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처음 전라좌수사가 된 배경에는 선조가 있습니다.
선조는 일본의 동태가 이상해짐에 따라 전라,경상도 등에 뛰어난 무관을 일선 지휘관으로 보내기 위해 조정 대신에게 각자 추천하게 합니다.
이 때 이순신은 이산해와 정언신 두 대신에게 각각 추천을 받아 목록에 오릅니다.(이 때 유성룡의 의견은 기록에 없습니다.)
이 때가 선조 22년 1월입니다. 이후 7월 선조는 다시 한 번 남해 각 지역의 병,수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을 중용할 의향을 내비칩니다.
이후 선조 24년 2월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합니다. 하지만 사간원 등에서는 현감으로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은 이신순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를 철회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선조는 알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고 이순신이라면 능력이 충분하다며 이를 물리칩니다. 하지만 사간원은 다시 한 번 이순신의 경력이 짧기 때문에 현감에서 갑자기 수사로 고속 승진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를 반대하지만 선조는 끝내 이순신을 고집하였습니다.
이 때만해도 둘의 관계는 아주 좋았습니다. 선조가 이순신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유성룡 등 다른 대신들의 로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조는 일단 이순신을 믿고 중책을 맡겼습니다.
임진왜란 중기까지 이 둘의 관계는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임진년 초기 해전에서 연승을 하자 선조는 아주 기뻐하며 벼슬을 마구마구 올려 주었죠.
이 둘의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선 이후입니다.
이순신은 조선수군의 수가 적고 힘이 약한 관계로 한산도를 기점으로 적의 전라도 침입을 막는 정도의 소극적인 전술을 고집했고...
수군의 연전연승에 고무된 탓인지 선조는 조선수군의 위력을 과대평가하게 되었고 이순신이 대함대를 이끌고 적의 침략거점인 부산을 직접 공략하여 적의 후방을 흔들어 전쟁을 끝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전략상의 차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원균이 이 둘의 사이를 파고들은 것 같은 정황이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이순신 간의 관계는 아주 상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그의 일기에 노골적으로 원균을 깠고... 원균도 조정대신들에게 이순신을 음해하는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
조선 수군의 양대 세력인 전라좌수사와 경상우수사가 서로 상극이었으니 조정으로서도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일단 원균을 다른 곳으로 발령내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원균에게는 더욱 치욕스러웠는지... 이 후 이를 갈게 된 듯...
부산공략을 두고 이순신과 선조가 불화를 일으키자 원균은 선조가 원하는 부산 공략을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이에 선조는 더욱 원균 쪽으로 기울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카토 키요마사 도해라는 희대의 사기에 걸려든 선조는 마침내 폭발하여 이순신을 내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갈아치웁니다.
이후 원균은 자기가 보기에도 수군 단독으로는 직접 부산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선조와 권율의 독책에 자포자기하고 부산으로 공격 나갔다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날려 먹었습니다.
이렇듯 선조도 원균의 패전에 일말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권율에게 돌리고 권율이 무리하게 독촉했다며... 이번 패전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이라며 패전 책임을 회피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담을 사람이 필요하죠.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복직시킵니다. 패전 대책 회의에서 누굴 통제사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아무도 말 못하는 와중에 김명원과 병조판서 이항복이 이순신을 추천하였고 선조는 말 없이 따랐습니다. 별 수 있습니까...-_-;;;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복직시키는 교지에서...
"지난번에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하였던 것은 역시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라며... 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사실 왕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쪽팔리는 일이죠...)
이후에는 이순신에 대해서 그닥 딴지를 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뭐... 그렇다고 딱히 잘 대해 주지도 않았습니다만...
다만 이순신 전사 이후 내린 제문에...
"나는 그대를 버렸건만 그대는 나를 버러지 않았으니 이승저승 맺힌 원한 얼마나 슬픈손가.."
라며... 일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면을 보여줍니다....(악어새의 눈물일려나요?...)
약간 덧붙여서...
칠천량 이후 원균에 대해서...
사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는지 아닌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당시 참전했다가 조정에 정식으로 보고를 한 선전관 김식의 장계에 '원균과 같이 육지로 도망가다가 원균은 늙고 뚱뚱해서 제대로 뛰지 못해 나무 밑에 앉아 있는데 왜병 6~7명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 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 뒤로는 모른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권율 휘하 군관이 진주로 가고 있던 원균을 만나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는 보고서를 올립니다...-_-;;;
이 후 한참 동안 칠천량 해전의 패전 책임 소재를 두고 생존자, 전사자들 중 누구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에 대해 조정에서 논의가 계속 되었는데... 원균은 늘 생존 상태로 분류됩니다.(행방불명 상태죠...)
선조는 자신의 '원죄' 때문에 패전책임을 원균에게 몰아갈 때면 항상 원균을 두둔하며 변호하기 바빴죠.
이 후 원균이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칠천량 패전 후 1년 여가 지난 후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살아 있는 걸로 생각했지만... 1년이나 지났지만 안 나오자 그제야 죽었다고 여긴거죠.(칠천량 해전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장수들이 그 이후 꾸역 꾸역 살아서 돌아왔기에 원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과연 원균...그는 전사한 것인가... 아니면 이름을 바꾸고 초야에 숨어들어 촌로로 늙어 죽었는가... 그것은 역사의 수수께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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