목초지나 숲등 단백질 공급원이 줄어들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회 불안정이나 질병 등의 요인으로 인구가 낮게 유지된 중세 초기나 흑사병 이후의 유럽은 그만큼 자연경제, 혹은 목초지에서 생산되는 고기와 유제품을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매 끼니마다 쌀만 먹고 사는 것과, 쌀과 김치, 고기 등등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서 먹는 것은 다르죠. 말마따나 전자의 방법으로 쌀만 찍어내서 각 개개인마다 죽지않고 겨우 살 정도로만 분배해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으니깐요.
'인구가 더 많았기 때문' 에 영양상태가 안좋아지는 겁니다. 그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식량의 양적 측면에 치중되다보니 그런 거죠.
이런 개념글을 생전에 볼 줄이야 ㅠㅠ 평소 평균키에 대해 궁금하던 사항을 통쾌하면서도 과학적으로 밝혀주네요. 아, 추천버튼이 있었더라면..
불쌍한 존..ㅋㅋ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아, 이 글과 관련해서 참고로 키와 유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면요.. 대체로 키의 유전율은 0.9 정도라고 합니다. 즉, 서로 떨어져서 양육된 일란성 쌍둥이가 있을 때, 한 쪽의 키가 190정도라면, 다른쪽도 키의 상관관계가 0.9 정도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상관관계에서 0.3만 넘어도 상관관계가 높다고 하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높은 수치죠.
하지만, 키의 유전율이 0.9 정도라고 해서 인간의 신장은 전적으로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쌍둥이가 같은 시대에 같은 음식문화권에서 비슷한 수준의 영양을 섭취한다는 점을 감안해야죠. 두 쌍둥이 모두 같은 시대에 비슷한 음식문화를 공유하며, 적정한 수준의
영양을 섭취했을 때, 키의 변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역할이 0.9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율이란 개념은 변이에 중점을 둔 개념이란 것이죠. 예를 들어 미국과 한국에 학력 평가를 해서 각자 평균이 70점과 80점이 나오고 표준편차가 각각 2로 나왔을 때, 유전율은 각 국가 학력 평가 편차에 유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역할을 합니다. 각 국가의 평균이 왜 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유전율로는 설명할 수 없죠.
유전율은 집단 내 변이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기에.. 특정 형질의 유전율이 매우 높게 나온다고 그 형질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이 적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체중의 유전율은 0.8에
이른다고 합니다만, 그럼에도 간간히 가뭄이 심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되던 과거와, 고칼로리 음식에 둘러싸인 현대에 있어서 체중의 차이는 현격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유전율은 그 각각의 시대에 그 사회 내 사람들의 체중 변이에 있어서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설명할 뿐이죠.
어쨌거나, 분명히 영양의 부족과 음식 문화는 신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제시대의 한반도와 일본의 평균체격을 조사한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때엔 전지역 통틀어서 함경도 지역의 평균신장이 가장 컸습니다. 그게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를 거치면서 북한 주민들이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키가 자라지 못하게
된 것이죠.
차.. 찬양하라! 그런데 내가 존왕이랑 비슷하다니 ㅠㅠ
오오... 어제 삼국지갤에서 삼국지 시대 사람들의 키에 대한 글을 봤는데 거기서 나온 '삼국지 시대 사람들 키는 150 남짓임'이라는 통념을 깨는 글이군요.
오오오 개념글 감사합니다. 근데 예전부터 유럽인들은 좀 컸군요. 아아 180도 안되는 난 뭐지 ㅠㅠ
간만에 나온 초개념글...
으헝헝헝,,,,고대인보다도 작은내키.......ㅇㅈㄴ
정말 간만에 진국이 납시신듯.! 오오. 좋은 자료다 하악하악.
영길리 왕들이 키가 엄청들 크네요. ㅎㄷㄷ
난 고대에서도 루저였군 ;ㅂ;
제 키가 중세귀족들의 표준키로군요 ㅠㅠ
우와 유익한 글 갑사합니다~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좋은 글 많이 보고 가네요. 중세 유럽인들의 남성 평균키가 160cm 정도라고 듣고 항상 의문을 품어왔었는데 확실히 그렇게 작지는 않았네요.
저기저기 스크랩좀요.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