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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혈폭포↝용마루2공원↝덕산고택 두월서당↝오계서원↝흑석사↝영주향교↝부석사↝비로사↝금선정 ▶
↜ Tracking&Trav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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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시 ↝
◀ 2024년 0월 0일(1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용혈폭포 ↝ 영주댐전망대&용마루 출렁다리+영주호 용마루공원2 평은역사+용마루2공원 ↝ 영주금광리장석우가옥+의관댁+덕산고택+덕산고택 두월서당 ↝ 오계서원+군자정 ↝ 석조여래좌상+마애삼존불상+흑석사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및 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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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월 0일(2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철탄산(276.4m) + 영주향교 ↝ 무량수전 + 부석사 ↝ 비로사 ↝ 금선정
◀ (1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0월 0일(금) 대전 출발 ↝ 용혈폭포 주차장 ↝ 용마루2공원 주차장 ↝ 덕산고택 두월서당 주차장↝ 오계서원 주차장
↝ 흑석사 주차장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주차장↝ 영주 호텔위즈
거리; 230.2km, 시간; 4시간, 통행료; 약 7,800원, 주유비; 약 35,29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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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경로주소 ↝
용혈폭포 주차장; 경북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995 ↝ 용마루2공원 주차장;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1401 ↝ 덕산고택 두월서당 주차장;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1461 ↝ 오계서원 주차장; 경북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4 ↝ 흑석사 주차장; 경북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도로변주차; 경북 영주시 가흥동 265-8 ↝ 영주 호텔위즈; 경북 영주시 선비로119번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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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시 ↝
◀ (1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용혈폭포 ↝ 영주댐전망대&용마루 출렁다리+영주호 용마루공원2 평은역사+용마루2공원 ↝ 영주금광리장석우가옥+의관댁+덕산고택+덕산고택 두월서당 ↝ 오계서원+군자정 ↝ 석조여래좌상+마애삼존불상+흑석사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및 여래좌상
↜ 용마루공원 둘레길 트레킹 ↝
용마루2공원 주차장 ↝ 용미교 ↝ 용두교 출렁다리 ↝ 전망정자 ↝ 옛 평은역사 ↝ U ↝ 영주댐전망대 ↝ 용마루2공원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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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호용마루공원 ↝
영주호 용마루 공원은 경북 영주시 평은면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은 용마루 공원 1과 용마루 공원 2로 구분된다. 용마루 공원 1에는 방문자의 집, 전망대, 카페테리아 등이 있으며,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용두교와 용미교라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용마루공원 2가 나온다. 용마루 공원 2에서는 평은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용천루 출렁다리는 용미교와 용두교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 건너는 아치형 용미교는 길이가 약 75m로 다소 짧다. 하지만 다리 중간마다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 다리 아래가 훤히 보이는데, 아찔함을 더해준다.
두 번째로 건너는 용두교는 길이가 150m에 달하는 현수교로 많은 사람이 함께 걸으면 제법 출렁거린다. 용두교를 건너면 전방에 바로 나무계단이 보이는데, 그곳을 오르면 키 큰 전망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 오르면 나무 사이로 윤슬이 아름다운 영주호를 굽어볼 수 있다. 정자를 내려오면 소나무 숲 사이로 푹신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에 자리한 영주 다목적댐은 4대강 정비사업의 산물이다. 2009년 12월 착공, 2016년 12월 본댐을 준공하였다. 물이 차면서 면사무소와 평은초등학교가 있던 평은면 금광리, 강동리 등 중심 마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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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금광리장석우가옥(榮州金光里張錫雨家屋)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가옥.
영주금광리장석우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를 앞뒤로 배치하고 오른쪽에 방앗간채를 두어 튼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나중에 시멘트기와로 개량하였다가 근래에 기와집으로 보수하였다. 앞에는 봉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엌과 사랑방을 두고, 뒤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고방을 두었다. 일반적으로 마구간이 있어야 할 위치에 윗방이 자리하고, 마구간은 후에 건립된 사랑채로 이동한 변화를 보인다. 윗방과 고방 사이에는 통래간을 두었는데 통래간의 청판(廳板) 마루를 들어내면 고방 하부에 마련한 피랍굴로 통한다. 6.25전쟁 때 실제로 사용하였다 한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一자형이다.
↜ 영주 금광리 의관댁(榮州 金光里 議官宅) ↝
영주 금광리 의관댁(榮州 金光里 議官宅)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에 있는 건축물이다. 2010년 3월 11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569호로 지정되었다.
