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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10. 감추어진 만나를 날마다 먹으라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 에스엘 33장 7절과 8절에 있는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엘 33장 7절과 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에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 증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아기나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내가 그 아인 내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아기는 자기 죄약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내 손에서 찾으리라 아멘
오늘 이 말씀 본문의 이야기는 지난 저녁 시간 마지막 마치는 시간에 함께 살폈던 그림이었습니다. 오늘 이 사람이 나파를 부는 이 모습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임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고 목사님 제가 목소리가 약해서 나팔을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하나님께서는 나팔불 힘까지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파수꾼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는 사람들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메신저 하나님의 약속의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는 또 우리의 마음 가운데 그 확신이 서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시고 우리 게시록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감사드립니다. 예언이 없었다면 우리는 사탄의 시험과 미혹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탄의 활동과 미옥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보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진리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께서 열두 제자에게 주셨던 그 복음과 그 개명을
우리에게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성령을 주셔서 믿음으로 주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 더해주시기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존에프 케네디 주니어를 기억하시나요. 미국의 대통령은 기억하시죠 그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1999년 7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몰고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경비행기가 산산조각이 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결혼해서 3년도 안 된 부부가 즉사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일까 비행기는 낮에 비행할 때는
조종사가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에 계기판을 보더라도 절대적으로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야간 비행은 다르다고 합니다. 밤에 비행기를 운행할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따라가다가는 큰 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운전할 때는 반드시 하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데 그것은 바로 계기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 하늘에 별이 참 많죠 그런데 어디에도 별이 많은가 하면 도시에도 아주 밝은 빛들이 많이 있어요. 그게 뭐예요. 조명이죠 그래서 사람이 착시 현상이 일어나서 내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눈을 믿고 비행을 하다. 보면 추락 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조네프 캐네디 주니어가 그렇게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치룩 같은 어둠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제 교회 안에도 캄캄함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온전히 의지해야 할 것은 계기판 하나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 여러분 계기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우리가 지난 시간 안식일 또 금요일 예배 시간에 우리가 함께 살폈죠 사울도 넘어졌습니까
거듭남을 온전히 경험했던 사람이었고 예언까지 했던 선지자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자 넘어졌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또 한 번 예언의 말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또 우리에게 시작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나리 세어 새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뭐 하라고 했죠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새별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그 예언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일들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일곱 교회 애배소 교회까지 살폈습니다. 오늘은 그 이어지는 내용 서머나와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 당시 교회의 기별이기도 했고 각 시대에 보내는 기별이며 각 개인에게 보내는 기별이라고 우리가 지난 시간 서두 개요. 공부를 통해서 살폈습니다. 일곱 교회 카이아짐을 살폈지요. 애베소 섬머나 버가모 두하지라 그리고 4대 빌라델비아 라우디기아에 이어지는 이 내용들은 양쪽 끝이 서로 만나서 하나를 강조하는 카이아즈 교차 대구법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사랑을 잃은 교회다라고 해서 그 내용을 살폈죠 왜 사랑을 잃었다고 했냐면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 번째 교회 버가목 교회도 똑같은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니골라당이 뭐고 니골라가 모기의 교회들은 그것을 따라가다가 무엇을 잃었지요. 사랑마저 잃었고 뭐까지 잃어갔어요. 생명까지 잃어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 내용을 같이 살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서원학교에는 유일하게 무엇이 없는 교회라고 되어 있어요. 책망이 없는 교회입니다. 지금 보시는 도표를 혹시 오늘 설교를 들으시면서 처음 보시는 분들은 반드시 지난주 제9강 우리 게시록 강의 구강을 들으셔야 이 도표에 대한 이해를 15분 동안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상 똑같이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서머나와 버가머로 바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처음 들으시거나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오늘 대구로 돌아가셔서 또 오늘 말씀이 끝난 이후에 바로 구강을 클릭해서 청취하시면 이 내용이 이래서 이렇게 전개가 되었구나라고 하는 내용을 공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모나 교회를 공부하겠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ad 100년부터 313년까지 있었던 실제 교회의 이야기이며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시대까지 이어지는 그리고 각 개인에게 전해지는 기별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서원 학교에는 열두 제자와 사도들이 죽은 이후부터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기 직전까지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가장 큰 핍박과 순교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더 큰 오늘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어요. 제가 어느 길을 가는데 눈 앞이 안 보여서 잠시 멈출 정도로 너무나 폭포수 같은 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서원학 교회가 그런 비를 순간적으로 맞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백 년 동안 모든 성도들이 죽음으로 그 일을 대신하며 걸어갔던 교회가 서머나교였습니다. 서머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향수의 일종인 몰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몰락이라고 하는 원재료는 나무를 쳐서 으갤 때 향기가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몰략은 으깨고 칠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서머라는 로마 제국이 으겠죠 부셨지요.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그 향기는 더 퍼져서 성경의 향기를 표현할 때 쓰는 한 단어가 기억나시나요. 너는 그리스도의 뭐라고 그랬죠 향기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은한 영향력이 끊이지 않는 시대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다고요. 서머나 시대였습니다
