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3) 신동 -
최연소 장원급제 후 기세등등 유출
어전회의 휘어잡고 첩까지 얻는데…
훈장님 왈 “
맹자는 모두 일곱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양혜왕·공손추 … 가만있어라.”
“등공문·이루·만장·고자·진심. 이렇게 일곱편으로 돼 있지요.”
훈장님이 말문을 더듬거리자 좔좔 청산유수처럼 읊어버리는 학동은 유출이다.
성은 유씨요, 이름은 출. 유출은 이제 겨우 여섯살이다. 훈장님 얼굴이 한잔 걸친 듯이 불콰해졌다.
유출은 신동(神童)이다. 서당에 유출이 앉아 있으면 훈장님은 실수할세라, 막힐세라 지레 겁을 먹는다. 선비들이 모여 시조를 짓고 고담준론을 펴는 오 초시네 사랑방에서도 유 진사가 유출을 데리고 올까봐 전전긍긍이다.
몇달 전 주자학에 밝은 오 초시가 “
송나라 때에 와서는 신유학이 대세를 이뤄 조희가 이학사상을…” 하자 유출이 오 초시의 말문을 막고 톡 튀어나와
“초시 어른, 조희가 아니고 주희지요. 사서를 중심으로 이학 철학세계를…” 한다.
선비들의 앉은키에 겨우 미치는 여섯살 유출이 송나라 주희의 이학사상을 한치 막힘없이 줄줄 해설해나가자 사랑방을 채운 선비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이후로 유 진사가 유출을 데리고 오면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웃의 박 참봉이 유 진사를 찾아와 유출을 자기 아들의 스승으로 모시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한달에 쌀 세가마를 받고 유출이 세살 위인 아홉살 박만석의 스승이 됐다. 무식한 박 참봉은 아들이 대과급제는 못하더라도 소과에 붙어 초시나 진사가 되는 게 소원이다.
외출을 할 때면 만석은 유출의 호위 무사가 된다. 원래가 돌대가리인 데다가 책만 폈다 하면 잠이 쏟아지는 만석의 학습 진도가 거북이걸음이라 유출의 회초리에 만석의 종아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유출이 응시 자격 나이가 된 열세살 때 눈 감고 소과에 합격하더니 이듬해 최연소 장원급제를 해 임금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사모관대에 어사화를 꽂은 유출이 청실홍실로 치장한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하자 고을 사또가 고갯마루에서 돗자리를 깔고 술상을 차려 기다리고 있었다.
만석은 말잡이가 돼 유출 곁을 지켰다. 유출은 고향에서 열흘간 잔치를 하고 한양으로 가 입궐해 홍문관의 제학이 됐다.
혼처가 쏟아져 들어왔다. 유출은 열다섯살에 장안이 떠들썩하게 혼례식을 올렸다. 기세등등하던 남인, 이 판서의 사위가 된 유출은 세상에 겁날 게 없었다.
대제학도 유출의 학식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출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주역을 통달해 천문지리 음양오행에도 막힘이 없었다.
남인은 정국을 잡고 조정을 쥐락펴락했지만, 학식으로도 서인을 압도하겠다고 어린 유출을 남인의 대표 주자로 내보냈다.
어전회의에서도 서인이 한마디 하면 유출이 말문을 막고 티끌 같은 오류도 끄집어내 침소봉대하고 논리적인 반박과 함께 고사를 예로 들며 묵사발로 만들었다.
팔도강산 탐관오리들이 새벽부터 유출에게 줄을 대려고 대문 옆에서 기다렸다.
만석은 유출 집의 집사로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유출이 코빼기라도 보이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경박한 유출이 첩을 얻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유출의 장인, 이 판서가 병석에 눕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기생의 머리를 얹어줬다.
천하를 호령하던 남인들은 오만해졌다. 남인은 장희빈 옹립파다.
장희빈의 현란한 방중술에 넋이 나갔던 숙종이 더 어리고 새로운 숙빈 최씨에게 빠져들며 장희빈에게 시큰둥해지자 남인들의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유출이 집으로 들어와 저녁밥도 잊은 채 사랑방 다락에 올라가더니 정리를 해 자루 두개를 만들어 나왔다.
그러고선 만석에게 부인을 친정에 데려다주라고 명했다. 만석이 초롱을 들고 길을 나섰다. 마침내 친정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유출의 아내가 만석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만석이 돌아오자 유출이 곡괭이와 삽을 준비해두고 부엌 아궁이 밑을 파도록 명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밤새 구덩이를 파 자루 두개를 묻은 뒤 흙과 재를 덮어 감쪽같이 감추고 나니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우물에서 손을 씻고 오니 쪽마루에 유출이 걸터앉아 호리병을 가운데 두고 술 두잔을 따라놨다. 만석이 마주 앉자 “
수
고했다. 한잔하고 눈 좀 붙이자;고
말했다.
유출이 자신의 술잔을 들고 만석에게 술을 권했다. 그런데 만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
유가야, 술잔을 바꾸자. 독약은 마시기 싫다!”
유출이 ‘
헉’ 놀라더니 “
내가 돌아오면 반을 줄게”
라
고 제안했다.
‘철썩.’ 유출의 뺨을 갈긴 만석이 일갈하길 “
야, 이 자식아. 반은 내가 갖고 반은 네 색시 줄 거다.”
그때 횃불이 너울거리더니 의금부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날이 새자 유출의 아내가 왔다.
만석이 두팔로 허리를 안자 그녀가 만석의 목을 껴안고 기나긴 입맞춤을 했다.
부엌 아궁이 속의 금은보석 두자루를 꺼내 두사람은 몰래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