영주 금광리 의관댁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 양반 가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인다. 영주 금광리 의관댁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이다. 사랑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 널찍하게 퇴(退)를 설치하였다. 영주 금광리 의관댁의 왼쪽 온돌방은 뒤로 1칸 뺀 형태이고 오른쪽 사랑마루 뒤 좌익사(左翼舍) 사이에는 별도 공간이 형성되었다. 안채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좌익사, 오른쪽에 우익사(右翼舍)가 있다. 좌익사에는 고방과 건넛방이 있고, 우익사에는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영주 금광리 의관댁은 원래 시(尸) 자형인 날개집이었으나, 사랑 좌측 부분이 증축되어 현재는 ㅁ자형이다.
↜ 영주 덕산고택(榮州德山) ↝
덕산 고택은 앞면 6칸, 옆면 6칸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 평면이 ‘ㅁ’ 자 모양인 기와지붕 집으로 중앙에 안마당, 앞쪽에 문간채와 사랑채, 뒤쪽에 안채가 있다. ‘ㅁ’ 자 모양 집은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의 생활 원리를 반영한 구조이다. 개방적인 공간인 사랑채는 남성, 폐쇄적인 공간인 안채는 여성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덕산 고택은 살림집으로는 드물게 서당을 갖추고 있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통행이 편리하도록 은밀한 통로를 두었고, 물건을 넣어두는 곳간에 마루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요소는 조선 후기 양반의 생활과 살림집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원래 두월리에 있었으나 영주댐 건설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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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계서원(汚溪書院)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1570년(선조 3)에 지은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오계정사가 쇠락해지면서 그의 큰아들인 이시(李蒔: 1569~1636)가 1600년에 쌍계마을로 옮겼고 1691년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홍수 때문에 피해를 보아 1711년(숙종 37)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어 버렸지만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도존사(道存祠)를 지었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도존사(道存祠), 강당인 명륜당(明倫堂), 동재인 관성재(觀省齋), 서재인 험위료(驗爲僚), 정문인 입도문(入道門)이 있다. 서원 밖에는 군자정(君子亭)과 관리사가 있고 서원 입구의 양쪽 언덕에는 연어대(鳶漁臺)와 활발대(活潑臺)가 있다. 2005년 1월 1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군자정(君子亭)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누정. 정자. 시도유형문화재.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이덕홍(李德弘)이 세웠다. 이덕홍을 봉향하는 오계서원(汚溪書院)에서 오른쪽으로 약 20m 떨어진 얕은 구릉지에 남향으로 있다. 정자 앞쪽에는 군자당(君子塘)이라는 연못이 남아 있다. 1636년 대홍수로 오계서원이 1711년(숙종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될 때 함께 이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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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석사 (黑石寺) ↝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인 흑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폐찰로 내려오다가 8.15광복 후 승려 김상호가 소백산 초암사의 목재를 옮겨와 중창한 것이라 한다. 절 이름은 절 가까운 마을 이름이 흑석이고, 그 마을의 뒤편에 거대한 검은 바위가 있어 사찰 이름을 [흑석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흑석사 부근 바위 빛깔이 대개 검어 이름이 흑석사가 되었다 한다. 흑석사의 가람 구조는 극락전, 보궁, 승방, 심검당, 환희전, 종무소,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국보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는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본래 정암산 법천사에 있던 걸로 6.25 때 옮겨온 것으로 불상의 복장에서 복장기와 보권문, 전적 4종과 직물, 기타 복장 유물이 수년 전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자연 상태 바위에 새긴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이 소장되어 있다.
↜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 黑石寺 石造如來坐像) ↝
1980년 9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79m, 재료는 화강석이다.
흑석사 후면 암벽에 신라 말·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삼존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석조여래좌상은 그 앞에 있다. 두 불상은 연대도 다를 뿐만 아니라 관련성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여래좌상은 사찰 부근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발굴한 것이다. 전면을 백색으로 도장하였고, 눈·눈썹·입술·수염은 청색 또는 홍색으로 그렸다. 나발머리에 육계를 얹었으며, 목에는 희미하게 삼도(三道)가 있고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다. 결가부좌한 자세에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광배는 주형(舟形)인 듯하며 두광과 신광(身光)은 서로 구분하였고 원형 두광 안에는 단엽(單葉) 연화 8엽과 비운(飛雲)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두광 주위에 화염무늬가 있다.
↜ 흑석사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_흑석사 마애삼존불상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의 자연암벽에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을 새긴 마애삼존불이다. 본존불은 가슴 이하를, 협시보살은 목부분 이하를 새기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다.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다. 귀는 길게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주름이 마모되어 세부 표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삼면관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은 모두 머리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좌측에 있는 협시보살의 얼굴이 더 넓게 표현되었다.
