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우수이다. 더는 참지 못하고 망울을 틔운 매화가지 위로 벌써 볕살이 융융하다. 긴 명절 연휴에도 출입을 삼간 터라 성큼 다가온 봄에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큰일 났다. 어울리지 않게 바람이 났나 보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발이 자꾸 들썩인다. 하지만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터라 마음 한 켠에 못내 조심스럽다. 해서 잠깐 짬을 내어 가까운 선몽대를 찾아 거닐어보기로 했다.
나지막하고 친숙한, 그럼에도 속기 없이 담연한 산줄기. 그 사이로 아기자기 돌아 흐르는 맑은 강물, 이름 모를 물새와 희고 넓은 모래톱. 경북 내성천의 모습이다. 봉화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영주를 지나며 품을 키워 예천 삼강 주막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동안 굽이굽이 수채화 같은 풍경을 빚어놓았다. 백사장과 물의 절묘한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무섬마을이나 회룡포 등이 모두 내성천에 자리한 승경이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예천 호명면 백송마을의 선몽대이다.
깨끗하고 호젓한 내성천 굽이의 아늑한 솔숲 아래, 비밀한 작은 대를 세운 사람은 퇴계선생의 제자이자 종손자인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이다. 내외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경산현감(慶山縣監)을 지낼 무렵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가 독서당 삼아 지은 조촐한 대가 바로 선몽대인데, 이렇게 이름을 지은 데에는 약간의 이야기가 있다.
퇴계 선생은 어느 날 밤 꿈에 신선이 되어 바람을 타고 선경을 유람하였다. 꿈에서 노닌 그 선경이 너무 아름다워 퇴계는 늘 잊지 못하고 그곳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에 살던 제자 이열도가 내성천 가에 대를 축조하고 그 일대의 풍경을 일러주며 대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이열도가 묘사하는 광경을 들은 퇴계는 깜짝 놀랐다. 그곳이 바로 자신이 꿈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닐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선몽대’ 세 글자를 손수 써서 보내고 아울러 시 한 수를 함께 보내주었다.
사연을 기록하여 전한 이는 이열도의 사위 조우인이다. 예천 개포에서 태어나 삼강 아래 매호에서 살았던 조우인 역시 선몽대를 사랑하여 자주 찾았는데, 그는 퇴계를 유선(儒仙)이요 지인(至人)이라 일컬으며 은근히 공자에 비겼다. 신선이나 지인은 어떤 사람인가.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조우인은 말한다. 선몽대라는 이름에는 결국 ‘꿈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닌 선경’이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지만 ‘마음이 맑고 욕심 없는 사람이 신선’이라는 깨우침의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여행은, 많은 경우 휴식과 힐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 욕망과 허세로 뒤범벅이 되어 있기 일쑤다. 남들보다 좋은 경치, 좋은 맛집을 찾아 경쟁하듯이 몰려다니고 또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남들에게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그 사이 어느 갈피에서 욜로와 소확행이라는 말이 그 자극적인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고 허세를 비호해준다. 욕망과 허세가 가시고 난 자리에는 피로감 가득한 갈증만 남는다.
선몽대는 이런 요란뻑적지근한 여행에 피로감을 느낄 때 찾기 좋은 곳이다.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기이한 절경은 이곳에 없다. 우리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순박한 시골동네이다. 다만 듬직하고 점잖은 바위가 기품있는 백송 숲과 어울려 서 있고, 그 아래로 해정한 모래톱을 품은 내성천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곳이야말로 잠시나마 모든 욕심을 잊고 신선이 되어 한적하게 거닐 수 있는 진짜 선경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꼭 퇴계만이 신선이고 이곳만이 선몽대일 필요는 없다. 맑은 마음으로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신선이요, 거니는 동안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선몽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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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신선일 수 있고, 그 어디든 선몽대가 될 것이란 마지막 표현이 마음 속에 가깝게 느켜지네요. 과욕이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