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팔월의 해는 길고 따갑다. 그 긴 해가 기울면 한줄기 시원한 밤바람을 타고 풀벌레의 목소리가 묻어온다. 순식간에 잔인한 도시를 점령한 풀벌레들이 마련한 현장음악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풀벌레 음악회는 들녘이나 강둑, 마당의 축담 밑, 공터나 길섶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이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허용된다. 풀벌레 노래소리는 무더위 속의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그만큼 이맘때면 가을이 "땅에서는 귀뚜라미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그렇게 가을 기운이 자리를 잡으면 숲속에서는 여름밤의 풀벌레 음악회가 본격적인 가을시즌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이다. 그러나 숲속에서는 여름밤의 풀벌레 음악회가 본격적인 가을시즌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이다. 귀 기울이면 다양한 악기 편성과 그 규모가 방대해서 4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한다. 연주 기량 또한 빼어나다. 연주회는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레파토리로 관객을 이끌어 사랑과 소통이 넘친다. 풀벌레가 연주하는 한 여름 밤의 콘서트는 밤에 피는 꽃처럼 가슴 속에 담아둔 추억과 사랑을 끄집어낸다. 노래하는 풀벌레는 들을 귀도 있다. 우리 주위에서 소리를 내는 풀벌레는 여치, 귀뚜라미, 베짱이, 메뚜기, 땅강아지 등 다양하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부위의 위치와 크기에 따라 특이한 음색과 성량으로 소통하고 섬세한 감정을 공유한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와 가까이 온 상대와 교감하는 등 암컷의 의사를 확인할 때 내는 소리가 다르다. 소리를 내는 곳도 날개, 넓적다리, 가슴, 목 등 여러 곳이고 소리를 듣는 기관도 있다. 풀벌레가 암컷을 부를 때나 짝짓기 할 때는 그지없이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한껏 달콤한 목소리로 세레나데를 노래하지만 경쟁 상대인 수컷끼리 만나게 되면 상대를 물리치려고 사나운 음조로 바뀌어 맹렬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냅다 지른다. 드물긴 하지만 간혹 암컷이 작은 소리로 수컷에게 기쁨의 응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땅강아지는 땅 속에서 암수가 함께 사랑의 2중창을 부르는 경우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수컷이 “비이이이-”하고 길게 울며 암컷을 부르면 수컷을 만난 암컷은 수줍은 듯 짧게 “비이-비이-”하고 스타카트로 응답한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낸 풀벌레들이 팔월 들어 건들거리며서 흥얼거린다. 풀벌레는 자연의 신비를 고운 선율로 노래한다. 한 여름 밤의 콘서트는 한 마리의 선창자가 튜닝도 없이 첫 음만 잡으면 나머지 모두가 뒤질세라 남성 4중창으로 열띤 무대를 꾸민다.
귀 기울이면 중창의 파트 따라 내는 독특한 음색을 구분할 수 있다. 풀벌레가 소리를 낼 때 날개를 한번 비비는 동작을 파동(pulse)이라고 한다. 1초에 4~5회인 것에서 200회를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바로크풍인 귀뚜라미는 파동이 규칙적이어서 안정감을 주는 아름다운 선율로 들린다. 귀뚜라미는 왼쪽 날개가 현악기의 활이 되어 오른쪽을 비벼 “귀뚤 귀뚤 귀뚜르르~”하고 반복해서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짧게 우는데 세 박자 울고 한 박자를 쉰다. 하룻밤에 평균 네 시간 반을 노래하기 위해 무려 4만 번이나 날개를 비빈다고 한다. 귀뚜라미 소리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의 위로자가 되어 옛적에는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설움을 대신했다. 동네 개와 매미도 그렇지만 귀뚜라미와 베짱이는 한 마리가 먼저 소리를 내면 주위의 동료들이 순식간에 등달아 화답한다. 여치의 날개는 몸통의 절반 정도로 짧고 베짱이는 몸통 보다 날개가 길다. 베짱이는 높은 소리로 멀리 있는 짝을 부른다.