사도요한은 말씀에서 서머나 교회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소개할 때 게시록 2장 8절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은학교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뭐라고 되어 있어요. 같이 한번 읽어주시겠습니까 노란 글씨만 읽겠습니다. 시작 처음이오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뭐 한다고요. 살아나신 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당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누구에게 편지가 온 거예요. 사도 요한에게 편지가 온 곳입니다. 근데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래요. 처음이고 끝이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너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너를 그렇게 붙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끝까지 책임져 주시며 이 순교가 끝이 아니라 뭐라는 겁니까? 다시 한번 부활하는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주의 백성이 되겠다는 약속으로 서머나 교회를 시작하는 편지 첫 서두에 뭐라고 썼어요. 처음이오 나중이며 죽었다가 살아나시니가 너희에게 말씀하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르시대 내가 내 환란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내가 부효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오 뭐라고 되어 있어요. 사탄의 회당이라
서머나 교회에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뭐라고 부르셨대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지칭하며 마치 기독교회가 자신의 하나님을 뺏어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기와 미움이 가득찼기 때문에 기독교회를 미워하며 로마교회와 결탁해서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신고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어요
오늘날 교회는 오지만 헌신하는 자리는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선교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금은 선교할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지금은 잠잠히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 간의 이간질하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남들이 다 알아요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의 뒷담아 이야기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의 약점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유대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모이는 자리마다 사람을 죽이는 말 사람을 넘어뜨리는 말 교회가 하나될 수 없는 말들을 끊임없이 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뭐라고 부르신다고요?
사탄의 회당이라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마태복음 10장 36절에는 적은 외부에 있대요. 내부에 있대요. 내부에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신약 시대의 유대인들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잠시 살피겠습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입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뭐라고 되어 있어요. 아니오라고 되어 있죠 표면적 육신의 할레가 할례가 아니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 갈라디아서 3장 29절 같이 읽어볼까요. 너희가 시작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니라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절대 절명의 위기 가운데 순교의 자리에 설 땐 가장 뒷자리로 빠지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었어요. 도망갈 수 있을 때 가장 먼저 도망가지만 교회 안에서 실속을 챙기는 일이 있을 때 자리싸움을 하며 그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했던 사람들 유대인들이었어요. 이 시대 안에 또 어떤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서머나교회의 칭찬을 보겠습니다. 서머나교인들은 20년 이상 로마 황제에게 쫓기며 살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아픔을 아신다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들은 가난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실상은 너희가 뭐 하다고 이야기하셨냐면 너희는 부유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보는 눈과 예수님이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생 동안을 핍박과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았던 사람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알았던 사람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권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너희가 시작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우리가 다니엘서를 공부하면 이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연일 법칙을 공부하셨을 겁니다. 혹시 일 내용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성경으로 살피겠습니다. 민수기 14장 34절에는 성경 예언을 해석할 때 하루를 몇 년으로 해석한다고 되어 있어요? 일년입니다.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다. 에스엘 4장 6절에도 하루가 몇 년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일년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자 보세요.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겠다라고 했는데 그럼 십일은 몇 년으로 계산해야 돼요. 10년이겠죠 실제로 역사적으로
33년부터 313년까지 디오클레시안 황제가 마지막 10년간 가장 여태까지 없었던 환난과 핍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이 이루어졌습니까? 이루어졌죠 그러나 그때 서머나교회의 시대의 사람들 그 교인들은 어떤 말씀을 기억했을까요. 10일 동안 환란을 받을 것이지만 뭐하지 말라고 먼저 서두에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장차 받을 권한을 뭐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러셨어요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들과 정치인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기독교 종교가 인기 있는 종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의 신은 태양신이었기 때문이고 태양신을 더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완전히 씨를 말릴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난 안식일에 설교를 하면서 폴리캅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를 했죠
오늘은 그 폴리캅 목사님 83살의 목사님이 순교당한 장면도 있었지만 13살의 폴리오라고 하는 한 어린이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아주 용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한 장면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 연극을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재판장의 역할을 하고 우리 백집사님께서 13살 어린이의 역할을 하실 것입니다
이 연극을 들으시면서 그 13살 아이 너무나 연약하고 작게 생각했던 그 아이가 심판대 재판대 앞에 서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카타콤에 숨어서 신앙을 했던 한 시기에 어른들만 이 장면 속에 죽어갔던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죽어갔습니다. 제가 재판장 역할을 하겠습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마키스 셀비리 폴리오입니다
나이가 몇 살인가?
