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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지리종주 산행후기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1. Prologue
나에게는 많지 않은 친구가 몇 있다.
그중에 시를 쓰는 석우란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김별아란 작가가 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제목의 지리산 산행에 관한 책을
사서 읽은 모양이다.
이 친구는 사실 등산에 대하여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는데 퇴직 후 건강을 위하여 그렇지 않아도 등산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
만은 굳게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 만나면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지리산 가보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싫고 지리산 종주라면 관심이 좀 있다.
53세에 시작한 지리종주가 9번을 끝내고 10번째를 앞두고 있는데 당일로 천왕봉을 오르는 것이라면 차라리 하루를 더 소비하면서라도 그 열 번째를 채우고 싶은 것이 나의 속마음이다.
며칠 전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 친구가 지리종주 얘기를 꺼냈다. 지리종주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장거리 산행의 경험 거의 없이 첫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열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12~14시간을 걸어야하는 그 지루하고도 힘든 고행을 참아내 줄 자신이 있기나 한 건지?
‘지리종주’라는 말에 이번에는 내가 넘어갔다. 열 번을 채워보고 싶은 욕심에.....!
7월 산행은 내가 좋아하는 산행은 아니다. 덥기도 하고 녹음만 우거진 산에 볼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그거 좋지, 한번 해 보지 뭐!”
나는 지리산 천왕봉을 20번 가까이 올라봤지만 여러 봉우리의 이름이라던가 민족의 아픔 전쟁과 관련하여 각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하여는 잘 모른다.
갑자기 그 책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그 책의 내용 중 중요한 것만 골라서 그 사건의 요약과 관련된 지명을 메모해가지고 오라’라고!
다시 날아온 답문자는
‘그 책을 직접 가지고 올 것이니 보고 산행이 끝난 후 가져가라!’고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물론 좋지만 책을 열어볼 시간도 마땅치 않고 배낭의 무게가 늘어나니 참고하라’고,
사실상 가져오지 말란 소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세공기술자를 불러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驕慢)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挫折)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라고 명했다.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다윗왕의 명령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 때 왕자 솔로몬이 세공인에게 일러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이다.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2. 제1일차(07월 15일 수) - 야간열차에서
천안역에서 밤 11시 52분에 구례구역으로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하고 석우를 천안역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이 친구는 예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책을 꺼내 펼쳤다.
몇 가지 설명을 했지만 나는 ‘아휴, 저 무거운 책을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하는 걱정에 도무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석우는 산행이 끝나면 그 책을 나보고 꼭 가져가라고 하였다.
평소 등산이나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석우가 혹시 어려워 할까봐 지리종주 출발 전에 운동을 좀 해 놓으라고 주문을 했었다.
열차 안에서 물어보니 여러 날 육교 계단 오르내리기, 헬시사이클 타기를 출발 전날까지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다만 안하던 운동을 좀 심하게 한 탓인지 오른쪽 허벅지가 조금 뻐근하다고.....!
준비운동을 강도있게 하는 것은 좋으나 출발 이틀 전쯤 부터는 푹 쉬어주는 것이 좋은데 좀 무리했다 싶었다.
구례구역 도착 예정시간은 새벽 03시 03분, 소요시간 3시간 남짓으로 열차 안에서 잠을 자 두는 것이 다음날 산행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자려고 노력은 했으나 결국 몇 십분도 채 못자고 말았다.
3. 제2일차(07월 16일 목) - 출발 준비
구례구역에 정시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 나갔다.
평일이지만 배낭을 멘 등산객은 삼십여 명은 충분히 되는 것으로 보였다.
4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에는 구례구역 앞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그 시간엔 항시 대기하고 있다.
주말인 경우는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자리 잡기 어렵다.
역 바로 앞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있고 ‘성삼재 합승’을 외친다.
나 혼자 다닐 때는 겨울철이 아니면 택시를 타본 적이 없지만 친구와 동행이므로 시간을 좀 벌어 볼까하고 합승요금을 물었다.
