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린 선생님을 그리며--문학사랑 2013년 여름호 권두언
[문학사랑] 발행인 리 헌 석
(원종린수필문학상 운영위원장)
* 선생님의 2주기를 맞아
2011년 6월 3일의 하늘은 흐렸습니다. 원종린 선생님을 존경하는 문인들의 눈에는 이슬이 어렸습니다. 6월 5일에 예술인장으로 선생님을 영결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평소의 인자하시던 모습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정감어린 말씀이 귓가를 울리지만, 다시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먹먹합니다.
2012년 6월 3일의 하늘은 화창하였습니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묘원을 찾았습니다. [문학사랑] 100호 발간을 기념하는 제112회 문학사랑 축제 2일째여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문인들이 합동으로 첫 제사를 모셨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들, 그리고 수필문학상을 받으신 분들도 참석하여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2013년 6월 3일 2주기를 맞습니다. 그리움의 농도가 조금도 옅어지지 않습니다. 슬픔의 무게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문학사랑] 여름호를 발간하면서, 선생님께서 남기신 [원종린수필문학상]에 대한 의미를 되새깁니다. 선생님을 가까이 모신 마음으로 제9회 상을 품격 있게 시상하기 전에, 구체적 사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 수필문학상 제정 과정
원종린 선생님을 뵌 것은 1971년 공주교육대학에 입학하면서였습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선생님은 1학년 교양영어를 지도하셨는데, 주로 단편소설을 교재로 삼으셨습니다. 도서관장을 겸하셨기 때문에 도서관에 자주 가던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말씀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현직 교사로 문학창작에 힘쓰던 저는 공주교육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서 문학강연을 요청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하니, 원종린 선생님께서 기숙사 사감을 겸하고 계셨습니다. 수필가로 문명을 날리시던 때였는지라, 제자 문인을 초대하도록 기숙사 학생 대표에게 권면하셨음을 나중에야 알고 그 배려에 감읍하였습니다.
1985년 유성 ‘경하장’ 호텔에서 개최한 ‘문학축제’에 선생님을 초청하여 훌륭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선생님께서는 단체의 고문을 맡으셔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제자가 운영하는 단체가 궁금하셨는지 행사에 자주 찾아 주셨습니다. 다정다감하시고 조용하신 성품 때문에 당시 100명이 넘는 회원들 모두 선생님을 우러렀습니다.
2002년에 제가 맡고 있던 오늘의문학회를 [사단법인 문학사랑협의회]로 격상시켰습니다. 문학잡지 계간 [오늘의문학]을 [문학사랑]으로 제호를 바꾸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장이었습니다. 2000년에 회장에 초임하였고, 2년 임기여서 2002년에 재선했을 때였습니다. 대전광역시 중촌동에서 창작활동을 하시는 예술가 몇 분과 약속에 있어 그 지역을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4층 건물이 선생님 소유라고 하시며, 수리를 하실 일이 있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건물을 안내하셨는데, 아주 너른 1층과 2층은 각각 다른 이름의 식당이었고, 3층과 4층은 원롬 혹은 투룸이었는데 20여 개나 되었습니다.
“전구만 나가도 젊은 애들이 전화를 해서 힘들어.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고 해서 왔어. 이제 팔아서 저금을 해놓고 테니스나 열심히 해야겠어. 이 건물 팔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수필을 쓰는 분들을 격려할 수 있는 ‘수필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기시면서 나중에 상의하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물로 들어가시는 선생님께 명함을 드린 후, 스승의 날에 화분을 보내드리기도 하고, 식사를 모시기도 하면서 일상이 흘렀습니다.
3년이 지난 2005년 초에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사모님께서 1월 14일에 작고하셨는데, 아무리해도 개인주택에서 혼자 살기가 버겁다고 하셨습니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면 경제적 여유가 조금 생기신다고 하시며, 3년 전에 말씀드렸던 ‘수필문학상’ 제정에 대하여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셨습니다. 분부에 따라 간결하게 운영규정, 운영세칙 초안(草案)을 작성하였고,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운영위원들을 위촉하였습니다.
