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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부활은 주님 오실 때 부활하는 자들이다
요5:24-29 계20;4-6
창세기에서 눈에 띄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신 후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날짐승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그들이 이름이 되었는데 오직 아담을 위해서는 그를 돕는 자가 없이 홀로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자를 창조하시고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하와를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사람의 코속으로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혼이 되게 하시므로써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 피조물로 창조되어졌는데 인간이 마귀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를 짓게 된 결과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격는 고통을 갖게 되었는데 그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육신의 죽음이 온다는 것이다.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으므로 죄문제만 해결된다면 인간은 본래 창조한대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 이후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던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죽음 이후에도 어떻게 하면 내세에서도 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왕인 마귀는 이런 인간의 약점을 알고 종교를 퍼뜨리기 시작하여 인간이 신을 믿고 산다면 죽음 이후에도 저들이 말하는 내세가 있을 것이란 마음을 갖게 하고 우상을 믿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인간이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였다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실 타종교도 그 나름대로 평안이 있고 내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귀가 인간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을 대신하여 타 종교의 신을 믿게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한 번 살다가 가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삶일까?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 후회없이 사는 길이 무엇일까? 매일 분주하게 살아가다가 아 내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혹시 누가 말하길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아니면 지옥에 가는가 하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하게 마련인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피조물 중에 오직 영혼을 소유한 인간만이 사후의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인데 여기 사후세계에 대한 좋은 예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여름날 하루살이와 매미가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면서 매미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다시 만나자고 말했을 때 하루살이는 내일이 어디있어 해넘어가면 그만이지 하니 매미는 해넘어 가고 내일 아침 다시 해가 뜨면 내일이지 말했지만 하루살이는 내일을 생각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한 아이와 매미가 여름방학에 재미있게 놀다가 여름이 끝나갈 때 아이가 매미에게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니 매미는 내년이 어디 있어? 추우면 그만이지 말했지만 아이는 낙엽떨어지고 하늘에서 흰눈이 내리고 봄에 꽃이 피면 그 때가 내년이지 말했지만 한 여름밖에 살 수 없는 매미는 내년이란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보게 죄와 슬픔이 없는 영원한 나라에서 만나세. 아니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그럼 영원한 나라는 사람이 죽고 나서 부활하여 나와 함께 영원히 사는 나라이네. 사람이 죽어 흙이 되면 끝나는 것이지 그런 영원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한평생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천국을 부인하여도 하늘나라는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시야를 보게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나는 가끔 전도하면서 아 형제님 오늘이 2023년 5월28일지요?
여기 2023년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아십니까?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마치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시 살아나셨으므로 역사가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역사의 시간을 BC와 AD로 나누어서 지금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지가 2023년이 되었다고 설명하면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정말 하나님의 독생자로 계셨다가 때가 차서 여자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에 시신은 아라마대 요셉의 돌무덤에 안치되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예수님 부활은 단순히 신화적인 이야기나 신학적인 교리가 아니라, 예수가 실제 죽음 가운데서 살아난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는 최고의 복음이 되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된다는 것이니 이처럼 복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약성경에서 무려 204회나 언급하고 있는데 복음의 핵심은 죄의 대속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영생이다. 죽음이라는 실체가 부활이라는 생명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전15:55-57) 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아담 이후 오늘날까지 죽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 음성을 들었던 모세도 죽었고, 이스라엘의 선왕이었던 다윗왕도 죽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이슬람교의 마호멧도 사망을 정복하지 못했으며 그들보다 이전에 살았던 진시황제 역시 영생을 꿈꾸며 불노초를 구하러 보냈던 자가 오기도 전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한 때, 페르시아 제국과 유럽과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의 땅을 정복하여 세상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그 역시 문자 그대로 “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의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사흘만에 무덤을 박차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시간을 AD(AnnoDomini 기원후)와 BC(BeforeChrist 기원전)로 나누면서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라고 하는 것은 그분만이 인생들을 사망에서 건져주실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800년전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름을 임마뉴엘이라고 했는데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 몸을 통해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셨다면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왕궁 사람들이나 갈 수 있었지만 마굿간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할 인생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낮은 자리로 임하신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지닌 채 우리 곁에 오셔서 33년 동안 이 땅에서 가장 복된 소식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믿는 자들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 영접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의 놀라운 말씀인 듣는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11-12) 11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인간들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생한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사람들은 주님 영접하기를 싫어합니다.
