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러온 지 20년이 훌쩍 지난 내가 한국 상황에 이렇게 큰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박근혜 탄핵 때도 관심을 가졌으나 그때는 내란 사태가 아니었다. 국정농단과 내란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벌건 백주대낮에 친위 쿠데타라니, 그것도 21세기 세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한국에서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같은 이른바 서방 선진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벌어진 내란은 캐나다에도 그만큼 큰 충격을 주었다. 뉴스를 전하는 캐나다 라디오 앵커는 말했다.
"노스 코리아가 아니에요. 사우스에요, 사우스."
우리 가게 외국 손님들로부터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무슨 일이야?" "마샬로가 사실이야?"
그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정정이 불안한 최빈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선진국인 한국에서 벌어졌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비상계엄 및 친위 쿠데타는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회에서 탄핵 의결이 이루어지기까지 열흘 남짓 참 여러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새롭게 생성된 시위 문화와 그 역동적인 힘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 보았다.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듯이, 윤석열 탄핵 시위의 선봉은 20~30대 여성이었다. 응원봉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다중이 모이는 기회를 자주 접한 사람들이다. 남성들 가운데 응원봉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 응원봉은 캐나다에 사는 내 딸도 하나 가지고 있다. 레드벨벳.
응원봉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그것을 흔들며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함께' '응원'해본 이들은 잘 안다. 공감과 연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그들은 그 힘을 알고, 또한 응원하는 방법을 안다. 공감과 연대와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일들에 대해 잘 훈련된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결집의 힘을 알고 공공의 선이 무엇인가를 안다. 자기가 응원하는 아티스트에게 해가 될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말끔한 도덕성 같은 것으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들이다. 한때 '빠순이'라 불렸던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평가였는가 하는 것을 이번에 복수하듯 제대로 보여주었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그 절심함을 체험을 통해 잘 안다. 그것이 이번에 결집되어 터져나왔다.
기성세대가 놀라고 세계가 놀랐다. 시위현장에서 K팝이 울려퍼지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사>를 필두로 한 젊은층의 대중음악이 시위현장의 운동가요로 불리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박근혜 탄핵의 시발점이 된 이대 시위에서 <다만사>가 불려진 것이 참 공교롭다. 촛불이 응원봉으로 바뀐 것처럼 시위 투쟁가도 21세기 대중음악으로 단번에 진화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40~50년 전에 벌어진 일과 같은 뻘짓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위 문화와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는 더이상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배우 최민식은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고 했다던데, 그것보다는 "우리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윤석열이고 김용현이고 박정희가 뿌린 악의 씨앗들이다. 둘은 충암고 학도호국단에서 단장과 간부로 만난 사이라고 했다. 그들은 그 시절,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는 군 엘리트로, 하나는 검찰 엘리트로 평생 대접만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에 안 들면 쓸어버리면 된다'는 그들의 사고 방식은 고교시절 유신시대 그대로이다. 망상에 사로 잡힌 이들이다. 중고교 시절 우리는 거수 경례를 하며 "충효" "애국"을 크게 외쳤는데, 이런 구호들만큼이나 허망한 것은 없다. 어떻게 충성하고 어떻게 애국하라는 건가? 박정희와 유신은 옳고,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충이고 애국이었다.
이런 허상을 앞세우면 병든 자기 확신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나는 무조건 옳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평생을 살아왔다.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그들은 자유나 민주를 모른다. 입으로만 나불댈 뿐이다. 나는 이번 사태가 유신잔재, 박정희가 낳은 어둠의 자식들의 종말로 보인다. 21세기 젊은 세대가 20세기의 구악을 깨부수었다. 문화적으로 보자면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될 일이었다. 만약 국회가 장악되어 쿠데타가 펼쳐졌다면 유혈 참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70년대식의 무력과 21세기의 세련된 문화가 맞붙을 것이니, 그 참상은 놀라웠을 것이다.
내 경우. 나는 캐나다에 살지만 캐나다에 지분이 있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캐나다에 살러갔으면 캐나다 정치에나 신경 쓰세요"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캐나다에 지분이 있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내전이든 쿠데타든 벌어졌다 해서, 내가 몇날 며칠을 줄곧 신경쓰고, 탄핵 결정의 날에는 잠을 자지 않고 뉴스를 지켜보는 이유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번 일을 겪으며 한국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 다시는 윤석열과 같은 망상에 빠진 얼치기에게 더이상 속지 말기를.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