신체 일부분만 새겨져 있지만 원형이 대체로 잘 유지되어 있는 작품으로, 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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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可興洞磨崖如來三尊像-如來坐像)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초인 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영주시 지역에서 만들어진 마애여래삼존상 3구 및 여래좌상 1구. 총 4점. 현재 4점 모두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264-2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은 강가 바위면에 본존불과 그 좌우에 서 있는 보살상을 각각 새긴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다. 본존불은 상당히 큼직한 체구로 장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큼직한 코,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서 불상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가슴은 당당하고 양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옷은 장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긴 광배와 높게 돋을새김한 연꽃무늬의 대좌(臺座) 등은 장중한 불상의 특징과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왼쪽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이다. 가슴이 넓으며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은 배에 대었는데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보살상은 왼쪽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 등이 다를 뿐이다.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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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시청 주변 숙박지 ↝
영주 호텔위즈; 054-633-0020, 경북 영주시 선비로119번길 3(스텐다드 46,000원~)(야놀자 예약)(옥션 예약)
K호텔; 054-633-7229, 경북 영주시 대동로 176(43,000원~)(야놀자 예약)
케이스부띠크호텔 영주점; 054-633-6622, 경북 영주시 구성로330번길 8(50,000원~)(야놀자 예약)
크리스탈모텔; 054-632-4466, 경북 영주시 지천로108번길 6(38,000원~)(옥션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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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맛집 ↝
◀ (2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0월 0일(토) 호텔위즈 출발 ↝ 영주향교 주차장 ↝ 부석사 주차장 ↝ 비로사 주차장 ↝ 금선정 주차장 ↝ 대전
거리; 257.6km, 시간; 4시간, 통행료; 약 8,800원, 주유비; 약 39,069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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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경로주소 ↝
영주향교 주차장; 경북 영주시 하망동 127 ↝ 부석사 주차장;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300 & 사찰입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250 ↝ 비로사 주차장;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388 + (비로사) 소백산국립공원 삼가주차장;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로 476 ↝ 금선정 주차장;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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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시 ↝
◀ (2일차) 영주시 관광 트레킹 코스 ▶
철탄산(276.4m)+영주향교 ↝ 무량수전+부석사 ↝ 비로사 ↝ 금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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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향교(榮州鄕校) ↝
1368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된 향교이다. 이후 군수들에 중수되었고 1597년에는 명나라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영주를 지나 선현을 뵌 후, 향교 주변 지형지세를 극찬하였으나 오른쪽 산맥이 낮고 사람과 말이 다니는 오솔길이 있는 것이 결점이라 하여, 후에 오솔길을 막고 낮은 산목을 흙으로 쌓아 올렸다. 광복 후, 향교 경내에 영주여자중학교를 설립하여 향교 건물의 일부를 학교에서 사용했다. 현재는 향교 내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10칸의 동무와 서무 각 10칸의 동재와 서재, 존현당, 횡루, 전사청, 전곡청 등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에는 5성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 2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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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浮石寺)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있는 절.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浮石寺高麗木板) ↝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삼본 화엄경 책판.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은 13~14세기경 거란에서 불경을 수입하여 나무판에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거란본 계열의 번각판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은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화엄 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浮石寺祖師堂) ↝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불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은 평면 계획과 가구 구조, 부재의 형태와 치목 방법 등이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벽화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浮石寺三層石塔) ↝
부석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부석사에는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외에도 쌍탑인 부석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이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1966년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옮겨온 것으로, 부석사 창건 당시부터 존재한 탑은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이 유일하다. 원래 탑이라는 것은 법당 바로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은 법당의 동쪽에 세워져 있어 여러 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주불인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서방정토불이라 동쪽을 향해 좌정해 있는데, 그 눈길의 도착점에 석탑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는가 하면, 의상대사의 교시에 따라 무량수전 앞에 탑을 세우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은 신라 중기의 양식을 보이나 하층기단의 너비가 지나치게 넓고 초층 옥신석이 높이보다 너비가 넓어 장중해 보인다. 이에 비하여 옥개의 폭이 좁은 점은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과 비교되어, 우리나라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浮石寺無量壽殿) ↝
부석사 경내에 있는 고려 후기 불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장식적인 요소가 적으면서 목조 건축의 형태미와 비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로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함께 고려시대 불전 연구에 중요한 건축물이다.
↜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榮州浮石寺幢竿支柱) ↝
부석사 입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당간지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는 대체로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또한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는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으므로 오히려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 영주 부석사 안양루(榮州 浮石寺 安養樓) ↝
영주 부석사 안양루는 다수의 문헌에서 중창, 중수 등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를 토대로 1580년에 건축된 이후 현재와 동일한 규모로 보존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문루 건축물에서 부석사 안양루와 같이 화려한 다포식으로 건축한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으며, 안양루 건축에 사용된 건축 양식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조선의 건축양식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0월 3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榮州浮石寺塑造如來坐像)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전통을 이어 제작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불상으로서의 위엄이 잘 배어 있으며 정교한 제작 기법을 보이는 우수한 예에 속한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유일의 소조불상으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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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비로사 ↝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비로사는 68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비로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조아미타여래좌상 2구, 석조당간지주, 진공대사보법탑비만 남고 모두 불타버려 1609년(광해군 1) 경희가 중건하였고 1684년(숙종 10)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다. 여러 기록에 의해 개항기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1907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과 사지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919년에 희방사 주지 범선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에 요사를 중건하였으며, 1932년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모든 건물이 소실된다. 1992년에 현재 주지인 성공이 부임하면서 다시 불사가 재개되었고 이후 적광전, 나한전, 반야실, 망월당 등이 건립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비로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와 영주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등이 있다.
