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내내 일하다가 어제부터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냥 그대로 퍼져서 좀 더 쉬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기념 국보-보물전을 보러가게 되었어요. 평일 낮인데도 신윤복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굽이굽이 줄을 서야 했어요. 대체 '그림(예술)' 뭘까? 묻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산을, 대나무를, 사람을 종이 한 장 위에 그려내기 위해서, 본인이 보고 느낀 그것을 그렇게 그려내기 위해서, 그 한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수고했을까 싶기도 했고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그림 몇 장을 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줄을 서는 상황도 신기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케노-로고스 수업에 참석해서 정혁현 목사님께 들었던 말씀을 필기했어요.
발터 벤야민의 표현을 빌자면, 예술의 역할은 우리를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감각적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인간에게 지금껏 감춰져 왔던 세계, 무한히 감춰져 있던 세계의 본질, 가능성을 열어줄, 어떤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
그룹홈 업무나 피곤에 절지 않은 상태에서 들었던 수업이라, 집중도 꽤 잘 되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수업을 마치고는 필기노트를 밀쳐놓고, 황현산의 책<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특히 좋아했던 에세이 '몽유도원도 관람기'를 꺼내 읽어봤어요.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예술'은 도대체 뭘까, 나는 도대체 왜 자꾸 이 근방을 서성이는 걸까, 묻게 되었거든요. 정돈된 문장으로 나만의 답을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었어요.
이번 케노-로고스는 개인적으로 바쁜 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힘이 많이 들었더랬어요. 그래서 이샛별님이 수고스럽게 정리해주시는 글과 녹음파일에 많이 의존해야 했어요. 감사하다는 몇 글자로는 인사가 다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걸 미루다보니 아예 표현도 제대로 못하게 되어버렸더라고요.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길어져버렸네요. 덕분에 저도 예술에 홀려서 넘어가버린 삶의 또 다른 맛, 같은 것에 대해서 곱씹어보게 되었어요. 일상에 찌든 저에게 더 없이 필요한 공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요. 바쁜 일상에 어쩔 수 없어 이끌려 사는 건 정말 싫거든요. 수고해주신 목사님과 이샛별님,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모든 분들,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저항의 맛(?) 같은 걸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몽유도원도 관람기를 보니 예전에 고흐 그림 보러 사간동에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제가 한참 젊었을 때인데요. 엄청난 인파를 뚫고 전시장으로 진입해 별이 된 고흐의 휘몰아치는 그림을 보며 환희에 찼다가 눈물짓다가 한숨 쉬었다가 뜨거워졌다가 감동과 함께 좌절하며 집에 돌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만화 <플랜더스의 개>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았었어요. 밥 한 끼도, 잠자리도, 공모전도, 그 어느 것도 받여지지 못한 채 그저 성당 안 루벤스의 그림, 그거 하나만 보고 얼어죽은 네로의 이야기가 너무 아팠었어요. 픽션이라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싫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조금씩 들여다볼 엄두를 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정성껏 기록해 주신 케노-로고스 자취 덕에 저도 더 이상 뒹굴지 않고 조금씩 딛고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하다가 멈췄는데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샛별 지금 기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치지 않고 계속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옳소^^
@샛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