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40분. 아침이라기는 늦고 점심이라기는 이른 시각인데도 열두어 개 되는 식탁에 빈자리가 듬성듬성할 뿐이다.
별일이네. 제주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밥 먹나. 앞 유리 전체를 떼어낸 게 시원하기는 해도 그저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일 뿐 별로 눈에 차는 것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일까. 언뜻 둘러보니 둘이 앉았건
넷이 모였건 그저 한 가지 메뉴다. 이름도 범상치 않은 각재기국이다.
각재기란 전갱이의 제주도 사투리다. 전갱이는 등 푸른 생선인데 국을 끓인다고? 비린내는 어쩌고….
무작정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각재기국을 시켰다. 앞 손님들의 흔적을 행주질 한 번에 말끔히 치워낸 아줌마가
금세 다시 돌아와 찬들을 한 상 차려 놓는다. 콩잎과 풋고추, 된장, 멸치젓, 오징어젓, 고등어 조림에 두 사람이 오면
서비스로 주는 멸치 구이까지 있다. 네 사람이 오면 차림표에 버젓이 '1만원'이라고 씌어 있는 고등어 구이가
서비스로 나온다는 게 옆자리 손님의 귀띔이다.
문제의 각재기국을 기다리며 애꿎은 찬물만 홀짝이고 있으려니 아줌마가 "좀 있어야 하니까 먼저 찬을 들고 있으라"고
거든다. 서울 촌놈 표시 안 내려고 사뭇 여유를 가장했는데 어딘가 어정쩡한 품새가 '안 봐도 비디오'인가 보다.
이미 들켜 버렸으니 체면 차릴 게 없다. 밑반찬 중에서 정체불명의 것에 대해 뭐냐 물었더니 '촐래'란다.
제주도 특산인 자리젓에 무를 깍둑 썰어 넣어 바특하게 졸인 것이다. 제주도식 쌈장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먹는 입맛에는 너무 짠 '고난이도' 음식인데 먹을수록 은근한 감칠맛이 뒤로 남는다. 고소한 콩잎에
밥을 한 술 올리고 촐래를 살짝 얹어 먹는다. 한번 맛 들이면 끊기 어려운 중독성 음식이다.
드디어 뚝배기 안에서 펄펄 끓고 있는 각재기국이 나왔다. 배추와 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옅게 된장을 풀었다.
매일 아침 그날 쓸 만큼만 구해 오는 제철 배추와 된장이 비린내를 없애는 비결이다. 전갱이 살은 부드럽고
국물은 담백하다 못해 고소하기까지 하다.
이 집에는 각재기국 말고 멜국(멸치국)도 있다. 고소한 맛은 각재기국과 비슷한데 좀 더 비릿하다. 아무래도
초보자에게는 조금 무리 같아 보인다.
각재기국 전문 식당은 제주도에서도 몇 안 된다. 그저 가정에서 일상으로 먹던 것을 돌하르방 식당의 강영채(72)사장이
손봐 내놓은 것이다. 강 사장은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지원, 보병 9연대에 배속돼 종전 때까지 온갖 전투에 참가한
인물이다. 제대 뒤 회사원도 해 보고 외항선도 타다 남들 은퇴하는 나이인 55세에 식당 문을 열었다.
그렇다고 큰 돈 벌겠다는 욕심 때문은 아니다. 이 식당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3시면 영업 끝이다.
달력에서 빨간 날은 무조건 쉰다. "쓸 만큼만 벌겠다"는 게 강 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그래선지 아직도 주방일을 하는
강 사장의 콧노래도, "더 먹으라"고 채근하는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듣기 편하다.
기분 좋게 일어나는데 벌써 문 앞에 손님들이 진을 치고 줄을 섰다. 오전 11시 30분인데도 말이다. 064-752-7580.
(2) 전복아 맛 자랑마, 도도한 오분자기 - 서귀포 진주식당
제주에서 꼭 먹어야 할 것 중 하나가 해물 뚝배기다. 그중 오분자기 뚝배기가 명물이다. 오분자기는 전복의 사촌동생뻘
된다. 조개, 성게알에 파와 매운 고추를 넣고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 낸 얼큰한 국물 맛에 오분자기의 고소함을 더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갈치속젓과 노란 참조기젓, 자리돔젓 등도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운다. 젓갈도 포장판매한다.
1인분 8000원, 오분자기가 더 많이 들어간 특 뚝배기 1만3000원. 064-762-5158.
