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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글은 <잡아함경_335.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의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다’에 해석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것을 제일의공경이라고 하는가?
모든 비구들아,
① 눈은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다.
②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나고, 그렇게 생겼다가는 다시 다 소멸하고 마나니,
③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느니라.
④ 이 음이 소멸하고 나면, 다른 음이 이어진다.
⑤ 다만 세속의 수법은 제외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겠으나,
단 세속의 수법은 제외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세속의 수법에 관한 내용이다.)”
이 경의 내용은 ‘제일의공법’과 ‘세속의 수법[世數法]’을 대비하여 설한 것이다. 이 경의 본문에는 경의 이름이 ‘제일의공법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세속의 수법’에 대응하는 앞의 내용은 ‘제일의공법’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세속의 수법은 <증일아함경_37. 육중품(六重品)[7]>에서 보면, ‘가호법[임시로 붙여진 이름’과 ‘인연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문의 “어떤 것을 ‘제일의공경’이라고 하는가?”라는 구절은 맥락상 “어떤 것을 ‘제일의공법’이라고 하는가?”로 로 고쳐 읽는 것이 적절하다. <증일아함경_37. 육중품[7]>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공한 법인가?”로 되어 있는데, ‘가장 공한 법’은 ‘제일의공법’(第一最空之法)의 번역이다.)
먼저 ‘세속법’은 12인연법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은 잘 알려진 네 개의 명제로 표시된다.
(1)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 [謂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이것을 유무와 생멸의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제일의공경>의 내용은 생멸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생멸의 결과는 유무이므로 생멸은 유무를 전제한다.
1.2. 여기서 먼저 ⑤의 ‘세속의 수법은 제외된다’는 것의 뜻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①의 “눈은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다”에서 ‘생김과 소멸함’은 세속의 수법이다. 그렇다면 제일의공법은 세속의 수법인 ‘생길 때’와 ‘소멸할 때’를 제외한 “눈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곳도 없다”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②의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나고, 그렇게 생겼다가는 다시 다 소멸하고 마나니”에서, ‘진실이 아니건만’을 제외한 ‘생겨나고 소멸한다’는 내용이 세속의 수법이다. 또 ④의 “이 음이 소멸하고 나면, 다른 음이 이어진다”에서 ‘이어진다’는 생겨남을 전제하는 것이니, 이 말도 세속의 수법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의 ‘음’은 5음[五陰]을 가리키는바, 경의 전체적인 흐름상 다소 이질적인 내용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제일의공경의 특이성>을 참고할 수 있다.)
여기서 ①과 ②를 보면, 제일의공법을 인연법과 대비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제일의공법은 ‘오고 감이 없으며, 진실이 아니다’를 말한 것이며, 이를 ‘생기고 소멸하는’ 인연법에 대비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 ⑤의 ‘세속의 수법은 제외된다’는 말은 ①과 ②의 구절에서 세속의 수법에 해당하는 표현은 제외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1.3.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제일의공법과 인연법을 구별하면서도, 실제로는 제일의공법을 다루는 대목에 인연법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이해하는 데 혼란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의공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서술 방식은 ‘공’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공’은 기본적으로 인연법으로 생겨난 것들을 모두 부정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공’은 인연법으로 생겨난 존재들을 전제하며, 그것들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사실 ①은 “눈은 공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잡아함경_232. 공경(空經)>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눈이 공하고, 항상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법도 공하며, 내 것이란 것도 공하다. 왜냐하면 그 성질이 저절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빛깔ㆍ안식ㆍ인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공하고,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법도 공하며, 내 것이라고 하는 것도 공하다. 왜냐하면 그 성질이 저절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공한 세간이라고 하느니라.”
그런데 ‘공법’을 ‘인연법’과 대비하여 서술하고자 할 경우에는, 인연법의 속성을 먼저 제시하고 공법은 제시된 인번법과 대조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도에서 공법을 서술할 때 인연법의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특히 공법과 인연법을 한 문장 안에서 함께 다루려는 과정에서 <제일의공경>과 같은 서술 방식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만일 위의 <공경>의 ‘눈은 공하다’를 <제일의공경>의 방식대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3) 눈은 인연법으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은 공하다.
인연법으로 보면 있음과 없음, 생겨남과 사라짐이 있으나, 공법으로 보면 그러한 것은 모두 비어 있다[공하다]. 공법과 인연법은 붓다가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개의 눈이다. 인연법은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에 관한 말씀[진리]이고, 공법은 붓다가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에 관한 말씀이다. 공법과 인연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4) 인연법에서 공을 보고, 공의 눈으로 인연법을 본다.
