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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보고 머리를 올렸다가 신랑이 그것을 풀어주면서 첫날밤을 보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 전통의 혼례식입니다. 계례가 독립적으로 시행되었다기보다는 혼례 속에 흡수된 것이죠. 성년식의 의미에서 보자면, 성인이란 ‘혼인을 치렀다’는 뜻이 큽니다. 상투 틀지 않고 쪽 지지 않은 머리는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아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대신 어린 신랑이 어른 노릇하는 경우도 있었죠. 사실 성인의 우리말은 어른입니다. 이 말은 ‘얼우다’ 에서 온 말입니다. ‘얼우다’ 라는 말은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다’, ‘성경험을 하다’ 라는 뜻입니다. 어른은 이것을 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스릴을 느끼며 좋아하는 번지점프의 고장을 찾아가겠습니다. 실제로 번지점프는 이 부족의 성년식에서 유래했습니다. 남태평양 펜타코스트 섬에서는 어른이 되는 소년들의 발목에 나무 넝쿨을 감은 뒤 30m 정도 높이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했습니다. 때로는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담력이 이만저만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주저하거나 울부짖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발이나 손을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운명에는 이치가 있습니다. 이 이치가 없다면 명리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치는 하나이지만 셋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셋은 각각 천지인이라고 합니다.
대추와 밤 받기
폐백은 혼인을 치르고 신부가 시집으로 가서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신부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을 드리고 시부모께 절을 올리는 ‘현구고례(見舅古禮)’라는 혼례 절차를 가리킵니다. 시아버지는 동쪽에 서고 시어머니는 서쪽에 앉습니다. 남좌여우(양인 남자는 왼쪽에, 음인 여자는 오른쪽에, 곧 좌양우음)의 음양이론에 맞춘 것입니다. 신부의 신고식이지만 신랑도 신부와 함께 절을 하고, 신랑은 아버지 쪽으로 가서 섭니다. 이후 신부가 절을 하면서 본격적인 신고식이 시작됩니다.
신부가 드리는 폐백 음식은 대추, 밤, 육포입니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 가지만큼은 공통적입니다. 육포는 시어머니게 드리고, 대추는 시아버지께 드립니다. 밤은 두 분 모두에게 드립니다. 이때 시어머니는 육포를 어루만집니다. 상징적인 표현이지요. ‘너의 모든 허물을 감싸주겠다’는 표시랍니다. 혹은 육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현구고례가 신부의 신고식이라면, 역시 시부모가 신부에게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인사는 손위나 아래나 모두 주고받는 것이니까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하는 인사를 ‘구고지례’라고 합니다. 며느리에게 덕담을 하는 것이지요.
시부모님께 절을 드린 다음, 가까운 시집 식구들을 거쳐 마을의 친척에게 인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절차가 바로 시어머니에게 대추와 밤을 받는 것입니다.
대추와 밤의 상징
대추와 밤은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이면서, 또한 시부모(시어머니)에게 받는 폐백이기도 합니다. 이 두 경우에 각각의 상징이 다릅니다.
먼저 신부가 대추와 밤을 드리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행위입니다. 이 의식은 매운 시집살이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대추는 한자로 조(棗)라고 씁니다. 밤은 율(栗)입니다. 조율은 나중에 제례에도 등장하는 한자말입니다. 그런데 혼(婚)이 혼(昏)이라는 것처럼, 발음이 서로 교환됩니다. 이러면서 의미가 부여됩니다. 조(棗)는 조(早)이고, 율(栗)은 율(慄)입니다.
대추를 드리는 며느리는 ‘일찍 조(早)’를 다짐합니다. ‘아침 일찍 동터오기 전에 일어나서 봉양하겠습니다.’ 밤을 드리면서는 ‘떨릴 율(慄)’을 되새깁니다. ‘늘 두려운 마음이 들게끔 각성하고 해이해지지 않겠습니다.’ 좋게 새기면 시집의 일원이 되어서 며느리의 책임을 다하고, 그로 해서 집안이 번창하게 한 몸 바치겠다는 굳은 결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대단한 각오입니다. 그러나 한편 독한 시집살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처럼 인고의 세월을 예고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시집살이의 설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설움을 알 수 없다지요.
시어머니가 던져주는 대추와 밤은 의미가 다릅니다. 대추는 장수를 뜻하고, 자손의 번창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아들딸 많이 낳아 집안을 풍성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특히 아들을 많이 낳으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밤은 한 송이에 알이 세 개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도 삼형제를 낳고, 삼형제가 모두 삼정승이 되도록 귀하게 키우라는 뜻입니다.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축하는 무언가 저의가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때문입니다.