13살입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죄에 대해서 신문을 받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나는 아버지에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나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너는 내가 범한 죄가 얼마나 어마 어마한 지를 알고 있는가?
나는 아무 죄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신앙은 하나님을 경해하고 황제를 존경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올바른 법률에는 모두 복종하고 있으며 반역한 적은 없습니다
제국의 법률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사용으로 금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는 죽음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소년이요. 너는 죽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가?
나는 지난 2-3개월 동안 죽음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항상 내 차례가 온다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이요. 너는 아직 어리다. 너는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내 자신에게는 거의 책임이 없다.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고려해 주겠다. 예수를 포기하고 국가 종교에 헌신하라 너는 명문이 있는 혈통의 최후의 후예이다.
내 선조들의 영광을 생각해서 그 모든 화려한 명성으로부터 너를 갈라놓는 그 시시한 신을 버리도록 하라. 맹랑한 아이구나. 너는 가련한 추방자의 생활을 해왔다. 로마인들 중에서 가장 궁핍한 거지도 너보다 낫다. 그러나 너는 궁핍과 위험과 암묵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의 신이 있는 그 유태인이 내게 해준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느냐? 정신을 차려라 눈을 떠라! 돈과 즐거움과 친구와 제국의 명예 그리고 황제의 은총까지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싫습니다.“
너의 부친은 확 충실한 군인이었다. 그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다. 그는 어린 너
아주 연약한 너를 위해 모든 명예를 너에게 넘겨주고 죽었다. 너에게 따라붙어 있는 그 망측한 생각을 떨어 버려라 내 아버지와 가문의 영광을 생각했어 지금의 생활에서 발을 씻어라
”내가 가문의 오점이라는 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의 신앙은 순수하고 신성합니다.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의 구주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최후의 기회이다. 모든 축복으로 가득 찬 행운과 명성 내 집 안에 돈과 명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얻기 위해 내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다만 이 술잔을 들어 적이 있는 황제를 섬기는 제단위에 술을 붙는 것뿐이다. 자 들어라 실로 간단한 일이다
망설이지 말고 어서 하라! 부디 죽음의 고통에서 너를 구원하라!
“나의 구주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선언입니다.
