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983년, 죽었다 살아난 삶을 극락으로 이끈 대덕화 보살
법령, 『자신의 죽음을 조명해 보는 · 아미타경 강화』
(바라밀다, 1999년 초판, 2판) 393쪽
한 많은 인생, 부활한 김대덕화(金大德華) 보살의 일생
1901년 경남 마산시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난 그는 17세 때 부산시 동구 수정동의 달성 서씨達城徐氏 집으로 시집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해가 바뀌면서 태기가 있어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가 했더니 아직 나이 어린 며느리로서는 하늘과 같은 남편이 병이 들어 온갖 치료를 다 해보고 이 병원, 저 병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18세의 청상이 되어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처절하기만 하였다. 유복자를 낳아서 한 많은 인생의 항해에서 선장을 잃은 대덕화 보살은 38세가 되어 병을 얻게 되어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아들과 친척들이 오열하고 있는 가운데, 아들은 나이 21세로서 갑자기 어머니를 잃게 된 슬픔에 떨었다. 한 많은 대덕화 보살은 그 일생만큼이나 그의 죽음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것이 있었는데 보살은 자신이 운명한 뒤에 자신의 시신을 둘러싸고 오열하고 있는 아들과 친척들의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제8아뢰야식이 사대를 빠져나와 자신의 시신까지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몰골이 초라함을 느낄 때 갑자기 어린 시절의 고향 마산이 생각나자 그 순간 그는 고향인 마산에 당도해 있었다. 어릴 때 살던 옛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새집이 들어서 있었고 눈에 익은 나무들이며 옛 모습대로 남아 있는 집들이 고향의 정취를 진하게 안겨 주었다. 고향의 풍경이 잠잠히 머물러 있는가 싶었는데 일순간 다시 자신이 살던 집이 생각나며 순간적으로 부산집에 이르렀다. 그러나 집에는 일하는 가정부 이외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다시 병원으로 가겠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병실이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누워있었던 침대에는 자신의 시신과 오열하는 아들과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몸뚱이를 찾아야겠다는 황급한 생각에 이르러 병원의 영안실로 가 보니, 그곳에 자신의 시신이 막 운구되어 온 것이다. 몇몇 집안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얀 이불에 덮여 있는 자신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순간 모든 것이 실행되고 더 이상 몸뚱이와의 분리된 세계는 전개되지는 않았다.
의사가 확인한 사망이었으나 마지막 입관을 할 때 최종적인 점검을 거치게 되어 있다. 보살은 이 순간에 다시 육신에 대한 애착으로 몸속으로 제8아뢰야식이 들어가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의 진단으로 다시 응급실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사회생(起死回生)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분명 자신은 죽은 시신을 보았고 또 죽었던 자신이 이와 같이 되살아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 삶과 죽음 사이 – 그것은 본래 어떤 의미로 나타나는 것인가?
이리하여 38세로서 거듭난 또 하나의 대덕화 보살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여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닌 현상변이現像變移일 뿐 본래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된 그는 친정 오라버니의 소개로 스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간청했다. 보살의 나이 53세 때에 아들 부부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고 염불하면서 그야말로 염불삼매에 들게 되었다. 3년간에 걸쳐 염불하던 56세 때에 김해에 있는 모은암 慕恩庵으로 가서 스님으로부터 마 삼근麻三斤이란 화두를 받고 참선에 들어갔다.
그 후 경남 양산에다 토굴을 짓고 본격적인 정진에 들어갔다. 그 당시 무여 스님을 만나 수행의 지도를 받기도 하여 생사를 넘나들면서 심오한 경지에까지 들어 깊은 수행이 더욱 영글어 가게 되었다.
1983년 가을이었다. 부산 동구 수정동의 아들 서동진씨 댁에는 그의 어머니 대덕화 보살(당시 83세)이 찾아와서 가족을 모아 놓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세상의 인연을 다하여 떠날 때가 되었다. 인연 따라와서 인연 따라가는 것이다. 슬퍼하거나 더 머물기를 바라지 말고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뿐이니 회향을 잘해 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5일 내로 가게 되니 모든 장례 절차는 무여 스님과 의논하여 불교식으로 치르도록 하라”고 당부하시고 ….
그 후 5일째 되는 날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는 듯이 편안하게 가셨다고 한다. 그는 다비茶毗에서 영롱한 사리 3과를 남겨서 자신의 영원함을 보여주었다.
분명 대덕화 보살은 한 많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회의 빠졌던 나머지 죽음에 임하여 그 마음이 그냥 떠나기에는 너무 미련도 많은 세상이라 제8아뢰야식이 몸뚱이로부터 이탈하였어도 자신의 시신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사람들의 죽음과는 달리 자신의 인생을 지나칠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업이 되었기 때문에 제8아뢰야식의 작용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활 이후에는 본격적인 아미타불의 염불 수행과 참선 수행을 겸하였기 때문에 대덕화 보살의 왕생은 결정된 것으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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