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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8:39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 있을까. 누구나 바람을 갖고 삽니다. 원하는 것에 길을 내고 바라는 것을 따라 길을 걷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바라느냐가 어떻게 사느냐가 됩니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 빌라도가 바라는 것, 예수께서 거려는 것이 다 제 각각입니다. 어느 바람을 따라 하늘이 열릴까. 공주야!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다.
Is there a life that you don't want? Everyone lives with the wind. They make their way to what they want and follow what they want. So, what they want is how they live. What the Jews want, what the Pilate wants, and what the Jesus wants are each of me. What the wind will follow to open the sky. Princess! Vilado tries to let Jesus go, but the Jews try to crucify him. In the process, controversy arises over the identity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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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인간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롱 속에 예수님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조롱을 통해 드러나는 역설적 진리다. 무죄한 예수를 풀어주고 유대인들의 반발도 잠재우려는 빌라도의 대안은 유월절에 죄수 한 명을 특사로 풀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새벽부터 예수를 자신에게 넘긴 유대인들에게 공정을 기대했다니, 빌라도가 너무 순진했다. 종교 권력자들에게 매수된 유대인들은 예수가 아닌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한다.
Ignorant humans mock Jesus, but ironically, the mockery contains the truth about him. It is a paradoxical truth that is revealed through mockery. Bilado's alternative to free innocent Jesus and quell Jewish opposition was to free a prisoner as an envoy on Passover. However, he was too naive to expect fairness from the Jews who handed over Jesus to him from this dawn. Jews who were bribed by religious leaders demand Baraba's release, no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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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선한 목자 예수 대신에 강도 바라바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 인자 예수 대신에 아버지의 아들(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 인자가 이런 죄인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실 것임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예수를 살리기 위한 빌라도의 마지막 안간 힘은 예수 희롱이다. 채찍으로 때린 후 유대인의 왕을 떠올리는 가시관, 자색 옷, 인사 등을 통해 한껏 조롱한 후 그 참담한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내놓고 이래도 꼭 죽여야 할 위험인물로 보이느냐고 묻는다.
They demand the release of the father's son (Baraba) instead of Jesus, their good shepherd. They demand the release of the father's son (Baraba) instead of Jesus, the son of God. It shows that the Son of God will die on behalf of these sinners. The last power of the Pilate to calm the anger of the Jews and save Jesus is the travesty of Jesus. After hitting him with a whip, he mocked him through a crown of thorns, purple clothes, and greetings that remind him of the king of the Jews, and asked if he still seems to be a danger to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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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조롱 과정에서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참여하기 시작하셨고, 영광의 왕이 되기 시작하셨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과소평가 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잔인했고 생각보다 집요했다. 수치와 희롱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가장 잔혹한 로마의 형벌인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도록 요구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정이 아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만들어 자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해 어느 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도 상관없는 자들이었다.
Ironically, however, during the mockery process, Jesus had already begun to participate in the cross and become the king of glory. Bilado underestimated the Jews. They were more cruel than they thought and more persistent than they thought. Shame and harassment alone were not enough to satisfy them, and they demanded that Jesus be nailed to the cross, the most brutal Roman punishment. It is not fair what matters to them. It is only to make Jesus the cursed of God and promote his own stability. They did not care if one life died unfairly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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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하나님 종교의 패악을 보라. 유대인들은 주저하는 빌라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빌라도가 가이사에게 반역한 예수를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되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왕은 예수가 아니라 가이사라고 충성을 맹세 한다. 자신들의 왕이 하나님이 아니라 가이사라니, 예수를 신성모독 죄로 죽이려던 자들이 스스로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자가당착이 낳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래서 무얼 바라는 것이냐는 물음 앞에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사는가?