저 아이를 사형하라.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닙니다. 다니엘과 요셉과 다니엘의 새 친구의 믿음만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지워져 있는 아무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없는 한 어린 아이의 숨겨도 하나님은 똑같이 들어 쓰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환란이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해 주고 계십니다. 서머나교인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아멘인가요. 아멘입니다.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은 이 믿음을 바라보며 전진하며 전진하고 전진했습니다. 그 당시에 목숨을 걸고 살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충성한다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가 무슨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는 것일까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픽박과 가난이라는 시험을 받았지만 현대교회는 돈과 풍요와 이기심이라는 시험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기독교 역사에서 평화롭고 풍족할 때 오히려 교회는 신앙을 잃어버렸고 사탄의 미옥에 빠져 크게 배도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어지는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좁은 길일지라도 가난의 길일지라도 무시받는 길일지라도 그 길을 예수님만 바라보며 전진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같이 읽기를 소망합니다. 노란 글씨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이 있다는 것은 무슨 사망이 있다는 걸 말하는 걸까요. 첫째 사망이겠죠 첫째 사망은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자연 법칙에 따라 사람의 세포가 노화되어 죽어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죄를 짓든지 안 짓든지 우리 모두는 죽습니까 모두가 죽습니다. 그것이 첫째 사망입니다. 그럼 둘째 사망은 무엇일까 둘째 사망은 십자가와 구원을 거절한 사람들이 당하는 죽음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면 또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아주 간결한 도표로 이 내용을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성경에는 두 부활과 두 사망이 나옵니다. 재림 때에 일어나는 부활을 의인의 부활이며 천년기가 지난 이후에 세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 일어나는 부활을 무슨 부활이라 그래요. 악인의 부활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때 부활하는 것을 뭐라고 부를까요. 첫째 부활이라 부르고
성경 요한복음 5장 28절 29절에는 그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노란 글씨에 무슨 부활로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무슨 부활로요. 심판의 부활로 이것이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부활을 생명의 부활이오 심판의 부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재림 직전에 죽은 모든 죽음을 뭐라 부르는 거예요. 첫째
사망이라 부르고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온전히 사는 사람들은 무슨 부활로 생명의 부활로 살았기 때문에 죽어요. 안 죽어요. 안 죽지만 악인의 길로 성령의 음성을 끊임없이 거절한 사람들은 무슨 부활로 이 세상을 끝이 나는 겁니까? 둘째 사망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 치열한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서머나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를 선택해야 됐어요. 지금 그 13살 어린이를 유혹하며 재판정 위에서 재판하는 그 재판장이 너 죽을래 살래라고만 얘기했습니까? 아버지의 명예를 생각해라 돈과 명예가 있다. 너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여러 가지 말로 미혹했습니다
그리고 깨어나라고까지 이야기했지만 그는 누구를 선택한 거예요. 하나님 편에 서기로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린 소년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마음으로 경험했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무슨 사망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둘째 사망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늘 가는 나그네입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혜가 깊이 임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무슨 죄입니까? 마음에 품고 있는 죄라고 이야기하시며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의 귀에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버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버려야 나그네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강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했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마지 마저도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모두 외면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령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시대에도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는 성령께서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만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귀를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말씀이 들릴 때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서 그 13 살 폴리오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며 걸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길을 온전히 따라가는 저와 우리 하늘 가족들이 되기를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바로 버가모 시대의 이야깁니다. 버가모 시대는 313년부터 538년까지 타락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그 시작이 언제입니까 313년 무슨 일이 일어났죠? 기독교 공인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버가모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높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313년에 로마 황제 그 당시 최고의 대통령 그 당시 최고의 황제가 하루 사이에 개종을 한 거예요. 그럼 교회 입장에서 너무 행복했겠죠 엄청난 힘이 우리에게 세워졌다고 믿었겠지 불과 하루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너 죽을래 살래라고 하며 극도록 10일 동안 환난이 있겠다고 했던 10년 동안의 환난이 그토록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갑자기 작전이 바뀌었어요
기독교가 공인이 된 거야 이 말은 로마의 종교 국교가 뭐로 바뀐 거예요. 기독교로 바뀐 거예요. 니네 다 뭐 믿으라는 거예요. 예수님 믿으라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세상이 또 있을까 그래서 버가모의 이름의 뜻이 뭐라고요. 높이 들린답니다. 근데 그 다음 나오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시작됐대요. 큰 타협이 시작됐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방금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13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며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며 그것을 법으로 칙령했던 것을 밀라노 칙령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개종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봤겠죠. 끊임없이 죽이는데 사라져요. 안 사라져요. 한 명을 죽이면 100명이 전도되는 거예요. 재판정에서 재판하던 사람마저도 성령에 굴복하여 개종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작전 변경명이 “친화 정책”으로 바뀌며 교회 안에 누가 밀려들어와요. 태양 신도들이 밀려들어왔죠 로마 황제의 요구에 따라서 진리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세요.