합근례와 절의 횟수
신랑 신부가 정식으로 술을 나누어 마시는 혼례는 전통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러기를 올리는 전안례가 끝나면 교배례가 있습니다. 교배(交拜)란 절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교배례를 하기 전에 신랑과 신부는 각자 손을 씻습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정화의 의식입니다. 이윽고 신랑과 신부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연지 곤지 어여쁘게 단장한 신부가 절을 두 번 하면 신랑이 답으로 절을 한 번 합니다. 이것을 한 번 더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신부는 네 번 절을 하게 되고, 신랑은 두 번만 합니다. 이때 신랑 신부는 말로만 듣고 상상만 했던 서로의 얼굴을 흘낏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런데 왜 신랑 신부는 절 횟수가 차이가 날까요? 요즘 세상엔 남녀 차별이 일상화된 과거의 관습이라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옛사람들이 생각한 나름의 원리가 있습니다. 신랑 신부를 음양으로 구분하면, 신랑은 양이고 신부는 음입니다. 수(數)를 음양으로 나누면 양수는 홀수이고 음수는 짝수입니다. 양수와 음수는 지금도 쓰고 있는 말입니다.
수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는 달리 좋고 나쁜, 귀하고 천함 등과 같은 가치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수 역시도 이 우주 안에 있는 다른 사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치가 들어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축의금 봉투에 홀수 단위로 돈을 넣는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미신적인 것인지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수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수는 양(量)을 헤아리는 수가 아니라 질(質)을 따지는 수입니다. 양에는 가치가 들어갈 여지가 없지만, 질을 말할 때는 가치가 개입됩니다. 그래서 양이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면, 질은 수학보다는 상징이나 기호를 다루는 법칙과 연결됩니다. 이런 점에 따라, 수는 하나의 상징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절을 한 번하는 것은 홀수인 1이 양에 속하고 남자인 신랑도 양에 속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부의 경우는 두 번 절하는 이유 역시 이런 음양의 원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절하거나 두 번 절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남녀 차별이라는 가치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음과 양이 서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단지 절을 많이 해서 힘들다든지, 많이 하는 쪽이 더 천하고 열등한 존재라든지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치가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옛사람들의 우주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옛 가치는 무시됩니다.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절차나 형식이 거부되더라도, 옛사람들의 우주가 가진 음양의 조화 역시 여자를 핍박하고 남자만을 우위에 놓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만은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기러기가 혼인식의 처음에 등장하는 것은 흔히 알다시피 기러기의 성정을 본받겠다는 다짐입니다. 기러기는 암수가 정답게 살다가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년해로의 약속입니다. 100년은 99년 다음에 오는 양을 나타내는 단위가 아니라, 500년이나 1만 년도 그렇지만, 영원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영원히 변치 않고 함께 늙세!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런 다짐이라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의 어떤 사람이 한국인 친구를 두어서 명절에 친구 집에 함께 갔답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이 친구가 부모님을 보자 큰절을 올리더라는 것입니다. 서양인이 큰절을 보는 것은 이슬람 사람들의 종교의식에서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그 친구나 당연하게 올리는 큰절을 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나봅니다. 나중에 돌아가서 한국을 회상하며, 그는 “한국의 부모들은 신처럼 자식에게 경배를 받는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답니다.
제 가까이 있는 선배 분은 딸을 하나 두었는데, 늘 공손하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누구든 집에 오는 손님에게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배 아래에 두고 읍을 하거라.” 그래서 저도 선배 분 댁에 갔다가 중학생이 된 딸이 공손하게 인사를 해서 한편 반갑기도 하고 무슨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명랑한 중학생이 고개만 끄덕여도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저도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그 선배는 “아버지와 친구가 되는 분에게는 꼭 절을 올리거라” 하고 가르쳤답니다. 어느 날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네덜란드 친구를 집에 초대했는데, 아이가 공손히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더랍니다. 연신 “오우, 오우” 하며 어쩔 줄을 모르더랍니다. 지금 그 친구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학자가 되었는데, 시간이 나면 만리를 건너오는 흉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그 덕에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우리말을 우리나라 사람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딸의 절 속에서 그 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바로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 말입니다.
죄인의 옷
본래 전통식 상복은 굴건제복(屈巾祭服)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나친 허례허식이라고 해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지금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법이 생각하는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풍속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여전히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굴건제복을 착용하는가 마는가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주변에서 굴건제복을 입은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위 아래로 흰색도 아닌 누런 삼베옷을 입고, 머리와 허리에 새끼줄을 감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침울한 얼굴로 느리고 오래 끄는 곡을 합니다. 애고애고~. 왜 이런 모습일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들이 상주가 됩니다. 물론 큰아들이겠지요. 상주는 죄인입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이 평소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포도청에 끌려간 죄인처럼 머리를 풀로 오랏줄에 묶이며 맨발에 가장 천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지금의 삼베는 천연섬유라서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사실 형편없는 옷으로,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옷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촉감이 가장 거칠고 물을 들이거나 치장하지도 않은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는 것입니다.
