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한국 선방의 대명사 문경 봉암사 주지
원광스님께 듣는다
봉암사 세계 명상 마을에 초대합니다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봉암사에서는 모든 스님들께서 인터뷰를 하실 수 없게 되어 있으나, 기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미주현대불교 불자님들을 위해서 주지 원광스님께서 특별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기자: 스님, 봉암사에서 인터뷰 하게 되어 고맙습니다. 여기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스님: 봉암사는 제가 20년 전에도 살았고. 7,8년 전에도 살았고, 지금 주지로 산지는 4년 됐습니다.
기자: 한국이 인터넷으로 세계 1위 국가이어서 전국 어디에나 인터넷이 뜨는데, 봉암사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 연결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주 고결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사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스님: 세상하고는 안 맞는 면이 있지만, 어차피 바깥 세상은 대부분 욕구의 세계로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세계라면, 불교는 그 욕구의 세계로만 살지 않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인터넷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에는 불교가 세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봉암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자답게 살고자 하는 것으로 세속적인 것을 가능한 차단하여 내면의 세계를 참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자: 봉암사는 신도님들도 안 오고, 제사도 안 지내고, 불공 기도도 안 하고, 관광객도 없는데, 어떻게 사시는지요?
스님: 그래서 우리나라 불자님들이 대단하십니다. 봉암사는 입시기도나 기와불사나 천도재나,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오직 수행만 하는데, 그것도 한 철에 백여분 스님들이 수행만 하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불자님들이 해주십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이 마치 기적 같아 고맙습니다. 봉암사 법당에는 불전함도 없음에도 불자님들이 이렇게 봉암사를 유지하도록 도움주시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자 하는 스님들의 뜻을 귀하게 여겨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몇 년 전 존 카밧진이 봉암사에 왔을 때 여기서 살기만 해도 저절로 도가 통할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수행만 하시는군요. 그리고 영국 심리학자도 와서 너무 감동적이어서 또 오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도량을 유지하시는 주지 스님의 역할도 중요하겠습니다.
스님: 대중스님들께서 이 곳에 사시는 동안 자발적으로 소임을 맡아 진행하는 곳은 아마 봉암사가 유일할 것입니다. 주지가 일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마다 대중공사로써 결정합니다. 소임도 그 철에 방부들인 스님들 가운데에서 자원하여 결정합니다. 그래서 소임들이 철마다 바뀌기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정신이 스님들의 일상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년 넘게 주지로 살고 있지만, 언제라도 다른 스님의 자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단지 제가 4년여를 계속 봉암사에 살아오면서 주지가 되었던 것일 뿐입니다.
기자: 이런 훌륭한 수행처를 비구 스님들만이 아니라, 비구니 스님이나, 재가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면서요? 지금은 비구스님들이 살고 계시지만,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될 때에도, 지금처럼 운영이 되는가요?
스님: 당연히 수행을 하러 오신 분들이 주인처럼 살아야지요. 그게 봉암사의 매력이기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죠. 주지스님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결정하기보다는, 대중들이 함께 의논해서 잘 사는 방식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수행처에서만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봉암사의 수행 방식과 화두 참선의 선불교를 보다 함양하기 위해서 여러 대중과 함께 수행한다는 곳을 마련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봉암사 입구에 ‘세계 명상 마을’이라는 팻말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여러 사람들이 와서 수행할 수 있겠군요.
스님: 봉암사에서는 핸드폰 사용 불가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도 아예 없습니다. 지금은 일반인들도 물론이고, 심지어 불자님들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방문하기도 쉽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비구 스님들이 아니면 누구도 함께 수행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명상 마을은 불자님, 또는 참선을 추구하는 누구라도 와서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봉암사의 세계 명상센터는 한국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어느 나라에서라도 간화선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간화선의 장점을 알리고, 이 방식을 통하여 간화선의 장점을 함께 나누는 회향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봉암사 수행처가 유지되는 데 많은 혜택들을 받아왔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세계 명상 센터를 통하여 간화선의 전달만이 아니라 회향하는 큰 뜻이 있습니다.
기자: 누구나 세계 명상 센터에 살면서 간화선을 배울 수 있습니까?
스님: 네, 그렇습니다. 일반인들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목적입니다.
기자: 언제부터 수행하러 올 수 있나요?
스님: 2021년도 가을이나 겨울 쯤에 예정입니다. 지금 사무실과 식당 등이 있는 1차 공사는 마무리 되었는데, 수행처인 2차 공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기자: 몇 사람이나 방부들일 수 있나요?
