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쉬반월의 의미 헤쉬반월은 바벨론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마르 헤쉬반을 줄여서 ‘헤쉬반'이라고 부른다. '마르’는 '쓰다'라는 의미이다 나오미가 심히 괴롭게 되었다는 의미로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같은 단어이다.이달은 노아 홍수 심판이 시작된 쓴 아픔을 기억하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번 달의 원래 히브리 이름은 ‘불(bul)월’인데 ‘말랐다’라는 의미이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헤쉬반월에는 들판의 가지와 그루터기가 시들기 시작하는 달이다. 그래서 비를 주시기를 기도하는 달이다 또한 이 단어로 부터 ‘홍수, 과다한 비'를 뜻하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즉, 불월은 홍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노아의 홍수 사건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게된다. 홍수와 불은 서로 너무 상반되어 보이지만 큰 연관이 있다. 너무 많은 물은 오히려 식물로 하여금 말라서 죽게 만든다. 그러므로 적당한 비는 축복이다.
2 씨앗을 심어야 하는 달이다 헤쉬반월은 봄의 수확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고 심는 달이다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는 암울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달이다. 우리에게 씨앗은 말씀이다. 믿음으로 말씀 그대로를 우리 삶에 심자. 시편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3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달이다 유대력에는 유월절이 있는 닛산월과 나팔절이 있는 티슈리월 두개의 첫달이 있다. 헤쉬반월은 닛산월로 시작하면 여덟번째 달이고 티슈리월로는 두번째 달이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서 1년 10일을 보낸 후 땅이 말라 노아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서 나온날도 헤쉬반월 27일이다 홍수가 시작된 달도 땅이 마른 달도 모두 헤쉬반월이다. 이처럼 새로운 해, 새로운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창8:14)
4 이른 비를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초막절 8일째 날인 쉐미니 아짜렛은 하나님께 비를 내려주시기를 간구하는 날이다 그러나 실제로 비를 내려주시도록 기도를 시작하는 날은 헤쉬반월 7일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초막절을 8일 동안 지키고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유대인들이 비로 인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5 노아의 홍수가 시작된 달이다하나님의 타임라인은 6000년간의 세상 왕들의 나라와 1000년의 예슈아의 나라이다. 여기서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났다는 것은 마지막 때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홍수가 난 같은 날에 큰 깊은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그냥 비로는 온 세상을 덮는 홍수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법은 비가 오지 않게도 하지만 너무 많이 오게해서 심판받게 한다. 순종의 축복은 적당한 비와 바람과 햇빛이다.(창7:11)
6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을 마친 영화로운 달이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거처를 이 땅에 세운 축복받은 달이다. 불월은 헤쉬반 월이다. 솔로몬이 칠년동안 성전을 건축하고 헤쉬반월에 마쳤으므로 앞으로 세워질 성전도 헤쉬반 월에 완공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는 어둠이 취할 수 없다. 그러나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는 어떻게든 차지하고자 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성전이 없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모든 창조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이 될 것이다. 법궤만으로도 오벳에돔의 집이 축복받았다면 법궤를 담고 있는 성전이 세워지면 온 나라가 복을 받을 것이다.(왕상6:37,38 사14:13-15)
7 초막절 날짜를 마음대로 바꾼 여로보암 여로보암이 왕이 된 후 자신의 백성을 성전과 유대 나라와 분리하려고 절기를 바꾸었다. 초막절 7월 15일부터 한달 후인 8월 15일로 비슷하게 자기 마음대로 날짜를 정했다. 즉 헤쉬반 월에 초막절이 있게 정한 것이다. 이번에 한국의 추사감사절은 11월 3째주 일요일이므로 키슬레브월에 있다. 이와 같이 절기를 바꾸고 성전대신 산당에서 경배하게 했다. 그 결과 산당 제사장들이 그 제단 위에서 죽임을 당할 거라고 경고를 받았고 실현되었다. 여호와의 절기를 바꾸는 것을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절기를 바꾼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재단과 제사장들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물론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받으시는 예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날짜를 바꿔가면서 마음의 중심을 증명할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명하신 그 날을 드리면서 마음의 중심을 드릴 수는 없는가? 그저 날짜를 바꾸기 싫은 변명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왕상12:32,33 왕상13:2)