상주가 걸치는 두루마기의 소매를 보면 희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팔은 옷을 걸쳤는데 한 팔은 일부러 옷 밖으로 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급하게 집을 나갈 때 미처 옷을 다 입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이상한 모양새는 부모님의 상을 당해서 정신이 다 나가 경황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남좌여우의 원칙에 따라 왼쪽 소매를 꿰지 않으면 아버지 상을 당한 것이고, 오른쪽 소매를 꿰지 않으면 어머니 상을 당한 것입니다. 머리와 허리에 차는 새끼줄도 그것은 사실 죄인을 묶을 때의 모습입니다.
옷도 그렇지만 어찌 죄인이 변변한 음식을 목에 넘길 수 있나요? 그래서 실제로 곡기를 금합니다. 하지만 건강을 상할까 웃어른이 권유하면 거친 음식을 잠깐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어진 임금이었던 세종은 이런 예법이 자칫 그릇될까 해서, ‘3일을 굶지만 죽을 먹고, 3일 뒤에는 밥을 먹고, 한 달이 지나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왕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상을 당한 이웃집에 팥죽을 쑤어 갖다주는 풍습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삶은 축제
상여놀이를 보았지만, 이 속에는 사별의 슬픔을 웃음과 신명으로 바꾸어 놓아 산 사람들이 현실의 삶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한 삶의 한 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를 만드는 기술은 이승에서의 죽음을 저승에서의 새로운 태어남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오래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으로 낙천적이고 명랑한 성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품은 진지함을 생각할 줄 모르는 경박함이나 생각이 짧은 소견이 아닙니다. 오히려 슬픔과 기쁨, 삶과 죽음을 하나로 통합시키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통합의 능력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요?
농부들은 곡식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이 자라고 커나가며 사라지는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생명의 순환과 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입니다. 자동차 정비공이 자동차에 대해 전문가인 것처럼, 농부들은 생명에 대한 전문가들입니다. 농부들이 바라본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이 하나로 결합하는 데서 생명력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력은 물과 불입니다. 물과 불은 한자리에 놓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의 타오르는 힘을 물이 제어하지 못하면 불은 단번에 맹렬하게 타오르다 그칠 것입니다. 물의 힘이 불이 온전하게 타오를 수 있도록 조절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의 아래로 내려가는 힘이 불에 의해 제어되지 못하면 그냥 끝없이 곤두박질칠 것입니다. 불은 물을 당겨 위로 오르게 하고, 물은 불을 끄집어내려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물과 불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커다란 순환의 체계를 만듭니다. 정체된 것은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사실에 대한 오랜 관찰 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는 영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승 역시 동토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의 놀라운 힘처럼 저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농경문화는 이런 재생과 부활의 순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삶의 기술로 옮겨놓은 것이 저러한 상여놀이에서 드러난 것이고, 혼례와 상례의 구조가 유사한 것으로 구성되게 한 것입니다.
고스톱을 쳐도 좋은 건가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상갓집은 음식을 내어주고, 함께 밤을 지새우며, 아무리 흉한 일로 죽음을 당했다고 해도 술을 마시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래야 상주와 가족들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고, 마음의 텅 빈 자리가 채워질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있으며,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상갓집에서 고스톱을 치거나 카드를 돌려도 그것이 큰 흉이 되지 않는 것은 상여놀이를 했던 조상들의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마음속에는 이승에서 사라짐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를 저승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갓난아이를 받아든 손 떨리는 감격처럼,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해도 죽었으면 내년 춘삼월쯤 어디에선가 다시 소생하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비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말하지 말기로 하지요. 누구도 보지 못한 저 세상을 눈앞의 사실처럼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요?
죽음을 대하는 새로운 인식
요즘은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이 있고, 대학에도 정식 학과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장의사라는 기존의 직업을 새로운 사회적 변화 속에서 합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의사는 매우 기피되는 직업군이었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비해 낙후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낙후된 문화는 좋지 않은 관행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 분야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의 가장 좋지 않은 측면인 부당한 폭리를 노리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더구나 죽음을 다루는 것인만큼 죽음에 대한 기피와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장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서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리에 눈이 먼 상인들의 부당한 요구에도 상주들은 차마 불효를 저지를 수가 없고 망자를 고이 보내는 경건한 일에 한두 푼 따지는 것이 불경스러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문화를 개선하는 데 장례지도사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대 봉사 혹은 3대 봉사는 무엇인가요?
친
봉사(奉祀)라는 말은 ‘제사를 받든다’는 뜻입니다. 4대에 걸친 조상들의 제사를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지요. 4대는 나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위의 분들입니다. 한자로 쓰면 4대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으로 씁니다. 그런데 한자를 가만히 보면 모두 ‘부모’가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3대는 고조부모를 뺀 증조부모까지를 말합니다.