스님: 원래는 천 오백명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으로는 삼백 명 정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꽤 큰 센터네요, 스님?
스님: 네, 그렇습니다.
기자: 설계는 누가 했습니까?
스님: 미국의 토마스 할란 교수가 했습니다.
기자: 봉암사에서의 스님들의 일상 생활을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님: 스님들의 생활은 아주 단순합니다. 봉암사는 함께 수행하는 수행 처소가 지금은 세 군데입니다.
첫 번째는 성적당으로, 하루에 열 네시간 정진하는 곳이예요. 두 번째는 가장 큰 선방인 태고 선원으로 열 시간 정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스님들께서 자원봉사를 하시면서 소임을 보기 때문에 여덟 시간씩 정진하는 곳입니다. 자원 봉사는 상 차리기, 도량 청소 및 여러 가지 절 일, 그리고 스님들 화장실 뿐만 아니라 일반인 화장실 청소 등 절의 모든 일을 포함합니다.
기자: 약 20년 전에, 12살이었던 제 아들들이 미얀마 수행처에서 사미로 생활하면서 명상을 하는 중에 그곳에는 스님들이 수행만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이 수행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서울에 지내는 동안 뵙게 된 스님들을 통하여 주로 절 일 하시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왜 스님들이 수행을 안 하시느냐’라고 말하길래 봉암사에 전화 드려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20시간 넘게 수행하시는 분들이 계시다고, 어떤 스님께서 아이들만 데리고 그 선방을 잠깐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 참 고마웠습니다.
스님: 그 때, 저도 그곳에서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자면서 수행했습니다.
기자: 참 귀한 인연입니다. 그렇게 수행하실 때 건강은 어떠세요?
스님: 그 때는 젊었을 때라 해도 첫 번째 일주일 정도는 힘들었습니다. 열 두시에 눈 감고 새벽 두 시에 눈을 뜨면 일 초 정도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잠이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눈 뜨면 일어나야 되는데 숨이 탁 막혔어요. 그런데 일주일 지나기만 하면 또 견딜만 했어요. 그리고 차츰 더 나아져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대단한 힘이시네요. 그런데 영국 사람인 아잔 브람 스님께서 한국에 와 여러 절을 다니셨고 봉암사에도 오셨을 때, 제가 잠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의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너무 강렬하게 찾느라고, 현재의 상황이 곧 깨달음일 수 있다는 것을 놓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테라바다에서는 용맹정진 같은 것이 잘 없다고 합니다. 용맹정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용맹정진을 지금도 스님께서는 추천하십니까?
스님: 음. 용맹정진을 먼저 말하자면, 한 번 정도는 해 볼 필요는 있어요. 왜 그러냐면 몸이 매우 힘들 때에도 정진을 해낸다는 것은 몸의 힘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큰 깨달음이나 완전한 깨달음을 그 용맹정진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용맹정진 과정에 상황이 준비가 되면 그 나름의 깨달음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그리고 완전한 깨달음도 가능하겠지요.그리고 분명한 것은 정진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용맹정진 같은 부단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특히 간화선을 수행하는 것은 통찰과 함께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테라바다 식의 명상을 하는 데 있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라바다에서도 선정을 이루는 사마타 명상에서는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 또한 간화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간화선에서 화두를 든다는 것은 소위 오매불망이라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화두가 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용맹정진을 통해서 지속적인 화두를 드는 훈련을 한다는 것은 좋은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라면, 재가자도 물론이거니와 더욱이 출가 수행자들은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기 때문에, 수행에 매진한다는 것이 달리 말하면 깨달음에 목숨 걸듯이 보일 정도로 정진한다는 것은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출가를 했고, 정진하다가도 그런 마음이 새로워지고 유지되기도 하다가, 놓쳐지거나, 알면서도 실천되지 않는 그런 수행자의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수행 방식의 차이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깨달음을 목표한다는 것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도 있고, 또한 화두를 두는 것에도 화두 든 그 순간이 평화롭고 자유롭고 하기 때문에 화두를 듦으로 비롯된 현존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자: 명상은 하기 쉽고, 생활에 적용하기도 좋다.’라는 평가를 하는 면이 있습니다.그런데 ‘간화선은 하기도 어렵고, 생활에 적용하기도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 매우 실질적인 질문입니다. 저도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십 년간 화두를 들다가 제가 원하는 만큼 잘 된다고 판단이 들지 않아서 차라리 염불은 소리 내어 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에 반해, 화두를 들고 앉아 있어도 염염상속이 안 되면 공부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물 아홉살 쯤에 해 오던 정진이 잘 안 된다고 판단되어 이 정진에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고 무언가 재정립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으로 걸망 하나 짊어지고, 다른 나라들로 떠났습니다. 그때에 인연이 되었던 게, 미얀마인데. 그 때 당시에는 테라바다 명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았으나, 지금처럼 붐이 일어나진 않았는데, 다니다 보니까 여행자들이. 특히 서양 사람들이 명상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선을 하여 저도 참선을 해 왔는데, 미얀마의 테라바다 명상을 접하게 되면서 저도 한 달 동안을 테라바다 명상을 했습니다.