이 세상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참과 거짓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영원히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하여 거짓종교를 통해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갖가지 모습으로 온세상에 퍼뜨려 났습니다. 그러므로 민족마다 지역마다 우상을 섬기는 가짜 짝퉁 종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가짜가 진짜 보다 더 좋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신에 따라서 구원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일 뿐 자신도 구원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남을 구원하겠다는 그런 교리는 비진리이고 그들이 모이는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하여도 예수님을 제외한 그 어떤 종교도 구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말하면 죄없으신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시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소망이시고 그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에서 오직 복음서에만 볼 수 있는 말씀이신데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본래 말씀으로 계셨다가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듣지도 않고 무관심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말씀하셨는데 마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1: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한 말씀을 결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집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건축자들에게는 머릿돌이 가장 중요한 기초석인데 인생장막을 설계한 건축자들이 주님을 쓸모없는 것으로 보고 버렸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귀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예수님 믿는 것을 멀리하였다는 것은 마치 집 짓는 건축자들이 모퉁이 돌을 버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버린 돌이 믿는 자에게는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진실로 예수님은 삶과 죽음의 두 벽 사이를 연결하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므로 그가 없이는 인생 장막이 세워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겠지만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행한 것을 눈으로 보고 들었어도 버림받은 인생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게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가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베데스다연못가에서 38년된 중풍환자를 고치시다
요한복음 5장에는 예루살렘성 양문곁에 베데스다 라는 연못이 있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어느 순간 천사가 그 연못에 내려와 물이 동할 때는 어떤 병을 가졌던지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고침받는다는 소문으로 베데스다 연못 주위에 있는 행각 다섯채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연못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중에는 38년 동안이나 누워 움직일 수 없는 병자도 있었지만 그는 연못의 물이 동한다 하더라도 자기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가 중병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가거라 하거늘 그는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마침 그 날이 안식일이라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쳤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증오심을 갖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열심을 가졌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들입니다. 오직 38년 동안 누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던 병자는 예수님이 자신을 걷게 하셨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 병자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이 보낸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자신을 걷게 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기적을 경험하지 못해서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38년된 중풍환자가 일어나 걸었던 것을 볼 수 없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못믿었나요? 기적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관해 듣고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 하나님의 독생자로 계시다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처럼 자식을 낳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인간들을 심판하는 권세뿐만 아니라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다 주셨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일어난 스토리를 좀 자세히 전개하면 베데스다 연못가의 행각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베데스다 연못 물이 동하기만을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어떤 병자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가기도 하고 또한 어떤 자들은 기다리다 죽어가는 병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베데스다 연못주변에는 각양각색의 병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38년된 중풍병자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보내거나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도 만약 물이 동한다면 남들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연못으로 뛰어들 것을 생각하지만 누워있는 몸인지라 금새 한숨과 절망으로 빠져들지라도 생에 대한 미련을 포기할 수 없어 기다리다 보니 38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보냈단 말이다. 고난 받는 자들이 사는 이 현실에 대하여 탄식하며 초라한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있는 곳이 바로 이 세상 이지만 실은 베데스다의 연못처럼 이웃과 이웃이 단절된 고독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무심코 세월이 지나면서 몸은 뒤척일 힘조차 없는 이 사람이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은 언제가는 자신의 병든 몸이 낫게 될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가족도 없이 다만 누군가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생을 연명해 왔을 뿐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바라지 않고 그저 생을 다하는 날까지 기다릴 뿐인데 갑자기 의식 저 너머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순간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 때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병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에게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도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데 “네가 온전하게 낫고자 하느냐 ?" 