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스타’에서 대통령까지…윤석열의 파란만장 일대기
악연으로 시작한 보수 진영과 尹…대선에서는 ‘원팀’
文 정권과는 우호적 관계에서 대결 구도로 ‘급반전’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윤석열 제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 10일 취임했다. 윤 대통령은 ‘급반전’된 정치권과의 관계부터 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끌어낸 점, 역사상 정치 경험이 가장 짧은 상태로 당선된 점, 역대 최소 표차로 당선된 점 등 여러 가지 눈에 띄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그는 보수당인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정치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당시에는 보수 진영과 악연 관계에 있었고,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척을 지게 된다. 당시의 조국 사태로 여론은 크게 흔들려, 윤 검찰총장이 대선 주자로 지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됐고, 정치 신인인 그에 의해 결국 정권이 바뀌게 된다. 정치 입문 이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윤석열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입문 과정과 대통령 당선 과정을 살펴본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여러 가지 역사적인 기록들을 남겼다. 우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정치에 발을 들인 지 불과 8개월 여 만의 일이다. 이달 10일 취임식을 거치면 정치에 입문하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10개월 여 만에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또 5년만에 정권이 바뀐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번갈아 가며 10년 주기로 정권을 차지했던 과거 기록을 깨고, 정치 신인인 윤 대통령과 탄핵 사태로 암흑기를 겪었던 국민의힘이 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이다.
또다른 특이점은 역대 최소 표차로 당락이 결정된 20대 대선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득표율은 48.56%로, 47.83%의 득표율을 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 후보와 불과 0.73% 차이다.
정치권 내 좌우 진영과의 관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검사 윤석열은 처음에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 박근혜 정권 수사 등으로 보수 진영과 좋은 관계에 있지 못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수사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조국 전 장관 수사를 계기로 관계가 급반전됐다. 정부와 여당에 미운털이 박힌 그는 임기 후반 내내 당시 여권으로부터 여러 압박을 받았고, 결국 검찰총장직을 사퇴, 보수 진영으로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 당선까지 함께 이뤄내게 됐다.
尹, 박근혜 정권·보수 진영과의 ‘악연’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정치권에서 처음 주목을 받았던 것은 박근혜 정권이었던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외압을 폭로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폭로와 함께 남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단박에 ‘국감 스타’로 떠오르며 대중과 정치권에 눈도장을 찍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정권의 눈 밖에 난 그는 이후 좌천을 당해 대구고등검찰청, 대전고등검찰청을 전전해야 했다.
지방 고등검찰청에 머물며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졌던 그는 2016년 탄핵 국면에서 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합류하며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그는 수사팀장으로 박근혜 정권 수사를 지휘하며 박 전 대통령 및 국정농단 사태 관련자들에 중형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한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와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도 참여하며, 윤석열은 명실상부한 ‘진보 진영 인사’가 되는 듯했다.
文 정권에서의 승승장구와 갈등사
과거 정권 등을 겨냥한 이른바 ‘적폐 수사’의 선두에 섰던 그는 문재인 정권이 시작된 이후 2017년에는 서울중앙지검장, 2019년에는 검찰총장으로 파격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렇듯 우호적이었던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진보 진영과의 관계가 반전된 것은 2019년 말 발생한 ‘조국 사태’가 계기가 됐다. 조 전 장관과 관련해 자녀 입시 비리 의혹, 사모펀드 관련 의혹 등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자,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전면 수사에 나선 것. 정권의 핵심 인사였던 조 전 장관에 칼을 빼 들자, 정부·여당은 단번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후 검찰이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등 정권과 관련된 수사를 개시하면서, 양측의 갈등 관계는 더욱 심화되게 된다.
조국 전 장관이 1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후임 법무부 장관이 된 추미애 전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측근 인사와 정부의 권력형 범죄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 인사들을 대거 교체하는 인사를 강행한다. 추 전 장관은 ‘인사 학살’이라고도 불리는 인사에 이어, 역사상 단 한 차례밖에 발동된 적 없는 수사지휘권을 수차례 행사하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압박했다. 윤석열 총장은 추 전 장관과의 갈등 과정에서 수사에서 배제당하기도 했고, 법무부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 역시 순순히 물러서지만은 않았다. 그는 법무부의 징계 처분에 대해서는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불복소송을 진행했다. 정권과의 갈등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발언해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향한 정부와 여권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대선 주자로서의 그의 주목도도 높아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의 이름을 넣은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가 이뤄졌고, 높은 지지율 결과가 나타나며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그는 검찰총장으로서 참석한 2020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인사들과의 설전 끝에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어록을 남기며 또 한번 ‘국감 스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치 입문부터 국민의힘 입당, 대통령 당선까지
끊임없이 갈등이 이어지던 2021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3개월 후인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입문을 공식화했고, 1달 만인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해 보수 진영 후보로서의 대선 행보를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예정됐던 입당 일자를 변경해 당 지도부가 자리를 비운 시기에 ‘기습 입당’을 하면서 당대표 및 지도부 패싱 논란이 최초로 일었다.