부모님을 부친, 모친이라고 하고 합해서 양친이라고 하는데, 옛 책에서는 그냥 친(親)이라고 씁니다. 친은 ‘친하다’는 말에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친이 들어간 말에는 친구(親舊)도 있습니다. 친구는 말대로만 보면 ‘친하고 오래된 그 무엇’입니다. 오랫동안 가까이 두어서 이모저모를 다 알고, 내가 살아온 내내 나와 함께한 것입니다. 이것은 꼭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좋습니다. 만년필이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그럴 것이고, 대문 옆에서 잘 자라고 있는 대추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친한 존재가 바로 부모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난 것이 양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탄생 혹은 그 이전이라도 모친의 뱃속에서부터 늘 함께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4대나 3대는 대가족 제도가 상식이었던 시대에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빈다. 결혼을 지금보다는 비교적 일찍 했고 아이도 일찍 나았기 때문에 증조부모까지 함께 사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4대나 3대는 실제로 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가족 간의 정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간대입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유학에서 4대 봉사나 3대 봉사를 한한 것 어찌 본다면 매우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풍속에 어떤 집이 4대 봉사를 한다면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에는 여태껏 유교의 예법을 지키는 고리타분한 집이라는 뜻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4대 봉사는 공자 시대에는 없었고, 조선왕조가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겨우라는 표현을 쓴 것은 4대 봉사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예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4대 봉사
4대 봉사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 출현한 것은 고려시대입니다. 고려가 쇠망해가자 그 이유를 불교적 사회체제에서 찾은 진취적인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상 운동을 통해서 나라를 혁신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유학을 받아들이고 신유학의 질서였던 제사를 도입합니다. 이로부터 4대 봉사가 시작됩니다. 4대 봉사는 새로운 사회적 기풍이 일어나기 시작한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 정치 기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나라에 보편적인 질서로 자리 잡은 것은 조선왕조가 수립되고 나서도 한참을 지난 뒤입니다.
조선의 기틀이 형성되어가기 시작한 세종대왕 때, 제사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논쟁의 줄거리는 ‘3대’와 ‘4대’ 간의 대립입니다. 3대를 주장한 쪽은 당시 우리나라의 습속을 존중한 것이고, 4대를 강조한 쪽은『주자가례』에 입각한 엄격한 제도 시행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절충적인 방법으로 관직과 품계에 따라 높은 지위는 4대 봉사를 실시하고 그 이하는 3대 봉사를 했습니다. 이러던 중에 임진왜란이 터져서 나라가 거의 망할 뻔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때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로 바뀌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좀 더 융통성 있게 변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라가 쇠약해진 근원을 나라 내부의 통합이 약해졌다는 데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합을 위해 강력한 질서 유지 정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17세기 이후부터는 김장생이 4대 봉사를 원칙으로 정하자 모든 양반가들은 이것을 따릅니다. 실제로 김장생의 스승이었던 이율곡도 3대 봉사를 했을 뿐입니다.
4대 봉사는 양반가에서만 치러지게 되었지만, 점차 서민들에게도 퍼져갑니다. 그런데 정작 서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4대 봉사를 치르려면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 실학자들은 서민을 위한 간편한 가례(家禮)를 제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2대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점차 혼란스럽게 되어가자, 양반의 지위를 얻기 위한 여러 편법들이 등장합니다. 이때를 틈타 너도나도 4대 봉사를 강행하게 됩니다. 양반입네 하는 것이지요. 이즈음 사회는 양반이 평민이나 노비보다 더 많은 가분수 꼴의 구조를 띠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경제적 생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매우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제사의 나라
우리를 백의(白衣)민족이라고 부릅니다. 흰옷을 입고 산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언제부터 흰옷을 입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태양과 광명을 숭상하는 종교적 심성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고, 염색을 할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흰옷은 노동하기에 가장 불편한 색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제사를 많이 지냈기 때문에 그냥 흰옷을 입고 산 것이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랬을까 싶지만, 실제로 제사가 적지는 않습니다.
4대 봉사를 한다면 1년에 제사가 몇 번이 될까요? 4대의 부모이므로 네번씩 두 번이니까, 여덟 번을 지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차례와 설, 시제를 모시게 되면 열 번이 넘게 됩니다. 그뿐인가요, 외가나 처가의 제사는 모른 척할 수 있을까요?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이고, 두 번도 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제사라는 것이 그냥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없는 살림에 귀한 제수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통이 컸겠습니까?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인내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더구나 종갓집이라면 일가의 친척들이 모두 찾아옵니다. 돌아가신 분 이상으로 산 사람들을 대접하느라, 남자는 빼고 여자들은 허리가 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과연 4대 봉사를 해야 할까요?
머리카락
과학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머리카락은 25~30년이 지나면 분해가 되어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것은 인간의 몸이 완전히 분해되는 기간이 대략 30년이라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육신 중에서 가장 늦게 썩습니다. 전통 용어로 하면 기가 흩어지는 기간이 긴 것입니다. 30년은 1세대입니다. 기가 완전히 흩어지는 시기를 기준으로, 나로부터 부모와 조부모 정도가 함께 이 세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3대 봉사나 2대 봉사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과학 연구라는 것이 꼭 하나의 결론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생겨나는 곳이 과학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매우 흥미 진진한 것이고요. 머리카락은 죽은 몸에서도 자라난다고 합니다. 앞선 연구결과와 배치되는 사실입니다. 또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나중에 이장을 하려 하니 긴 머리카락에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머리카락은 300년을 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2대, 3대, 4대는 죽었어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최대의 범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대 이상은 너무 멀다는 것입니다.
