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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날이 밝기를 기다려 서둘러 사무실로 나간다.
일 때문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에 실린 짐(공구)을 내리고 장비(캠핑)를 싣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내려야 하는 짐의 양도 엄청나고 다시 실어야 하는 짐의 양도 결코 적지않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캠핑을 다녀오자 마자, 다시 그 작업을 거꾸로 한 번 더 반복해야만 하는 치명적 약점까지 있지 않은가? 캠핑 현장에서 사이트를 설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돌아와서 혹 수리할 부분이 생기면 손질까지 해야만 하고, 혹 중간에 비라도 내렸다면 마무리 작업은 실로 엄청난 노동을 수반하게 된다. 하지만 이 대목은 오로지 할아버지 고유의 몫이다. 꽤나 성가시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할아버지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며, 우리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체력적으로 허락되는 날까지 기꺼이 이 책무를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갈 것이다. ‘병아리들아. 할아버지가 아직은 현역이란다.’
손녀들과의 캠핑은 일단 짐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할머니와 단둘이라면 매우 심플해질 수 있는데, 어린 손녀들과 함께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늦봄까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별도로 난로를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는 이미 출근을 하셨다. 할머니에겐 오늘 중요한 작업이 예정되어 있는 부득이 한 날이다. 가능하면 서둘러 끝내겠다고 했고, 러그와 이불과 옷가지와 아이스박스와 취사도구와 생필품 박스를 미리 챙겨놓고 나가셨다. 거기에다 내 개인 소품까지 챙겨서 다시 차량까지 날라서 차곡차곡 적재를 마쳤다. 싣기 힘들 정도로 짐이 정말 엄청 많다.
9시에 맞춰서 집을 다시 나선다.
할아버지 몫의 장보기를 하기 위해서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연수동 점포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손녀는 달랑 둘 뿐인데, 이 둘의 먹성이 완전 반대다. 태리는 육식파에 가깝고 동생 세리는 무조건 과일파다.
맛집 식자재 판매처로 알려진 곳을 찾아가서 일단 할머니 에피타이저로 육회를, 태리를 위해서 삼겹살과 간장 갈비를 4인 기준으로도 넉넉할 정도로 구입을 하고, 공동의 몫으로 소떡소떡도 구입하고, 과일 가게에 들러 자두와 귤과 사과와 참외를 구입한다. 이제 내 준비는 모두 마쳤다. 나머지 주전부리와 과자와 음료와 소주 맥주 등은 오후에 캠핑장으로 이동하면서 하나로 마트에 들려서 할머니가 챙길 것들이다. 늘 해오던 것들이라 서로의 역할 분담이 거의 익숙해졌을 정도로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해 이천으로 가서 우리 병아리들을 챙겨 올 순서다.
운전을 하며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전부 다 무슨 해괘망측한 일이래? 지금 번개불에 콩 구워먹는 캠핑을 떠나는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헛웃음이 튀어 나온다.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병아리들을 데리러 가고, 또 캠핑을 떠나느냔 말이다.
우리가 무슨 여행 전문 블로거라도 되나? 이참에 아예 세리를 앞세워 여행 유튜버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니야?
‘이게 다 고녀석 때문인데, 할머니를 저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보니 우리 세리가 역시 요물은 요물이여. 그나저나 우리 에너자이저가 배터리 재충전은 잘 되어있나 모르겠네?’
‘세리가 병원에 실려갔어요’라는 전화 한 통에 할머니는 그야말로 초죽음이 되고 말았다. 감기나 예방주사가 아니라 놀다가 쓰러져 실려 갔다는 경우는 손녀 둘이 태어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때까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게 세리의 성정이지만, 그랬다고 한낮에 일사병으로 잠시 기절을 했을 정도라니,‘그 어린 것이.......’하면서 할머니는 안절부절이다. 에미 애비가 당장 곁에 있고 또 병원에서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한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병아리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할머니는 쉽게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럴 때 떠올린 것이 이번 캠핑여행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을 비워서 녀석들을 하루 이틀 직접 데리고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겠다고 해서 이렇게 벼락치기 캠핑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 우리 병아리들이 입을 모아 아주 좋아하는 캠핑장을 운 좋게 섭외를 마쳐놓은 상태다.
병실에 누워서 팔에 링겔 주사를 맞으면서도 귤을 먹고 있는 세리의 모습을 떠올리니 또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여간 우리 세리는 아무도 못말려.'
아파트 벨을 누르자 물을 열어주면서 달려나와 덥썩 안기는 녀석을 보니 언제나 처럼 말짱하지 않은가? 정녕코 하늘에 크게 감사할 일이다.
‘할아버지. 많이 기다렸잖아요. 수영복이랑 물안경 다 챙겨놓았단 말이예요. 언니도 준비 끝났어요. 어서 가요. 길 막히기 전에요.’
그제야 태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안기면서 인사를 나눈다.
‘할아버지. 작년 월악산 거기 캠핑장이라고 하셨죠? 거기 정말로 좋아요. 얼른 가고 싶어요.’
‘너희 아침은 먹었니?’
‘네. 아침 먹고 이제껏 기다린걸요? 엄마가 챙겨준 옷가방만 들고가면 돼요.’
‘물총은 챙겼니?’
‘물총은 이번엔 안가져 가기로 했어요. 그냥 물놀이만으로 충분해요.’
‘세리 인형은? 범고래랑 수달이.’
세리가 제 방으로 달려간다. 인형과 장남감으로 가득한 제 방에서 침대에 놓여있던 범고래 인형을 끌어안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놀이 하다 빠트리면 안 되니까 이번엔 안 데려갈래요.’하고는 거실로 가서 제 미니 배낭을 둘러메고 앞장서 나간다.
지하주차장에서 출발을 하고나서 아빠랑 통화를 하고나니 치카치카를 빼놓고 왔단다. 아침 식사후에 양치질을 하고 챙기라고 했는데 그만 깜빡 했던 모양이다. 이마 한참 지나온 터라 새로 사서 치키치카를 잘 챙기기로 하고 충주 할머니에게로 향한다.
‘태리. 세리 충주 다와가니? 그런데 할머니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점심시간도 되었으니 할아버지랑 먼저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면 아마도 비슷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침을 많이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데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 두어야지? 캠핑장까지 가야하고, 또 할아버지가 텐트 설치를 마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을테니 아마도 한참은 더 늦게 될 테니까, 뭐라도 먹어두긴 먹어 두어야 해. 아참. 지난번에 보니까 우리 태리가 소바를 아주 좋아하던데 할아버지랑 소바 먹고 천천히 아파트에 와 있어. 세리도 소바면은 좋아하잖아? 그럼 얼추 시간이 비슷할거 같아. 알았지? 소바 먹고 와서 만나자?’
그래서 시내를 우회해서 근자에 몇 번 다녀 본 소바 맛집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소바 정식을 시켰는데, 큰손녀 태리는 소바 면 두 덩어리와 돈까스를 말끔하게 맛있게 먹는다. 대신 세리는 소바면 한덩어리만 맛있게 먹고는 ‘아침을 많이 먹었어요’라면서 끝낸다. 돈까스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대신 차에서 귤을 꺼내와 그 자리에서 다섯 개를 말끔하게 해치운다. 덕분에 녀석들이 남겨준 정식 1인분 분량이 할아버지 몫으로 남았다. 녀석들과 여행하면서 먹거리 뒤치닥꺼리 중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날이다.
아파트로 가니 할머니가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 출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그제서야 자기 품에 꼭 안고서 작은 손녀 세리의 안위를 이래저래 세세하게 살펴보고는 환한 표정으로 그간의 모든 걱정을 내려 놓는다.
다시 출발을 하면서 살미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나머지 장보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캠핑을 위해 월악산을 향해 달려간다.