Look at the evil of God's religion that left God. The Jews give the hesitant Pilate one last blow. It is said that when Pilate releases Jesus who rebelled against Gaisa, he has given up being a faithful servant of Gaisa. And they pledge allegiance to Gaisa, not to Jesus. Those who tried to kill Jesus for blasphemy are blasphemy on their own because their king is not God but Gaisa. What are the consequences of the Jews' self destruction? So, what answer do you prepare and live in front of the question of what do you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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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두 번째 심문(18:39-19:7)
a.계속되는 유대인의 요구:18:39-40
b.계속되는 빌라도의 심문:19:1-7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세 번째 심문(8-12)
a.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빌라도:8-10
b.하늘의 권위를 드러내시는 예수님:11-12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선고(13-16)
a.예수님을 왕으로 내세우는 빌라도:13-14
b.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는 빌라도: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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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면(39a)
내가 너희에게(39b)
한 사람을 놓아 주는(39c)
전례가 있으니(39d)
그러면 너희는(39e)
내가 유대인의 왕을(39f)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39g)
원하느냐 하니(3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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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또 소리 질러(40a)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40b)
바라바라 하니(40c)
바라바는 강도러라(4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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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빌라도가(1a)
예수를 데려다가(1b)
채찍질하더라(1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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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들이(2a)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2b)
그의 머리에 씌우고(2c)
자색 옷을 입히고(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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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와서 가로되(3a)
유대인의 왕이여(3b)
평안할 찌어다 하며(3c)
손바닥으로 때리더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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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4a)
다시 밖에 나가(4b)
말하되 보라(4c)
이 사람을 데리고(4d)
너희에게 나오나니(4e)
이는 내가(4f)
그에게서 아무 죄도(4g)
찾지 못한 것을(4h)
너희로 알게 하려(4i)
함이라. 하더라(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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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5a)
가시 면류관을 쓰고(5b)
자색 옷을 입고(5c)
나오시니(5d)
빌라도가(5e)
저희에게 말하되(5f)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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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6a)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6b)
가로되 십자가에(6c)
못 박게 하소서(6d)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6e)
하는지라(6f)
빌라도가 가로되(6g)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6h)
십자가에 못 박으라(6i)
나는 그에게서(6k)
죄를 찾지 못하노라(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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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대답하되(7a)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7b)
그 법대로 하면(7c)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7d)
저가 자기를(7e)
하나님 아들이라(7f)
함이나이다(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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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8a)
이 말을 듣고(8b)
더욱 두려워하여(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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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정에 들어가서(9a)
예수께 말하되(9b)
너는 어디로 서냐 하되(9c)
예수께서(9d)
대답하여 주지(9e)
아니하시는지라(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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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가로되(10a)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10b)
내가 너를(10c)
놓을 권세도 있고(10d)
십자가에 못 박을(10e)
권세도 있는 줄(10f)
알지 못하느냐(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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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시되(11a)
위에서 주지(11b)
아니하셨더라면(11c)
나를 해할(11d)
권세가 없었으리니(11e)
그러므로 나를(11f)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11g)
더 크니라 하시니(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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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므로 빌라도가(12a)
예수를(12b)
놓으려고 힘썼으나(12c)
유대인들이(12d)
소리 질러 가로되(12e)
이 사람을 놓으면(12f)
가이사의 충신이(12g)
아니나이다(12h)
무릇 자기를(12i)
왕이라 하는 자는(12j)
가이사를 반역하는(12k)
것이나이다(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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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13a)
예수를 끌고 나와서(13b)
박석(히브리말로 가바다)이란(13c)
곳에서(13d)
재판 석에 앉았더라(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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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14a)
유월절의 예비일이요(14b)
때는 제 육시라(14c)
빌라도가(14d)
유대인들에게 이르되(14e)
보라 너희 왕이로다(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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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소리 지르되(15a)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15b)
저를 십자가에(15c)
못 박게 하소서(15d)
빌라도가 가로되(15e)
내가 너희 왕을(15f)
십자가에 못 박으랴(15g)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1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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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 외에는(15i)
우리에게(15k)
왕이 없나이다. 하니(1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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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를(16a)
십자가에 못 박히게(16b)
저희에게(16c)
넘겨 주니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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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석방을 요구하는 유대인들_Jews Demanding the Release of Baraba
예수를 희롱하고 무죄 의견을 내는 빌라도_And Bill, who teases Jesus and pleads not guilty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유대인들_Jews demanding crucifixion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 빌라도_And Bill, who gave Jesus to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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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인간들이 예수님을 조롱하지만 심지어 그 조롱도 예수님이 진리이심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주님의 헤세드를 찬양하나이다. 진리를 몰라서 진리의 왕을 못 박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용서 하옵소서. 비 진리의 무자비한 웅변을 침묵으로 수용하셨던 주님, 이참에 제 얼룩진 과거가 모두 청산 되게 하옵소서.
