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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 안녕하세요?
이 글이 너무 길어 [모노크롬회화]부분과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을 이 게시판에서 분리하여
각각 다른 게시판에 실었습니다
혹시 하나로 연결해 보실 분을 위해 이 글을 그대로 놔두니 중복게재를 하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모노크롬회화]부분에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를 조금 더 보충하여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게시판에
올려두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의 글과 그림을 보충해 바로 위의
[자유게시판] 에 분리해 다시 게재했습니다
이 모든 포스팅의 계기는 바로 아래 유재길 미술평론가의 리뷰를 읽고
그 시대의 미술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욕구로부터 시작되어 아주 긴 글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게시판은 좀 길지만 함께 가실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서울의 전시 문화를 회고하며
오늘의 현대미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사반세기 전「유럽추상미술의 거장전」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는 일반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오늘날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부분적으로 풀어 보고자 한다.
즉 전문 미술인들을 위한 작품분석 및 비평을 억제하고 가장 대표적인 전시의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미술을 애호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미술은 그 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시각의 대변자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혼란스러운 우리사회의 분위기, 조급하고 불안한 개인의 의식구조 등을 바탕으로
미술의 신선한 탄생이나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마냥 비관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만은 없다.
아주 예외적인, 그야말로 예외적인 숨어있는 작가와 작품이 등장하여
우리의 시각과 정신계를 풍부하게 해주기도 하는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본고의 제목을「현대미술과 전시-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붙인 이유는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일반관객에게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술’에 관한 사건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입장에서 붙인 것이다.
그런데 먼저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일반관객이 전혀 미술전시 작품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많이 보는 것, 이점이 제일 중요하며 점차 이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느낌이나 이해가 될 수는 없다.
의미분석이나 작품의 구성요소, 색채 등을 살펴보고,
예술성과 미술사적인 입장 및 작가의 문제제기를 알아보는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연중무휴로 있는 서울의 미술전시 수는 엄청나다.
이렇게 많은 수의 전시 목적은 무엇인가?
의례적이며 허영에 들뜬 우리의 흉한 미술계의 단면이 아닌가 한다.
무분별한 전시의 홍수는 혼란만 가져다주며 관객과의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기회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문제가 어떤 획기적인 제안이나 빠른 시간내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나
전시다운 전시를 위한 미술인들의 반성을 필요로 한다.
4반세기전 우리 미술계의 주목받았던 전시로
◆'91년 12월 중 원로 평론가인 석남 이경성전,
◆김영주개인전,
◆한영섭 오사카 트리엔날레 수상 기념전,
◆평론가 추천 기획의 윤동천 개인전,
◆'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전 출품을 위한 육근병 개인전,
◆오랜 침묵 후의 김인경 조각전,
◆대담한 변신과 실험작들을 보여준 임봉규 개인전( 「모더니즘의 종말- 그 극복을 위한 모색」전),
◆재불 화가인 조돈영 개인전,
◆해외 기획전으로「유럽 추상미술의 거장전」이 있었다.
◆「진로 도예지명 공모전」( 진로 문화재단 후원 )이 특색있게 진행되어
현대도예의 활성화를 갖게 되는 계기로 주목되었다.
그 가운데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 깊었던 '91년 전시로
갤러리 아트 빔의 개관 기념전인「유럽 추상미술의 거장전」이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대표적인 프랑스 앵포르멜 작가들을 중심으로 현대 추상미술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었었다.
만약, 80년대 서울에서 이같은 오리지날 유화를 직접 볼 수 있었다면
많은 관객들이 '입장료까지 내면서 줄을 섰을텐데' 90년대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기업이 후원하는 좋은 전시'에 관객이 없어
매스컴의 역할과 미술문화 교육정책의 부재라는 아쉬움마저 느꼈었다.
「유럽 추상미술의 거장전」에 출품된 작품은 1950년대 이후 제작된 것들이다.
