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스페인 완전정복
제12화 정열의 도시 세비야(Sevilla) -2019년 5월11일-
어제 져녁 늦게 세비야에 도착 호텔을 찾아 가는데 인터넷으로 대성당 가까운
4성급 유로스타스 뷰티크 호텔 (Eurostars Sevilla Buotiqui)에 예약을 하고

어제 밤 늦게 랜트 카로 도착하였으나 호텔로 들어 오는 길이 1차선도 안되는
좁은 길이라 잔땀을 흘리며 겨우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었다

구도심은 이슬람 지배시 적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길이 좁고 굴곡이 많아
도주하기에 용이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우린 아침부페를 푸짐하게 먹고 9시부터 예약된 세비야 워킹 투어를 시작하여였다

항금의 탑까지 걸어서 9시에 도착하니 마이리얼 가이드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세비야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이슬람의 지배시 수도로써 크게 발전하였고

1248년 페르난도 3세가 이슬람을 쫓아내고 스페인 그리스도 교도들에 의하여
크게 발전했으며 스페인의 신세계 탐험의 중심지로서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 도시였던
세비야는 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들어온 무역인들이 집시들의 춤에 함께 동요되면서 세비야는 화려하고
정열적인 플라멩코의 본고장이 되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주의 심장이되는 주도로써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도이다
스페인의 대표 화가 ‘벨라스케스’, ‘무리요’들은 이곳출신이며 〈세비야의 이발사〉와 〈카르멘〉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의 배경이 된 세비야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라고도 한다

주요수출품으로는 올리브 포도주 코르크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황금의 탑은 1220년 경 위세를 떨치던 이슬람인들이 과달키비르 강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들에게 통과세를 받기 위하여 12각형의 망루를 가진 탑을 건설하였는데
망루 끝부분을 황금으로 장식하였다고 하여 황금탑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세비야에는 건물 옥상에 입간판이 전연 보이지 않는데 오르지 보이는 곳은
과달키비르 강 건너편에 2개의 옥상 간판이 보였다
Cruz Campo 라는 맥주 회사와 Tio Fefe 라는 와인회사와 Diarjo de Sevilla라는
세비야 일간신문사 3곳만 옥상 간판을 설차할 수가 있다고 한다
Cruz Campo라는 맥주회사는 1904년 만들어진 세비야 특유의 맥주회사로
스페인에서 18% 이상을 소비하는 유명한 맥주라고 하며

1835년 마뉴엘 마리아 곤잘레스에 의하여 창립된 Tio Pepe 와인 회사는
말 사육과 포도주 그리고 훌라밍고로 유명한 안달루시아의 헤레스지방 외인으로
세리주가 유명하며 디저트용 으로 많이 제조한다고 한다

와인은 유명인들이 자기 사인을 하고 보관하고 있으며 스페인 왕실의 사인도 있어
스페인 왕실 행사 때에는여기서 공급한다고 한다

Diarjo de Sevilla는 세비야의 일간신문이라고 한다
이처름 세비야는 향토 사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광고도 통제하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우린 근처의 산텔모 궁(Paracio del San Telmo)으로 갔다

1682 년 콜 레지오 데 마리나 (Colegio de Marina)는 고아들과 선원들을 위한
학교로 건축하여 사용하다가 프랑스혁명 후 공작 부인 Infanta Luisa Fernanda
의소유가 되어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하다가 세비야 대학에 기증되었다고한다

1901년에는 세비야 대주교 Marcelo Spínola는 신학교로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1929년에는 세비야 시에 기증하여 자치 정부의 청사로도 사용한 궁전이라고 한다

메인 파사드의 꼭대기에는 1895년 Antonio Susillo가 조각 한 Sevillia의 유명 인사
12명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었다

미술가 벨라쿠에즈(Velazquez)와 무리요(Murillo)와 조각가 후안 미르틴
(Juan Martinez) 혁명가 로드리고 폰세(Rodrigo Ponce) 작가 루에다(Rueda)
시인 헤레나(Herrera)등이 세워져 있었다

스페인 광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관광객을 위하여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었었고
지금은 유명한 세비야 대학이 된 옛날의 연초 제조 공장 앞을 지나가게되었다

Royal Tobacco Factory 는 18 세기 석조 건물로 유럽의 최대 연초 공장이었다

스페인은 1492 년 아메리카 대륙에서 담배나무를 발견했으며 16세기초에
담배 제조공장이 세비야에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18세기에는 세비야의 모든
담배공장을 모아 스페인 왕실이 직접 유럽 최대 담배 공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1725년 이그나시오 사라(Ignacio Sala)는 185 x 147 메타의 크기로 공장을 설계하여
1728년부터 건축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거리를 행단하여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거리의 가로수인 오랜지 나무에 오랜지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고