달려가는 곳곳의 동쪽 하늘로 월악산 영봉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 고장 충주의 경우 주덕읍을 지나 도심으로 향하면서부터는 날씨만 좋으면 동쪽 하늘 저편으로 월악산 영봉이 자태를 드러내곤 한다. 그래서 그만큼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살미면을 지나면서 부터는 지척에서 멋지고 신령스런 연무에 휩싸인 영봉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공이교를 지나 송계 입구의 강변에서 올려다보는 모습이 최고 압권이라 할 만하고, 수산리에서 덕산 계곡 입구까지 에서는 월악산의 옆면 모습을 아주 가깝게 올려 볼 수도 있다.
월악산 영봉의 모습이 보는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충주호 쪽에서 올려다보면 여인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모습이고, 제천 덕산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다고 하고, 미륵리 방향에서 올려다보면 영락없는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예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모셔져 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억수 계곡이라 일컬어지는데 그 길이가 장장 16km까지 이어지고, (용하 야영장)은 억수 계곡의 접근이 허락되는 가장 깊숙한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작 이곳에서부터는 월악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월악산 깊은 골짜기 우거진 숲속에 제대로 파묻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예정에도 없던 캠핑을 이렇게 오게되었고, 마침내 눈에 많이 익숙한 캠핑장의 전경이 한눈에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용하 야영장)에 마침내 이제 막 도착을 한 것이다.
세리 요정의 치기(稚氣)어린 불상사(?) 때문에 갑작스레 성사된 캠핑이기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우린 지금 병아리 두 마리를 우리 품 안에 품고 있는 것을..........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평온함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을 뿐이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용하 야영장) A –10 싸이트이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우선 A-10 사이트의 현재 상황 파악을 위해 우리 4명 가족이 먼저 살펴보고자 가보았다.
변했다.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자면 황당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사이트의 주변 환경적 요건이 지난해와는 다르게 확 변해 있었다.
정확히 일 년 전에 우리는 같은 이 자리에서 2박3일 동안 머물렀었다. 같은 장소, 같은 계절, 그리고 우리 가족 4식구까지 그대로였다. 그때는 A-9번 사이트였고, 이번엔 A-10번 사이트라는 것만이 그나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봇도랑을 기준으로 A-9번 사이트는 우측에 종으로 길게 세워진 형태이고, A-10번 사이트는 좌측에 횡으로 길게 누워있는 구조적 차이가 전부다.
지난해 까지의 실질적 경험까지를 토대로 하고, 나는 (용하 야영장)의 최고 명당은 A-9번 사이트가 최고이고 다음으로 A-10번 사이트를 주저 없이 꼽겠다고 호언해 왔었다. 굳이 다음으로 꼽는다면 B-40번이나 B-41번을 꼽아왔다.
여타의 다른 많은 여행자들이 용하야영장 최고의 명당으로 거의 대부분 B-42번 숲속 사이트를 꼽아왔는데. 그분들과 나의 사이에는 주관적 식견의 차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면 애초부터 나라면 B-42번 사이트를 선택할 생각조차 아예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사이트라면 혹 모르겠지만 말이다.
호젓하고 가장 프라이빗한 캠핑을 할 수 있는 명당이 B-42번 사이트로 최고 명당이라고들 말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2팀이 이어서 사용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 팀은 연인으로 보이는 두 명 캠퍼였고, 다른 팀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 팀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놀란 것은, 이 두 팀이 사이트 구축 후 주위에 암막 커튼을 둘러 설치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한적하고 후미진 곳을 프라이빗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도 모자라, 외부와의 차단망(커튼)까지 설치하였는데, 그 후로도 별로 외부 활동이나 놀이가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럴 정도라면 굳이 왜 대중적인 캠핑장을 찾은 것일까? 열려진 공개적인 장소에서 꽁꽁 싸매고 들어앉아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저럴까? 언뜻 생각에 지리산 덕유대야영장 3구역이나 강화도 마니산 함허동천 야영장이나 무인도로 비박 킴핑을 가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아침 산책을 마칠 때쯤 벌써 부랴부랴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분들 혹시나 남들이 하도 용하야영장 B-42번 사이트가 명당이라고들 하니까, 사이트 구축하고 암막으로 감추고 들어앉아 명당 인증샷이나 찍으려고 오신 분들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하긴 세상은 넓고 제각각 살아가는 방식도 다 다를테니 뭐라 더 해줄 말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 나는 내 멋에 살테니 너는 니 멋에 살아라. 아 유 오케이?'
A-10번 사이트를 직접 목격하고 가장 놀란 이유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작년에는 있었던 나무 한 그루가 싹뚝 잘려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자리가 명당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용하야영장)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중심지역이기 때문이었다. 흡사 피렌체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예술의 도시 한복판에 놓인 두오모 광장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따지자면 A-9, A-10 사이트는 두오모와 세레당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명당이었다.
A-9번 사이트에 인접한 A-10 데크 사이트의 모서리에 중간 크기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여름철 한낮에도 9번 사이트 텐트의 절반 이상과 10번 사이트 텐트의 대부분에 은근하게 나무 그늘을 드려주는 아주 고마운 나무였다. 빼곡하게 우거져 짙은 그늘을 드려주는 것보다, 오히려 알맞게 가려주는 듯한 알맞은 정도의 그늘이 오히려 이 사이트들을 그늘과 환기성과 환한 경관으로 오히려 돋보이게 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주저없이 여기 A-9. A-10 사이트를 (용하 야영장) 최고 명당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와서 보니 그 나무가 싹둑 잘려나가 없어진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독 벌레에 약한 나무여서 였을까? 정비사업 하다가 중장비가 부딪혀 부러트려 버렸을까? 아니면 혹시 누군가가 그 나무에서 생을 하직하기라도 했나?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A-9, A-10 사이트는 여름철 한낮에 서너 시간동안 완전하게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대로 폭염의 횡포를 감수해내야만 하는, (용하 야영장) 전체를 통 털어 나무 그늘이 가장 적은 황무지 사이트로 전락하고 말은 것이다. 푸른 초원도 사막화가 된다더니 만, 그런 놀라운 변화가 이번처럼 한여름 최고 성수기에 명당 취급을 받아 온 사이트가 덜렁 버림받아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거나, 예약을 했다가 사정을 알고는 취소해 버린 덕분으로, 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의 시선에 띄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행이 이미 이곳의 전체 환경적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주로 물에서 빠져 노는 우리 병아리들의 특성상 한낮에 텐트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을 시간이 거의 없을뿐더러, 혹시나 하여 준비해 온 우리의 텐트가 그늘을 충분히 만들어 주고 통풍성 또한 아주 뛰어난 것이었기에 우리에겐 사실 별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한낮에 밖의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쉴 때만, 살짝 작년처럼 나무 그늘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잠시 아쉬웠을 뿐이었다.
당분간 (용하 야영장)에서 A-9. A-10번 싸이트는 절대로 명당이 아니다. 적어도 한여름 동안엔 말이다. 혹시나 공원 관리단에서 내년쯤에 새로 나무를 옮겨 심어준다면 다시 명당으로 복귀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자면, (용하야영장)의 최고 명당은 B-40. 그리고 B-41번 사이트라고 자신 있게 권해드릴 수 있겠다. 물론 용하 야영장의 특성처럼 일행 중에 어린이들 동반한 가족 캠핑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거기다가 변한 것이 나무 한 그루가 잘려나가 사라진 것만이 아니었다. 작년엔 분명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차량을 옆에 두고 할 수 있는 오토 캠핑이 아니라면, 항상 주차장에서 예약해 둔 사이트까지 짐을 옮기는 것이 가장 우선된 주요 업무라 할 수 있다. 싣고 온 짐은 많지, 용하 야영장의 경우 사이트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지, 때는 폭염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여름날 오후겠다, 정말로 오늘은 사람이 딱 쓰러지기 좋은날이 아닌가?