윤 대통령은 입당 이후 경선을 거치며 11월 5일 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성공한다. 후보 선출 과정에서는 손바닥 왕(王)자 논란, 천공스승 논란 등 무속 논란이 최초로 발생한다. 또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경쟁 주자였던 홍준표·유승민 후보와 수차례 부딪히며 이후 갈등을 봉합하고 원팀을 형성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선출 이후에도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경선을 함께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주변을 채우고 활동을 보이면서, 측근 정치 논란이 일었고,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수차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문제를 두고 파열음이 일었다. 일부 언론에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명의로 나간 익명 인터뷰들의 내용이 당내 갈등을 부추긴 것. 여기에 일정 조율 등을 두고 ‘패싱 논란’까지 겹치며, 이준석 당대표가 선대위를 이탈해 지방 순회 일정에 나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울산 회동으로 갈등 봉합과 김 위원장 추대가 함께 이뤄진 이후에도 이런 문제들은 지속됐고, 급기야 선대위 공보단장이었던 조수진 의원이 당시 후보였던 윤 당선인의 뜻을 내세우다 당 지도부와 마찰을 일으키며 당대표가 두 번째로 선대위를 이탈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해 한동안 이재명 후보에 두 자릿수 차로 밀리기도 했다. 특히 같은 시기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허위 이력 문제 등이 불거지며 ‘공정’을 내세운 윤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혔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던 내홍 사태는 선거 조직 개편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김종인 위원장이 선대위 해체를 결정하자 그와의 결별을 택하면서도 이를 선거 조직 효율화의 계기로 삼았고, 당대표와의 갈등 봉합에도 나서며 사태를 수습해 갔다. 이후 추가적으로 갈등이 불거지는 일은 없었고, 공약 발표와 선거운동 방식에서 변화를 주며 가파른 지지율 회복세가 나타났다. 약 2주만에 지지율 1위 자리를 탈환한 이후에는 대선 막바지까지 유리한 구도가 지속됐다.
선거 막판에는 경선에서 갈등을 빚었던 홍준표·유승민 후보의 지지를 얻어냈고,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도 단일화에 성공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우세가 이어졌음에도, 선거일 발표된 출구조사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가 박빙을 이루는 결과가 나타나며 긴장감을 높였다. 개표 초반 이 후보가 우세를 보이던 득표율은 다음날 새벽을 지나며 우열이 뒤집어졌고, 결국 0.73% 차로 윤 대통령이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신승을 거두면서, 윤석열은 제 20대 대통령이 됐다.
尹의 대통령 취임, 임기 초 놓인 과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대선에 승리했음에도, 취임 이후에는 여전히 여러 과제들이 남아 있다.
우선 여당이 되어 호흡을 맞춰가야 할 국민의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대선 당시 발생한 2차 갈등 봉합 이후 추가적인 갈등이 불거지지는 않았고, 윤 대통령의 측근인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되며 창구 역할을 맡았기에 당 지도부와의 갈등 소지는 크지 않다. 특히 당선 이후 당이 대통령에 발맞춰 움직이는 분위기고, ‘검수완박’ 논란으로 당이 뭉치면서 갈등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여전히 당의 중량급 인사인 홍준표·유승민 전 의원과 윤 대통령 측과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고, 같은 당이 된 안철수 인수위원장과도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인사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는 ‘윤심(尹心) 논란’이 불거지는 등, 당내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던 대통령의 측근 정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원활한 당·청 관계를 위한 측근 정치 의혹 해소가 과제로 꼽힌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 문제가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인기를 끌었던 군장병 월급 200만원 공약이 뒤로 밀린 점, 이런 상황들로 인해 초반부터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하게 된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도 과제다. ‘검수완박’과 내각 인사청문회 등으로 여야 관계는 얼어붙은 상태다. 민주당이 새 정부에 비협조적인 기류가 강하고,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상임고문이 여전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을 기치로 내건 윤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것 역시 중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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