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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왕의 교만 10가지 특징
(행 13:21-22)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다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바나바와 바울이 비시디아 지방에 있는 안디옥이라는 도시로 갔다. 안식일이 되어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려고 회당으로 갔을 때였다. 보통 때처럼 모세의 책과 예언서 낭독을 끝낸 예배위원들이 두 사람에게 부탁하였다. ‘형제들이여, 혹시 우리에게 가르칠 말씀이 있거든 나오셔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바울이 일어나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한 후에 설교를 시작하였다(행 13:13-16). 본문의 말씀은 그 중의 한 부분이다.
(행 13:17-22)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가려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국 땅 애굽에서 이방인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들을 높이셔서 영광스럽게 구출해 주셨습니다. 18) 그리고 광야를 방황하던 40년 동안에도 그들을 양육하여 주셨습니다. 19-20)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ㄴ) 가나안 일곱 민족을 멸망시키시고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셔서 약 450년 동안이나 사사들을 세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언자 사무엘 때까지 이르렀습니다. 21) 이때 백성들이 왕을 세워 주실 것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셔서 40년 동안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22) 그리고 그를 물러나게 하신 뒤에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비운의 인물을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사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세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국의 초대왕으로 등극하였지만 비참한 생애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의 악한 조짐은 왕이 된 지 2년만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이 튼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시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그의 나이가 62세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의 명령에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는 왕을 세운 것을 매우 후회하신다고 하셨다(삼상 15:11). 그리고 그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18년 동안이나 더 왕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이는 ‘그가 혹시 회개하지 않을까’해서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말년이 되자 하나님께서 완전히 그를 떠나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결국 전쟁이 터졌고 그 전쟁의 승패를 알아보려고 신접한 무당을 찾아간 다음날 그는 길보아 전쟁에서 전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울 왕이 이렇게 버림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의 ‘교만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왜 그는 교만해진 것인가?
이 시간에는 사울왕의 교만이 얼마나 발전했으며, 그의 인생을 꼬이게,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교만함의 10가지 특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1. 교만함의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하는 이 용어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겸손하거나 온유함이 없이 자기 생각과 뜻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약시대에는 '교만'은 죄의 목록에 들어갔다(막 7:22, 롬 1:20, 딤후 3:2). 그러나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교만함이 죄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만은 모든 죄의 출발이요 씨앗과도 같다. 교만함에서 많은 죄들이 가지를 치고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교만함의 대명사는 역시 ‘사울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고 자신을 높이려고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울왕의 경우를 보면, 그의 교만함은 이내 더 많은 죄를 산출하였으니, 다윗을 보고는 시기질투심이 터져 나왔고 이내 혈기+분노의 죄가 합쳐져서 미움의 죄로 싹트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움의 마음은 ‘살인’의 감정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이 죄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자신이 교만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사실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교만함의 문제요 음란함의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으면 즉시 회개함으로 이러한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함의 죄를 어떻게 보시는가? 구약시대에 율법에는 교만한 마음이 죄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울왕의 태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교만함의 범죄가 결국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는 우상 숭배의 죄라고 하셨다.
(삼상 15:23)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교만함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데에서 그 죄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판단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의 죄는 자기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처럼 우상시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교만함을 드러낸 사울의 예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범죄가 곧 점치는 죄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하셨다. 즉 교만함의 죄는 십계명에 나오지는 않아도,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을 어긴 죄와 동일한 죄라고 평가되는 것이다.
2. 사울 왕에게서 나타나는 교만함의 10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1. 교만한 자는 회개하지 않는다.
분명히 죄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꾸 변명을 한다. 그는 42세 때에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으며(삼상 13:13), 또한 62세 때에도 역시 아말렉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지만 둘 다 회개하지 않았다(삼상 15:13-15).
2. 교만한 자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 누구도 이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자기의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끌고 들어가려 한다. 자기를 지지해주는 자를 위해서는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지만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결단코 가만 두지 않는다. 사울이 그랬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도 섬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였다(삼상 15:20).
