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굉장히 무덤덤한 느낌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내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내게 때때로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한순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꿈일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리고 어릴 적 아버지의 그 이야기는 매트릭스라는 영화 속에 조금더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었다.
영화 속의 네오와 사이퍼는 각각 이데아로의 에로스를 꿈꾸는 철학자와 벽에 비친 그림자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또한 이데아의 세계와 그림자의 세계는 각각 시온과 매트릭스의 세계로 상징하고 있었다.
네오는 스스로가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물론 스스로 자각이라기 보다는 모피어스에 의한 깨우침에 가까웠지만] 비록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앎에도 그 진실을 쫓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며,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는 자에게 진실을 통해 자유[그것이 육체의 자유이건, 영혼의 자유이건]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그리스시대에 플라톤이 동굴밖에 나가 빛의 세계를 보고 동굴 속의 사람들을 그 빛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사이퍼는 진실을 보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다시금 동굴속 그림자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진실의 삶이란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목숨을 걸어가며 위험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 편안한 삶을 진실이라 여겼다. 물론 그것이 진정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지워 그림자의 현실을 진실이라고 믿기를 바랬다. 마치 우리에게서 우주라는 세계관이 있기 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지구라는 행성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처럼.
네오와 사이퍼가 추구하고자 했던 세계가 달랐던 이유는 간단하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네오는 어떻게 해서든 진실에 다가가고 싶어한 사람이었고, 사이퍼는 비록 진실이 아닐지라도 편안함에 안주하는 삶을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사이퍼를 무조건적인 악인으로 보진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육체의 편안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먹고 살 것을 걱정하는 거지에게 철학을 강요할 수 없듯,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여기는 사이퍼에게 무리하게 더 이상 진실의 세계를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또한 그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사랑이라는 것조차 네오에게 잃어버린 상태에서 사이퍼에게 시온에서의 삶은 어쩌면 거짓된 매트릭스에서의 삶보다 더 괴로운 삶이었을지도.....
빨간 약과 파란 약. 각각 진실로 향하는 문과 편안함에 안주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문을 이야기하고 있다. 매트릭스를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빨간 약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허구의 삶이 아닌 진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배부른 사람들의 여유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흔히 철학자는 가난하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삶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철학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나는 아마 지금 이 순간 모피어스가 내 눈앞에 나타나 둘 중에서 선택을 요구한다면 난 주저함 없이 빨간 약을 선택 할 것 같다. 나도 보고 싶으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어느 것이 진짜 진실인지 나 역시도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 어쩌면 지금의 나도 네오처럼 배부른 자들의 여유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