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에 가면 전주이씨 효령대군 파가 많이 살고있다,
후손들은 족보에 실린 이야기니 만치 익히 알고 있겠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일화가 있어 소개할까한다,
때는 이조 명종때 쯤으로 李 志寬 이라는 선비가 여덟살 나던해에
돌림병(역병)으로 일가가 몰살 당하고 혈족이라곤 유일하게
생존하게 되었다,
촌장은 마을 회의를열어 타성들이 십시일반으로 좀도리 쌀을 거두어
보살피기로 하였다, 한 이년쯤 보살피고 나니 마을사람들도 싫증이
났는지 다시 총회를열어 그럴것이 아니라 과년한 노처녀라도 찾아
짝을지워 가정을 이루워 주자고 결의 하였다,
혼기가 지나도록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않는 빡빡얽은 곰보에다
투박하게 생긴 질쌈 잘하는 노처녀를 묶어 줌으로 해서 양반집 도령을
평생 보살펴 주도록 호의(?)를 배려한 것이었다,
나면서 부터 책이나 읽었지 일이란 해본것이 없으니 당연 들일도
마누라 차지에다 소나기에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떠내려 가도
서방님은 글읽기에만 열심일뿐,농사일이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서방님 이라고 밤일에는 충실 했는지(?)
애들은 구물구물 7남매가 되었으니 마누라 생활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내심 서방님이 이젠 원망 스럽기도 하던차,
당신도 차라리 과거나 한번 보시요?
이선비왈//
과거는 아무나 보나? 격년시로 열리는 과거에 응시하려면
한양갈 여비가 두둑해야 한다오,
어렵사리 엽전 꾸러미를 마련해서 내미는 마누라를 뒤로하고 이선비
한양 과거길에 나서지만 얼마 가지못해 여비는 거덜나고
문전 걸식을 해가며 한양을 향해 가던차,
날은 저물고 하룻밤 묵어갈 양으로 공주 부여 근처의 대갓집 문을
두드리지만, 그집 머슴에 의해 내쳐지고 만다,
자신의 처지와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배는 고프고 백마강 강변을
외롭게 거닐면서 달을 보며 시문을 낭독하고 있는데,
그집 머슴 이랄놈 달려와 마님께서 모셔 오란단다,
불려간 정씨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병풍을 사이에 가린채
마님과의 대작이 이루어 지는데,
마님 께서의 주문이 칠보시를 짓되 댓구를 이으라는 것이었다,
시의 운은 백마강두 황독명 이었다,
百馬江頭 黃犢鳴 이요?
(백마강 강가에 어린 목사리 송아지 울면서 끌려가오 )
老人山下 少年行 이요!
(늙은 큰 산밑에 개나리 봇짐 짊어지고 가는 내꼴이 그와같소이다)
園中桃梨 無笑聲 이요?
(정원에는 이화도화 있건마는 소리없고 향기 없으니 웃음이 없다오)
花中蓮花 芙蓉花 랍니다,
꽃중에서는 연꽃이 아름답지만 부용꽃은 그연꽃속에 숨어 있어서 소리나 향기가 없다지요!)
이쯤해서 이선비의 실력을 확인한 정씨마님은 사연을 실토하는 것이었다,
만석꾼 정씨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며,데릴사위 첫날밤,
마을청년들이 신랑을 다룬다며 횟대에 거꾸로 매달고
어찌나 호되게 다뤘던지,
참다못한 새신랑 일어나서 휘두른 것이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조의법은 보복법 인지라,
관아에 끌려가면서 삼년 삼개월 삼일이 지나도 오지 않거든 재혼해서 가문을 이으라 혔는데 오늘이 그날이며 초저녘 잠결에 보름달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꿈을꾸고 있는데 요란한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었으며,이선비야 말로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니 만치 자신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선비왈//
操糠知妻 는 不何堂 이요
貧賤知交 는 不何較 라했는데내게는 못생긴 아내지만 조강지처가 있으며
스러진 가문을 일으켜 새워야할 소임이 있다며 거절하자,
소실도 좋으니 거두어달라 애원 하지만 끝내 정중히 거절하고야 만다,
결국 정씨녀는 금전과 은전과 말을 내어주며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우시고 소실로 받아 달라며 보내주게 되고,
여비가 두둑해진 이지관 선비 명륜동 객주집에 하숙을 정하고
언제 있을지모를 과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민정 시찰을 위해 평복으로 가장한 명종은 억수같은 소나기를 만나고
모두가 불꺼진 깊은밤에 독야청청 불밝히고 글읽는 소리에 끌리어
방안을 창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준수한 선비 시전을 읽는데 물리를
튼것도 같았다,
노크하고 방안에 들어서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중 은근히
야질을 주는 것이었다,
기생동넬 왔으면 술이나들며 상다리를 두들길 일이지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 준비에 열중 이라니 그대는 위선자가 아닌가?
전후 사정과 정씨녀를 만나서 백마강두 황독명 이라는 시를 짓게된
사연과 여비를 두둑히 받게되어 한양에 일찍 당도한 사연을
소상히 얘길했다,
명종왈//
나같으면 본마누라도 곰보라면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으니
과거고뭐고 그냥 거기서 눌러앉아 살았겠다고 한다,
정색을 한 이선비 명종의 멱살을 틀어잡고 훈계를 하였는데,
아무리 시대가 어수선 하고 도덕이 땅에 떨어 졌으며 황금 만능주의
사상이 판을 친다지만 네같은 위선자가 양반 흉내를 내고 선비연
하는 양은 차마 못봐 주겠다며 내손에 죽어줘야 겠다고 다그친다,
겨우 뿌리치고 도망가면서 내일 별시방이 붙을것이니 응시하라고
귀뜸을 해주는데,
다음날 별시 방이 붙게되고 별시의주제 운이 백마강두 황독명이 아닌가?
당연지사 장원 급제한 이지관 선비 임금께 나아가 은잔에 어사주를 받는데,
그대는 소원을 말하라!
상감마마 저를 충청 어사에 임명해 주시옵소서?
칠보시는 정씨녀가 지은것이니 저는 제실력으로 장원 한것도 아니옵니다,
촌각을 다투어 공주 관아로 가서 정씨녀의 낭군이 아직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면 과실에 의한 치사 이니만치,
정상 참작을 하여 사면복권 해주고 방면해서 정씨 집안의
가문을 잇게 하여주고 싶습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보지 않았도다, 그리하도록 하라,
내 그대와 같은 올곧은 선비를 개혁의 인물로 중용 하리라,
그길로 암행어사가 되어 공주 관아로 달려가서
망나니 사형집행의 칼춤을 멈추게하고 정씨녀의 낭군을 사면 복권하여
방면해서 정씨 가문을 잇게하니,
오늘날 두가문이 축복을받아 자자손손 번창하고 있다는 기록이다,
훗날 이지관은 목민지관 으로써도 이조의 명어사 박문수와 버금 가며,
재상으로 대성해서 명종 시대의 태평 성대를 열었으니,
오늘날 가치관이 혼돈된 우리 사회의 부도덕성 을 보면서 지도층이나
공직자 들의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격물치지하고, 성심정의하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와,
德崇業廣이 乃復己礎라는 명심보감과 논어의 한귀절이 새삼 생각나기에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몇귀절 적어 보았습니다,
기산 에서 봉명제씀
<역시 사자산들꽃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