일인당 1만원이라 한다. 몇 년 전에도 그런 것 같았는데 괜찮은 것 같아 합승을 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도 일인당 5~6천원은 들어간다.
4. 종주 시작
성삼재에 버스를 타고 온 것보다 약 한 시간 정도 이른 03시 30분 경에 도착을 했다.
한시간을 벌었으니 컨디션만 좋으면 반야봉을 들릴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번 것이다.
화장실 앞에서 스틱, 헤드랜턴, 옷, 배낭정리 등 출발 준비를 하는데 석우의 헤드랜턴을 꺼내보니 불이 켜진 채였다.
아니? 길에 밝혀보니 어둡다. 아마 집에서 배낭을 꾸릴 때 어찌 잘못하여 스위치가 눌린 채 집어넣었나보다.
뭐 노고단 고개까지는 길이 넓고 평탄하니 내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 이후는 날이 밝아 별 걱정이 안 되는데 길이 좁고 험한 내일 새벽 산행이 문제이지만 뭐 어떻게 되겠지!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지리종주의 시작점인 노고단 초소에서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사진도 몇장 찍은 다음 종주로로 힘차게 첫발을 내려 디뎠다.
난 서두에 밝힌 대로 선입견으로 7월의 지리종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날은 덥고 주변은 녹음이 우거져 짙은 녹색으로 별 볼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종주로에 들어서 보니 이런 나의 선입견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생각 외로 등산로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심심치 않게 피어있었다.
진한 녹색으로 우거진 녹음에 대비되는 선명한 분홍빛깔의 ‘지리터리풀’꽃은 개체수가 가장 많아 가히 7월의 지리산 야생화를
대표할 만 하고 그 외에도 흰색의 야생화가 다음으로 많았지만 일월비비추, 노루오줌풀, 모시대 꽃 등등 내가 모르는 야생화를
포함하여 종류가 꽤 되었다.
힘들고 땀나고 지친 산행길 가에서 이런 야생화들은 시선을 돌려보면 어김없이 ‘저 여기 있어요. 나 좀 보아주시고 힘내시라니깐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보행속도에 변화를 주어가며 석우의 다리상태를 점검하여 보니 잘 따라오는 것이 별 무리 없겠다.
항상 노루목에 도착하면 반야봉을 오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망설이게 된다.
오늘은 택시로 한 시간을 벌었고 석우의 컨디션도 좋은 것 같아 별 망설임 없이 반야봉으로 향했다.
무거운 배낭은 갈림길에서 좀 떨어진 숲속에 놓고 카메라와 귀중품만 챙기고 올라갔다.
지리산 3대 봉우리(천왕봉, 노고단, 반야봉)중 하나인 반야봉은 종주길 내내 전망이 트인 곳이면 어디서나 동쪽엔 천왕봉이 서쪽엔
반야봉이 조망되고 일몰이 장관인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25.5km 의 힘든 종주길에서 1km 정도 벗어나 있으므로 여러 사람을 우물쭈물하게 만든다.
나는 고산 산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이 운해다.
운해도 다 같은 운해가 아니라 하늘은 맑고 바람은 없어서 운해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좌악 깔려 올라오다가 솜을 깔아놓은 듯 하얗고
평평하게 펼쳐진 위로 여기저기 산 봉우리의 머리가 다도해의 섬인 듯 크고 작은 검은 점으로 보일 때는 정말 황홀경에 빠져 들게
된다.
물론 타는 듯 붉은 일출, 일몰도 매우 낭만이 있지만 나는 단연 운해를 제일경으로 친다.
문제는 고산 등산을 할 때마다 이런 장관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지금까지 우리나라 4대산 한라, 지리, 설악, 덕유의 정상을 몇 십번 올라봤지만 마음에 딱 드는 운해를 만난 적은 한두 번 밖에 없었다.
운해, 일출, 일몰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날씨는 태풍이 지나고 바로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태풍 ‘찬홈’이 며칠 전 지나가서 지리산에는 10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이번에 혹시 멋진 운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반야봉을 올랐다. 운해는 노고단의 운해를 제일로 치는 데 우리가 지나올 무렵에는 시간이 너무 일러 아직
운해가 피어오르기 전이었다.