(3) 보글보글 자글자글 갈치 조림- 신제주 어장군
뚝배기 냄비에 담겨 자글자글 끓는 갈치 조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살이 통통 오른 갈치와 무,
감자를 푹 졸이다 통고추와 대파 등 갖은 양념을 해 매콤하고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순서대로 느껴진다.
여름 갈치는 살이 퍽퍽해 맛이 없기 때문에 겨울에 잡아 급속냉동한 갈치를 쓰는 게 맛의 비결이다.
일종의 바다 고동인 보말로 끓인 보말국도 별미다. 갈치 조림 2만원, 보말국 5000원. 064-744-2258.
(4) 바다 보며 다금바리 한 점 - 제주 선명횟집
용두암에서 가까운 해안도로에 위치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회를 맛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 70m에서 끌어올린 해수로 수족관을 채우기 때문에 사시사철 싱싱한 횟감이 자랑이다. 다른 식당에서
죽어가는 생선도 이 집 수족관에 넣으면 활기를 되찾는다고. 다금바리, 돌돔 ㎏당 19만원, 8만원(4인분)짜리
모둠회만 시켜도 전복 등 곁반찬이 서른 가지가 넘는다. 064-712-3666.
(5) 섬에서 만난 꿩요리 - 서귀포 원덕성원
"제주까지 가서 웬 중국집"하면 오산이다. 서귀포에서 문 연지 50년 된 유서 깊은 식당으로 꿩 깐풍기는 이 집 아니면
맛볼 수 없다. 고추, 마늘을 듬뿍 쓴 전통 깐풍기인데 닭고기보다 쫄깃쫄깃한 꿩고기가 별미다. 3만원으로
조금 비싼 게 흠. 알싸하게 매운맛의 고추 짬뽕과 시원한 국물의 게짬뽕과 함께 먹으면 좋다.
인근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을 관람한 뒤 찾으면 좋다. 064-732-3624.
(6) 한잔 술에 속 쓰릴 땐 - 제주 미풍식당
오로지 해장국만 하는데 새벽부터 택시 기사들이나 전날 마신 술로 쓰린 속을 달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바쁜 시간에는 빈자리 겸상도 각오해야 한다. 토종 고추로 매운맛을 내는데 그 맛이 30년 역사만큼이나 깊고 그윽하다.
시원한 맛은 3번 삶은 배추에서 나온다. 콩나물, 우거지, 당면, 선지, 머릿고기 등이 푸짐하다. 반찬이라고는
물깍두기밖에 없어도 시원함이 그만이다. 064-758-7522.
(7) 이 쥐치가 그 쥐치냐 - 신제주 길횟집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객주리(쥐치의 제주도 사투리)와 함께 무와 감자, 마늘쫑, 양파, 파를 넣고 고춧가루로 양념해
졸이는데 짜지 않고 달짝지근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볶은 콩을 넣는 것이 이 집만의 비결이다. 남편이 매일
모슬포까지 나가 잡아오는 싱싱한 쥐치를 안주인이 요리한다. 시원하면서 뼈까지 오독오독 씹히는 자리 물회와
같이 먹어도 좋다. 객주리 조림 2인분 1만2000원, 자리 물회 1만원. 064-744-1156 .
(8) 국수 위에 돔베 - 신제주 장수물식당
흔히 먹는 잔치 국수와 같아 보이지만 일반 소면보다는 도톰한 면발이 쫄깃쫄깃해 씹는 맛이 그만이다.
간장과 고춧가루로 살짝 간을 한 국물 맛도 담백하고 시원하다. 제주 명물 돔베 고기가 얹혀 있는 국수 한 그릇만
시켜도 인심 넉넉한 주인장은 고기 서너 점을 더 내온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사투리로 도마 위에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놓은 게 돔베 고기다. 돔베 고기만 따로 주문해도 된다. 고기국수 3500원, 돔베고기 1만원. 064-749-0367.
(9) 전복죽을 논하지 말라 - 제주 유빈
전복 내장과 최상품 쌀을 함께 볶아 만든 연초록빛 전복죽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연산, 양식, 수입산 전복을
따로 구분, 값을 달리해 판다. 최근 내부수리를 하고 문을 다시 열었지만 흔히 하듯 가격을 올리거나 양을 줄이지 않았다.
전복 지리(2만원), 전복 스테이크(2만원), 전복 돌솥밥(1만5000원) 등 새 메뉴도 개발했다. 전복죽 1만원,
전복회 자연산 ㎏당 20만원, 양식 ㎏당 13만원. 064-753-5218.
첫댓글 며칠후면 딸과의 추억여행으로 제주도 갑니다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고운햇살님~~~즐거웅 여행 행복하십시요~~~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