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한겨레출판, 2003.
‘박민규는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 싫어했다.’로 시작되는 작가소개의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보다 먹고살기가 백 배 중요하다고 8년 회사생활을 했다. 불현듯,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썼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그의 퍼스트 레이티. 첫 소설이다. 그의 이력답게 제목도 특이하다.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고, 단편집『카스테라』, 노년의 공허를 다룬『누런 강 배 한 척』, 『죽은 왕녀녀를 위한 파반느』등 다수의 작품을 썼다. 자신을 ‘무규칙 이종격투기 문장가’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형식파괴, 재치발랄, 유머작렬, 사회풍자를 담아내며 이 시대의 ‘루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창단하며 생긴 인천소속의 구단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인천에 사는 주인공은 당연히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 되어 응원한다. 프로야구를 응원하는 주인공은 번번이 좌절한다. 불행하게도 삼미슈퍼스타즈는 체약체팀의 성적을 거둔다. 응원하는 구단이 체하위라면 응원하는 자도 똑같이 루저가 된다. 삼미팀의 선수들은 이름들이 특이하다. 금광옥, 인호봉, 감사용, 장명부, 정구선, 정구왕, 김바위 등(나중에 표절시비가 붙은 부분이다.p.41-42) 박민규는 삼미라는 야구단을 통해 프로와 루저를 비교하고 있다. 원래 야구는 야구였다. 그런데 미국의 문화가 수입되면서 ‘프로’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 ‘프로’와 ‘섹시’라는 단어가 첨가되면서 삶은 고달프기 시작한다. 야구도 ‘프로야구’가 되야하고, 축구도 ‘프로축구’가 되어 버린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산업자본과 연결되면서 순위를 매기고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무진장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의 삶의 표본이다.
6위 삼미슈퍼스타즈 :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스: 결국 러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p.126)
작가는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 소설은 재치, 유쾌. 유머, 흥미롭게 끝까지 사수한다. 자칫 꼴지들의 찌질함이 비범함으로 보이는 것은 박민규의 작가적 재능이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매일매일 경쟁하고 점수를 따지고, 뛰고 던지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 아웃, 홈런, 안타, 방출, 영입, 훈련 등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실로 냉엄한 강자만이 프로의 세계에 살아남는 현실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란 구호대신 ’어린이에겐 경쟁을! 젊은이에겐 저 많은 일을!(p.243) 이란 작가의 사회비판에 부끄럽지만 수긍하게 되고 만다.
주인공 소년은 가입비 5천원을 내고 첫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의 자랑스런 회원이 된다. 삼미가 프로야구의 최하팀도 모자라 깍두기 신세가 된 모습을 보며 소년은 야망대신 슈퍼맨이 그려있는 야구잠바를 벗는 굴욕을 맛본다. 소년은 세상이 요구하는 프로가 되기 위해 이 악물고 전교1등, 최고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25평 강남 아파트를 받고 프로에 골인한다.
저자는 소속이 삶을 바꾼다는 것을 증명한다. 소년이 전철 안에서 조롱을 받는 것은 삼미 슈퍼스타즈 잠바를 입고 있기 때문이고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 조부장에게 굽실거리는 이유는 삼류대학에 나왔기 때문이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소속이 인간이 거주할 지층을 바꾸는 것이다(p.130).
1998년 IMF가 터지고 소속과 지층이 마주 흔들리고 붕괴되어 버렸다. 사실, 인간은 평등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바쁜 생활로 아내와 살뜰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아내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매일 5시간 이상을 자지 못하고 일했지만 대기업에서 그는 퇴출당한다. 그의 삶은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친구 조성훈은 그에게 이제야 기회가 온 것이라고 한다.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다. 끝장이라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투 스트라이크 포볼! 그러니 진루해!”(p.235)라고 말한다. 다시 그는 재구성된다. 재구성 된 사회, 재구성 된 지구, 재구성 삶은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빈둥거리고 느리고 잠을 푹자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집도 줄이고 차도 팔고 남양주 한적한 집을 얻어 살기 시작한다. 프로의 삶에 지금껏 속아왔다. 조성훈과 주인공은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첫 팬클럽은 다시 마지막 팬클럽 회원으로 우리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 필요 이상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p279).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잠깐 멈추고 하늘 한 번 쳐다보자. 우리는 무얼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 잠깐 쉬자. 책을 덮고 잠깐만, 잠깐만 삼천포로 빠져 살아보자. 텅 빈 야구장처럼 잠깐만말이다. 현대인은 바쁘다. 무엇가에 착취당해 살아왔다. 조성훈은 우유배달을 하고 하루 3시간만 일해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머지 21시간을 자유롭게 쓴다. 가열된 삶에서 한발짝 나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아찾기라로 말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삶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소설이다.
<서평-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