반야봉에 올라보니 기대했던 운해는 안개의 발생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저 아래의 산 봉우리들을 모두 집어 삼키고 너무 높게
올라와 있었다.
별 수 없이 사진을 몇장 찍고는 하산하여 삼도봉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주먹밥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시간 계산을 하여 보니 우리의 산행속도가 좀 느린 편이다.
아침을 먹고는 보행 속도를 약간 높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앞장서서 걷고 석우가 뒤에 따라오는데 가끔씩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틱 짚는 소리를 듣고 거리를 조절하면서
간다.
그런데 어럽쇼? 한참 가다보니 두 번인가가 뒤에 따라오는 스틱의 주인공이 석우가 아니었다.
석우는 한참 더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벌써 지쳤나? 아, 아마 용변이라도 하고 오느라고 그렇겠지!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여 보니 며칠 전에 온 많은 비로 여기저기 물 천지 인 가운데 대피소와 화장실 사이 공간을 온통 파헤치고
무슨 공사가 한창이었다.
요즘 국립공원의 대피소 마다 현대화를 위한 것인지 공사가 많다고 느껴진다.
전에는 몇 년 동안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일 년만 지난 후에 가 봐도 내부시설 리모델링이나 외부에 새로운 시설물이 새로 생기는 것을 많이 본다.
숙박객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들이겠지만 왠지 옛날의 불편한 대로의 낭만이 자꾸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도 크다.
연하천대피소에 걸린 현수막을 보니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 통제시간이 오후 15:00라고 한다. 천천히 걸으면 늦을 시간이다.
설마 세석대피소 숙박 예약을 했는데 조금 늦었다고 안 보내주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시간을 대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졌다.
연하천을 지나 벽소령대피소를 향해 가는데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현저히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동행한 석우의 걸음 속도도 매우 떨어지는 것 같아 물어봤다.
아뿔사! 내가 물어본 시간이 너무 늦었다. 다리 통증이 심하여 걷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아까 스틱 소리를 듣고 가다가 두 번이나 친구가 늦었을 때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T.T;;
한시간 벌었다 생각하고 산행초보나 마찬가지이며 지리산 종주가 초행인 친구를 끌고 반야봉을 오른 것이 치명적 패착이 되었나보다!
이후 산행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둘 사이의 대화시간은 늘어났는데, 그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걷는데 만 집중을 했지만 이젠 컨디션 조절과 피로함을 잊기 위하여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사나이들의 대화에 빠질 수 없는 군대 생활의 영웅담, 오늘날의 방산비리까지 이어지는 그 당시의 썩어빠진 군대의 부정부패 비리 문제 등등......!
거의 벽소령대피소를 다와 갈 무렵 15:00시 라는 시간 안에 도착은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다리 아픈 친구를 이끌고 점심을 건너뛰고 세석대피소로 갈 것이냐 아니면 죽으나 사나 일단 점심을 해결한 다음 대피소 직원에게 사정을 해볼 것이냐 하는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잠시 후에는 이 생각조차 행복한 고민이었다는 것을 알리라는 것을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등산로 가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는데, 내용을 보니 벽소령 통과 제한 시간이 15:00이지만 세석대피소 예약자에 한하여 16:00시
까지 통과를 허용한다는......!
일단 시간은 한시간 더 벌었지만 친구의 다리 사정이 어떨지?
석우 왈!
“도저히 더 이상 못 걷겠네. 벽소령대피소에서 하산을 할까 하네!”
“……!” ㅇㅇ T.T;;; OTL;;;
여기서는 방법이 없으니 일단 벽소령까지는 가는 수 밖에......!
그렇잖아도 느렸던 산행 속도는 더 느려지고 이젠 말 수도 줄어들고!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5. 벽소령 대피소에서(15:40) - 절망의 나락으로
힘겹게 아주 힘겹게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을 하였다.
석우에게 상태를 물으니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니 어떻게 여기서 숙박을 하는 방법이 없을지 우선 시도해 보고 나머지는 그때 생각하기로!
