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치지리/홍천에서 주호를 만나다(8)마지막 회
주호의 동창들에 대한 궁금증이야 어디 내게 한하랴. 오십년의 성상들이 하나하나 새로울 것인데, 이 점은 내게도 일반이라.
다음엔 따로 조용히 시간 내어 문학가로 성공한 홍천의 토박이이자 무궁화 지킴이 돌박사(석도익) 이야기를 그의 자술을 통해 들어보아야 겠다. 지금껏 남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으니.
주호가 밥값을 한다.
48회 동창 4-4반 반창생들의 아지트로 별장을 유감없이 제공하고 온갖 음식에 궂은 일 까지 차청 하여 수고하는 준선이의 오늘 배려가 고마웠는가 보다. 아무려나 그럴 만하다.
돼지 뼈 콩비지 찌개를 어디서 맛보랴, 언감 미국에서 보암도 못 할 음식이지만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싱싱한 알타리 총각무는 적당히 익어 군침을 돋우고 청고추 튀각은 요즘 세상에 찾아 먹기도 드문 메뉴.
주호가 은근히 준선이를 다른 쪽으로 추긴다.
“준선이는 문학적인 향기가 있어” 하자 내가 받는다.
“아무렴, 쟤는 그 때도 집에서 서점을 해서 그런지,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문학적인데가 있던 애 였는데, 우리보다 준선이가 문학가가 되어야 하는건데 실은,”하자 은근히 싫은 눈치는 아닌지 부정은 않고
“난 그런 거 좋아하긴 해, 도익이가 문학하고 성용이도 글 잘 쓰고 하는 거 참 좋은데, 그냥 좋아하는데 그치지 그 이상은 못 했어. 그냥 좋아 하는거지 뭐” 하고 겸손을 떤다.
내가 “준선이 같은 사람이 우리 글 쓰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거야. 준선이 처럼 옆에서 인정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나 도익이가 암만 글 잘 써서 뻐긴들 소용 있겠니? 중요한건 일등으로 골인하는 주자도 중요하지만 옆에서 박수쳐 주는 응원자가 더 중요한 거야. 막말로 내가 아무리 서예 대가(大家)고 도익이가 아무리 문학에 대가라 한들 괌람자 없고 독자가 없는 마당에서야 작가가 무슨 존재 가치가 있겠니? 안 그래?” 하자 모드 그럴 것이라 내 말에 동참하는데
주호의 핵심은 다른데 있었다.
“내가 이년 전 왔을 때 여기식탁엔 주방이 이었고 지금처럼 저 벽에 저런 데코레이션이 없었는데 오늘 와 보니 아주 센스 만점이야. 시골스런 소재를 가지고도 참 분위기 있게 연출했네....”
사실 준선의의 식탁 벽면은 나도 찬찬히 느끼지 못한 분위기를 주호가 먼저 느낀 듯하다. 솔방울과 잣 방울을 따다 하얀 벽에 붙인 것이 고급스러움을 벋어나 소박하면서도 정치(精致)한 감정을 살려내고 있었다.
그 뿐아니라 방 여기 저기 널린 소도구 하며 창가의 소담스러운 식물군은 그의 문학은 아니지만 문학적 정서를 읽기에 충분했다.
주호는 그 점을 칭찬했다.
“준선이 아버지가 서점을 했지. 그래서 홍천에 문학하는 회원 L씨가 쟤네 집에서 책을 빌려다 봤는데 그 때 집안이 어려워 몰래 가져다 보고 가져오곤 했다지 아마” 하고 내가 서점 스토리를 말하자 도익이가 의아해 한다.
“L씨는 그런 일이 없을 껄” 한다. 그러자 준선이가 나서서
“아 그거, 그런게 아니야, 그리고 L씨가 아니고 K씨야, 그 분이 그 시절에 집이 가난해서 책은 보고 싶은데 돈은 없고 하니까 서점에 와서 보고는 본데까지 표시해 놓고는 다른 날 와서 또 보고가곤 했어” 하고 바로 잡는다.
실은 나도 초교를 졸업하고 준선네 가게를 여러 번 책 사러 들락거렸는데 그때는 난 그 서점이 준선네 가게인줄은 몰랐다.
벌써 벽시계 네 시 절반을 가리킨다.
모두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들어 일어설 차비를 채린다.
나도 원주 사시는 매형의 대장 수술 관계로 들려 봐 아야 할 이유가 있어 오늘내로 원주를 들러 가자면 시간이 바트다.
바로 눈앞에 쳐다보이는 등성이 산이 홍천의 진산 공작산으로 오르는 능선 중 하나다. 여기는 오후 다섯 시면 요즘 때에도 저녁임을 직감케 하는 일기 현상이 보일 정도로 산간벽지이다.
모두 일어나 후일을 기약하며 마당을 나오니 해는 촘촘한 등성 떡갈나무 사이에 걸렸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석양의 노을빛이 움직일 때 마다 눈부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