Ignorant humans mock Jesus, but even the mockery reveals that Jesus is the truth. Praise be to the Lord's Heed. Forgive the irony of history that nails the king of truth without knowing the truth. May all my stained past be cleansed at this time, O Lord, who has accepted in silence the ruthless eloquence of non-truth.
2026.4.1.wed.Clay
신학 비평//
이 글은 요한복음 18:39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드러나는 진리의 역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단순한 본문 해설을 넘어, 이 글은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본문을 꿰뚫는 신학적 핵심이다. “무엇을 바라느냐가 어떻게 사느냐가 된다. 이 통찰은 성경적으로도 깊은 근거를 가진다.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는 존재다. 요한복음의 장면에서 유대인들은 ‘질서와 종교 권력’을 원했고, 빌라도는 ‘정치적 안정’을 원했으며,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셨다. 세 가지 욕망이 충돌한다. 그리고 이 충돌 속에서 십자가가 결정된다.
1) 바라바의 선택—인간의 본질적 전도
본문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이것이다. <예수 대신 바라바> 이 선택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질적 선택 구조다. 생명 대신 폭력/진리 대신 안전/하나님 대신 체제 특히 글이 포착한 통찰은 매우 날카롭다. “하나님의 아들 대신 아버지의 아들(바라바)” 여기에는 깊은 아이러니가 있다. 인간은 늘 “가짜 구원자”를 선택한다
2) 조롱의 역설—계시로 드러나는 진리
이 글의 신학적 강점은 “조롱”에 대한 해석이다. 가시관-자색 옷-유대인의 왕이여! 이 모든 것은 조롱이다. 그러나 동시에 진리의 선언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신학이다. 사람들은 조롱하지만 하나님은 그 조롱을 통해 왕 되심을 드러내신다. 즉, 계시는 언제나 역설적 방식으로 온다.
3) 빌라도의 비극—진리를 알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
빌라도는 이 이야기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예수의 무죄를 안다. 그는 예수를 놓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행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비극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이 말은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다. 인간의 권력은 제한적이며, 궁극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빌라도는 “알면서도 넘긴 자”다.
4) 종교의 타락—“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
이 장면은 신학적으로 가장 충격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가이사를 왕으로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위선이 아니라 종교의 붕괴다. 글이 정확히 지적하듯 “하나님 종교가 하나님을 버린 순간” 이 장면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신앙은 유지하지만 실제 삶의 왕은 돈, 권력, 안전이 아닌가.
5) 침묵의 신학—말하지 않으시는 예수
예수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신다. 이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완전한 순종의 표현이다. 변명하지 않는다/정당화하지 않는다/스스로를 방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길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 침묵은 “말보다 더 강한 계시”다.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다음 세 가지다. ① 욕망의 문제를 신학 중심으로 끌어올림...“무엇을 원하느냐”를 구원의 문제로 확장 ② 역설의 신학을 정확히 포착...조롱 속의 왕, 패배 속의 승리 ③ 역사와 현재를 연결...유대인의 선택을 오늘의 신앙으로 확장, 십자가는 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 자리다. 예수인가, 바라바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