2대 봉사
지금은 2대 혹은 1대 제사만을 지내고 있습니다. 4대 봉사의 역사적 탄생에서 좀 벗어나 생각한다면, 2대나 1대의 제사가 가장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지내온 제사 예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 및 신종교, 이방의 여러 종교 등이 제시하는 삶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교가 이들 가르침에 대해서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사실 미약합니다. 종교가 아닌 전통 예법이라는 점에서만 유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직접적 전통은 불교나 기독교가 아니라 유교이기 때문이지요. 잘 되었건 못 되었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준 것이 유교라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전통적 방식대로 제사를 모실 때 의미 있는 범위는 2대나 1대, 곧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정도일 것입니다. 가정의례준칙은 2대까지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허례허식이라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3대, 4대 봉사가 허례허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서 느꼈던 정을 간직하면서 비록 죽었더라도 늘 가족으로 생각하는 범위가 제사의 범위일 것 같습니다. 증조부모와 함께 살면서 그분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모른 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보지 못했더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 속에 살아계신다면 나 역시도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대, 3대, 4대 봉사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른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시는 분들은 어디까지 살아계셨을 때와 같은 정을 느낄까요? 그에 따라 제사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사 때 술잔을 향불에 세 번 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서에 없어요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향불 위에서 술잔을 세 바퀴 돌립니다. 혹 돌리지 않는 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예서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분들은 술잔을 향불 위에서 돌리는 절차는 없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술잔을 향불 위에 돌리는 것은 술을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의 의식이라고 합니다. 혹은 따끈하게 데운다는 뜻이 있다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사에서 술과 향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술은 땅에 부어 땅으로 돌아간 조상의 기운을 불러들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땅의 기운을 술이 상징하는 것이지요. 향은 연기이므로 당연히 하늘의 기운입니다. 하늘로 펼쳐진 조상의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옛 문헌에서는 술 대신에 깨끗한 물 한 사발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주(玄酒)라고 불렀습니다. 맹물 한 사발이 ‘그윽한 술’이 된 것입니다. 맹물이기 때문에 모든 물맛의 으뜸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현주는 가장 근원적인 물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상에게 드리는 술은 대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드리면 뭔가 밍숭밍숭 하기 때문에 하늘의 기운인 향과 접촉을 해서 더 공경스럽게 바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향을 쐬고 난 술은 어딘가 더 깨끗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계 방향
문제는 향불 위로 술잔을 세 번 돌리는데, 시계 방향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 방향이라는 것이 요즘 사람들과 옛사람들의 차이를 나타내주기도 합니다. 흔히 북쪽은 위에 다리하고 남쪽은 아래에 자리합니다. 그런데 옛날의 방위는 북쪽이 아래에 위치합니다. 그에 따라 좌우의 동서가 지금과는 달리 정반대입니다. 북쪽을 아래로 한 것은 북쪽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에 따라 등은 북쪽이 됩니다. 한자로 ‘북녘 북(北)’은 원래 등을 가리키는 배(背)에서 온 말입니다.
잔을 돌릴 때 보통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과 겨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래가 북쪽이면 왼쪽은 동쪽이 됩니다. 왼쪽은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시계 방향이라는 것은 북쪽, 동쪽, 남쪽, 서쪽 순서가 됩니다. 그래서 술잔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순행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린다면 역행하는 것이겠지요.
한때 우리나라는 개고기를 먹는 야만스러운 나라로 세계에 고발당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여배우는 우리나라를 저주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문화의 한 양상이므로 더 넓은 식견을 가져야지, 좁은 식견으로 간섭하지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 하는 프랑스는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개는 물론 고양이나 쥐도 잡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어엿한 전문 고깃집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개를 먹는 풍속이 있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들이 개를 식용하고 있습니다.