물론 할아버지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짐을 부지런히 날라다가 텐트를 치고 장비 설치를 마쳐서 병아리들이 쉬고 저녁 먹고 잠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당연하겠는데, 그래도 이때쯤이면 병아리들이 쫄쫄거리며 따라다니고 짐을 날라 준다고 설쳐대고, 폴대 연결을 하고 텐트에 끼워 넣고 고리를 걸고 팩 작업할 때 한쪽을 잡아당겨 주고 하는 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익숙했고, 테이블을 설치하려면 제가 하겠다고 나서고, 의자나 살림살이를 꺼내면 제 것을 골라 찾아내고, 랜턴 등을 꺼내면 충전선을 열결해서 충전까지 도와주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완전히 아니다. 순전히 그넘의 봇도랑 때문이다.
물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병아리들을 물가에 풀어놓았으니........ ‘할아버지. 혼자서도 하실 수 있지요? 날씨가 하도 무더워서 저희는 일단 물에부터 들어갔다 올께요.’하는 폼들이다. 거기다가 물에 들어가려면 저희나 들어 갈 일이지 할머니는 왜 또 강제로 끌고 들어가는 거니? 일손 하나가 얼마나 아쉬운데? 병아리들에게 반강제로 끌려 들어간 할머니가 벌써 풍덩하고 물에 나자빠지고 만다.
‘할망구. 그거 헐리우드 액션 아니지? 나 혼자 독박 한번 써 보라고?’
어쨌거나 할아버지라는 책임은 막중하고 결론적으론 위대하다.
짐나르다 쓰러져 디지기(?) 딱 좋은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맡겨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꿋꿋이 카트 운반수레를 밀고 또 끌어본다.
오늘의 싸이트는 할머니의 불호령 같은 성화에 못이겨 외부 메인 텐트는 (에르젠 페가수스 S3)를 물놀이 하는 병아리들을 위해 바닦은 빼고 설치를 한다. 넉넉한 실내 공간 확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거기다가 숲속으로 나설 때는 이너텐트가 필수여야 하고, 반듯이 이너텐트는 바닥이 탈부착이 아닌 일체형이어야만 한다는 엄명이시다. 혹시나 개미나 다른 벌레가 바닥 틈새로 기어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그래서 이번에 호출된 것이 외부 플라이를 제외한 (노스피크 나르시스 돔 EX)다. 돔 텐트가 에르젠의 이너텐트로 선정되었으니, 이게 사실은 텐트 두 개를 가지고 가는 편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대신에 별도의 타프는 필요치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 텐트들의 합친 무게와 부피가 상당하다는 데 있다.
'우리 병아리들이 넉넉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지내다 와야겠다는데 뭐 다른 불만있어?'
'없어. 무슨 불만이 있겠어. 창고 깊숙한 곳에 들었는데 어떻게든 꺼내와야지. 그까짓 부피나 무게쯤이야 차가 싣고 다니는 거지 내가 들고 다니는 건가? 아무런 문제 없어. 까짓꺼 눈을 감고도 치고 접을 수 있는데 뭐. 내가 혼자 다 할 수 있다니까?'
카트에 텐트 두 개를 싣고나니 벌써 한 짐 그득이다.
일단 텐트만 가지고 가서 치기로 했는데, 헐!!!!!!! 정말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저떻게 해서 에르젠 텐트를 치고 나서 둘러보는데......... '각이 안잡혔느니, 핏을 살려야 하느니 하면 가만 안둔다? 그냥 안쓰러지게 쳐서 나중에 들어가 잠만 자면 되는거야? 꼬우면 당신이 치시던가?'하는 배짱으로 일단 대충 설치만 한다. 결론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정쩡한 설치가 되고 말았다. 물에 들어가 발목 한 번 적시고 나서 에르젠 전체 통 바닥깔판를 반으로 접어서 안쪽에만 깔고, 그 위에 나르시스 돔을 이너 텐트로 설치했다.
이번에 처음 조합으로 맞춰본 것인데, 치고 나니 여러모로 썩 마음에 드는 조합이 되고 말았다. 우리 병아리들 잘 지낼 수 있겠다.
이제 집은 완성 되었으니 살림살이를 들여야 하겠는데......... 카트를 끌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완전 땀에 목욕부터 하고난 꼬락서니가 아닌가. 그래서 지갑을 꺼내들고 매점으로 향했다. 캔맥주 하나를 땄는데, 그야말로 구원의 생명수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캔 하나를 더 따서 들고 차로 와서 카트에 짐을 올려 싣고 있는데 불쑥 나타난 할망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건 음주운전이잖아? 카트도 바퀴가 달렸는데 그렇게 마시며 끌고 다녀야겠어?'
'땀으로 벌써 다 나갔어. 디지겠는걸 어떻게 해?'
' 아이스박스랑 주방용품 상자부터 가져다 주면 안될까? 애들이 과일이랑 쥬스가 마시고 싶대.'
'그래? 그럼 그것들 먼저 가져다 줄께. 여기까지 와서 안되는게 뭐가 있겠니? 슈퍼맨 할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말.이.그.렇.다.는. 것.이.지. 할.아.버.지.노.릇.절.대.녹.녹.한.자.리.가. 아.니.다.
차량에 짐 실린 순서의 역순으로 짐을 나르려고 테이블에 의자에 이불 보다리를 먼저 싣고 있었는데, 그만 짐 운반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 카트에 실었던 짐을 다시 내려서 차량 뒷좌석으로 옮기고, 짐칸의 안쪽에서 대형 아이스 박스에다 부억 살림 채비를 꺼내 먼저 카트에 싣는다.
아이스 크림을 사 들고 온 할머니 뒤를 쫄쫄 따라가면서 카트 운전을 음주 아닌 음주 상태로 성실하게 실행에 옮긴다. 착하고 설실한 할아버지는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아이스크림에 과일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병아리들을 보고나면 할아버지의 힘듦이나 피곤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럼 다시 본분으로 돌아가야지? 암. 서둘러 돌아가야지.
다시 네번을 더 주차장과 사이트 사이를 오고 간다. 그제서야 짐 운반이 모두 끝났고, 테이블을 꺼내 설치하고 의자를 배치하고 버너를 조립하고 가스를 연결하고, 간이 실내 주방을 설치하고, 이너 텐트 안에 러그를 깔고 내부 살림살이 구분을 마친다.
비로소 할아버지의 맡겨진 소임이 끝난 것이다.
'계곡에 내려가고 싶다는데, 계곡 핑계로 뭐라도 먹여서 가야겠어. 간장 갈비를 찌개로 끓여서 아예 밥을 먹게 해줄까? 그게 좋을 것 같아. 버너에 불 좀 피워줄래요? 밥은 햅반으로 될테니까, 당신이 전자렌지에 좀 덮혀다 주면 좋겠어.'
아이고, 준비가 모두 끝난줄 알고 이제 본격적으로 나도 물에 한 번 들어가 볼려 했더니만........ 개애애애애뿌울.
그릇이랑 후라이팬 가지고 개수대로 가서 설것이를 새로 하고 물을 떠서 돌아와서는 풀레이트 버너에 올려 불을 당긴다. 요리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햅반 두개를 가지고 공용 시설 건물로 가서 전자렌지에 덮히려는데, 우리집 렌지랑 다르다. 안경을 쓰지 않고 와서 작은 글씨가 보이지도 않는다. 어찌어찌 가동을 시켰는데 렌지 안쪽 회전 바닥이 돌아가지를 않는다. '고장났나"하고 이래저래 고심을 하고 있는데, 같은 이유로 찾아 온 젊은이가 '요즘은 돌지 않는 렌지도 있대요. 이게 그런가 보네요.' 하면서 시범을 보이는데 정말로 그렇다. 젊은이 없었으면 낭패를 겪을뻔 했다.
텐트로 돌아와 식사준비가 끝났는데........ 우리 집의 최고 난제가 항상 병아리들 밥먹이는 문제가 아닌가?
