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도깨비시장
꼬리 치며 달아나도 잡지 못할 뒷덜미
은신하기 두려운 광장을 비껴 지나
변두리 수구레 국밥 만판 핥는 오일장
허구한 날 드나들던 뒤꿈치도 닳았는지
한숨 곤히 자는 사이 좌판에 남은 흥정
떨이는 농간을 부린 바람잡이 몫이다
십이리 할매 이방 아지매 불그레한 웃음
저물녘 노을처럼 물드는 백년장터
동여맨 전대를 풀며 허리춤을 추킨다
내게 섬이 생겼다
어쩌면 저 섬을 가질 수도 있겠다
여러 해 눈여겨봐도 찾는 이 하나 없는
그 안이 너무 궁금해 정박한 배 타려 한다
빈 섬을 채우려는 요사이 들떠 있다
까다로운 법 따위 모르는 건 다행한 일
바다를 가로지른 생각 이미 섬에 닿았다
더불어 지낼 사람 덩달아 따라오면
나무와 새 풀꽃은 그 손에 맡기리라
지켜줄 짐승도 몇 마리 수풀에 풀어야지
나달나달 분 단위로 쪼개어 사는 나날
자질구레한 마음의 짐 뭍에다 벗어두고
어서 와 정히 쉬라며 저 섬이 날 부른다
저만치 가고 이만치 오려고
번호를 지우려다 얼굴 한 번 더 본다
한때 따뜻했으나 지상에 없는 사람
손가락 들었다 놓았다 들킨 듯 미안하다
허공에 다시 개통할 이것 하나쯤 놔두자
길들인 암호처럼 서로의 단서로 삼아
빗소리 귀청을 울리면 뛰어나가 받지 뭐
-《대구, 시조의 숲》 2022년
카페 게시글
시조 작품
백년도깨비시장/ 내게 섬이 생겼다/ 저만치 가고 이만치 오려고/ 이숙경 시인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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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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