앵포르멜(非定形) 미술은 60년대 이후 한국 추상작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앵포르멜(非定形)은 ‘형태가 없다’는 말에서 ‘비정형’, 또는 ‘반(反)형상’이라는 의미로
기하학적 추상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것에 반해 이들은 뜨거운 추상이라고도 말한다.
이같은 추상작품은 이미 과거(1950년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비정형의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외형적으로 같다고 해도 오늘날의 추상작품은 각자 추구하는 미의 개념이나 의미가 각양각색이다.
앵포르멜이라고 하는 비정형의 추상작품들은 시각적 미의 세계란 깊고 넓다는 생각과
무언가 분명하지 않으나 추상적인 색과 형에서 우리는
친근감과
'명상적인 느낌'을 받는다.
때로는 작가와 다른 해석과 생각도 하게 되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여주는 추상작품을 자주 대하면서
그 속에 숨겨진 예술적 가치를 발견할 때,
여러분은 상상도 못한 또다른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하고 추상미술가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폴리아코프의「구성(Composition)」작품에 관한 소개이다.
소련에서 23세때 파리로 이민온 폴리아코프(1900-1969)는 어려운 생활 끝에
아주 독특한 추상미술을 창조한 화가이다.
25년전[유럽 추상미술의 거장전 ]에 출품된「Composition 1(1954)」과 「Composition 2 (1956)」의
작품을 보면 모더니즘 미술에서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순수한 색과 면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림은 색으로 뒤덮인 평평한 틀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주장과 함께
현대미술가들은 무엇이 진실된 그림인가를 찾는다.
폴리아코프의 짙은 초록색 바탕에 변형된 마름모나 사각형의 붉은 색면들,
그 위에 작은 흰색면, 이러한 단순하기 그지없는 색면들이
명상적인 공간으로 변하여 관객을 그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좋은 전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앵포르멜 추상작품에 관해
간략한 설명으로 난해한 오늘날 미술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유재길 / 미술평론가
한국 미술계에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정보원으로는 흔히 미국잡지가 거론된다.
당시 『민국일보』 기자였던 이구열은
“뉴욕 중심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폴록, 데 쿠닝, 마더웰, 로스코 등의 작품이 특집으로 소개되던
라이프(LIFE)나 타임(TIME) 잡지에서 찢어낸 원색도판이
작가들의 지저분한 작업실 탁자와 벽면에서 흔히 목격”되었다고 하였고,
평론가였던 방근택도 『타임』, 『라이프』, 『아트 뉴스』 등의 잡지가 미국 미술에 대한 주요 정보원이었다고 했다.
한국 미술가들이 미국잡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추상표현주의는 비전통적 기법이 강조되고,
그 기법에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의 표현이자 자유라고 하는 이념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해석이 가해진 모습이었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앵포르멜에 대한 정보가 1950년대 후반에
동시적으로 전해지면서 별다른 변별력을 갖지 못하고 동일한 미술로 수용되었다.
한국 미술계에 소위 뜨거운 추상인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이 밀어 닥친 배경에는 한국전쟁 이후 암담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개된 추상표현주의는
“우리는 이 지금의 혼돈 속에서 생에의 의욕을 직접적으로 밝혀야 할 미래에의 확신에 걸은 어휘를 더듬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 수립되었던 빈틈없는 지성 체계의 모든 합리주의적인 것들을 박차고,
우리는 생의 욕망을 다시 없는 ‘나’에 의해서 ‘나’로부터 온 세계의 출발을 다짐한다”는
1958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선언문에서 드러나듯 젊은 세대가 주도한 전위적 미술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한국전쟁 이후 암담한 현실을 표현할 조형언어를 제공해주었고,
현대미협전 외에 현대작가초대전이나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을 통해 전개되면서
아시아의 전통에 대한 관심과 정치현실을 반영하는 등 한국의 현실에 적응한 양식으로 정착하였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은 동일한 사조로 언급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사조로 취급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포함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등
양대 사조에 대한 서로 상충되는 정의들이 존재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은 탄생배경과 추구해온 사상을 공유하고 있으며
작품성향에서 역시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만 추상표현주의가 초현실주의나 큐비즘 등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반면,
앵포르멜은 전통적 법칙을 탈피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한 유럽의 작가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이러한 탄생과정과 지역의 차이는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구분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한국과 같이 양대 사조의 사상과 작품성향은 공유하지만 탄생지역과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제3국의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의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의 제정이 요구된다.