↜ 영주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 眞空大師普法塔碑)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 안에 있는 진공대사의 탑비이다.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약한 승려로, 경주 출신이며, 성은 김씨이다. 가야산 선융(善融)의 제자가 되어 소백산에 절을 짓고 주지로 있다가 고려 태조 20년(937)에 입적하였다, 태조는 시호를 ‘진공대사’라 하고, ‘보법’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의 형태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산(山)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인데, 비몸이 갈라져 일부가 파손되었다. 거북받침은 새겨진 조각이 얕아 둔해 보이며 등 중앙에 비를 꽂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은 구름과 용무늬를 새겨 놓았는데, 화려하긴 하나 깊이 새긴 것은 아니다.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운 비로,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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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선정(錦仙亭) ↝
금선정은 벽체 없이 네면이 개방된 소박한 구조다. 평난간에 앞면 두칸과 측면 한칸에 난간을 둔 점이 특이하다 정자에 들어서면 바위를 때리며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에 정신이 맑아진다. ‘소쇄’해 지는 기분이다. 계곡 상류 쪽 여울목에서는 맑고 투명한 물방울 수천 수 만개가 튀어 오른다. 황준량은 이를 보고 ‘얼음방울이 튄다’라고 말했다. 포항의 분옥정에서는 이 모습을 ‘옥이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라며 편액 이름을 지었다. 계곡 건너편 언덕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색 야생화가 별처럼 반짝이고 언덕 너머 사과밭에는 순백의 사과꽃이 만개했다. 황준량은 ‘알록달록 꽃그림자가 봄산을 뒤흔든다’라 고 썼다. 금선정이 있는 마을은 오랫동안 착한 사람이 많이 나오라는 뜻으로 장선(長善 장생이)마을이라 불리는데 본래는 긴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 선(船)’자를 쓰는 장선(長船)마을이었다고 한다. 계곡을 가만히 내려다 보니 정자 상류 쪽 계곡은 여울목 지나며 요란한 소 리를 내다가 정자 앞에 와서는 고요히 흐른다. 그러다가 정자 앞을 지나면서 다시 돌과 부딪히며 소리를 내며 흐른다. 정자 상류 쪽이 포말을 일으키는 고물(선미)이라면 정자 정면 은 선체, 정자의 하류는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배의 이물(선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선마을이라기에 떠오른 생각이다. 정 자 앞 계곡이 긴 배처럼 여겨진다. 금선정 아래 ‘錦仙臺’ 암각서는 1756년(영조32) 풍기군수 송징계가 새겼고 편액은 금선정 건축 4년 뒤에 풍기군수 이대영이 당시 성주목사이던 조윤형의 글자를 받아 걸었다. 편액은 계곡을 바라보는 동쪽 처마와 출입구인 남쪽 처마 아래 각각 걸려 있다. 당초 정자 안에는 시판이 빼곡히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도둑맞고 없어졌다고 한다.
금계천은 소백산 비로봉(1,439m)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와 욱금리, 금계리와 교촌리를 지나 서천으로 합류하 는 하천이다. 금계천은 욱금리 금계저수지와 금계리 장생이 마을까지 1.5km 구간을 지나면서 금선계곡이라는 절경을 빚었다. 금선계곡에는 기암괴석과 수백 년 된 노송이 들어서 이름 그대로 ‘비단물결에 신선이 노니는’ 선경이 펼쳐진다. 이 일대가 ‘정감 록’에 기록된 10승지 중 제1승지다. 금선정은 조선의 제 1승지 금선계곡의 끝자락, 언덕 아래 엎드려 있다. 1781년(정조 5) 풍기군수이던 이한일이 금계(錦溪) 황준량(黃 俊良 1517~1563)을 기려 지역유지와 후손들과 힘을 합쳐 세웠다. 황준량이 금선정 아래 너럭 바위를 금선대라 명명한 뒤 음풍농월 하던 곳이다. 기이한 바위에 옥 자물쇠가 어지럽게 퍼져있고 사나운 계곡 물에 얼음 방울이 튄다 누대에서 한 단지 술을 마음껏 마시니 알록달록 꽃 그림자가 봄 산을 뒤흔든다 - 황준량의 시 ‘금선대에서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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