둘이는 매점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가서 세석대피소 예약을 하였으나 한 사람이 허벅지 부상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으니 여기서 숙박자리를 내 주면 자고 일어나 내일 새벽에 하산을 하겠다고 사정을 하였다.
직원은 일단 예약여부를 확인을 한 다음 원칙적으로 안 되는 일이고 만약에 예약손님이 꽉 찼으면 방법이 없으나 오늘은 평일로
자리가 많이 비어있으니 배정을 해 줄 테니 5시까지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일단은 숙소문제가 해결이 되었으니 우리는 늦은 점심을 햇반 2개를 사서 가지고 간 라면 한 개를 끓여 함께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서서히 불던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 반팔 옷차림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추워졌다.
식사 후 쉬고 있는데 방송이 나온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숙소 배정을 미리 할테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우리 두사람은 특별 배려를 받아서 일층에 세 사람 자리를 배정받아 모포 두장씩 대여를 하고 자리를 폈다.
석우가 가로되
“나는 내일 새벽 일어나는 대로 천천히 하산을 할테니 자네는 천왕봉을 올랐다 내려 오게!”
“무슨 소리?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인데 반으로 나누면 둘 다 가라앉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내심 무척 아쉬웠다.
‘이번이 열 번째 지리종주인데 이렇게 성공하지 못하고 끝나고 마는 것인가?’
음정까지는 3시간 정도 거리인데 부상한 친구를 염두에 두면 4~5시간 걸릴 것이고 음정에서 함양가는 버스가 09시 다음엔 11시에
있다니 04시에는 일어나야 09시차를 탈 수 있겠다.
“석우, 내일 아침 04시엔 일어날 수 있게 알람을 맞춰 놓지?”
“걱정을 말게, 아무리 피곤하던 술을 마시던 나는 새벽 3시 반에는 날마다 자동기상이니 염려 붙들어 매두게!”
그 친군 좋겠다, 새벽잠 없어서! 나는 저녁잠은 없어도 아침엔 알람 없이는 07시에 일어나는 것도 버겁다! ^^
그렇게 날마다 맑은 정신으로 일찍 일어날 수만 있다면 그 시간에 글을 써도 좋고 아침 산책으로 동네 뒷산을 다녀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아, 게을러 터진 어찌할 수 없는 내 인생!
억지로 ‘벽소령과 음정 사이의 길은 몇 년 전 겨울 무박으로 깜깜한 밤에 한번 오른 적 밖에 없으니 내일은 또 지리산의 새로운 길
하나를 걸어보겠군!’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일찍 자리에 누웠다.
17시경 배정된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 친구 석우!
제발 그렇게 푹 자고 내일은 모쪼록 멀쩡하니 일어나 ‘죽으나 사나 그냥 천왕봉으로 가세!’하고 일어나기를 빌며 나도 눈을 붙여
보려 하는데 영 잠이 안 온다.
두어 시간이 지나 19시경이 되었는데 이 친구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라도 가는지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들어오더니 다시 누울 생각을 않는다.
이러저러 얘기 몇 마디 나누다 저녁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자야하지 않을까?”
“저녁은 점심을 늦게 먹어 됐고 집에서 가져온 고기와 술을 해결해야지?”
“이사람 상태도 안 좋은데 술을 마시고 악화되면 어쩌려고?”
“다시 가져 가려해도 짐이 되고, 알 수 없네 오히려 술이 약이 될지!”
그리하여 둘이는 버너와 코펠, 소주, 고기를 꺼내들고 밖은 추우므로 바람이 막히는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고기는 석우가 가져오고 소주는 내가 가져왔다.
버너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소주를 한 잔 마시니 천하가 태평하고 세상만사가 다 해결된 듯하다. 주물럭으로 만들어온 고기
참 맛나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 4홉 정도와 고기를 다 먹어 치웠다.
화장지로 설거지를 깨끗이 끝내고 8시 반경 자리에 들었다.
밤에 잠을 잘 못자고 특히 잠자리 바뀌면 더 잠 못 들며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내가 오늘은 특별히 고기와 소주 덕분인지 일찍
잠들고 말았다.