추상표현주의는 60년대 중반까지 현대작가초대전이나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같은 전시공간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지만 그 후 서서히 냉각되며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모노크롬 - 다색화(polychrom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선, 형태를 거부한 모노크롬은 구성의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전체주의적(wholistic)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노크롬의 기원은 20세기 초 절대주의 화가인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의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과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인 로드첸코Alexandre Rodchenko(1891~1956)의
<검정 위의 검정>을 들 수 있다.
1945년 이래 만조니Piero Manzoni(1933~1963),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
클랭Yves Klein(1928~1962),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
맨골드Robert Mangold(1937~ ), 라이만Robert Ryman 등의 작가들이 단색회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1946년 최초의 단색 실험을 시도한 클랭은 1957년 일명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
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불리는 그의 고유한 청색 모노크롬을 고안하였다.
그는 청색이 가장 '비물질적이고 절대와 무한을 표상하는 색'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통해 '비물질적인 실체'를 추구하고자 했다.
클랭은 청색 이외에도 금색(monogolds)과 장미색(monopinks)의 모노크롬을 말년에 제작하였다.
'청색'이 '정신성'을 의미한다면, '금색'은 '절대', '분홍색'은 '삶'을 상징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모노크롬 색상을 창조하였던 클랭은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한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은 특히 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주요한 추상회화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색면회화에 있어서 색에 대한 사고의 판단 정지를 추구했던 비색주의 경향들은 그 예라 할 수 있다.
모노크롬은 작품의 내용과 미적가치의 측면에서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주관의 표현을 배제하는 경우, 지워가는 경우, 중화시키는 경우 등 그 방법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표정에 있어선 소박, 단아하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킨다.
70년대 중반까지의 흐름이 그 방법적 측면에서 서구 문맥에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말부터는 이러한 축적의 기반위에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한지작업'이라는 또다른 형태로 맹아되기 시작한다.
*맹아:식물에 새로 트는 싹, 사물의 시초가 되는 것
균질적 평면 속에서는 자아와 세계의 일원론적 관점을,
한지작품에서는 선험적으로 승화된 민족정서를 만나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이같은 동양전통을 발견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70년대 작가들의 지적 토양이 '직관적'이고 평면 검증에 있어서 '내성적 통찰'이 강력했다는 것과 관련된다.
이로부터 모노크롬은 한국적 정서에 더욱 걸맞는 미적 형식으로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지를 매재로 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매재나 바탕으로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일개 재료에 불과했지만 재료 이상의 것으로 의미가 부여되어졌다.
그것은 한지가 수공예적 예술품의 성격을 지닐뿐만 아니라 여기에 덧붙여질 수 있는 또하나의 사실,
한지의 텍스처 자체가 고유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것이 예민한 감도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어
얼마든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모할 수 있는 성질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적 특성의 발현이 단지 한지라는 재료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보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지 자체가 독특한 재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의 얼과 맛을 갖고 있기는 해도
순화된 정신과 결합된 작품으로 고양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물질덩어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하에 한지작업을 '한지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한지를 재료로 삼기보다는
자연과 접속할 수 있는 마당으로 여겼다.
가령, 한지가 무형의 질료이자 독자적인 택스처를 갖는다고 보았을 때 그 속성에의 순응과 그리고
한지와 그 자신이 행위의 완전한 일체화를 통하여 자연적 이치를 터득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종이를 원생적인 상태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것을 시발점으로 회귀시킴으로써
시공 너머의 정신공간으로 진입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또하나의 이유는 캔버스와 한지의 차이, 즉 매재의 속성을 면밀히 파악하는데 기인한 것이었다.