밥상 머리에 데려다 앉히는게 힘든 우리집에서 '밥을 먹어야 계곡에 물놀이 하러 내려가지'하는 헐머니의 최후 통첩이 실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먼저 달려들은 언니 태리가 번개처럼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마치고는 앞에 의자에 드러누워 얼른 계곡에 가지고 시위를 벌인다. 할머니랑 먹을 할당량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세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밥이나 고기보다는 과일에 마음이 쏠리고 있다. '헐머니 밥을 세 숟갈만 먹고 대신 참외를 먹으면 안되나요?' '몰놀이를 실컷 하려면 오늘은 밥을 많이 먹어야 해. 세 숟갈로는 안돼.' 언제나 처럼 할머니와 병아리의 줄다리기는 조금 더 지속되어야 끝날 기미가 엿보인다. 그렇게 버틴다고 적어도 오늘만은 그냥 순순히 넘어가 줄 할머니가 아녀보인다. 결국 세리가 과감하게 밥상에 달겨들었고, 녀석답게 종국엔 할머니랑 디저트 대신 아이스크림으로 타협을 얻어내고야 만다. 끝까지 이런 장면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속은 그저 한없이 뿌듯하고 느긋하다. 갈비 찌개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고, 밥이야 안남겨 놓으면 전자렌지에 한 번 더 다녀오면 될것이고, 할머니까지 계곡에 내려가고 나면......... 오늘은 더 이상 운전할 일도 없겠다. 갈비 뜯으며 반주를 한잔 해도 되지 않을까? 이게 아디 낮술인가 해걸음 술이지? 할아버지 체력도 방전 상태라고, 그러니까 살짝 반주로 보충 좀 해주려고. ㅎㅎㅎㅎ.
개뿔!!!!! 아니나 다를까. 반주는 무슨?
시방 우리 병아리들 할머니가 누구여? 구미호 마귀할멈 아니여? 40년 이상을 같이 살았으면 남의 속이 저절로 그렇게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이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차 끌고 수산 하나로 마트까지 좀 다녀와야 하겠어. 애들이 치카치카를 안가져왔다면서? 덕산 슈퍼에는 없을테니까 번거러워도 수산까지 나가서 하나로 마트에 가면 어린이용 치솔에 어린이용 치약을 따로 파는 게 있을거야. 여러개 든것 말고, 하나씩 든것 좋으것으로 사다 주셔. 애들 끼니때마다 치카치카 제대로 하는 거에 짱구랑 겡구가 얼마나 중요하게 신경 쓰는지 잘 아시지?'
그럼 그렇지? 에구. 산통 다 깨졌다. 이러고 살아온게 어언 41년이 아닌가?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속설(俗說)중에 ‘악(岳) 자가 들어가는 산을 가볍게 보고 덤벼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자칫하다가는 입에서 절로 곡(哭)소리가 나오고 말 테니 말이다’라는 이야기다. 이 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실없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정설처럼 옛적부터 널리 퍼져있는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는‘악(岳)’이나 같은 뜻과 음을 가진 또 다른‘악(嶽)’이 들어간 지명이나 연관성을 가진 산들이 유독 많이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에서 시작하여 치악산과 월악산이 있고, 운악산과 화악산이 있으며, 더하여 감악산. 관악산. 북악산. 황악산. 모악산. 삼악산 등이 있으며 방방곡곡의 지방의 산까지 합치면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고 산 이름에 한자 ‘악(岳)’ 이나 ‘악(嶽)’이 들어갔다고 해서 반듯이 ‘곡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험준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하겠다. 앞산이든 뒷산이든 대한민국에 곡소리가 나올 정도의 깔딱 고개가 없는 산이 어디 있겠는가? 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이든 힘들기 마련인 게 산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삼대 악산’이니 ‘오대 악산’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그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주장하는 사람의 경험과 주워들은 이야기들에 의해 제각각 다양한 주장들로 끊임없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합리적 기준에 따른 정해진 순서나 답은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사실 상식적으로 따져 본다면, 곡소리가 절로 날 정도의 힘든 산행은 당연히 정상의 높이가 가장 높은 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놓은 산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 당연히 가장 힘들테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남한)의 진정한 악산(岳山)은 당연하게 한라산(漢拏山.1950m)이 첫번째요, 다음이 지리산(智異山.1915m)일 것이며, 그 다음에 설악산(雪嶽山.1707m)으로 순서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거늘, 이상하게 그중에 악(岳) 자가 들어간 산으로는 설악산이 유일하니 그또한 자못 이상할 뿐이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둘러치나 메치나 어떤 경우에서도 ‘대한민국(남한)에서의 진정한 3대 악산(岳山)’이라고 하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고정 출연하는 삼총사가 확실하게 있기는 있다.
‘우리나라 삼대 악산은 설악산(雪嶽山.1707m)과 치악산(雉岳山.1282m)과 월악산(月岳山.1095m)이다.’ 라는 명제 앞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적어도 이 시대에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제 하나의 정설이자 불문율이 되었다.
등산을 좀 했다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라도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의 이름을 거명하면 일단, 저절로 입에서 탄성처럼 곡(哭)소리 비슷한 것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니 바로 그것이 증거다. 그랬음 이었는지, 비교적 내 고향 지척에 있는 월악산을 이제껏 네 번 올랐었는데, 그저 그런 정도로 산은 다 힘들겠거니 했었다. 그러다가 치악산 사다리 병창 계곡으로 비로봉을 한 번 올랐었는데, 비로소 왜 악(岳) 자가 이름에 붙은 산이 지독하게 힘들다는 속설의 진실을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네 번의 월악산 등정에서 그나마 가장 수월했던 기억이 바로 여기 (용하 야영장)이 있는 덕산면의 신륵사 코스로 월악산 후면의 등줄기를 타고 그대로 영봉까지 오르는 코스였다고 희미하게나마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기억을 회상하면서 월악산(月岳山)을 가만히 회고해 보자니,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월악산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산은 높을수록 당연하게 정상까지 오르는 게 힘들기 마련인데, 그렇게 오르기 힘들다는 ‘대한민국의 3대 악산(岳山)’에 늘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월악산(月岳山)이 사실은 높이를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얼굴을 들 수 없을뿐더러,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랬음에도 어떻게 ‘3대 악산’ 이라는 악명(惡名)을 얻게 되었단 말인가?
산의 높이로 따지자면 월악산은 대한민국(남한)의 100대 명산에도 들지 못한다. 지극히 미미한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의 산이라는 뜻이다. 월악산보다 높은 산과(지리산처럼 하나의 산에 높은 봉우리가 별도로 여러 개일 경우처럼) 봉우리가 남한에만 100개가 넘는 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얼추 높이만을 근거로 따져 보자니 얼추 113위나 114위 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열 번째는 아니더라도 스물 몇 번째는 되겠거니 했었는데 말이다.
그저 참으로 놀랍고도 한없이 신기할 따름이다.
실제로 일급 산악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물어본 결과로도 ‘지명에만 악(岳)자가 들어가는 3대 악산(岳山)’이 아니라, 실제 산악인들도 험준하고 힘들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휘두르게 되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오르기가 힘든 산을 꼽는데 있어서, 첫째가 설악산이요, 둘째가 지리산이며, 셋째가 바로 월악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또한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산의 높이로는 남한에서 100번 째 안에도 들지 못하였지만, 경사가 급하고 암릉과 바위 구간이 유독 많아서 한번 산을 오르고자 하면 매 순간 체감하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차이를 보이는 등으로 절로 입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고 터져 나오게 만드는 산이 바로 월악산이라고 한다.
그 산을 곡소리까지는 모르면서 서너 번을 올랐으면, 나도 일급은 아니더라도 얼추 이삼급은 되는 준산악인이라 할 수 있을까?
월악산에는 항상 뒤따라 다니는 민간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미륵리에서 올려다 보면 영락없는 부처님 형상이지만, 공이동 방향이나 수산리에서 보자면 훌러덩 벗고 있는 여인의 형상이라던가 아니면 여인의 젖가슴 형상을 빼다 닮았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더없이 신령스러운 산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신령스러움의 대상이 여자 산신령이다보니, 당연하게 음기가 무척이나 강한 지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 음기로 인하여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덕주사의 남근석처럼 월악산 일대에는 여자 신령의 강한 음기를 누르려는 민간신앙 흔적이 여기저기 즐비하게 널려있다.
