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결코 잊지 못 할 날이 있다. 우리에게서 구럼비를 빼앗고, 구럼비를 폭파한 날을! 폭력적인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군기지를 결정하고, 그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부수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새겨진 수많은 예리한 아픔이 많지만, 이 두 날짜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2011년 9월 2일 새벽 5시. 육지 경찰 1000여명과 제주 기동대는 강정마을 외곽에서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구럼비 너럭바위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중덕삼거리로 들이닥쳤다. 철저하게 고립된 가운데 망루와 쇠사슬 옥쇄 투쟁으로 버티던 우리들은 경찰의 폭압적인 폭력에 의해 끌어 내쳐지고 뜯겨 나가 펜스가 쳐지고 국가의 폭력에 의해 구럼비를 빼앗겨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날 36명이 연행되고 마을주민 4명이 구속됐다. 끝까지 버티다가 무참하게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주민과 시민들을 보며 경찰간부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이은국 사업단장의 얼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450여년간 강정주민들에게 어머니 품 속 같던 구럼비 바위!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넋을 위로하던 개구럼비당과 할망물,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물터진개 그리고 언제나 넉넉하게 안아주던 구럼비를 그렇게 빼앗겨 강정주민들은 구럼비 너럭바위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보드라운 살결 같은 바위위로 포크레인이 구멍을 뚫어대고 깨부수고 발파하며 우리의 가슴도 동시에 멍들어갔다. 피울음이 가슴 가슴마다 맺혔다.
그로부터 6년. 평화롭던 구럼비 바위위에 거대한 괴물처럼 들어앉은 제주해군기지는 미국과 캐나다 군함까지 들락거리며 외국군대의 쓰레기와 분뇨 문제등을 발생시키며,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위기에 쳐해 있어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을 키우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어 심히 걱정된다. 우리는 다시한번 천명한다. 평화가 길이고, 평화는 평화로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주민들의 갈라진 마음과 아픔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마는 문재인정부는 대통령이 공약한 구상권을 즉각 조건 없이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멍에와 상처로 남은 경찰과 국가의 폭력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에 관한 진상조사가 주민들의 아픔과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구럼비와 함께한 그 시간들을 기억하며 이곳에 서있다. 10년을 버텨온 우리가 구럼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흘려 온 눈물이 할망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쉰 한 숨 한 숨들이 구럼비를 쓰다듬는 바람이자 물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들이, 걸어 온 길들이 곧 평화다. 언젠가 막혔던 길이 열리고 거짓으로 지어진 허구의 콘크리트가 허물어지고 구럼비가 우리에게 돌아 올 날까지 우리는 이 땅에 서 있을 것이다.
2017. 09. 02
강정마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