즉 캔버스가 반발력과 저항력이 세고 그 바닥의 천이 표현을 위한 밑바탕에 머무는데 비해 한지는
작가의 몸짓을 허용하며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바탕과 혼연일체를 이루게 하여
'내재적 여백'으로서 명상적 공간성을 획득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성이 단순한 재료 차원에서의 '종이그림'도 아니고 '유화'와도 구별되는
미적 가치를 지니게 할 수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70년 대 중반의 백색 모노크롬과 함께
한지작업을 한국적 미감으로 현대화 시키는 작업에 성공한 또 하나의 사례로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외형상 서구 미술의 양상과 유사성을 보이긴 했지만 우리 현대미술에서
바람직한 미술유형을 꽃피워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얼과 혼을 담아내는 결실을 빚어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미술이라는 커다란 구도내에서 보면 70년대 현대미술은 모노크롬의 등장으로 인해
'주류'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양식의 걷잡을 수 없는 획일화, 작가들의 맹목적 집단화, 중단된 활력 주입 등의
이유로 인해 생명력을 단축하게 되는 모노크롬회화의 독자성을 세우고 발전적인 전개를 해야한다.
우리 모노크롬회화가 갖는 독자성의 근거인 '비물질화' 경향 또는
'범자연적 세계'의 지향은 반드시 우리의 회화에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각을 달리해
그러한 특징이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겠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에는
'독자성'의 확립이라는 열의에 휩싸인 나머지 보편성의 획득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한계를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구 미술의 영향을 소화해서 역으로 그들의 미술에 나타난 문제나 한계의 돌파구를 제시한다는
그런 역동적인 관계의 모색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것에 대한 자각이 아닌 진정한 독자성의 확립이라는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러한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를 미니멀 아트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견해는
비록 양자가 지향하는 세계에서 유사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가
평면과 그 평면의 회화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에서 보여진 관심사는 그린버그가 주창한 '모더니스트 회화'에 근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의 특성과 보편성의 차원에서 본 그 독자성의 기반은
'모더니스트 회화'이념과 '동양사상의 만남'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해명될 수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20세기의 한국미술2: 변화와 도전의 시기』(김영나, 예경, 2010)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앵포르멜」(정무정, 『미술사연구』15, 2001)
해방이후부터 사반세기 동안의 한국미술의 변천과정과
사반세기전 대표적인 전시회를 조명하며
그로부터 다시 사반세기를 지나오는 오늘까지
한국 현대미술계는 어떻게 변천해왔는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의미있는 글이 되시길 바랍니다
[유재길 미술평론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폴리아코프의 구성 (Composition) series]
-190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의 세르게이 폴리아코프 Sergei Poliakoff는
러시아 혁명 후 동유럽 각지를 돌며 도피생활을 하다가 1923년 파리에 정착하였다
마티에르를 이용하여 앵포르멜적이고 서정적·기하학적인 추상화를 그렸다.
*마띠에르(Matiere) ; 작품의 표면효과 (붓질, 나이프의 사용 흔적 등)
Sergei Poliakoff
Sergei Poliakoff-Composition series
폴리아코프는
뉘앙스가 풍부한 색면(色面)의 배합을 기조로 한 추상화를 그렸다.
중후한 색조로 편편한 판면을 긴밀하게 결합하는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추구해나갔다.