(용하 야영장) 또한 그 여자 산신령의 강한 음기가 활발하게 작용하는 산골짜기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형국이라고 치면, 이곳에서 남자의 팔자가 어떨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어느 정도 가능할진대.......... 오호라. 시방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꼬?
지금 당장 눈 앞에 여우만 셋이 아닌가? 마귀 할망구에다가 요물단지까지 말이다.
‘할아버지. 물고기 잡아 주신다고 했잖아요? 지금 잡아 주셔야지요?’
아!!!!!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를 않는 것일까?’
계곡에 내려서니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손녀 세리의 전용 수영장이자 놀이터다. 작년에 즐거웠던 물놀이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였던지라 일체의 머뭇거림 없이 시작에서부터 텀벙에다 풍덩풍덩이다. 거기에다 할머니까지 본격적으로 가세를 하니 용하 골짜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더없이 깨끗한 계곡 물속으로 커다란 피라미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눈치를 보자니 잡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아 보이는데 떼를 지어 어찌나 빠르게 몰려다니는지 연실 잠자리채 그물질이 헛빵이다. 물가에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나 눈에 보일 듯 말듯 새끼 고기들이 둥둥 떠다니며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세리의 고사리 손바닥 안에 새끼 고기가 걸려들고 말았지 않은가? 어찌나 작은지 잠자리채에 넣으니 그물 틈새로 빠져나간다. 그러자 더욱 확실하게 근거있는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새끼고기 잡이에 맨손으로 나서는 세리와 할머니다. 그런데 곧잘 잡혀든다. 그저 신기할 수밖에 없지않은가? 이러다 민물 멸치 공장 차리는 것 아니야?
‘할아버지. 여기 오면 물고지 잡아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얼른 잡아 주세요. 물고기 통도 좀 가져다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물고기를 잡아달라고? 플라스틱 통발이 아직 차에 실려있는데? 주창장 너무 멀다고? 당장 그래야 하겠니?’라고 하소연을 해본들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약속은 분명히 사전에 있었고, 녀석은 지금 당장 이행해 달라고 요청을 해온 마당에 말이다. 이쯤이면 이 녀석을 어떻게 이겨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결국 터덜터덜 다시 주차장까지 통발 상자를 꺼내러 가고, 계곡 물놀이에 별 흥미를 잃었음인지 언니 태리는 따라 올라와 텐트로 들어간다.
통발을 꺼내다 물웅덩이 설치했는데, 바로 아래서 세리와 할머니가 물난리를 치고 있으니 사방으로 놀라서 도망다니는 물고기가 잡힐 턱이 있겠는가? 완전히 꽝이다. 슬슬 할아버지 체면에 손상이 갈 것 같은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쯤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할 할아버지는 절대 아니다.
통발을 꺼내들고 계곡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윗쪽 웅덩이에 다시 설치를하고 한참을 기다려 다시 가보았는데, 헐!!!!! 이번에도 완전 꽝이다. 오랜 캠핑 천렵 이력에 이런 난감한 경우도 처음이지 싶어질 정도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검색을 해보니 아무래도 떡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냄새가 흔한 떡밥의 냄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번 다리안 계곡에서 통발을 놓았을 때, 마루리를 서두는 통에 남았던 떡밥에 물기가 스며들은 것으로 보인다. 그 습기를 먹은 떡밥이 한여름의 가혹한 더위 속에서 변질(부패)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남겨놓은 떡밥을 그냥 물속에다 던져 보았더니, 고기떼들이 몰려오기는 하는데 먹어치우려 공격은 하지 않고 서성대기만 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실패인가 보다.
꺼내서 접으려는데 상자 옆구리에 다른 분말 떡밥을 쓰다가 남은 작은 봉지가 보였다. 극히 미미한 적은 양이었다. 마저 물에 개어서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다시 방금 통발을 꺼냈던 물속에 넣어 설치했다.
다시 세리에게 가사 잠시 함께 놀아주다가, 워낙 분량이 적었던지라 지금쯤 덕밥이 모두 소진되었다고 여겨질 즈음에 마지막으로 그냥 회수하기 위해서 가보았다.
그런데 고기가 잡혔다.
아주 딱 할아버지 체면을 세워줄만큼 고기가 들어있었다. 걱지 한 마리에 피라미 수놈인 불거지 큰 놈이 통발에 들어 있었다. 세리 물고기 통에 담아주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지난번에 한 오십 마리 이상 잡아 주었을 때 분위기랑 똑같다. 일단 잡은 고기가 무척 컸고 생김새와 색깔이 예뻤기 때문이리라.
‘어쭈? 저 녀석 봐라? 용하 계곡을 온전하게 혼자서 다 차지하고 있네? 주인이야 주인. 용하계곡 산신령 포즈를 하고 있잖아? 헐!!!!! 또 헐!!!!!!!!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가..........’
지금 이 순간 누가 뭐라고 해도 월악산 용하 계곡의 주인은 큰손녀 윤태리였다.
태리가 용하 계곡의 자연속에 완전하게 녹아들었음일까? 아니면 용하의 자연이 태리의 아우라에 저절로 굴복했음일까?
아무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랬다. 태리와 숲과 야영장이 멋진 조화를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헐!!!!!!
'윤태리. 너 지금 뭐하고 있니?'
꼬리 셋 달린 꼬마 여우가 갑자기 고고한 학이 되려고 변신중이신가? 아님 망중한(忙中閑)을 수행중이던가, 그것도 아님 혹시 멍때리기 대회 출전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니?
무더운 한여름에 어떻게 보내는 휴가가 최고의 피서인지 궁금하다면, 주저말고 우리 태리에게 불어 보시라.
'인생 뭐 있어? 저런게 인생이지'
‘태리가 계속 저러고 있어도 괜찮은걸까? 꽤 오래되었는데?’
계곡 물놀이에서 올라와 텐트에서 세리가 과일을 먹고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태리는 여전히 봇도랑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혼자 앉아서 놀고 있다.
‘사색과 낭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 저 시기엔 저런 시간을 가끔 갖고 싶어지는 거야. 남자는 사춘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성정으로 지나는지 몰라도, 여자는 저렇게 자주 혼자 있고 싶어진다니까? 어수선한 환경이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오래 혼자라면 좋지 않겠지만, 우리 태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괜찮아. 사춘기의 고독은 순전히 그대로 외로움이 아니라니까? 심성이 숙성 기간을 통해 성숙해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야. 소녀에서 여자 청소년으로 신체만큼이나 마음과 정신이 성장하고 있는 거야.’
‘그래? 내 경우는 사춘기가 있었나 싶고, 아들을 봐도 어느 날 성인 남자로 불쑥 변했던 것 같아서 특별히 사춘기라는 기억이나 경험이 거의 없어. 그럼 저런 사춘기가 언제 끝나?’
‘그건 모르지. 사람마다 다 다를테니까. 어쨌거나 지금 우리 태리가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 주어야지. 스스로 잘 극복해 나갈 거니까 별걱정은 없지만 말이야.’
‘할아버지는 손녀들이 커 갈수록 이래저래 점점 어려워지네?’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니까 어려운 것이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별다른 의식 없이 그동안 해온 것처럼 늘 한결같은 마음과 행동으로 편하게 대해주면 되는 거야. 우리 태리와 세리가 아가씨로 신체가 훌쩍 컸다고 해서, 다른 집의 여자들 대하듯이 별다르게 의식하고 행동하면 그게 훨씬 더 이상한거야. 처음부터 병아리들은 우리 손녀였고 우린 가족이야. 어린이에서 성인 여자로 성장하는 기간에도 늘 곁에서 지켜보고 생활해 나가면서 그때그때 허용되고 필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변해가게 되는 거니까, 지나치게 걱정하고 의식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한 것이 되는거야. 애들이 오면 지난주 함께 있을 때처럼 대하면 되고, 다음 주에도 또 오늘처럼만 대하다 보면 저절로 대학생이 되고 시집도 가고 하는거야. 처음에 불쑥 태어나서 우리에게 낯가리고 안아보려 하면 울기만 하던 애들이 어느새 사춘기가 되었고, 또 작은애는 죽어라 놀아달라고 할아버지한테 매달리고 있잖아? 모두 순식간이야.’