6. 제3일차(7월 16일 금) - 가는 희망의 빛줄기
“yb, 일어나게. 4시가 넘었네!”
이 친구는 벌써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컨디션도 안 좋은데 벌써 일어났어? 좀 어떤가?”
“세 시 반에 일어났네, 주변도 걸어보고 계단도 오르내려 봤네!”
“그래서?”
“소주 효험을 봤나, 많이 좋아졌네! 여기서 하산은 그만두고 일단 세석이나 장터목대피소까지 가서 그 다음을 생각하세!”
그 친구가 지금까지 나에게 한 수천 수만의 말 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을 지금 막 뱉어냈다. 귀가 확 뜨이고 정신이 펄쩍 난다!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전모 전대통령의 어록! ㅋㅋㅋ
‘대한국민 만세다!’- 4전5기의 권투선수 홍수환 어머니의 말!
가벼운 마음으로 물 한 모금 마시고 출발이다.
벽소령대피소를 나와 첫 번째 봉우리인 덕평봉을 오를 때쯤 훤하게 날이 밝아왔다.
날씨 좋은 날 날이 밝아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산새들 울음소리가 쪼로롱 쪼로롱 청아하게 들린다. 살갗을 스치고 지나는
새벽 공기는 더 없이 상쾌하고 신선하다.
무박이나 야간 산행을 하다보면 낮에 하는 산행과는 천지 차이로 다른 기분을 맛 볼 수 있는 게 좋다. 바로 머리 위에서 소리만
쳐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주먹덩이 만한 수많은 별들, 아침의 맑은 새소리와 상쾌한 공기, 타는 듯 붉은 저녁노을, 끓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도록 감동을 주는 장쾌한 일출, 뿌연 안개 낀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저 아랫세상을 푹
덮어버리는 끝없이 넓게 펼쳐지는 운해, 여기저기 손짓하는 아름다운 들꽃들,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잎이 넓은 식물과 무성한
양치류 식물 등등
이 남이 알 수 없는 즐거움을 잊지 못해 밤잠을 못자면서 이 고생들을 하지!
##여기서 잠간, 전하는 한마디!
우리나라의 국립공원대피소 중 숙박이 가능한 대피소는 지리산에 노고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로타리, 치밭목,
피아골의 8개와 설악산의 중청, 소청, 희운각, 양폭, 수렴동 5개, 그리고 덕유산의 향적봉, 삿갓재 2개로 총 15개가 있다.
나는 이중 지리산의 노고단대피소와 덕유산의 삿갓재대피소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숙박을 해봤다.
오래 여러 곳의 대피소를 이용해 본 결과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얘기해 보자면 옛날에는 민간이 운영하는 대피소가 여럿 있었고
시설이 매우 낡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국립공원에서 회수하여 개수하였고 아직 회수하지 못한 몇 개의 민간대피소도 시설은 비슷해 졌다.
옛날에는 비박허용으로 대피소가 숙박객와 비박객이 뒤섞여 매우 혼잡 소란하고 밥해먹는 것이 매우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예약 숙박객만 있으므로 차분히 식사준비가 가능해졌다.
또한 잠을 잘 때도 늦게까지 떠드는 사람, 코골고 잠꼬대하는 사람, 과다한 음주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 일출을 보려고 새벽 서너시면 일어나 부산하게 짐을 꾸리는 사람 등등 쾌적하게 수면을 이루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밤늦게 까지 술을 즐기는 사람도 많이 줄었고, 잠잘 때도 비교적 조용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날 석우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두 번째 출발한 팀이었다고 한다.##
혹시나 어제처럼 무리하여 석우의 허벅지에 다시 문제가 발생할까봐 완만한 속도로 보행을 한 결과 무려 4시간여 만에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세석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석우에게 상태를 물으니 아직은 할 만하다고 한다.
위태위태하지만 아직 천왕봉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만큼은 확실하다. ^^
다른 때 같으면 세석을 지나 바로 있는 촛대봉에서도 시간을 끌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지나치며 둘러만 보고 장터목으로 향했다.
