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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OUNG SOCCER(영싸커) 원문보기 글쓴이: 상파울로
[풋볼리즘] 허정무호와 폴 포츠의 '한 번의 기회' | ||||
축구전문가 박문성 | 기사입력 2008-02-11 13:03 | ||||
얼마 전 TV를 볼 때였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양복과 표정, 부러진 앞니, 뚱뚱한 몸매의 한 사내가 무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무엇을 준비했냐는?” 심사위원단의 심드렁한 질문에 그는 오페라를 부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심사위원단과 관객 모두 못미덥다는 눈빛이었죠. 때문인지 기대보다는 엉뚱한 호기심이 앞섰습니다. ‘뭔가 재미난 게 있을 거야.’ 무모한 도전이려니 하는 상상은 이내 통렬히 부서졌습니다. 그의 아리아가 시작되자 객석은 순간 정적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켜보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을 울리는 무언가에 한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된 폴 포츠(Paul Potts)의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폴 포츠는 영국 아마추어들의 공개 오디션 TV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우승을 차지하며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폴 포츠의 소설 같은 이야기 폴 포츠의 출연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연일 상종가를 쳤고 그가 열창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은 열흘도 안 돼 1000만 명이라는 사상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폴 포츠 열풍의 시작이었습니다. 폴 포츠 신드롬은 비단 그가 악성 종양 수술과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딛고 일어섰다는 인간 승리의 위대함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오페라 가수를 소망했지만 가난 등의 이유로 주위에서 모두 다 이룰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폴 포츠는 꿈을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간절히 바랐고 도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의 미성 깊은 곳에 담긴 진정한 찬란함이었습니다. 꿈은 그렇게 위대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에겐 언젠간 기회가 오는 모양입니다. 폴 포츠의 공식 데뷔앨범 이름이 ‘한 번의 기회(One Chance)’가 된 배경이겠지요.
어색한 표정, 부러진 앞니, 뚱뚱한 몸매의 폴 포츠가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서 심사위원단의 질문을 듣고 있다.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된 폴 포츠의 위대함은 꿈을 향한 멈추지 않는 진실한 노력에 있다. 허정무 감독의 ‘2진’ 발언이 논란을 빚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2월17일~23일 중국 충칭에서 열리는 2008동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하는 한국대표팀 선수단을 지칭한 표현입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김두현 등 해외파들이 빠진 가운데 출전하는 것을 두고 언급한 것이지요. 선수단의 사기 등을 고려할 때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지적입니다. 문맥상 국내파 선수들의 노력과 경쟁을 강조한 표현이었지만 굳이 ‘2진’이라는 수식어를 쓸 필요가 있었냐는 반문이기도 합니다. ‘2진’이라는 표현의 적절성을 떠나 동아시아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보다 강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전 완승은 해외파들의 공이 지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해외파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축구는 출전 선수 전원이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하는 단체 경기입니다. 2010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을 넘어 본선에서 성적을 바라는 한국축구의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내파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허정무 감독 체제의 키워드는 전면적 쇄신입니다. 기존 대표팀의 절반 이상이 새로운 얼굴로 교체됐습니다. 동아시아선수권 출전 엔트리 23명을 살피더라도 이동식 구자철 조용형(이상 제주) 곽태휘 고기구 염동균(이상 전남) 황재원 황지수 박원재(이상 포항) 곽희주(수원) 이종민(울산) 등 11명의 선수들이 A매치 경험이 없거나 2경기 이하입니다.
명지대 시절 무명의 박지성이 그랬듯 어느 선수에게나 처음은 있고 또 낯선 장벽을 넘어선 선수에게는 합당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2008동아시아선수권은 국내파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 ⓒ베스트일레븐 신진 선수들에게 동아시아선수권은 경험을 쌓고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입니다. 중국 북한 일본과 맞붙는 대회기간을 포함해 2주간 손발을 맞출 수 있는 동아시아선수권은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에서는 ‘한 번의 기회(One Chance)’일 수 있습니다. 무명이라는, 국내파라는 이유로 이들의 도전과 꿈을 마름질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어느 선수에게나 처음은 있고 또 낯선 장벽을 넘어선 선수에게는 합당한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명지대 시절 처음 만난 무명의 박지성과 나눴던 꿈에 대한 대화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영국의 알란 커비쉴리 감독이 말했듯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국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대표팀 승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리그에서) 최선을 다하겠는가.”라는 지적처럼 동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하는 국내파들의 선전은 K리그에도 신선한 자극을 줄 것입니다. 폴 포츠의 경우처럼 중요한 것은 꿈 그 자체가 아닌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멈추지 않는 노력입니다. 또 진실하게 기다려주는 주위의 따뜻한 시선일 것입니다. 동아시아선수권에서 보고 싶은 한국축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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