‘난 더도 덜도 말고 지금이 딱 좋아. 요녀석들과 이러고 있는 지금이 제일 좋아. 좀 오래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어.’
‘그렇게 머물고 싶을 정도라면 지금 이순간에 더 노력을하면 되겠지. 더 많이 노력해서 더 많은 추억을 쌓아 놓아야지. 그러면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도 덜 아쉬울거야. 곱씹을 추억이라도 많이 쌓였을테니까. 다 늙어서 쬐끔 철들어가나보다. 진즉 그랬으면 아들이 오죽 좋아했을까? 나한테도 진즉 좀 그렇게 해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차차 갚어.’
이렇게 살짝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세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할머니 무릎팍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그 몽환적인 요정의 눈빛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을 번갈아 가며 살펴본다. 약간은 형이상학적일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 내용까지는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뭔가 자못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를 아직 한참이나 어린 심정으로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를 끔찍이 예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 앞에서 심하게 다투지는 못할 것이라는 은근한 존재감을 슬며시 들이미는 것이다. 그런 녀석의 어설픈 행동과 표정을 살펴보면 ‘정말로 요물이다. 윤세리. 너를 어쩌면 좋겠니?’ 하는 마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시에 커다랗게 폭소를 터트리고 만다.
‘내가 나가서 태리와 시간을 좀 보내야 할까봐. 당신이 세리를 잠시 데리고 있어주면 안될까?’
이 말씀은 이제부터 할머니로서 큰 손녀와 단둘이 만의 시간을 좀 가지고 싶으니, 한동안 세리를 데리고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는 지엄하신 명령이다.
평소 할머니의 지대한 관심 대부분이 아직 어린 막내 세리에게로 향한다. 자나 깨나 주야장창 세리타령이다. 하기사 지금의 벼락치기 캠핑도 따지고 보면 세리의 갑작스런 병환(?)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세리가 우선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아마도 언니 태리가 우선이지 싶다.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언니인 태리가 4살이나 위이고 이미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될 만큼 신체적 사회 경험적으로 성장했기에, 드러나는 관심과 우려가 동생에게 더 쏠려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있게 외친다. ‘우리는 태리와 세리를 딱 (50 : 50)으로 공평하게 사랑한다’라고 말이다. 여하간 우리에게서 녀석들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있을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똑같게 공평해야만 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씩 골라 가진 것은 있다. (태리 할머니)와 (세리 할아버지)가 그것이다. 명분은 재난이 닥쳐서 하나씩 분담을해야 한다면 할머니가 태리를, 할아버지가 세리를 책임진다는 가상의 책무다. 태리가 등치가 더 크니 할아버지가 맡아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훌쩍 성장한 태리는 이미 제 스스로 감당할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세리는 완전 무방비 상태이기에 온전히 할아버지가 감당해야 한다는 이유가 따라 붙었다. 아마 물난리를 만난다면 오히려 수영을 마스터한 태리가 할머니를 도와주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거기다 ‘할아버지가 세리 눈딱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분명 아니다. 호기심 투성이에다 저돌적 공격 성향의 세리는 당연히 할아버지 담당이 맞지 않겠는가.
(짱구 엄마) (겡구 시어머니)인 할망구는 (태리할머니)인게 맞다. 사실 속내로는 태리를 무조건 우선으로 치는 것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술이 좀 거나하다 싶으면 주정 아닌 주정을 하곤 한다.
‘우리 가정의 기둥은 태리여. 태리. 우리 큰손녀 태리가 흔들림 없이 의젓하게 성장해 줘야 온 집안이 평안해 지는거여. 태리가 겉보기보다 많이 순진하고 여리잖아?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보고 변함없이 애정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거야. 시작된 사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알았지? 태리가 흔들리고 어긋나기 시작하면 겡구랑 아들이 흔들리게 되고 그 여파로 동생 세리가 성장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그렇게 되면 우리 노년의 행복까지 모두 무너져 버리는 거야. 태리가 잘 극복하면 그 영향으로 세리도 잘 극복하게 될 것이고, 겡구와 아들은 지금처럼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고, 그게 곧 우리의 행복이 되는 거야. 태리와 세리가 꾸밈없이 잘 크고 있는 지금이 나는 최고로 행복해. 당신도 행복해 보이고. 우리 식구들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해. 아무 걱정도 없고, 더이상 바라는 것도 없어. 지금처럼만 이대로 쭈욱 살아가고 싶어. 죽는 날까지 우리 가족들이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만 계속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고 있어. 그 첫 시험대가 지금 태리가 맞이하고 있는 사춘기지 싶어. 겡구와 아들이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가겠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맡은 바 책무는 있는거야. 언제나 변함없이 바라보고 있고 기도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어야 하는 거야. 가정교육과 나아갈 방향은 충분히 겡구와 아들이 잘하겠지만, 바라보고 있고 성원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있다라는 존재감만으로도 때론 녀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태리가 잊지 않게 해주고 싶어.’
큰손녀 태리에 대한 할머니의 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지금 할머니에겐 태리가 언제든 전부(All)가 될 수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하는 기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싶다. 이 시기를 잘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그동안 차지했던 그런 공간이 동생으로 넘어가지 싶다. 40년 이상을 살아본 할아버지는 안다. 그게 할머니의 팔자(?)라는 것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세리야. 할아버지랑 매점 다녀올까? 할아버지가 오늘 마쉬멜로 사오는 걸 깜빡했어. 매점에 있나 보러 갈까?’
이제 할아버지는 세리를 데리고 인근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할머니와 큰손녀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니까 말이다.
도대체 오늘은 태리와 할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시간이 좀 지나서 슬며시 지나는 말로 오늘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도 있고, 내용에 따라서는 영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쨌거나 할머니 표정이 밝다. 행복한 표정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 태리에게 아무런 걱정될만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큰손녀 태리의 사춘기가 아주 원만하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자니 아직 대화가 모두 끝난게 아닌 모양이다. 태리가 눈을 흘기고 있으니 말이다.
허니 어쩌겠는가?
'윤세리. 계곡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놀고있는지 보러갈까?'
'할아버지. 그럼 잠자리채로 한 번 더 잡아보면 안될까요? 미리 담가놓고 기다렸다 낚아채면 되지 않을까요? 할아버지가 해 봐 주세요.'
잠자리채로 물고기를 어떻게 잡느냐고 아까 열심히 시범까지 보여주었는데 또 해보잖다. 기다렸다 낚아채면 그게 그물이지 싶었지만, 어떻하겠는가? 할머니랑 큰손녀의 대담을 위해서 꾸역꾸역 잠자리채를 들고 세리를 따라 계곡으로 향할 수 밖에.
할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결코 녹녹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해질녁에 후루룩하고 소나기 한줄기가 지나갔다.
잠시도 물가를 떠나지 않던 병아리들이 그제서야 텐트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자 비그침을 확인하겠다고 밖으로 나섰던 작은 병아리가 아니나 다를까, 그새 또 옷을 적신 채로 들어온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이 상황에서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왜지?
‘할아버지가 쫓아다니며 말렸어야지 물을 보면 세리가 어쩔것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이미 옷을 적신 마당에 또 어쩌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네가 지금 웃음이 나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올려다보며 멋쩍게 웃고있는 세리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나도모르게 저절로 완전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 아미, 오후 한나절에 캠핑장 울타리에 설치한 임시 빨랫줄에 내건 옷만 벌써 몇 개야?
병아리들께서 드세게 물놀이를 하시느라고 오늘따라 유독 힘드셨나?