여치의 울음소리는 “츱츱”하는 예령에 이어 ‘쓰르르르“하는 소리를 약 10초간 길게 연주한다. 외로운 여치는 낮에도 곧잘 소리를 낸다. 여치와 달리 베짱이는 그 긴 날개를 비벼 ”치 치 치~“하고 소리를 내는데 한번 시작하면 1분가량 끌고 간다. 메뚜기는 긴 뒷다리로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는데 이동 중에도 소리를 낸다. 여치와 귀뚜라미는 비상시에는 소리로 경고를 발하고 자신의 세력권역을 상대에게 선언한다. 풀벌레는 젊은이들 못지 않게 프로포즈의 방법도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특히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될 때는 풀벌레 소리도 산소가 필요한 만큼 호흡이 빨라지고 톤도 덩달아 올라간다. 요즘같이 밤 기온이 올라가면 풀벌레들도 무더위를 못 견디어 파동이 빨라지고 가뭄이 계속 될 때는 소리가 맑고 높게 들린다. 비가 내리거나 습한 날에는 풀벌레소리가 한 옥타브 낮고 부드러워진다. 한 여름 밤 귀 기울이면 자연은 온통 그리움과 사랑이 열정으로 넘친다. 이 곳 저 곳에서 들리는 풀벌레 노래소리와 풀잎, 나뭇잎들의 속삭임, 잎사귀에 이슬 맺히는 소리, 거기다 풀벌레가 이슬 먹는 소리까지 한데 어울려 고요한 여름밤은 풍성한 화음의 페스티벌이 열린다. 장마가 끝나고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한 여름 밤에 듣는 풀벌레 노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감성을 깊게 한다.
깊어가는 여름 밤 별을 헤는 마음에 별빛 쏟아져 내린다. 가을밤에는 온몸을 영롱한 별빛으로 물들인다. 밤하늘을 자르고 떨어지는 별똥별이 우주의 신비를 속삭이며 대지의 품에 안기고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고 별 헤는 밤'이 깊을수록 밤하늘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눈을 감으면 건너편 들녘 무논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개구리 울음과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선 미류나무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섞인 풀벌레소리와 함께 명지, 녹산, 대저, 가락, 강화도, 삽시도, 양구, 봉화, 영덕, 순천, 통영과 매물도, 양산, 경주, 호미곶.... 특히 기장, 죽성, 철마, 진하, 간절곶 앞바다를 끼고 달리는 31번 국도의 정경이 디졸브 된다. 여름밤은 모든 것을 숨긴 채 우리에게 보물찾기를 하잔다.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매료된 젊은 멘델스존이 '한 여름 밤의 꿈 서곡'을 작곡함으로써 그의 꿈을 실현했듯이 숲에 몸을 숨긴 풀벌레들도 이 밤 부지런히 가을꿈을 쫓는다. 별빛 흐르는 밤 숲에서는 풀벌레가 그리움을 노래하기에 좋은 계절이듯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향한 밤 기도가 아름다운 날개를 단다.
첫댓글 죽성마을에 개구리들 합창 들으러 가야 겠습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열대야로 잠들지 못하는 요즘 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다 읽었습니다.
일주일 전. 선생님께서 소개하신 '태극당'에 가서
"우리 선생님이 쓰신 글에서 태극당의 맛있는 바게트빵을 소개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책을 한권 들고 나오더니 "이 분 입니까?" 했습니다. '강화, 제주, 부산'이었습니다.
더운 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아주머니가 덤으로 주신 빵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경성대 앞의 동아서점에 갔더니 책이 없어서 내친김에 영광도서에 가서 찾아도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하늘 향해 서다'를 사와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책은 언제 나옵니까?
9월5일 예가인문학교실 개강 때 드리겠습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이곳 수빅에서도 밤에 고요한 적막을 뚫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 가을 느낌을 받고 기뻤습니다.^^
풀벌레의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이 약간은 서운해요.
우리집은 북한산자락 아래에 있는데 여름만 되면 개구리들이 합창을 해요.
더위가 언제 물러가나 지루해 했더니 풀벌레들의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하는 한 여름밤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밤이었네요. 메뚜기랑 땅강아지가 노래하는줄도 모르는 저는 정서가 메마른 바보였구요~^^
귀뚜라미 노래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 것 보면 가을이 오려면 멀었나봐요.^^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풀벌레의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환히 써주셨나요?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도 한방에 날리는 풀벌레연주,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