덧붙이자면, 인연법과 공법은 붓다가 말한 두 가지 진리이지만, 공법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인연법은 진리가 아닐 수 있다. ②의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난다’는 그런 시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잡아함경_265. 포말경(泡沫經)>에서 5음을 물거품ㆍ아지랑이ㆍ파초나부ㆍ허깨비 등에 비유한 것도 그러한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1.4. ③의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느니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말에서 ‘있다, 없다’만 보면 세속의 수법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은 ‘업보’와 ‘짓는 자’가 대비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보통은 ‘짓는 자가 업보를 짓고, 짓는 자가 없으면 업보도 없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연법에서 보면 업보도 있고 짓는 자도 있지만, 공법에서 보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공법에서는 업보도 없고 짓는 자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①과 ②와 같이 공법을 인연법과 대조하여 표현하려는 과정에서 다소 모순처럼 보이는 표현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느니라”라는 문장만 고려한다면, ‘업보는 있다’는 인연법에서 본 것이고, ‘짓는 자는 없다’는 좀더 정확히는 제일의공(인연법 너머의 공)에 포섭되는 ‘무아’를 가리킨다. 니까야와 아비달마, <중론>에서는 ‘무아’는 인연법적 공(무자성)을 가리킨다. (두 가지 ‘공’에 데한 용법은 <공의 두 얼굴: 인연법적 공(무자성)과 인연법 너머의 공(제일의공)>을 참고하세요.)
인연법과 제일의공법을 엄밀히 구별하는 <제일의공법>의 시각에서 보면, 업보와 지은 자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5) 인연법의 시각에서 보면 내(짓는 자)가 업보를 짓는다. 그러나 제일의공입의 시각에서 보면 나(짓는 자)도 없고 업보도 없다.
<제일의공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증일아함경_37. 육중품(六重品)[7]>에서는 <제일의공경>과 비교할 때, ②-④의 내용이 없다.
“어떤 것이 가장 공한 법인가?
저 눈은 생길 때에는 곧 생기지만 그 오는 곳을 볼 수 없고, 멸할 때에는 곧 멸하지만 그 멸하는 곳을 볼 수 없다.
다만 임시로 이름이 붙여진 법[假號法]과 인연의 법[因緣法]은 제외한다.”
[참고]
1. 아함경의 ‘제일의공법(第一義空法)’에 대한 텍스트 분석
2.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에 대한 아비달마의 해석: 무아
2056. 10. 19,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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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의 논평]
제시된 글은 《잡아함경》 335번 〈제일의공경〉의 난해한 서술 구조와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다[유업보이무작자(有業報而無作者)]"라는 명제를 외부의 후대 관점이나 정형화된 범주를 끌어들이지 않고, 텍스트 내부의 대조 구조(제일의공법 vs 세속의 수법)만으로 정밀하게 해명해 낸 뛰어난 논증이다.
1. 종합 평가
이 글은 외래적 철학 개념을 덧씌우지 않고, 경전 내부의 문맥과 구절 간의 대조 구조만으로 경문의 복잡성을 정면으로 파고든 우수한 문헌 분석이다. 특히 '제일의공법'을 서술하는 구절 속에 '생멸'이나 '이어짐' 같은 인연법의 요소를 함께 서술함으로써 발생하는 언어적 서술의 꼬임을 "공(空)은 인연법으로 생겨난 상태나 현상을 부정/전제하면서 성립한다"는 공의 성격적 특성으로 풀어낸 점이 매우 명쾌하다.
나아가 인연법과 제일의공법의 관점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5)번 명제("인연법의 시각에서 보면 내가 업보를 짓는다. 그러나 제일의공의 시각에서 보면 나도 없고 업보도 없다")를 도출해 냄으로써 명제 해석의 논리적 엄밀성과 완결성을 극대화했다.
2. 주요 논점에 대한 세부 분석
① '제일의공법'과 '세속의 수법[世數法]'의 대치 구조 파악 (1.1~1.2)
경문 교정적 독해:
경문 제호와 본문의 용어('제일의공법경', '세속의 수법')를 바탕으로, 본문의 질문("어떤 것을 제일의공경이라고 하는가?")이 맥락상 "어떤 것을 제일의공법이라고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는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
'제외[除]' 구절에 대한 독해:
⑤의 "다만 세속의 수법은 제외된다"라는 제한 절을 기점으로, 앞선 ①, ②, ④의 구절에서 '생김/소멸/이어진다'라는 인연법적 요소를 걸러내고 '오고 감이 없음/진실이 아님'이라는 공법의 핵심을 추려내는 입체적 분석법은 경문의 난해함을 해소하는 탁월한 접근이다.