오늘만은 평소와 다르게 저녁시간에 흠뻑 빠져드는 표정이다. 고기파티를 하겠다고 작정하고 출발 전에 장을 봐오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태리가 야채를 마다하지 않고 세리가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날이 언제 있었던가? 병아리들이 커가니까 먹성도 차차 변해가는 것일까? 밥도 더 달라고 한다. ‘설마 이러다가 오늘은 할아버지 몫으로 남겨주는 음식이 없는 것 아니야? 앞으론 우리 음식량의 기준을 다시 계산해야 할까 봐.’
이어서 치카치카까지 마치고 이너 텐트로 들어가더니 엎드리고 드러누워서 핸디폰으로 게임을 하고, 작은 녀석은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한다. 다재다능한 세리에겐 분명히 그림에 대한 소질이 엿보인다.
‘조금 있다가 장작불 피워 캠프 화이어랑 마쉬멜로 구워먹기 해야지?’
‘오늘은 안해도 되겠어요. 내일 할께요. 할아버지. 아셨죠?’
헐!!!!!
이말은 곧 오늘몫 할머니 할아버지의 근로봉사가 모두 끝났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임무 끝! 해방!!!!!!
마저 굽던 갈비를 더 굽고, 코펠에 꼬치오뎅탕을 더 끓이고, 이제야 비로소 찾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만의 캠핑 파티를 벌이는데, 이 순간이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가슴 뿌듯한 행복감은 달리 뭐라고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즐거운 표정의 소중한 병아리 두 마리가 지금 우리 곁에 완전한 우리만의 차지로 함께 있다.
병아리를 우리가 잠시 맡음으로 해서 지금 우리 아들과 겡구(며느리)가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병아리 두 마리만 양쪽에 품고 있으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없다는 할망구의 컨디션이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상태로 보이고,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면서 야외에서 소맥 파티까지 벌이고 있으니 할아버지의 속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할망구야.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땡큐.’
‘리얼리?’
그런데 얼씨구?
오늘따라 그냥 술술 넘어가는 술에 푸짐한 안주는 또 왜이리 맛있는지,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니 시간이 저절로 잘도 흘러간다.
너무 조용하다 싶어서 이너텐트를 들여다보니 아뿔싸. 그새 우리 병아리들이 잠이 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미친 듯이 노느라 녀석들도 힘이 들었나 보다. 안아서 제자리에 눕히고 배만 덮어주고 뽀뽀 인사를 하렸더니.
‘얼른 그냥 안나와? 막 잠든 애를 또 깨우려고 그래? 뽀뽀 해주려면 얼른 양치하고 샤워하고 와서 해.’
치사하게 할아버지와 손녀들간의 숭고한 교감을 또 방해한다. 또 깨우다니 내가 언제 깨웠다고 태클이야 태클이.
뿔난 표정으로 돌아나와 맞상대를 할 각오로 잔을 채우고 부딪치며 또 건배를 외치고는 이제부터 이바구는 순리대로 아들과 겡구다.
‘우리야. 저네들 쉬는데 방해될까 봐서 카톡도 안 했는데, 우리가 안 한다고 저네들도 아예 안하네?’
‘궁금하면 카톡 보내봐? 너희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니 하고?’
‘잘 보내고 있겠지? 외식할 수도 있고, 피곤해서 일찍 집에서 쉬고 있을 수도 있고, 지들도 우리 생각해서 부러 안 하는 것일거야. 아침 일찍 카톡 오겠지?’
‘또 일본 간거는 아니겠지?’
‘사전에 시간을 두고 미리 언질을 해줘야 그게 가능하지. 일본이 어디 인사동이니?’
‘엄마 아빠가 지들 자식 데리고 여행갔다고 그 틈을 이용해 지들끼리 일본을 다녀와? 몰래?’
‘무조건 즐겁게 잘 보내라며? 잘 못보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때는 언제고?’
‘어쨌거나. 우리 비행기 탔다고 지들도 비행기 타고 다녀와? 신혼여행이여?’
‘신혼이지? 애들만 우리가 이렇게 맡아주면 겡구와 아들은 아직도 연애하는 선남선녀여. 얼마나 이쁘다고?’
‘이러다가 애들을 보내주는게 아니라 아예 강제로 떠맡기는거 아니야? 지들 연애기분 낼려고?’
‘당신은 더 좋아할거잖아? 병아리들이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테니까.’
‘좋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싫지는 않지. 누가 대신해 줄수 없는 거니까.’
‘우리는 애들이 당장 우리 곁에 있어서 좋고, 겡구와 아들은 잠시라도 홀가분하게 쉴 수 있어서 좋을테고, 이게 우리 가족의 행복인거여. 오래오래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살아가는거여.’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건배!’
‘건배!’
큰손녀 태리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작은손녀 세리는 아홉시를 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곤하게 자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늦게 일어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세리는 아홉시 넘어서 겨우 일어났다. 좀체 보기 어려운 아침을 맞았다.
새벽 산책을 마치고 할머니랑 모닝커피를 마시고, 간략하게 아침준비를 다 마쳐놓고 기다려도 도무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언니를 먼저 먹게하고 나서 물가에 앉아 할머니가 한참 심심해할 즈음에서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산책삼아 할아버지랑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면서 캠핑장 아침 분위기가 무엇이 달라졌나를 세세하게 살펴보고, 어제저녁과는 전혀 다르게 거의 억지이다시피 겨우 아침을 먹고, 치카치카를 마치자마자 잠옷바람으로 그대로 봇도랑 물에 뛰어드시는 요정 세리를 누가 말려?
물만나 병아리의 끝은 어디까지인가요?
잠들면 천사인 꼬마가 잠에서 깨면 어떤 모습일까요?
적어도 (월악산 용하야영장)에서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
그저 (용하야영장)의 하루는 물놀이로 시작하고 물놀이로 끝을 맺는 것이 순리이니라.
무릉도원이 아니면 어떠리? 지상낙원이 어디인들 또 어떠리. 오늘은 (용하야영장)이 천국이니라.
"여기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요. 최고예요."
월악산(月岳山)은 소백산맥에 속하는 높이 1.095의 산으로 충청북도 단양군과 제천시와 충주시와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있다. 인근의 만수봉. 금수산. 신선봉. 도락산 등 22개 정도의 산과 봉우리를 휘하에 품고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언제부터인가 등장했는데, 제천 사람들이 유독 ‘제천 월악산’이라고 지리적 행정구역을 반듯이 앞세운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기는 해 보았는데 아직 시원스러운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경우는 비단 월악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충주댐이 1985년 완공되면서 댐의 상류에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의 이름을 ‘충주호’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도 유독 제천 사람들은 굳이 ‘청풍호(제천시)’라고 명칭을 바꿔 달라는 요청을 현재에까지 꾸준히 거듭해오고 있다.
행정구역에 편입이 되고 고유 명칭을 소유하게 되면 혹시, 해당 지역의 세수가 관할 행정구역으로 들어가고, 국가 차원의 여러가지 정책적 지원이나 제도 개선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굳이 어떤 상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월악산의 경우 실질적 핵심지역이자 현재 활용되고 있는 유명한 관광 중심이 송계 지역이고, 그 송계가 행정구역상 분명 제천시에 해당한다고 치자면, ‘제천 월악산’이라는 표현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고 싶지 않다. 충주의 경우야 미륵사지에서 시작해 만수골까지의 지극히 미미한 정도의 영역을 겨우 행정구역에 편입시키고 있을 뿐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든지 드러내놓고 물어보라.
‘(제천 월악산)이 맞겠습니까? 아니면 (충주 월악산)이 맞겠습니까?’ 하고 말이다.
