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법문에 뜻을 두는 게 천만 번 온당하다
여래가 일생에 설하신 법은 무량무변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단도직입적인 것을 구한다면 참선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혹시 상근기로서 하나를 듣고 천 가지를 깨달아[一聞千悟]
대총지(大總持)를 얻었을지라도, 아직은 깨달음[悟]이지 증득[證]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대철대오(大徹大悟)하여 명심견성(明心見性)할 수 있는 자는
말세에 실제로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나머지는 대부분 소식을 잘못 안 것입니다.
그 이른바 깨달음이란 대부분이 착오(錯誤)이며
진정한 깨달음[眞悟]인 경우는 드뭅니다.
설사 진정한 깨달음이더라도 생사를 마치기까지는
아직은 크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깨달았다 하더라도 수많은 겁을 지나오는 동안의
번뇌습기를 반드시 갖가지 방편으로 대치(對治)함으로써
깨끗이 다하여 나머지가 없다면, 생사를 마치고 해탈하여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이미 깨달았다. 나는 보살이다.
나는 이미 신통을 얻었다.”라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잘못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일단 염라대왕이 목숨을 요구하여
임종할 때는 살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게 죽어서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집니다.
여러분은 주제넘게 높은 데만 바라보고,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이런 나쁜 습기에 절대로 물들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습기가 있다면 고치고, 없다면 더욱 노력하며,
경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늘 주제넘게 높은 데만 바라보아서,
조금 총명하면 곧 선종(禪宗)이나 상종(相宗)이나
밀종(密宗)을 배우고 대부분은 염불을 쓸모없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가의 기봉전어(機鋒轉語)의 현묘함[玄妙],
상종의 법상(法相)의 정미함[精微], 밀종의 위신(威神)의
광대함[廣大]만을 알 뿐 다음의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선(禪)을 닦아 비록 확철대오(確徹大悟)한 지위에 도달하였더라도,
만약 번뇌미혹을 아직 깨끗이 끊어 없애지 못했다면
여전히 생사(生死)를 마칠 수 없습니다.
상종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두 집착을 깨뜨리지 못했다면,
비록 갖가지 명상(名相)을 이해하더라도
마치 음식을 말만하고 먹을 수 없고 보배를 헤아리기만 하고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은데, 마침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밀종은 비록 현생의 몸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성취할 수 있는 자는 절대로 박지(博地) 범부의 일이 아니며,
범부가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마구니에 달라붙어 발광(發狂)하는 자가
열 명 중 여덟아홉입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염불법문에 오로지 뜻을 두는 것이
천만 번 온당한 최상의 제1법칙입니다.
불법을 배우면서 대통가(大通家)가 되려고 하지 않고
정토법문에 온 마음을 다 기울인다면,
그는 숙세(宿世)에 혜근(慧根)이 있어 택법안(擇法眼)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광대사문초』)
나무아미타불이 팔만대장경이다. 에서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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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봉전어(機鋒轉語: 근기에 따라 날카롭게 내던지는 말, 화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