Poliakoff는
카지미르 S.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의 《흰색 위의 흰 사각형》을
파리에서 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말레비치, 1918년. (뉴욕 근대 미술관)
ㅡ《 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 (Suprematist Composition : White on White) 》
이후, 폴리아코프는 수많은 Composition 연작을 그려나간다
-Sergei Poliakoff-Composition
장 포트리에
'91년 [유럽추상미술의 거장전]에 출품된 앵포르멜의 선구자인 쟝 포트리에(1898-1964)의 인질 시리즈와 같은
비정형의 작품을 보면 두툼한 질감과 덩어리진 추상적 형상에서
고통스런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2차 대전 중 죽은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살점이나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들로
직접적인 체험의 결과에서 나온 침울하면서도 열정적인 감정의 표출로 보여진다.
이같은 추상미술은 캔버스에 붙여진 마티에르(두꺼운 질감)를 많이 사용하며,
두꺼운 흔적들은 응어리지고 풍화작용의 결과와 같은 시간성을 느끼게 하여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시각화한다.
이제 '아름다움'은 꽃이나 꾸며진 여인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그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는 '객관식 문제풀이나 감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개인의 느낌이나 판단'이 중요하게 된다.
Jean Fautrier-Head of a Hostage series
Skinning(The Grand Hostage)
-Jean Fautrier
포트리에의 마티에르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상실된 인간의 존엄성과
대중의 고난, 고통, 살인, 부패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림 속에 표현된 육체는 부패되고 깊은 상처가 곪아가고 혹은 타박상을 입고 썩어가는 동물적인 살이다.
화가의 격한 분노의 본능적 감정은 마티에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두껍고 거친 마티에르로부터 스며 나오는 인간의 이미지는
마치 유물이 발굴되는 것처럼 잔혹한 기억들이 떠오르게 한다.
작가가 체험한 잔인하게 고통 받는 인간의 끔찍한 상황은 화폭의 질감과 서정적인 색채에 의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면서 전달된다.
포트리에의 작품 안에서 형상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의 회화는 구상화가 아니다.
그는 형식적인 재현이 아니라 감동과 의미를 중시하는 내적인상의 재현을 위해 노력했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포트리에의 작품은 진정한 의미의 '비정형' 회화이다.
앵포르멜 미술의 기원은 전쟁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억압된 인간의 극한적인 정신구조를 다루고 있고,
기존 가치의 상실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의 실존에 주목하면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1947년 비평가 '미셸 타피에'와 화가 '마티외'가 기획한 전시회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마티외 자신이 ‘서정적 추상’이라 명명한 이 방법은 즉흥성이 절정에 달한 사태를 보여 준다.
이 방식은 급속히 유행하게 되어 1960년 '파티에'는 108명의 앵포르멜화가를 조사해 모아놓은 책
[또 다른 형태론]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정신적 즉흥’을 행위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업을 익히 알고 있던 마티외는 1951년 그들과 대립하기 시작,
사실상 미국인들에 비해 파리에 거주하는 미술가들에게 회화란 더 격렬하고 덜 극적이다.
미국작가들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은 곧 ‘앵포르멜’, 또는 ‘타시즘’(Tachism) 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된다.
화폭은 그들의 감정적,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표출하는 극장이었다.
그리는 행위와 그 행위의 창조적 자유가 회화의 주제가 됨은 미국 화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데생이 만드는 형태에 좀 더 긴밀히 연결되어있으며, 그림의 닫힌 공간에 대해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앵포르멜 이론을 구체화 시킨 것은 비평가 '미셀 타피에'이다.
그는 [또 하나의 예술] 이란 소책자에서 본래 앵포르멜의 근원적인 생명의 징후는
구상/비구상의 대립을 부정하고, 생생한 형태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입체파와 기하학적 추상은 붕괴된 고전주의의 마지막 절규에 지나지 않고
초현실주의는 낭만주의의 문학적 변종이라며, 가치전도를 위해 반 휴머니즘의 극한까지 밀고 갔던
니체와 다다이즘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산으로 규정한다.