교회가 태양신의 이교와 혼합된 이상한 교회가 되기 시작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죠. 목숨 바쳐 충성하며 교회를 지켰던 순수한 사람들은 사라지고 교회 안에 이상한 이설들과 교류가 들어오며 이 사람이 교인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교회가 세속화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성경으로 들어가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 한번 노란 글씨까지 한번 같이 읽어주시겠습니까 버가모 교회 시작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2-13)
좌우에 뭘 가졌다고 되어 있어요. 날선 검을 가졌다고 그랬죠 예수님의 모습은 버가모 교회를 위기 가운데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십니다. 교회 안에 뭐까지 들어왔냐면 둘째 개명을 없애버렸고 넷째 개명을 바꿔서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던 시대가 바로 버거모이 되었어요. 그 시대를 향해 예수님이 뭐를 들고 나타나셨다는 거예요. 검을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왜 검을 들고 나타나셨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때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종들을 보내셨을까요. 사탄도 자신을 위해 일하는 대리자를 보냈을까요. 그 사람들이 섞여 있었던 자리가 어디가 됐냐면 교회 안이 된 것입니다. 버가목교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이르시대 내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자가 있는데 내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어 내 충성된 증인 하나님의 사람이 나오죠 무슨 이름이 나오나요. 안디바!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뭐 하지 않았대요. 쳐버리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버가모 교회에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충성한 안디바를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안디바는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단어의 뜻을 좀 보겠습니다. 안디라고 하는 단어는 anti라고 하는 단어에서 시작된 의미입니다. 대항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디바라고 하는 이 말은 파파스Papas 교부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안디바라고 하는 한 사람만 대항한 게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 들어온 그 세속화와 교회 안에 들어온 여러 가지 혼합된 이설들에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선 좌우의 날선 검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뭐라 부른 거예요. 안디바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때에도
여전히 충성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모든 시대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전진하는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백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책망이 없던 교회여도 칭찬이 없는 교회여도 언제나 그 교회 안에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고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을 지키시며 그들의 삶에 역사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대의 교회 안에 소망이 없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이제 이 교회는 끝났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여전히 이 교회 안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시며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그들을 깨어나게 하심으로 그들을 통해 빛의 역할을 다하게 하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안디바와 같은 증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너무나 핍박된 일을 천주교회가 모든 교리를 다 바꿔버렸죠 교회 안에 몇 가지 엄청난 교리들이 들어오며 십계명까지 바꿨지요. 그것을 그때 대항했던 사람들을 뭐라 불렀냐면 프로테스탄트, 저항하는 사람들 그렇게 탄생한 교회가 개신교회입니다. 근데 이 계신 교회 안에 그런 저항정신은 사라지고 말씀의 빛을 따라 걸어가는 삶은 사라지고 자기가 원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다니며 원하는 말씀에는 아멘을 하지만 듣기 싫은 말씀이 나타날 때는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고 이야기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시대입니까
버가모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그 버가모 시대를 향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이야기하셨을까 한번 그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셨어요. 이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주실까요. 그러나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내게 두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내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
감사합니다. 퍼가모 교회 안에 특별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무슨 교훈이래요. 발람의 교훈이다. 그랬어요. 이 교훈이 영어로 떡트린입니다. 떡트린이라고 하는 뜻이 뭐냐 하면 교리입니다. 교리 교회 안에 새로운 교리가 들어왔다는 거겠죠 근데 그 앞에 단어가 아주 매우 익숙한 단어 아니십니까 누구의 교리래요. 발람입니다
민수기 22장으로 넘어가 보면 발람이라고 하는 한 선지자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빛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느날 발락이라고 하는 모압 왕이 너무나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 강력해지는 것이 보자 그들 사이에 어떻게 하면 이들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라고 신하들에게 묻자 뭐라고 이야기하냐 하면 발람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돈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에게 금은보화를 가져다가 주고 그들에게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라고 말하십시오. 성경을 살펴보면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갔다고 그랬죠 엄청난 양을 가지고 갔습니다. 근데 그때 이미 발람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사라지고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쇼를 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는 줄 아세요. 내가 하나님께 기도 좀 해보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오늘날 직분과 직책이 그 사람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실해 보이는 사람도 예수님 없어도 예수님 만난 척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났지요.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하나님께 기도해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보겠습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뭐라고 하셨어요. 가지 말고 뭐 하지 말라고 했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지 믿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반드시 불순종을 반복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순종하는 것을 반복해서 걸어갑니다. 마치 사울처럼 말입니다