한국교회는 미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교회가 감사일을 결정한 것은 1908년 예수교장로회 제2회 대한노회에서 양력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였다. 그 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음력 10월 4일로 정하고 외국전도를 위하여 강도하며 기도하고 특별히 연보하여 선교비에 충당하기로 하였다. 1914년 제3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11월 셋째 일요일 후 수요일로 정하였다. 이는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을 의용(擬用)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 1921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협의회에서 한국교회의 감사일을 매년 11월 둘째 일요일 후 수요일에 기념하기로 결의한 것을 제10회 총회에서 채용하여 전국교회가 실시하였다. 현재는 11월 셋째 일요일에 감사절을 지키고 있으나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은 없고, 대체로 미국교회의 감사절 전통에 따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우리의 민족적 역사경험과 축제 전통에서 한국교회 감사절의 토착화가 시도되어 추석을 감사절로 지키는 교회가 생겨나고 있다.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https://naver.me/FVbZdieP 참고 결론은 마음대로 임의로 정했다는 역사이다. 이처럼 여로보암의 죄악이 우리에게도 발견되고 있다.
8 조상을 본 받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가야 하는 달이다 헤쉬반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있어서 그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있다. 여호와의 길을 떠난 것은 우리이며 다시 그 길로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윗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조상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악한 길, 악한 행위로 불순종의 길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슥1:1~4)
9 진정한 하나됨을 위해 나누어짐을 허용하라 예슈아께서 이 땅에 샬롬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예슈아께서는 서로 분쟁하게 하려고 오셨다. 우리가 조상의 길을 가지 않고 그들을 본받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분명 분리됨을 경험할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슬람국가와 나누어져 있다. 한국은 북한과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것 처럼 친이스라엘 나라들과 친이슬람 나라들이 나누어지고 있다. 가족 간에도 나누어질 것이다. 가인과 아벨이 나누어졌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나누어졌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나누어질 것이다. 아빠가 아들과, 아들이 아빠와 분쟁할 것이고 엄마가 딸과, 딸이 엄마와 분쟁할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니라가 분리되고 분쟁하게 될 것이다. 어설픈 연합으로는 하나되지 못한다. 진정한 하나됨은 오직 진리로만 가능하다. 진리가 없는 연합은 하나님이 없는 연합으로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됨이 이루어지기 까지 우린 가정에서의 분리됨조차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분리와 분열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구별하시는 것이다. 하나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거룩한 자들이 성령으로 하나되는 것이 진리이다.(눅12:51~53)
10 그리심산의 축복과 에발산의 저주 헤쉬반월은 홍수와 불의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영광스러운 달이면서도 동시에 홍수 심판이 시작된 부끄러운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달은 씨앗을 심는 달이고 앞으로의 풍성한 추수를 위해 적당한 비를 구하는 달이다. 즉 씨앗을 심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심판이 올 수도 있고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헤쉬반월에는 특별히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기억하자. 앞으로의 축복을 위해 그리심산의 선포를 따를 것인가? 에발산의 저주를 따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있다. 예슈아의 왕되심을 원한다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에서 씨앗은 말씀이라고 했다. 말씀을 우리 삶에 심고 싹이나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출산의 고통이 있다. 그 말씀으로 우린 환란을 당할 수 도 있고 핍박들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순종으로 감내하자. 그게 쉬운 거라면 모두가 좁은 길을 갈 것이다.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가지 않는다. 특별히 새로운 5784년을 시작하면서 순종으로 거름을 주는 이스라엘이 되자. 그리하여 그리심산의 축복을 누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복한다.(신11: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