기자: 스님, 어느 센터에서 하셨습니까?
스님: 마하시 센터였습니다. 저는 한 달 수행하는 중에 테라바다 수행에 대해서 나름 정리가 되었습니다.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수행만이 최고라고 한다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달간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그 동안 간화선 해 왔던 수행 경험과 견주어보았을 때 오히려 간화선이 깊이 통찰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 한 달 수행을 마치고 떠나왔습니다.
기자: 이것은 제 경험입니다만, 저는 간화선 수행도 조금 하였고, 위빠사나 수행을 더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대상을 분명하게 끊임없이 알아차린다는 것은 간화선에서 화두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 제가 한 달 미얀마 수행처에 있는 동안, 그곳의 스님(사야도)들도 수행하는 시간 동안 졸기도 많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건, 얼마나 간절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준비되어 늘 실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간절함이 약해질 때는, 대상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워지고, 화두를 계속 드는 것도 어려워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간절함뿐만이 아니라, 수행하는 방식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자: 간화선이 너무 어렵다고들 하는데, 간화선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지요?
스님: 간화선은 사실 쉽습니다. 화두 참구를 함에 있어서 화두와 참구하는 내가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쉽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간화선에서는 어떤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바로 화두로 전환하기 때문에, 일치가 일어나며 그러므로 마지막에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로 됩니다. 우리가 ‘이 뭐꼬.’하면. 화두가 제일 처음에는 잘 안 될 때도 있으나. 그러나 잘 될 때도 있는데 그것은. ‘이’가 제대로 되면 ‘뭐꼬’까지 갈 필요도 없이 화두와 하나가 됩니다. ‘이’에 벌써 화두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스님.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왜 마스크 안 썼냐고 내리라고 했다고 할 경우에 기분이 나쁜 느낌이 있는 나, 코로나로 인해서 직업을 잃었거나 가게문을 닫거나 해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불안하고 먹고 살 걱정이 심한 나, 그리고 이것은 거의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나, 그런 나를 그 순간 순간마다 탐구하는 것이 살아있는 화두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 화두는 사구 화두가 있고, 활구 화두가 있습니다. 사구 화두라면 책을 통해서나 누가 전해주거나 하는 것이라 한다면, 활구 화두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존재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알고자 하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이 강렬하게 생겨지는 것을 활구 화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경험되는 행복도 특히 괴로움이나 공포 등에서 나는 누구일까? 생명은 무엇일까? 라는 걸로 연결이 된다면 진정 살아 있는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화두 참구할 때에 마음 자세라면, 깨달음이 가장 우선이겠지만, 이 깨닫고자 하는 마음 안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그 고통을 해결해주고 싶어하는 자비심이 바탕이 되고 이렇게 수행정진할 수 있게끔 도움 받고 공부하는 이 상황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정진할 때에 제대로 화두 참구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덧붙이자면,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 감성적인 것으로 이 둘이 합해질 때에 바른 수행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자: 살아 있는 화두 중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화두라 하더라도, 그 화두가 지금 이 순간에 의정으로 확고하게 의심이 든다면, 그 또한도 살아있는 화두이겠지요?
스님: 그렇습니다. 모든 게 존재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에. 그 물음이 확실할 때는 곧 화두입니다. 천 칠백 공안이 다 공부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핵심을 참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것을 삼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기자: 스님, 화두 하나 주십시오.
스님: 화두를 달라고 하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기자: 제게 이런 화두를 주시는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이 뭐꼬. (웃음)
"이 글을 읽으시는 미주현대불교 불자님들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라도 간화선 수행에 관심 있는 분들은 세계 명상 마을에 오셔서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경험하실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며 세계 명상 마을이 완성되었을 때, 언제라도 오셔서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소: 봉암사
닐짜: 2020년 11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