② '공' 서술의 언어적 한계와 성격 분석 (1.3)
언어 구조적 혼란의 원인 규명:
제일의공법을 서술하면서 왜 굳이 생멸(인연법)의 언어를 다루는가에 대해, "공은 인연법으로 나타난 상을 떠나서 홀로 말해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대목은 이 논증의 핵심 통찰이다.
대비 텍스트 분석 및 환산적 재구성:
〈공경(空經)〉(잡아함 232경)처럼 순수하게 "공하다"라고만 판정하는 선언적 서술과, 〈제일의공경〉처럼 "인연법의 현상을 먼저 제시한 뒤 그 속에서 오는 곳도 가는 곳도 없음을 대조하는 방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중적 결합 구조의 선명한 제시:
특히 “<공경>의 ‘눈은 공하다’를 <제일의공경> 방식대로 표현하면 ‘눈은 인연법으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은 공하다’가 된다”라고 환산하여 제시한 (3)번 구절이 매우 뛰어나다. 이 재구성 문장은 <제일의공경>의 문장 구조가 지닌 내적 논리, 즉 ‘인연법의 전제 + 공법의 판정’이라는 이중적 결합 구조를 한눈에 이해시킨다.
진리관의 위계와 《포말경》 연계:
붓다가 설한 인연법이 중생의 세속적 삶과 세계를 설명하는 진리라면, 공법의 관점에서는 인연법의 현상들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②의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난다”라는 대목에서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를 《잡아함경》 〈포말경〉의 5음 비유와 연결 지어 불교적 인식론의 맥락을 단단하게 입증한다.
③ "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다"의 구조 및 엄밀한 명제 해독 (1.4)
표면적 모순의 형성 과정 규명:
"업보는 있다"와 "짓는 자는 없다"라는 한 문장 안의 대립을, 공법을 인연법과 대조하여 한 문장 안에 담아내려는 서술 방식에서 빚어진 현상으로 짚어낸 점이 정곡을 찌른다.
관점 분리를 통한 명제의 엄밀한 재정립 ((5)번의 의의):
(5)번 명제는 기존의 "‘업보는 있다’는 인연법, ‘짓는 자는 없다’는 공법"이라는 대치적 독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층차(인연법/제일의공법) 각각에서의 논리를 엄밀하게 분리·완성한다.
인연법의 시각: 짓는 자(나)와 업보가 함께 성립한다.
제일의공법의 시각: 짓는 자(나)도 없고 업보도 없다.
이러한 층차별 명료화는 경전 문장("업보는 있지만 짓는 자는 없다")이 인연법의 시각과 제일의공법의 시각을 대조적 어조로 결합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입체적 줄임표'임을 선명하게 밝혀준다. 결과적으로 표면상의 논리적 모순을 완전히 해소하고 개념적 명쾌함을 부여한다.
원형 비교:
《증일아함경》 37권 〈육중품〉의 대응 구절("가호법과 인연법은 제외한다")을 비교 텍스트로 제시하여, 〈제일의공경〉의 ②~④ 구절이 서술상 인연법의 표현을 안고 파생된 정황을 문헌적으로 튼튼하게 뒷받침한다.
3. 보완 및 발전 방향 제언
글의 논리적 완결성을 더욱 다듬기 위해 검토해 볼 만한 논점은 다음과 같다.
'음(陰)' 구절(④)에 대한 정밀화:
1.2절에서 "(이 구절에서 '음'은 5음을 가리키는데, 경의 흐름에 맞지 않는 내용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한 부분은 타당한 관찰이다. '짓는 자(주체)'가 없는데도 업보의 상속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오음(五陰)의 연쇄를 언급한 것인지, 아니면 서술상의 보충이나 전승 과정에서의 개입인지 텍스트 내부적 가능성을 짧게 덧붙이면 논증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4. 결론
이 글은 단순한 구절 해설에 그치지 않고, "왜 경전은 공법을 말할 때 인연법의 언어를 끌어들여 서술적 혼란을 일으키는가?"라는 서술 구조의 문제를 텍스트 자체의 논리로 해명한다.
특히 인연법적 현상의 허환성을 보여주는 〈포말경〉과의 연계, 〈공경〉과 〈제일의공경〉의 서술 방식을 대비한 명확한 환산 문장, 그리고 (5)번 명제를 통해 완성된 인연법과 제일의공법 간의 엄밀한 관점 분리는 전체 글의 논리적 완성도와 설득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