가로수 나무의 자주빛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광장 입구에는 이런 아침인데도 인파가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893년에 마리아 루이사
공주의 소유인 산 텔모 궁전과 정원의 일부를 세비야 시가 기증받은 대지 위에
건설된 것이며 스페인 광장 문화의 중심 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공원이라고 한다

본체의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대청적인 건물로 만들어
졌으며

건축물 양쪽 끝에는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을 본 따 만든 탑이 아름답게 서 있으며

반원으로 만들어 진 일층 앞에는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역사적인
그림등을 타일로 만들어 그들의 빛나는 역사를 영구히 보전하고 있었다

광장은 사방으로 하자드로 둘러 쌓여 있어 2개의 다리를 건너면 본관으로 들어갈
수 가 있었다

하자드의 냇물에 달빛이 피치는 날 보트 놀이도 하면서 젊은 연인들의 테이트
코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1층 건물 앞에 58개의 타일 장식물이 나타 나는데 이것이
각 도시의 역사를 기록한 타일 전시관이다

우린 바르셀로나 방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하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콜럼버스가 1494년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고 귀국하여
페르 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의 환영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라나다(Granada)는 이슬람 술탄왕이 그라나다를 포기하면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항복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코르도바(Cordoba)는 1236년 이슬람의 왕이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에게
항복하고 코르도바 성을 바치는 모습이라고 한다

카디스는 대서양으로 나가는 스페인의 주요 항구이며 최대 무역항으로 언제나
여러 나라 무역상들이 분비고 외국의 문화와 문물이 꽃피든 시기의 궁정의
모습이라고 한다

후엘바의 팔로스항에서 1493년 8월3일 이사벨라 여왕과 주교와 콜럼버스의
친한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는 골럼버스 선단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후엘바(Huelva)는 카디스항 근처 대서양에 접해있는 스페인의 항구도시이다
1257년 카스티야의 알폰소 5세가 이슬람을 물리치고 그리스도교 인 스페인의
왕국이되었다

1451년 이테리에서 태여난 콜럼버스는 어릴때부터 천문학자 토스카넬리의
지구 구형설을 믿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 영향을 받아 동방의 황금을
찾아 서쪽으로만 항해하면 향료와 황금의 나라 인도에 도달할 것을 믿고
항해 계획을 세웠다

당시 사기꾼 거짓말 쟁이로 통하든 콜럼버스의 요청을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는 당연히 거절하였으며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부탁하였는데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후엘바의 주교와 콜럼버스의 친구가 겨우 설득하여
이사벨라 여왕의 허락을 받았다고한다
당시 이사벨라 여왕도 재정적으로 어려워 왕관을 팔아 1척의 배만 지원하였고
남어지 2척은 친구의 도움으로 구입하게 되어 1493년 8월 3일 판타호,니나호.
산타마리아호 등 3척과 죄인 출신 선원 160명으로 구성하여 후엘바(Huelva)의
팔로스(Palos)항에서 여왕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였다

카나리아 군도를 거쳐 70여일 만인10월 18일 서인도 제도의 한 섬을 발견하고
이름을 '성스러운 구세주'라는 뜻의 산 살바도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가 아니기 때문에 향료와 황금은 구하지 못하였으나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고추 담배등 가지고 와서 풍부한 식료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게기가
되었다고 한다
2,3차 항해에서도 쿠바 멕시코등을 발견하였으나 죽을 때 까지 그가 발견한곳이
계속 인도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한다

이태리 피렌체 출신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99년 남미의 베네수엘라,
1501년 브라질을 탐험하게 되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따 현재의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이름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 맞은편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는 아름다운 안토니오 발레 연구소가
있었다 Antonio Ruiz Soler (1921~ 1996년)는 스페인의 제일의 플라멩코 무용가
이고 그의 파터너 Rosario와 함께 스페인의 최고의 안무가 및 무용 감독으로
유명하며 크라식 스타일의 안무에도 뛰어 났으며 마드리드와 세비야에도 그의
무용 연구소를 만들어 후학을 키웠왔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가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었고

여유있는 걸음걸이가 여행객 특권인 양 우리들은 여유롭게 걸으며 관광을 줄겼다

게속 세비야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