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함께 싸우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 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15:30-33).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형제들에게 간곡한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30)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엄숙하게 부탁하고 있다는 것은, 의례적이거나 습관적인 것이 아닌 위급하고 심각한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1장을 통해서 그의 상황과 심정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밀레도에 도착한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행한 고별설교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을 아노라”(행 20:23-25) 하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하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는 형제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하고 말씀합니다. 이제 바울은 이런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것입니다.
①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30), 즉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 앞에서 상고한 대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심령에 매임을 받아 강행하고 있는 비장(悲壯)한 발걸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자신은 물론, 사도를 보내는 형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도(祈禱)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②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30상) 합니다.
㉠ 30절에는 “말미암아”라는 연결고리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하고, 삼위 하나님을 다 거론을 하면서 기도를 부탁하는 구조입니다. 이 말씀에 실려 있는 무게와, 사도의 심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 사도는 로마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사랑으로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엄숙하면서도 비장한 각오로 하는 부탁입니까? 사도는 고린도후서에서도,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하고 요청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1) 말씀합니다. 사도는 “기도”의 귀중성과, 중요함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③ 그래서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즉 합심(合心)기도를 하자는 것입니다.
㉠ 사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무사히 임무를 마친 후에 계획대로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갈 수 있도록 로마 형제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강력한 무기로 함께 싸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와 힘을 같이 하여”라는 원어(原語)적인 의미는, “함께 투쟁(鬪爭)하자”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사말이 아닙니다. 생사를 같이 하는 전투를 의미합니다.
㉡ 그렇다고 로마 형제들에게 무장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바울의 신변을 보호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기도로 투쟁하고, 기도로 승리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기도나 좀 해 달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기도의 능력을 그렇게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야곱의 얍복강 나루의 기도와, 주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연상케 합니다. 정성구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기도는 전투다”라는 책이 있는데, 그야말로 일사각오로 하는 비장한 부탁인 것입니다.
④ 사도가 부탁한 기도 제목은 세 가지인데,
㉠ 첫째로,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31상), 즉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에게서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기를 기도해 달라 합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동맹한 자가 40여명이나 있었으며, 그들은 길에 매복하였다가 바울을 죽일 작전을 세워놓고(행 23:12-15) 있었습니다.
⑤ 둘째로,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 직 하게”, 즉 구제금을 기쁨으로 받아 주기를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는 믿는 유대인들에게 영접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 가운데는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방인 형제들의 구제헌금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바울의 중심에는 이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친근(親近)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한 듯이 반감을 일으키지나 아니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 바울이,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 7:5) 한 말씀의 뜻을 알 듯 합니다.
⑥ 셋째로,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2) 하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사도의 피곤하고 지친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역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예루살렘보다는, 이방인들 가운데 있을 때에 안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사도의 동족에 대한 사랑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9:3)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말씀하고 있으나, 예루살렘은 이러한 바울을 평안히 쉬도록 받아주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⑦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각오한 대로 체포를 당하게 되고, 그토록 가기를 갈망했던 로마를 자유인이 아닌 쇠사슬에 매인 죄인의 몸으로 압송(押送)을 당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하는 말씀을 끝을 맺고 있습니다.
㉠ 사도는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2) 하고,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게 되었으나, 그가 바라던 대로 편히 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로마에서의 “이태 동안”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겠는가 싶습니다.
㉡ 1:10절에서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1:1) 바울에게는 의지할 이는 하나님 밖에는 없었고, 의탁할 것은 “하나님의 뜻” 뿐이었습니다.
⑧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33) 하고, 15장을 마치고 있습니다.
㉠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5), 소망의 하나님”(13)이라고 고백적으로 부르던 사도가, 이 시점에서는 “평강의 하나님”(33)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바울의 처지에서는,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한, “평강의 하나님”이 절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로 함께 싸우자”입니다.
㉡ 로마서 강해를 상고하고 있는 형제에게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