* 수필문학상 제정과 시행
먼저 수필문학상 운영위원들을 위촉하였습니다. 당시 충청남도 교육감이었던 강복환 아동문학가, 공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신재철 교수를 선생님께서 추천하셨고, 본인들도 기꺼이 승낙하였습니다. 저는 사단법인 문학사랑협의회 이사장과 대전문인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계신 분들을 추천하였습니다. 문학평론가 이규식 한남대 교수, 수필가 문희봉 대전문협 부회장, 소설가 안일상 문학사랑문인협회 회장, 그리고 문학평론을 하는 본인(리헌석)과 선생님의 차남 원준연 중부대학교 교수가 참여하였습니다. 실무를 볼 사람으로 김동준 시인, 이영옥 시인을 추천하였습니다.
2005년 3월 10일 11:00 문학사랑 회의실에서 첫 번째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원종린수필문학상 운영규정] [원종린 수필문학상 운영 세칙]을 의결하였습니다. 이 규정과 세칙에 따라 임원을 선임하였습니다. 운영위원장 리헌석, 운영위원 강복환 문희봉 안일상 신재철 이규식, 감사 원준연, 총무이사 이영옥, 재무이사 김동준 등이었습니다.
당년부터 시행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제1회 원종린수필문학상 공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밝힌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필가 원종린 선생은 1923년 충남 공주시에서 태어나,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신 후 수준 높은 수필 작품을 발표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감동적인 수필을 담은 여러 권의 수필집을 발간하여 향토 수필문학의 진흥과 한국 수필문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선생의 순정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수필문학 창작에 대한 애정을 승화시키며, 후진 수필가들을 격려하여 수필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원종린수필문학상] 제정에 선생의 문하생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이에 제1회 [원종린수필문학상] 대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모합니다.>
당년 4월 30일까지 응모된 수필집을 심사하여 시상하였고, 2012년 8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회에서 4회까지는 상패와 함께 대상 상금 300만원, 작품상 상금 100만원을 시상하였습니다. 5회부터는 대상 상금 500만원, 작품상 상금 100만원을 각각 시상하였습니다. 제6회는 원종린 선생님 미수(米壽)여서 대상 2명, 작품상 4명을 시상하였습니다.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회 2005년 대상 김영배, 작품상 박상혜
2회 2006년 대상 김학래, 작품상 김명녕
3회 2007년 대상 구 활, 작품상 윤병화 이완근
4회 2008년 대상 강석호, 작품상 윤월로 정희승 김명순
5회 2009년 대상 성기조, 작품상 남영숙 이시웅 이정희
6회 2010년 대상 김병권 정목일, 작품상 김상분 최수룡 최영선 최화경
7회 2011년 대상 정재호, 작품상 도규섭 이자야 박미영
8회 2012년 대상 이재인, 작품상 김남식 이범찬 오정자
* 중요한 에피소드
심사와 관련하여, 운영위원회는 공모된 수필집을 심사 당일 개봉한다는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들조차 주소와 성명으로 신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심사위원들은 누가 어떤 책을 응모했는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공정한 심사로 원종린수필문학상의 위상을 높이려는 충정이었으며, 1회부터 8회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하여 이제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4회 시상부터는 교포 수필가들의 응모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작품성이 높으면 우선하여 1명 정도 시상하기로 하였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우리 언어를 지키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으며, 우리 언어로 예술성 높은 수필집을 발간하는 것은 눈물겹도록 장한 일이라는 견해에 공감하였기 때문입니다. 4회 김명순, 6회 최영선, 8회 오정자는 미국 교포 문인입니다. 7회 도규섭은 중국교포 문인입니다. 수필문학상이 영역이 해외로 확대되는 의미를 갖습니다.
심사위원을 위촉할 때도 가능하면 연속 심사를 배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수필계 원로들이나 수상자들께도 심사를 부탁드리기는 하였지만, 문하생들이 많은 분은 회피(回避)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수필가보다 문학평론가를 위촉하고, 원로들 중에서는 가급적 문하생이 많지 않은 분을 모시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필문학상의 객관성을 유지하면셔,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 격조 높은 상으로
앞으로도 원종린 선생님의 순정무구한 수필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훌륭한 수필가들을 선정하여 시상할 계획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문학상보다도 격조 높은 상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바로 앞에서 모신 듯이 옷깃을 여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