3.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도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사울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제사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바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삼상 15:22).
4.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적하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가 위임된 권위자의 말도 무시해버린다. 사울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자기가 왕으로 가진 권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까지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삼상 15:30).
5. 강포하고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교만함은 보통 혈기와 분노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만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혈기와 분노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울은 처음에는 아주 겸손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으며, 자신의 아래 사람의 말도 경청할 줄 알았다. 하지만 왕으로 등극하자 그는 안하무인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의 아들이라도 가만 두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을 돕는다고 장자 요나단도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다(삼상 20:33). 그리고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미명하에 놉 땅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죽이는 파렴치한 일도 자행하였다(삼상 21:16-19).
6.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도 자기가 잘나서 한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자기를 과시하며, 자기가 이러한 사람이라고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늘 잊고 산 사람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일평생 동안 하나님을 높였다는 대목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광 돌려야 할 그 순간에도 자기에게 영광을 돌렸다(삼상 15:12).
7. 자기를 높이려 했다.
언제나 어떤 일에서나 자기가 높아져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사람이 높아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는 것을 싫어한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것도 싫어한다. 이 사람에게는 오직 자기의 체면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름이 명예스럽게 된다면 거금도 거뜬히 내는 편이다. 심지어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이용한다. 교만의 특성이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기에 교만한 사람은 대개 시기와 질투심도 매우 강하다. 사울은 그랬다. 사울은 모든 백성 앞에 자기가 높아지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다윗이 전쟁에 승리하여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자기에게는 천천을 돌리자 다윗을 죽여야겠다고 마음먹는다(삼상 18:7-9).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두 딸 메랍과 미갈까지도 이용한다(삼상 18:17-27).
8.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의 책망의 소리조차 듣지 않았다. 특히 자기를 꾸중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러니 주의 종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늘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귀가 닫혀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울은 40세에 왕위에 올라 80세에 죽었다. 그런데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했다는 대목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62세 때에 치른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악신이 그에게 오게 된다. 그 뒤로 18년동안 사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살았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세에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오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 엔돌에 신접한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에게는 꿈으로도 선지자로도 음성으로도 계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삼상 28:6).
9.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은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언제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겸손함이 보이지 않았다. 사울의 평생에 진실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대목이 없다. 그는 자기가 주인이었고, 자기가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이다. 교만한 자는 항상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행세만 했을 뿐이다(삼상 15:30)
10. 늘 남을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판단 받아야 할 대상이요 연약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늘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다. 내 판단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는 데에 아주 익숙하지만 자기를 판단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그러나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사울이 그랬다. 그는 자기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그리고 자기 아들 요나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강요할 뿐이었다(삼상 20:30-31).
나오며 : 베드로도 사실은 상당히 교만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혈기와 분노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기가 앞장서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했지만 자기가 위험해 처하자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시지 않았다면 그는 시험에 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남긴 첫 번째 편지 속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강조해서 이렇게 썼다.
(벧전 5:5-6) “청년들이여, 여러분은 장로들의 지도를 따르십시오. 그리고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총을 베푸시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채찍을 내리실 것입니다. 6)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스스로 겸손해진다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렇다. 어디 교만한 자가 사울뿐이며 베드로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교만한 마음이 다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만함의 선봉자이었던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 나도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었던 하와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외식하려고 하고, 생색내려 하고, 자기 이름내기를 기뻐하는 자를 사탄은 가만 두지 않는다. 그 사람 속에서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고, 혈기와 분노를 일으켜서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교만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교만의 영들이 역사해서 교만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교만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교만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는 것에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늘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생활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교만한 마음이 우리를 일생동안 지배하려고 웅크리기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만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때로 금식도 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어 주님이 높여주실 때까지 우리는 다만 묵묵히 우리가 감당할 일을 해야 한다. 남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 속에는 들보가 있음을 알고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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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형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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