필경 열에 여덟은 (충주 월악산)이 맞다고 대답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행정구역상의 당장 편입이야 어떻든, 거기서 나오는 세수나 정부의 지원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세상은 (월악산)을 (충주 여행권)에 편입시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충주 관광이 수안보 온천을 수용하고 나면서부터 점차 월악산 관광개발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국도를 이용하던, 아니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던 월악산(송계 지역)에 접근하자면 무조건 충주를 통과하거나 경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단양지방의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또 꾸준히 건설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월악산 관광을 위한 최선의 접근방법은 여전히 충주를 통하는 길이다.(단, 월악산 후면에 해당하는 소선암 계곡 지역은 예외로 친다는 전제를 두는 바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월악산 용하 야영장) 아주 가까운 엎어지면 코 닿을곳에 같이 현장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박씨 성을 가진 지인 형님이 한 분이 살고 계신다. 농번기엔 농사일을 하시고, 송이 채취 시기엔 그 일에 매달리시지만, 그 외의 시간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데 핵심은 그분의 일터이자 주된 생활 터전이 제천이 아니라 나와 같은 충주라는데 있다. 억수리에서 충주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시는 실로 대단한 분이시다.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이나 눈이 수북이 내린 겨울이면 작업이 아니라 출퇴근 길 사정 때문에 서로 걱정이 대단하지만 아직도 꾸준히 그 일을 이어나가고 있는 대단한 분이 바로 여기 인근에 계신다.
그런가하면 월악산 관광의 대표 핵심지역인 송계계곡에도 몇몇 지인들이 계시는데, 하나같이 40년 전 처음 개발을 시작하던 시절에 비하자면 크게 성공하시고 부를 이루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분들의 실질적 생활 터전 역시 충주가 분명하다. 송계의 상가나 펜션은 직장일 뿐이고, 다들 충주에 따로 아파트나 집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이원화된 생활을 시작한 계기는, 직장이며 돈을 버는 장소는 송계였지만, 자녀들이 자라서 진학을 하게 되자 충주에 집을 마련하고 주민등록을 옮기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또 겨울에 상권이 극심한 비수기에 접어들면 송계 가계를 접고 충주에서 자녀들과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송계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도로가 좋아지고 자동차가 보편화되고,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냉난방이 확실한 새로운 건물을 짓게되면서 부터는 겨울 이주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랬음에도 학교문제. 병원문제. 생필품이나 영업용물품 구매 등 대부분 생활의 주된 터전이자 근거지는 모두 충주인 것이 확실하다. 다만 행정적 업무가 필요할 때만 제천을 찾았었는데, 그 행정적 업무마저 송계 면사무소에서 전산망을 통해 모두 해결되는 마당에 굳이 드러내놓고 따지자면, 장사하는 건물의 소재지와 오랜 현지 주민들의 행정적 주소만 제천시일 뿐, 대부분 주민들이 그냥 충주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나와 똑같은 대한민국인일 뿐이다.
이런 즈음에도 굳이 (제천 월악산)이 필요할까?
내 마음으로는 기꺼이 바꿔드리고는 싶은데 도대체 바꿀 방법이 없으니 이를 어쩔꼬?
내가 어릴적에, 그러니까 집집마다 형제 자매가 여럿이던 시절에........ 어느 누구네 집을 가리키던 늘 첫째 이름을 따서 누구네 집, 누구 아빠, 누구 엄마 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첫째가 개똥이면 그 집은 개똥이네 집이었고, 개똥이 엄마 개똥이 아빠라고 불렀다. 그때는 둘째인 소똥이가 있었어도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개똥이네 집을 소똥이네 집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기는 하는 것일까?
지나가는 할머니가 툭 던지고 가시는 말씀이....... ‘먼저 태어나지 그랬니?’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인생 여름캠핑이라고 할만했다.
이틀 동안의 기억은 온통 병아리와 할머니의 물놀이 장면으로만 가득했다.
더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했고, 혹시나 병아리들이 원한다면 내년에도 이곳에서 다시 이번과 같은 캠핑을, 여름휴가를 보냈으면 하고 바라본다. 정말로 무척 행복한 여름휴가였다.(다만 내년에 온다면 B-40. B-41번 데크를 고르겠다)
언제 어디를 가나 무조건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 병아리들이지만, 이곳에서만의 숲과 계곡과 조성된 캠핑장이 주는 주변 환경과 분위기를 제대로 한껏 즐기며 놀았다. 녀석들의 표정이 매 순간 행복해 보였다. 하물며 그런 병아리를 품에 끼고서 함께 나뒹굴고 함께 소리치느라 넋이 나간 할머니의 지금 심정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할아버지 정말 최고예요.’
‘내년에도 여기 또 오고 싶어요.’
그만하면 되었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두 번째 이용이었지만, (용하야영장)을 알게되었고, 거기다 가까운곳에 있음에 정말로 감사할 따름이다.
2026년 사랑하는 우리 병아리들과의 여름 휴가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싶다.
그만큼 인상적인 캠핑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틀이 그냥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약속은 정해졌으니 마감 시간은 준수해야만 하겠고, 녀석들은 여전히 물놀이가 아쉬웠고, 거기에다 금년에 유독 심하다는 한여름 폭염이 극성을 유난히 떨던 날이 아니겠는가?
병아리들은 여전히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있고, 할머니는 병아리 돌보랴 텐트속에 늘어놓았던 짐을 꾸리랴 바쁘고, 할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짐을 챙겨서 주차장까지 나른다.
‘오매. 정말로 미쳐버리겠는 이 무지막지한 날씨여! 쪼매만 참아주면 안되겠니?’
‘이럴바엔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철수를하라고 해도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늘아!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니?’
어쨌거나 정해진 시간약속 안에 철수와 정리를 완료해 참 다행이었다.
할머니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병아리들을 데려가다 닦고 옷을 갈아 입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느새 거의 초죽음이 된 상태였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신바람이 가득한 표정이다.
에어컨을 풀로 가동하고 집으로 향하면서 가장 처음 나타나는 편의점에 들려서 녀석들은 아이스크림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우리가 캠핑장을 나서는 시간에 맞추어 아들도 이천에서 출발을 한다.
충주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하고 병아리들을 인수해 가기 위해서다.
이동하는 도중에 할머니가 전화로 아들에게 작전을 수정하자고 요청한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기로하고, 병아리들을 인수하는 동시에 아들과 작별을 하자고 한다. 땀에 절고 힘들어서 무조건 씻고 드러눕고 싶으니, 병아리 인수하는 대로 너희집으로 돌아가다가 너희끼리 먹고 싶은거 골라서 점심을 해결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다 마쳤다고 생각하니 피곤이 심하게 몰려오시는 모양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 아들이 조금 어이없어하기는 했지만, 평소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철칙으로 여기는 녀석이라 따르기로 하고 병아리들을 인수해 간다.
언제나처럼 늘 해왔듯이 달려가 끌어안고 깊은 포옹으로 병아리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동네 언덕길을 돌아나갈때까지 병아리들의 손흔드는 인사가 계속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또 올께요.’
‘저두요.’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뜨겁고, 헤어짐은 더없이 쿨하다.
찾아오는 병아리들은 언제나 반갑고, 제 집으로 돌아가는 병아리들은 더없이 고맙다.
보내고 나면 오늘 하루가 다 지나가기 전에, 저녁부터 또 그리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낼 때는 한없이 쿨하게 무심하듯 보낸다.
‘어휴. 힘들어. 이제 겨우 살겠네. 당신도 할아버지 노릇하느라고 수고했어. 지치고 힘들었는데 집에 올라가기 전에 시원한 막국수나 먹고 와서 씻고 쉬자. 어때?’
‘그럴꺼면 같이 밥 먹여서 보내지?’
‘지들끼리 가다가 맛있는거 먹을테지? 우리도 좀 편하게 쉬면서 먹어보자. 아들이 애들 좋아하는거 제대로 찾아서 먹일테니까 됐잖아. 우리 병아리들은 막국수 안 먹는다니까?’
‘그럼 난 곱빼기로 해줘.’
-- 여름 휴가였던 (용하야영장) 이야기를 마칩니다. 직업적으로 바쁜 여름을 보내다 보니 후반부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공백을 두고 겨우 끝내게 되었습니다. 찾아주시고 읽어주신 모든분들 이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고 건강하시길 바래봅니다. 곧 다음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