같지요. 저주가 마음대로 됐나요. 안 됐나요. 자기 입이 자기입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저주하려고 기도하면 저주로 시작해서 뭐로 끝났다고 되어 있어요. 축복으로 끝났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자 발락이 발람에게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했죠 내가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어디서 나왔다라고 이야기하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저들은 뿌리부터 우상 숭배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틈만 나면 어디로 돌아가겠다고 자꾸 했어요. 애굽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죠 그리고 모세 목사님이 시내 산의 율법의 십계명을 받으러 갔을 때 또 뭐 만들었어요
금송하지 만들었죠 기억하셔야 될 건 단순하게 우상숭배는 절했다는 게 아니라 행음한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발람이 어떤 계책을 세웠냐면 여 사제들을 데려다가 음행을 하게 하고 그들과 결혼을 시켜 그들이 무너지게 하십시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데서 여자들이 발가벗고 춤을 추게 했고 실제로 남자들은 눈이 뒤집혀 그들과 가서 동침하며 행음하였어요. 실제로 성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2만 3천 명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교회가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세상과 타협하고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교회 안에 영적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말씀은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감동받는 시간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의 입술에서는 끊임없이 불평 불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설교를 비평할 것입니다. 설교자를 나무랄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더 좋은 설교를 갈급해하는 마음처럼 이야기할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입니다. 결국 내 마음 가운데 욕심은 가득하고 내 마음 가운데 죄가 가득한 것은 뒤로 하고 남을 지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발람의 교훈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내용을 보시면 조금 더 잘 이해되실 것입니다. 역사 서적입니다.
“역사가들은 콘스탄티 황제가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보고 그의 영민함을 감탄하고 있었다. 이교도의 상징과 날짜 여러 종교 의식들을 기독교 전통에 섞어버렸다. 태양신교와 기독교 양쪽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혼합 종교를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시면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한번 내용 보겠습니다.
“교회의 감독들은 이전에 희랍과 로마의 이방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존경과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던 종교 의식과 제도를 조금씩 고쳐서 기독교의 안으로 끌어들였다
태양 신전은 어마어마하게 컸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교회가 조금 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만들어야 돼요. 크게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들이 믿었던 사람들은 예수님만 믿었는데 이교도들과 태양 신도들은 뭘 믿었냐면 죽은 사람들을 믿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뭘 만들어내는 거예요. 베드로 상을 만들어내고 마리아 상을 만들어내고 순교한 사람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절하게 만들었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그들이 교회 와서 어색하지 않게 정치와 모든 환경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교도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자 곳곳에 태양 신전과 유사한 거대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교회마다. 여러 가지 그림들과 조각된 우상들로 단장함으로 외관상으로나 내면적으로 이교도들의 신전과 흡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발람의 교리입니다.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리가 지금까지 기독교의 안에 있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교리가 나오죠 무슨 교리인가요. 니골라당의 교리입니다. 이 내용은 저희가 사실 지난주에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며 자세하게 설명드렸었어요. 잠시 반복하고 넘어갑니다
게시록 2장 6절에 애배소 교회를 책망하시며 니골라당의 해위를 미워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니골라 당 일곱 제자 중에 한 명이라고 그랬죠 순수한 성령 충만함을 경험했던 사람이 자신이 교주가 되자 뭘 만들어버렸어요. 자기가 교주가 돼버렸어요. 그리고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죠 그 교리가 뭡니까 육체의 정욕과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없다. 없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세상에서 자꾸 손해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하나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지난 거예요. 1세대의 원로 장로님들이 순교하고 죽었어요
2세대 젊은 장로들이 교회에 왔는데 본인들의 삶은 이전의 선배들의 모습처럼 가난하고 싶지 않았어요. 세상에서 무시 받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 우리도 더 강력한 돈과 명예를 가지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존경할 것이다. 예수님을 더 잘 믿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교리를 만들자 그것이 버가모 시대에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 노란색 글씨 보겠습니다
“반복되는 진리의 실증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들은 옛 신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신기하게 놀라운 것들을 추구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교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게 뭐예요. 하나님을 한번 믿으면 어떻게 살아도 그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기독교에 있는 90% 교회가 믿고 있는 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하늘 가족들로 안디바와 같은 증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버가모교회의 혼합된 세상 속에 교회를 다니는 것에 만족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을 경험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 안디바의 정신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세우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왜 니골라당의 교훈을 가져와야만 했을까 교회 안에 여러 새로운 혼합된 교리들이 난무하기 시작하자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겠죠 그들을 무마시킬 수 있는 교리를 만들어 버렸어요. 이게 이제 우리 교단의 교리입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광신주의자입니다. 종말론자입니다. 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시고 신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의 중심 직책을 맡길 수 있도록 하십시오.