세석대피소에서부터는 전망이 트인 곳이 많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산행을 진행했다.
완만한 속도로 걷다보니 전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던 야생화가 확실하게 훨씬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야생화 별 관심 없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야생화도 많다.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 물 한 모금 마시고 다리 상태를 확인 한 후 제석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천왕봉으로 가기는 가는 구나!
고도가 높아지니 안개인지 구름인지(사실 안개와 구름은 구분이 의미가 없다. 똑같은 성상으로 땅 가까이 있으면 안개, 하늘에 둥둥 떠 있으면 구름이지만 800m급 봉우리만 되어도 구름이 봉우리에 많이 걸린다.) 짙게 몰려와서 옷을 적신다. 우의를 꺼내 입기도 그냥 가기도 애매하지만 춥지만 않다면 여름에 오는 비는 그냥 맞으며 걷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안다. 어설피 비가 온다고 우의를 입으면 비는 안 맞겠지만 속에선 땀으로 목욕을 한다.
비에 젖은 것은 냄새가 덜나지만 땀으로 젖은 것은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
우의는 한두 시간 정도 오는 소나기에만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뿐이다.
7. 아, 아, 천왕봉!
제석봉을 오르는 급경사가 만만치 않다. 석우의 허벅지가 여기서부터 또 문제를 일으켰다.
장터목에서 이미 천왕봉행을 결심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이제 되돌아 하산을 할 수는 없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천왕봉을 오른다.
석우에게는 최악의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물어보니 그래도 어제보다는 견딜만 하다고 한다.
아마 더 힘들었어도 그렇게밖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무장으로 적군을 무찌르러 110리길을 힘겹게 행군하여 왔는데, 점령을 목전에 둔 고지를 두고 후퇴를 할 수는 없었으리라!!!
크게는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제석봉이라는 봉우리 하나만 넘어가면 천왕봉이지만, 잔뜩 지쳐서 벌벌 다리를 끌고 가는 사람에게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봉우리가 여러 개다.
마지막 관문이라는 통천문을 지나서도 몇 번 오르내려야 천왕봉에 도달한다.
아, 아, 천왕봉! 1915m의 그대는 이렇게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인 것인가?
기진맥진하여 올라 드디어 천왕봉 표지석을 감격스럽게 붙잡고 서있을 수가 있었다.
눈물이 난다. 나는 목표했던 10번째의 종주를 마친 감격으로, 석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길을 극기심으로 이겨내고 힘겹게
처음으로 마주한 천왕봉의 정상이므로......!!!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정상에서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산행을 목격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임에도 두분의 얼굴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선한 성직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 했다.
우리는 70대 중반에 천왕봉을 오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게 될지?
8. 어긋남의 연속
천왕봉에서 조금 남은 물과 함께 초컬릿 몇 개로 허기진 속을 달래며 로타리대피소 방향의 급경사 돌계단 길 하산을 시작하였다.
석우의 허벅지가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올라가는 것 보다야 훨씬 낫지!
이젠 진짜로 올라가야 할 길은 아주 지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의 많은 비로 천왕샘의 물도 여러 곳에서 흘러내린다. 빈 물병의 물을 충분히 채우고 그동안의 갈증이 완전해소 되도록
충분히 물을 마셨다.
개선문을 지나 한참 내려왔는데 길 한 가운데에 번쩍 거리는 새것으로 보이는 시계가 하나 떨어져 있다.
‘이거 하느님이 나의 정직성을 시험하시나?’
일단 주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느님이 나를 잘못 보셨지,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내 몸 안에서 하얀 나와 검은 내가 싸운다.
‘네가 가져!’
‘아니야, 주인을 찾아줘야지!’
이번엔 진짜 내가 하얀 나에게 따졌다.
‘야, 이 지구상 어디 가서 이 시계의 진짜 주인을 찾냐?’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하여 햇반 두 개와 라면 하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화장실을 다녀와 출발을 하려고 화장실을 가는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맨몸으로 급히 산을 올라가는 게 얼핏 눈에 뜨인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학생, 어딜 그렇게 급히 올라가나?”