개와 불교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육식이 공식적으로 권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몽골 침입 후에 몽골이라는 유목민족의 식습관이 전해져서 많은 육식을 합니다. 하지만 북방 민족은 개를 신성시했기 때문에 개를 식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북방 민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중국도 점차 개를 식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가 신성시된다면 당연히 식용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교에는 개를 신성한 존재로 보는 설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눈이 셋 달린 개를 주워다가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함께 오랫동안 살았지만, 개는 수명이 인간보다 짧아서 먼저 죽었습니다. 주인도 세월이 지나 죽게 되어 저승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승의 첫 관문에서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三目大王)을 만나게 됩니다. 눈이 셋이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하지만 삼목대왕은 이 남자를 보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자신이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 개의 모습으로 태어났는데 다행히 인정 많고 착한 분을 만나서 고생 없이 살다가 이제는 죄를 씻고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며 엎드려 감사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염라대왕 전에 갔을 때 다시 환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눈 셋 달린 개의 주인은 염라대왕 전에 가서 시키는 대로, “불법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와서 한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염라대왕은 그를 도로 인간 세상에 환생시켰다고 합니다. 삼목대왕이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이제 불교도들에게 개는 단지 개가 아니라 저승의 대왕이 환생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사람이 죽어 환생하면 대부분이 인간 곁에 가까이 있는 개로 태어난다는 전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부모나 조상이 개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러니 개를 먹어도 얼마나 찜찜했을까요? 이에 덧붙여서 절은 대부분 산속 깊은 곳에 있으므로, 개고기를 먹는 다면 그 고기 냄새가 몸에 배어 호랑이가 물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개고기를 금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개고기를 제사상에 두지 않는 것은 정통 예법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풍속에 널리 퍼진 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불교의 신화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는 사람과 가까이 살기 때문이고, 사람이 먹는 밥을 먹여 키우기 때문일까요? 가까움이 지나치면 뭔가 균형을 잃기 때문에 제사상에서 멀리하게 된 것일까요? 우주의 균형이 작용한 것일까요?
음과 양의 우주론
제사상에는 한자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음양의 우주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제사상의 구조를 보면 이 생각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사를 모실 때는 조상이 앉는 자리에 신위를 놓습니다. 신위는 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보통은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씁니다. ‘현’은 ‘드러나다’라는 뜻으로 존경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합니다. 그래서 ‘현고’는 존경하는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은 생전에 벼슬이 없을 경우에 씁니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예비 관원’의 의미라고 하는데, 그다지 좋은 해석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은 지금처럼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유교에서 배움이란 끝이 없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학생은 ‘배우는 생명’ 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하늘, 땅, 사람을 배우고 갔다고 보는 겁니다. ‘부군’이란 고을을 가리키는 ‘부’와 그곳의 높은 사람이란 의미의 ‘군’이 합쳐진 말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모시는 대상이 제주보다 나이가 많을 경우에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적다면 부군이라는 말을 뺍니다. ‘신위’는 돌아가서 귀신의 조화, 곧 천지신명의 조화의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조상신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신위는 산 자들의 세계와 마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삶과 죽음은 양과 음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신위를 중심으로 놓게 됩니다. 그리고 음식들이 가로와 세로에 정렬됩니다. 그런데 이 정렬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음양과 오행의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상의 정렬 원칙을 가리키는 사자성어
제사상을 차릴 때 외우기 좋으라고 붙인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차리기의 원칙에 해당합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알아보지요. 제사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초대해서 대접하는 잔치입니다. 산 사람들의 잔치도 그렇지만, 주최는 집주인이 하되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제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손들이 집주인이고 조상들이 손님의 역할을 합니다. 귀한 손님을 상석에 자리하게 하듯이, 중심이 되는 장소는 바로 신위입니다. 신위가 놓인 곳이 북쪽에 해당합니다.
북쪽이 가진 상징은 음양오행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북쪽은 오행으로 보면 수(水)에 해당합니다. 수는 만물이 시작되는 장소로서, 숫자로는 1이 그 자리입니다. 북쪽에 앉으면 남쪽을 향해서 앉게 됩니다. 만약 이 자리가 왕이나 천자의 자리라면, 왕이나 천자는 남쪽으로 얼굴을 향합니다. 남면(南面)이 그것이지요. 실제로 왕이나 천자는 남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근원의 자리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상징적인 북쪽의 자리이지만, 하늘의 북쪽에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있습니다. 이들 별자리는 부동의 자리입니다. 모든 천체의 움직임을 지키고 있는 한 점입니다. 신화적으로는 이곳에 옥황상제가 살고, 우주를 주재합니다. 우리가 상례에서 알아본 칠성판은 우리의 목숨이 이곳에서 왔고, 돌아갈 때 그곳으로 간다는 믿음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북쪽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제사상의 중심입니다. 이 자리에는 조상의 혼이 깃드는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신위 앞에는 밥과 국을 놓습니다. 우리들이 식판을 들고 식당에 줄을 서고 있을 때, 밥은 어느 위치에 놓여야 하나요? 왼쪽입니다. 오른쪽은 국이 들어갈 수 있도록 식판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은 서로 거울에 비춘 모습 같습니다. 그래서 신위 앞에는 밥과 국이 산 자와는 반대로 놓입니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밥과 국의 위치를 대충해서 먹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로부터 제사상은 신위로부터 절을 하는 자손 앞까지 4열 혹은 5열로 차려집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자손이 있는 곳이 1열이고, 그로부터 신위까지 열을 세어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위를 기준으로 해서 5열로 대접하겠습니다. 4열과 5열의 차이는 탕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른 것입니다. 1열은 신위가 있는 곳이며, 밥과 국이 놓입니다. 만일 한 분이 아닌 여러 분의 조상을 모신다면 조상의 수만큼 밥과 국을 차립니다. 우리는 한분을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밥을 ‘메’라고 합니다. 메는 ‘진지 드세요’ 할 때의 진지처럼 밥의 높임말입니다. 또한 국을 갱(羹)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한자말입니다. 그래서 밥과 국이 놓이는 원칙적인 자리를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고 합니다. 반은 메(밥)의 한자말입니다. 신위에서 보았을 때 왼쪽은 동쪽이고 오른쪽은 서쪽이 됩니다.