신실한 말씀의 소리를 내면 광신주의라는 이야기로 덮어버렸고 말씀대로 살자라고 이야기하면 종말론자라고 낙인찍어버렸던 시대 그 시대가 바로 버가모 교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들에게 칭찬하시고 권면하시는지를 살피며 오늘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뭐라고 하셨어요. 내 입에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근데 누구랑 싸우는 거예요. 예수님이 지금 누구랑 싸우신데요. 교회랑 싸우신대요
지금까지 예수님은 교회를 뭐 하시는 분이셨죠 지키시는 분이셨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예수님이 지금 뭐라고 말씀하셔요. 교회랑 뭐하겠다.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 그 혼합된 교리를 그대로 가지고 따라가면 그 암흑 시대를 계속해서 걸어가면 예수님이 누구랑 싸우시겠다는 거예요. 교회랑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권면의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만나 이야기 기억하시죠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긴 좀 특별한 만나가 나옵니다. 어떤 만나죠 감추어진 만남입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출 16장으로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죠 만나의 뜻이 무엇이냐면 이것이 뭐지라는 뜻이에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이 없는 것들이 하늘에서 어떻게 내리는 거예요. 비처럼 내리는 것입니다. 눈을 뜰 때마다. 뭐가 내려져 있어요. 아침 새벽에 일어나 그 만날을 거두지 않으면 그날은 군모했습니다
영적인 것이죠. 만나는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 만나는 언제 언제 내렸다고 되어 있죠 날마다라고 했어요. 근데 언제는 내리지 않았다고 되어 있죠 안식일은 내리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광야 생활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사라진 한 개 있었죠 분주하고 바쁠 때 가장 먼저 포기한 게 뭐냐 하면 신앙이었어요. 안식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통해 뭘 교육시키신 거예요. 엿세 날은 힘써 일 하지만 안식일을 거룩하여 지키라라고 하는 이 말씀을 살피시며
인자는 안식일이래도 뭐라고 그러셨어요. 주인이다라고 설명하신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버가모교회에 사건이 일어났죠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이 들어오며 안식일마저도 뭐로 바뀌고 일요일로 바뀌고 그다음에 뭐도 바뀌었어요. 둘째 계명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 교회 안에 우상이 가득해진 시대에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감추어진 만나를 먹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하늘 가족 여러분 지금 많은 성도들이 들을 설교가 없다라고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이시고 변하지 않으시며 실수하지 않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오늘도 만나야 우리는 버가모 시대를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않는 믿음의 발걸음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아침을 말씀으로 시작하십시오. 시시때때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왜요.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떻게 돼 있어요? 예수님이 감추어졌다고 그랬어요. 왜요. 세상에 많은 혼탁한 교리들과 많은 교리와 많은 이설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흰 돌을 줄 터인데
거기에 뭐가 있대요. 새 이름을 주겠답니다. 당시에 흰 돌과 검은 돌은 재판 때에 사용했습니다. 흰돌은 무죄를 상징했고 검은 돌은 유죄를 상징했어요. 그런데 지금 여기 흰돌을 준다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당시에 노예가 노예에서 완전히 풀려날 때 흰돌 위에 그는 이제 노예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새 이름을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우가 있었는데 열다섯 번 이상 승리한 사람들에게 이기는 증표로 주었던 것이 흰돌입니다. 믿음의 하늘 가족 여러분 우리가 신도를 가지기 위해 믿음의 흰돌을 가지기 위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전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감춰진 만나를 줏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하늘 가족 여러분 흰돌을 가진 주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진리 안에서 자유와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흰돌은 그 당시에 개개인에게만 주었어요. 감추어진 만난은 집단으로 내릴지라도 그것을 거두어가고 그것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개인적인 예수님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길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예수님 개인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습니다. 그 길을 마무리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하늘 가족 여러분
오늘 서머나와 버가모 시대의 상황과 설명을 들으시며 감추어진 만나를 먹으며 걸어가는 저와 우리 믿음의 하늘 가족들이 되길 바라며 오늘 저녁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