“예, 뭘 놓고 온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
“시계요!”
“그래? 이거지?”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그 학생, 나 아니었으면 땀 뻘뻘 흘리면서 한시간 이상 큰 고생했다. 시계도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고......!
길 잃은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간 건 맞지만, 한편 ‘진작 화장실 안에 들어가 버릴 걸’ 하는 보통사람 마음도! ㅋㅋ ^^;
(1) 배낭을 메면서 대피소 벽에 붙어있는 버스시간표를 보려는데 직원이 한마디 한다.
“지금 내려가시면 4시차를 타실 수 있습니다.”
“지금 3시인데 어떻게 4시차를 타요?”
“예, 우리는 보통 45분이면 내려가요.”
“아니, 어떻게? 날아가시나? 댁들은 전문가이시니 그렇지요.”
“아닌데..... 일반인들도 50분이면 다 내려갑니다.”
“그래도 우린 훨씬 더 걸려요. 다음 차는 요?”
“5시 차가 막찹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중산리까지는 이정표에 3.4km로 찍혀있는데 1시간 45분이라면 몰라도 그냥 45분이라니 아무리 전문가라도 말도 안된다.
거기다가 막차가 5시라니 무슨 버스가 그렇게 일찍 끝나나?
우리는 막차 시간 대기도 어려울 테니 다리도 아프고 늦으면 택시라도 타고가자 결론을 내리고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이런 의문은 30분이 안되어 금방 풀렸다.
하산을 하다가 홀로 산행하는 사람과 동행하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한사람은 부상으로 속도가 늦은데 막차 시간이 너무 일러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 버스는 밤 늦게 까지 있다 그러면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다면 환경교육원(순두류)으로 내려가서 버스타고 갈 것이지 왜 힘들고 먼 이곳으로 내려가느냐고 한다.
아까 대피소 직원과 나눈 대화는 나는 망바위, 칼바위를 거치는 코스를 말한 것이고, 그 직원은 환경교육원과 거기 막차를 얘기한
것이었다.
하산 시간에 의문을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었더라면 50분 정도만 걸으면 되었을 것을......!
난 지리종주는 이번이 10번째고 천왕봉을 올랐던 것은 여기에 너댓번 더 되는데 이 길로만 다녀봤지 환경교육원 길은 잘 모른다. 전에 한번 그쪽으로 갔다가 버스는 모르고 걸어갔는데 한시간 이상을 더 걸어 내려간 적은 있다.
허벅지 아픈 친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차라리 그 얘기를 잘 못들은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리산 종주 10번째를 정코스로 마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마 앞으로 다시 종주를 하게 되면 더 쉬운 길을 알게 된 이상 이 길로는 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걷는 시간은 세 시간 여에서 두 시간 이내로 훨씬 줄어들게 된다.
단 아쉬운 점은 망바위, 칼바위와 이쪽 계곡의 풍경을 못보게 될 것이며 마지막 종주를 마치면서 계곡에서 씻는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하게 될 것이고.....!
중산리탐방안내소에 거의 다 왔다.
여름 종주산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가 3일 동안 씻지 못한 몸을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씻는 것이다.
나만의 비밀 장소를 찾아 계곡 속 얼음물 같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니 세상이 다 내것인 것같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잠시 후에는
너무 차가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아프며 이가 자동으로 딱딱딱 맞춰져 10분도 안되어 물에서 나왔다.
다시 진주행 버스정류장까지는 20분 이내 거리.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걸어 내려와 원지까지 표를 끊고 5시 50분 버스를 탔다.
(2) 원지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어떤 분이 대전을 가려면 함양으로 가는 것보다 진주로 나가는 것이 차가 많고 더 좋다고 했는데, 나는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방향이므로 시간과 돈이 더 들므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함양으로 갔다.