둘째 줄: 두동미서, 적전중앙, 어동육서
둘째 줄에는 전과 적을 놓습니다. 전(煎)은 부침개 같은 것으로, 생선, 고기, 채소 등을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하고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말합니다. 적(炙)은 생선, 고기 등을 양념해서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운 음식입니다. 산적이라고 하지요. 적은 중앙에 위치합니다. 이것을 적전중앙(炙奠中央)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술을 올릴 때마다 즉석에서 구워 올리던 제수의 중심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제수와 마찬가지로 미리 구워서 올립니다.
이때 머리(頭)와 꼬리(尾)가 분명한 음식은 동쪽으로 머리 부분을 두고, 서쪽으로 꼬리를 향하게 합니다. 이것을 ‘두동미서(頭東尾西)’라고 합니다. 주의할 것은 생선의 배는 신위를 향하거나 위를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꼬리가 동서로 향하게 한 것은 생명의 기운이 북쪽에서 생겨나 동쪽과 남쪽을 거쳐 서쪽에서 갈무리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어류는 동쪽에 놓고 육고기는 서쪽에 놓습니다. 이것을 ‘어동육서(魚東肉西)’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보통 동물의 서열을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순으로 가치를 매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 서쪽이 동쪽에 비해서 가치가 높은 것일까요? 방위에 무슨 가치가 매겨져 있겠습니까마는, 동쪽은 새로 생겨나는 방위이고 서쪽은 결실을 맺는 방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 어른처럼 나이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줄과 넷째 줄 : 건좌습우, 생동숙서, 좌포우혜
셋째 줄에는 탕(湯)을 올립니다. ‘어동육서’에 따라 물고기 탕은 동쪽, 육류 탕은 서쪽에 놓고, 그 사이는 채소와 두부로 만든 소탕(素湯)을 놓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탕의 가짓수는 반드시 홀수로 해야 합니다. 홀수는 하늘이고 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날짐승이나 물고기까지 하늘에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 홀수의 영역에 둡니다. 그런데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은 음에 속합니다. 따라서 소탕이 들어가면 홀수와 짝수, 곧 음양에 뭔가 변화가 생겨야 할 텐데 무슨 이유로 계속 홀수만 고수하는 것일까요? 과일도 그렇습니다. 땅에서 생겨났으니 짝수일 텐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홀수의 득세는 역시 남자 중심의 제사 구조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짝수로 두어야 할 것조차도 홀수의 세력이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이 틀리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제사는 길례(吉禮)에 속한다는 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길례에 어울리는 수는 양수입니다. 양이 가진 속성은 기쁨이나 화목함에 더 잘 들어맞으니까요. 그래서 제사상은 홀수가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넷째 줄에는 나물, 젓갈, 식혜, 김치, 포 등이 올라갑니다. 여기에도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마른 것은 동쪽에 두고, 물기 있는 것은 서쪽에 둡니다. ‘건좌습우(乾坐濕右)’입니다. 이것 역시 음양에 따른 것입니다. 동쪽에서 뜬 해는 남족을 지나 서쪽으로 건너갑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김치는 동쪽에 두고 나물은 서쪽에 둡니다. 여기에는 날 것은 동쪽에, 익힌 것은 서쪽에 두는 원칙이 적용됩니다. ‘생동숙서(生東熟西)’입니다. 데치고 무친 것을 익힌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여기서 간장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 포는 동쪽에 두고 젓갈은 서쪽에 둡니다. ‘좌포우혜(左脯右醯)’를 말하고 있습니다. 혜는 젓갈(어혜)을 말하지만, 지금은 식혜로 대신합니다.
다섯째 줄 : 홍동백서, 동조서율, 조율이시
다섯째 줄에는 과일을 놓습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는 붉은빛의 과일은 동쪽에 두고, 흰빛의과일은 서쪽에 둔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오행의 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동쪽의 빛깔은 원래 녹색입니다. 붉은색은 남쪽에 속합니다. 그러나 동과 남은 양의 방위이기 때문에 붉은색을 동쪽에 둔 것입니다. 실제로 제사상에서 남쪽에 놓을 자리는 없습니다. 서쪽의 색은 흰색입니다. 이런 오행의 도식에 따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원칙은 ‘동조서율(東棗西栗)’입니다. 동쪽에 대추를 두고 서쪽에 밤을 두는 것입니다. 특히 서쪽에 밤을 두는 것은 율(栗)이란 한자의 모양이 서(西)와 목(木)을 합해 놓은 듯해서 서쪽에 두는 것이라 합니다.
