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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사업회는 고려 중기의 경김선조인 문간공(文簡公) 김경손(金慶孫, ?~1251) 명장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하여 지난 11월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현양행사를 가졌습니다.
다음은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김경손 장군 소개내용 전문입니다.
김경손 장군은 평장사 김태서(金台瑞)의 아들로 태어나 성품이 온화하고 관대하며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대담하면서도 지략이 있었다. 1231년(고종18) 정주(靜州 : 現 평안북도 의주군) 분도장군(分道將軍)이 되었을 때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했다. 몽고군이 압록강을 건너 개전(開戰) 40여일 만에 함신진, 용주, 철주 등 요충지를 공략하고 정주성에 이르자 김경손 장군은 결사대 12명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 분전 격퇴하였다.
1231년 9월 몽고의 대병력이 귀주성으로 밀어닥치자 김경손 장군은 기습으로 전열을 교란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결사대와 함께 성 밖으로 나아가 선두에 있던 적장을 쏘아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4~5차례에 걸쳐 적진을 타격하자 몽고군 진영에 혼란이 일어났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성내의 고려군이 일제히 성 밖으로 달려 나와 공격하자 몽고군은 그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후에도 서북지방의 군사적 요충지인 귀주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몽고군은 4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공격해 왔으나 김경손 장군과 고려군은 불굴의 항쟁으로 몽고군의 공략을 분쇄했다. 70세에 가까운 몽고의 한 장수가 “내가 소년시절부터 수십 년 간 전투에 참전했지만 이처럼 맹공을 받고도 무너지지 않은 경우는 본적이 없다”고 감탄했을 만큼 고려군은 용맹했다.
김경손 장군은 몽고군을 물리친 전공으로 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하였으며 1237년(고종24)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로 있을 때는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진압하여 그 공으로 추밀원부사 (樞密院副使)가 되었다. 그러나 1249년, 장군의 명망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꺼린 실권자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로 유배당하였고 2년 후인 1251년, 최항이 정적을 제거할 때 함께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이 모두 통분하고 애석하게 여겼다. |
첫댓글 경김 선조 김경손 명장님의 호국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