(3) 함양에서
7시 15분경 도착했는데 대전 막차가 7시에 이미 떠났다고 한다. T.T;
매표직원에게 물어보니 잘 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남원으로 가면 8시 33분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남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남원 가는 버스 안에서 기사님 말씀이 대전을 갈 것이면 함양에서 거창을 거쳐서 김천으로 가면 시간도 짧게 걸리고 경부선 열차가
밤늦게 까지 있는데 왜 불안하게 차도 하나밖에 없는 남원으로 돌아가느냐고. 나, 미쳐! T.T;
(4) 남원에서
버스터미널에서 남원역까지가 상당히 멀다.
버스가 일찍 도착했기 망정이지 택시를 탔어도 기차를 놓칠 뻔 했다.
남원역에 도착하여 열차표 자동판매기에서 천안까지 표 두장을 끊었는데 한 장 나오고 또 한 장이 영 안 나왔다.
시간은 없고, 창구에 가서 표를 한 장 더 사고 나가려 하니 웬 젊은이가 표를 한 장 들고 달려와서 이표 사고 안 가져가신 거 아니냐고! 아까 로타리대피소에서 시계 주인 찾아준 답장을 하느님이 보내 주셨나보다. 이렇게 빨리! ^^
다시 바쁘게 창구로 달려가 표 하나 환불 받았다. 그 창구 직원 어지간히 굼뜨다!
(5) ITX 열차안에서
남원 발 20:33 itx열차를 탔다. 계속 버스를 갈아타고 오느라고 저녁을 못 먹어 식당 칸을 찾았더니 이 열차에는 식당 칸은 없고
자동판매기만 있다. T.T;
이번 산행은 제때 밥 못 먹는 산행이 되었다.
자동판매기에는 과자 몇 종류와 음료수 몇 종류밖에 없는데 신용카드와 천원짜리 지폐, 동전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침 사용할 수 있는 지폐가 2천원 밖에 없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려했더니 어찌된 셈인지 두 사람이 각각 한 번씩 사용하니 더 이상
사용을 거부하였다.
이런, 싸가지 없는 기계 같으니.....! *,*;;(참고 - 나 욕 잘 안하는 착한 사람임. ^^)
천안에 도착하는 23:58hrs까지 둘이는 오예스 2개와 음료수 하나씩으로 허기를 달랬다.
9. 천안역에서
남원에서 천안으로 오는 열차만 속을 안 썩이고 나머지는 다 속을 썩였다!
사실은 정보수집 부족(두사람의 휴대폰에 문제가 다 있었음)과 잘못된 판단을 내린 나의 책임이 더 크지만! ^^
23:58hrs에 천안역에 내려서 지치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어 나와서 밤늦게까지 문을 연 식당을 찾으니 서부역 삼거리에 올갱이해장국집이 있다.
해장국 한 그릇과 맥주 한 병으로 늦은 식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아, 힘겹고 얘깃거리 많은 꿈같았던 산행!
10. Epilogue
지리산 종주는 이제 모두 끝났다. 팍팍해진 다리는 며칠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김별아가 쓴 지리산행 책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그날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석우도 나도 잊고 가져오지 못했다. 내 예상대로
정말 짐만 된 것이다!
다음날 전화하여 다음 만날 때 가져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며칠 후 친목회가 있어서 만났는데, 생각은 했으나 집 아닌 다른 곳에서 직접 오느라고 못 가져 왔다 한다.
그 책 언제나 내 손에 돌아오려나?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첫댓글 지리산종주를 하던때가생각나네여
산을 다니던 우리들도 힘들었는데 운동도 안하던 초행인분을 종주길로 인도했다니 오빠가 더 대단한걸~
뵙던분깉은데 가명?
그 사람 호가 '석우'여! ^^; 우리끼리는 이름 안 부르고 호나 닉네임을 불러요! (나-yb, 박완규-산해, 정우동-노을, 권상기-석우) ^^
@영배 오빠는 호가 없어 단순하게 yb라 칭하는겨?
@향옥 닉네임을 '달빛'이라고 많이 써서 '달빛'이나 '월영'으로 할랬더니 친구들이 그냥 'yb'로 하라고 해서......!
우동이형님과 화대종주하던생각이 주마등처럼스쳐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