‘동조서율’에 대한 설명은 천문학을 따르고 있기도 합니다. 곧 붉은 해가 동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에, 붉은 대추는 동쪽에 두고 밤은 서쪽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서쪽에 두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또 다른 배열 원칙으로 ‘조율이시(棗栗梨枾)’를 들 수 있습니다. 조는 대추, 율은 밤, 이는 배, 시는 감을 말합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 과일들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이시(梨枾), 곧 배와 감의 순서가 문제입니다. 지방마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생긴 속담이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알아서 할 텐데 쓸데없는 훈수를 둔다는 뜻입니다. 가례의 성격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보편적인 방법이 있지만, 역시 가풍에 따라 융통성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과일의 개수는 과일이 땅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짝수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가 과일의 개수를 홀수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일 각각의 개수가 아니라 과일 접시의 수가 홀수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땅의 숫자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은 역시 홀수를 더 중요한 수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었을까요?
풀코스
제사상을 차리는 원칙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1열에서 5열까지 각 열에 놓인 음식에 대한 것만을 보았을 뿐이고 세로축, 곧 1열과 2열의 차이와 같은 각 열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각 열에 놓인 음식들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양식이나 중식처럼 음식이 계속 연이어 나오는 코스가 따로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음식 문화를 제사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열은 주된 음식입니다. 밥과 국이니까요. 둘째 열은 술안주입니다. 밥을 드시기 전에 한 잔 드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올리는 절차가 밥을 먹는 절차보다 먼저 있습니다. 술이 있는데 안주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둘째 열은 술안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셋째 열은 탕인데, 곧 찌개입니다.
우리의 밥상에는 국과 찌개가 나옵니다. 간단한 식단에는 둘 중 하나가 나오지만 성의를 갖춘 식단에는 둘이 함께 나옵니다. 국과 달리 찌개는 큰 그릇에다 요리해서 숟가락을 모두 담가 함께 먹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체적 심성을 볼 수 있는 요리입니다. 제사상에 찌개가 나온다는 것은 정성을 들인 밥상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넷째 열은 밥반찬이 되겠습니다. 반찬을 곁들여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그런 다음 과일이 놓인 다섯째 열은 후식이 됩니다. 과일 중에서 제일 귀한 과일들을 한데 놓고 맛을 봅니다. 이것 역시 성의입니다. 과일의 꼭지 부분을 칼로 도려내는데, 이것은 과일을 놓을 때 균형을 잡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껍질 아래 상큼한 과일의 향을 내어 조상의 혼이 더욱 생기에 감응하기 쉽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상이나 귀한 손님을 모시는 상이나 그 차이는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공손한 주인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손님은 다음번에 답례를 반드시 합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손의 후한 대접을 받은 조상님은 자손의 앞날에 길한 일만 있으라는 복을 내려주고, 세속의 삶이 평탄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돕습니다. 수호천사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조상의 혼은 이승을 떠났지만 자신과 같은 기를 나누어 가진 자손들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정성 어린 자손들의 마음을 헤아려 천지조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귀신이 되어 그들을 보우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는 이유입니다.
제사와 차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약식 제사
차례(茶禮)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 입니다. 차를 마시는 습관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불교시대였던 고려시대로 보입니다. 불교 문화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중요한 일상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쓰는 우리말 중에 다반사(茶飯事)란 ‘차 한 잔 드는 일’ 이란 뜻으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이나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서에서 차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중국 측에서 건너온 예법이 아니라, 우리의 관습에서 명절 때 조상께 지내던 제사가 차례의 직접적인 기원입니다. 제사를 모시면서 술을 따르는데, 굳이 차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주자가례』에서 제정된 사당 제도와 연결된 결과입니다. 중국인들은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들께 차를 올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정은 우리 것이지만, 말은 영향력이 있었던 ‘차례’를 따른 것입니다.
첫 장으로 돌아가서
붓다는 우리의 밝지 못한 어리석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부분적이고 편파적인 어린아이의 소견을 버리고 다른 것을 포용할 줄 아는 앎을 비유로 사랑을 말했습니다. 우리들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모르게 되어 오해하고, 이 오해로부터 이해가 아닌 불필요한 환상이나 왜곡이 생겨납니다. 턱없이 깎아내리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찬양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우리는 무지하기 쉽습니다.
삶을 위해 예절을 만들고 열심히 지키고 살다가, 그것을 버려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해서 싹 갖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잘사는 사람들을 좇아 살았는데 이젠 그 사람들이 너희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돌아보았더니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잘 버렸다 싶습니다. 이제 내가 잘살게 되니 내 것이 편합니다. 내가 빚은 송편이 제일 예쁘다면, 남들은 모두 내 손을 주목합니다. 나는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내 방식대로 하면 그만입니다. 내가 제일이니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지뢰밭 같은 역사를 걸어왔기 때문에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우리의 삶을 이루는 말이나 관행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관혼상제의 행위나 절차에서도 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제법 있었습니다. 오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자 원래의 의미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것은 이 의미를 찾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면 그것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남는 것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우리의 염원에 보탬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환영할 수 있습니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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