1952년 6월에 타피에의 주도하에 [앵포르멜의 기표]라는 전시회가 열리면서 이 운동은 구체화되기 시작,
이 전시회의 명칭은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개념에서 따온 것으로 ‘기표’와 ‘기의’를 하나로 보고
비정형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기표-지각 가능한 부분, 기의-내재된 의미
타피에는 앵포르멜 미술에서는 표현의 제스처보다는 마티에르(질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것이 미국의 액션 페인팅과 다른 점이다.
포트리에 뒤뷔페 등 모든 앵포르멜 미술가들에게 '마티에르'는 일종의 '정신성 복구'의 주체로서 도입되었다.
앵포르멜 미술에서 '마티에르'는 '정신성'으로 되돌려진다.
너무 빨리 유행을 탔던 이 서정추상, 즉 앵포르멜은 이후 그 후계자들에 이르러 모방자들의 답습으로 인해
본연의 가치를 잃게 된다.
6ㆍ25 사변은 우리나라의 정신적 풍토를 기묘하게도 제2차대전 후의 유럽의 그것에다 직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듯이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20대에서 전쟁을 가장 참혹하게, 가장 절실하게 살아낸 우리의 젊은 세대와
2차대전 후의 유럽의 폐허를 방황하는, 이른바 아프레게르(apres-guerre, 전후)라는 현대문명과
전쟁의 사생아들 사이에 맺어진 체험적인 공감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불신의 세대’였고, 급기야는 안이한 유산을 버리고 세계의 흐름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연소하려는 세대였다
앵포르멜 미술은 60년대 중반까지 ‘현대작가초대전’이나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같은 전시공간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지만 그 후 서서히 냉각되며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의의와 평가]
앵포르멜 미술을 계기로 한국 미술계는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양식과
늦게나마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앵포르멜은 양식적인 면에서 분명 서구 모방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권위에 대한 도전, 개인의 표현과
창조적 자유의 존중과 같은 개혁적이고 전위적인 움직임이었고 서구 모더니즘의 본격적인 수용이었다고 평가된다.
앵포르멜의 실험정신은 많은 미술가들에게 국제적 흐름에 눈에 뜨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6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에 추상을 유행시키는 발단이 되었다.
[참고문헌]
『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이일, 열화당, 1991)
「전후추상미술계의 에스페란토, ‘앵포르멜’ 개념의 형성과 전개」(정무정, 『미술사학』17, 2003)
「해방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전개」(김영나, 『미술사연구』9, 1995)
Un Art autre (Tapie, Michel. 1952)
L'art informel (Paulhan, Jean. Paris: Editions Gallimard, 1962)
첫댓글 또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25년 전 기억에 남을 전시회중
<한영섭 오사카 트리엔날레 수상 기념전> 이 유독 눈에 뜨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마다의 특색이 빛을 보도록
격려하는 지성이
가득합니다, 이 카페에는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29 23:3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30 16:15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왜냐하면 이 글이 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저의 젊은 날의 관심이었던 사실을 꼬집듯
끄집어 저를 또 흔드시네요.
이런 선물을 이렇게 받다니
Minnie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입니다.
리서치의 달인이셔요.저는 그림만 그리지
미술사와 관련지는 것은 생각 못해요.
더 할 말은 오늘 외출이 있어서 또 읽어보고
다시 만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셔서
모든 방면으로 면의일상님의 추진력에
힘을 실어 드리고 싶습니다
2016년 초반을 함께 가는 회원님들은
제게 이미 많은 힘이 됩니다
@Minnie 제가 뒤의 글 단색화에 대한 소감을 말씀드렸지만 연일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려주시는 것을 저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글이 달고 건강을 주는 탕약을 먹는 기분입니다. 제가 외롭게 이 길을 가다가 이집으로 들어와 진정한 밥상머리에 앉은 기분입니다. 배 부른 성찬 보양식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늘 새롭게 배울수있어서 너무 좋아요. 한번에 다 못읽어서 계속 읽고 있어요 으히힛
카페와 함께 미술을 제 생활의
바람막이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실을 다지는 걸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늘 손을 잡아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