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전문가 김정덕의 맛세상 1.
다시 찾아 즐기는 제주도 흑돼지 전문점, 홍도니
왜 하필 제주도 흑돼지일까?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제주 흑돼지’ 간판을 단 가게가 수두룩하다. 굳이 흑돼지를 몇 점 먹겠다고 덜컥 보따리를 쌓아 제주도로 날아갔다. 1월 하순 제주도의 날씨는 그리 밝지 않았다. 눈발이 간간히 내리고 바람도 불어 뭔가 뜨끈한 국물음식이 절실하다. 택시를 잡아타고 10여 분 걸려 언북로에 위치한 ‘홍도니’(홍정훈 대표)를 찾아갔다.
처음 맛 본 음식은 흑돼지 요리가 아니라 으스스한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고기국수다. 대접을 들고 후루룩 들이킨 육수는 진하게 우려내 구수하다. 생면은 물, 밀가루, 소금으로만 반죽 숙성한다. 또한 앞에서 주방장이 직접 면을 뽑아내어 주니 면발의 쫄깃함과 건강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제주도에 수많은 고기국수가 있지만 이렇게 직접 생면으로 만드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거의 없을 듯하다.
허겁지겁 먹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장생면을 드는 손님들도 있다. 홍도니는 과연 제주도 흑돼지전문점 인지 아니면 고기국수 맛 집인지 헷갈린다.
점심식사 후 서귀포시에 있는 눈오름 팬션에 들렸다. 오름 정상에 설치된 정자에서 주위를 내려다 보며 주인이 권하는 보이차, 눈 속에 핀 연꽃으로 만든 귀한 설연화차 그리고 가지고간 그루지아 와인을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다. 홍도니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오후 7시가 다 되었다. 매장 안은 이미 손님들로 차있었다.
흑돼지 2인분을 저울에 달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뢰할 만한 질좋은 고기를 손님에게 직접 보여주고 한편에 마련된 장소에서 고기 굽는 직원이 초벌을 해준다. 동행 한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기 속까지 제대로 익혀준다. 공기 좋은 곳에서 화력이 쎈 연탄불에 제대로 구워준다. 육즙이 고스란히 고기 안에 담겨 있다.
한판 구워온 불판은 영락없는 바이트피자다. 안쪽에는 살이 많은 부위가 있고 가장자리 바이트 쪽은 비계가 많은 고기를 놓았는데 씹을수록 쫀득함과 지방기에서 오는 고소함이 아주 좋다. 느끼함이란 전혀 없다.
가운데에 멜젖이 놓여 있는 게 재미있다. 피자판 가운데 놓인 하얀 의자 모양 피자세이버(pizza saver)는 뚜껑에 눌리지 않게 하는 안전용이고, 비빔밥 한가운데 살포시 앉은 달걀 노른자는 멋을 위해서다. 멸치젓에 소주 한 컵을 넣고 끓인 ‘멜젖’ 은 두꺼운 근고기와의 만남에서 맛의 밸런스를 위함이다.
“고기에 대해 연구 많이 하시네요?”
라고 질문하자 홍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연구요? 특별히 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좋은 고기를 가져와서 푸짐하게 드리는게 최고죠”
해장국집을 운영하시는 부모님과 30년 동안 변함없이 거래를 이어가는 분이 양질의 고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귀뜸한다.
메인메뉴 흑돼지에 이어 나오는 돌돔, 뿔소라, 새우 세트 구이는 고기집에서 생선까지 맛보는 다양성이 있다. 더불어 생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고기국수 등을 리드미컬하게 제공하여 만족도를 높여준다.
전문가로써 한가지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흑돼지구이와 러시아 보드카와의 조합을 꽤해보는 것이다. 돼지고기와 기껏 소주 맥주를 함께 할 뿐이다. 제주 흑돼지에서 오는 고소함과 알콜돗수 40%의 무색무취 보드카는 분명코 멋진 페어링(pairing) 되리라 확신한다.
최낙언의 《맛의 원리》 예문당(2015년)을 보면 “혀의 미각만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맛의 10%도 설명하지 못한다.” 고 하며 “후각, 촉각, 청각, 시각이 합쳐져 오감이 만들어질 때 30%까지 간다. 나머지 맛을 구성하는 요소는 가격, 추억, 심리 등이다.” 또한 “리듬. 같은 음식을 먹어도 순서나 조합에 따라 맛이 다르다.” 라고 설파했다.
제주산 흑돼지와 신선한 각종 수산물은 육지에서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다. 홍도니가 제공하는 음식은 단순히 5감 만족 뿐 아니라 다시 찾을 여러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확신에서 필자는 추천을 망설이지 않는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는 떠나면서 제주의 맛을 깊게 느껴보시라.
※ 필자 김정덕은 롯데리아, 교촌F&B, 홍탕, 이바돔, 돈수백 등 외식분야에 종사하며 현장 중심의 전문가다. DNC의 경영자문위원으로 전국 맛집 순례기를 통해 독자와 만남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