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986~1957)】 "풍요로운 지구(The Abundant Earth)
멕시코 디에고 리베라의 가장 복잡하고 성공적인 벽화 사이클 중 하나는 차핑고(Chapingo)의 옛 예수회 예배당에서 그려졌는데, 이 예배당은 국립농업학교(현 자치대학교)의 강당 역할을 했다. 예술가는 사회주의 혁명이 자연의 진화와 병행하는 41개의 프레스코 패널의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두 테마는 예배당의 반대쪽 벽을 따라 서로 거울로 비춰지며, 이미지는 아카데미 예술과 현대식의 몽타주 기법에서 파생된 우화적인 여성상, 기독교와 아즈텍 문화에서 모사된 상징주의를 사용한다.
풍요로운 지구(The Abundant Earth) 는 41개의 프레스코 판넬 중 하나로 씨앗에서 꽃식물까지 자연성장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리베라는 이젤 작품과 그림, 판화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고 명성이 높아지면서 재산을 모았지만 그의 명성은 벽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멕시코의 화가, 오로스코(Orozco)의 내성적인 면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고 시케이로스(Siqueiros)의 정치적 열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멕시코 벽화운동에서 동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계주의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에 더하여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개방성에도 기인하는 엄청난 회화 시설을 가진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순수하게 개인적인 구술이나 정치적 무기로서가 아니라 그 역사적 잠재력의 맥락에서 예술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의 두 동료는 혁명의 인적 희생에 대한 즉각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베라는 그 싸움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며, 갈등이 진정되었을 때에만 멕시코로 돌아왔다. 리베라에게 있어서 부당성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정치와 개인적인 의견에서 동료들처럼 극단적이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적 이상에 평생 동정을 가졌지만, 특히 예술에 반영할 때는 공산당의 전선에 심리적으로 몰입하지 않았다. 이것은 1930년대 초반에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한 그의 착취로 이어졌다. 그러나 리베라의 예술은 르네상스, 학문적, 모더니즘적이고 토착적인 멕시코 기법, 스타일과 모티브에 대한 그의 주목할만한 색다른 융합, 그리고 인간적이고 미학적으로 책임감 있는 사회주의적 우상화의 그것들로부터 나온 그의 창조를 통해 그러한 문제들을 초월한다.
ⓐ 다비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년 ~ 1974년) 멕시코의 화가. 그는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으며, 특히 회화에 대담한 혁명정신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