그렇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고 힘을 주면서 그의 희미한 영혼이 온 힘을 다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네 나는 낫고자 합니다’하는 순간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는 온 몸과 전 의식으로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자신이 듣고 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오로지 병에서 해방되는 것이었기에 그냥 "네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느냐 ?"에 반응하였을 뿐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혀가 풀려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선생님이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지금까지 누워 있는 몸이니 혹시 당신이 나를 저 물에 밀어 넣어줄 수 있단 말씀인지요? 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바로 그가 말씀하기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의 의식은 이미 어린 아이가 되어 그의 말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난 날 그의 의식 속을 채웠던 잡다한 종교와 율법, 그리고 고정관념은 다 사라지고 생명만이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생명은 바로 그분이 말하는 "네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느냐?" 하는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육체는 곧바로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온 몸에 흐르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니 갑자기 미쳐 날뛰는 그를 아무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상황을 영혼의 눈으로 그려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것인데 문제는 바로 그 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면 안된다고 하는 종교도 그를 지배할 수는 없었다. 잠시 뒤돌아보면 자신이 있는 그 베데스다 연못의 물 외에는 구원이 다른 데서 온다고는 상상도 못하였는데 지금 그 사람 앞에 계신 선생님의 말 한 마디 속에 38년이란 병력이 이렇게 고쳐지다니 이 순간이 바로 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렸다는 병자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예수님을 믿어 자유로왔다고 말할 수 있을 까요? 나부터 no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생은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무의미한 38년은 아주 멀리 가버렸고 지금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간 날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그를 거부하는 본 자손들은 밖으로 쫓겨나 이를 갊이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제도 생명을 얻기 위하여 주님 앞에 오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들과 다르지 않다. 베데스다 라는 연못을 통하여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노라면 옛시대나 지금 사람들이나 오직 축복을 찾는 사람들이 오십보 백보 모습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날은 안식일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고 정죄당하셨는데 왜 예수님은 다른 날도 허다한데 하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는가? 유대 인들은 안식일에는 여호와神이 보좌에서 쉬신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인간이 하나님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인류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그분에게 안식이 어디 있겠는가? 38년된 병자를 하나님이 안식일에 고쳤다는 것에 대한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들의 항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죄인을 자유케하기 위하여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2.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 이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시면 가난한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인데(사61:1) 이 말씀을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7:22) 눈먼 자들이 보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고 하였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중풍병자 나병환자 눈먼자 귀먹은자 마귀들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기적행하신 것이 일곱군데나 소개되는데 3장에서는 가나혼인집에서 맹물로 최상의 맛좋은 포도주를 시작으로 4장에서는 왕의 신하 아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신하가 예수님에게 와서 살려달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니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내려가다가 종들을 만나니 그 아이가 살아있다는 말씀이며 5장에서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중풍병자를 걷게 하신 것이며 6장에서는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면서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또 6장 뒤에서는 물위로 걸어 오셔서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로 올라오신 것이며 9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시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11장에서는 죽은지 4일이나 되어 무덤속에 있던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다른 종교들의 교주가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한 것이 한 번만이라도 있다면 그 교주를 진짜 신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단 한번의 기적도 행한 적이 없는데도 그를 신으로 믿는다는 것을 보니 그것이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세상에는 이처럼 헛된 것에 미혹되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이방 종교들을 믿는 사람들은 이처럼 영혼이 미혹되어 허무한 것을 숭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하면 모든 종교의 신은 사람이 만든 우상으로 결국은 사탄마귀와 통한다. 자신도 참 진리가 뭔지 모르고 죽은 부모가 조상신이 되어 자식들을 도와준다고 믿고 제사지내는 것을 미풍양식으로 보는 문화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지내는 것을 단번에 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차던지 뜨겁던지 하라는 것이다. 차라리 믿지 말던지 믿을려면 정말 불같이 뜨겁게 믿으라는 말씀이신데 정말 예수님 믿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하였던 바로 그 메시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늘 가까이 하고 그분을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들은 그분에게 존귀와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며 그분은 우리마음을 새롭게 변하시켜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어 거듭났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일요일날 교회나가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날입니다. 안믿는 사람들이야 예수믿는 사람들을 향해 시간과 헌금까지 내면서 저렇게 교회생활을 한다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믿는 사람들에는 예배보다 귀한 시간은 없습니다. 신앙은 차든지 뜨겁든지 하여야 하지 미지근한 믿음은 아무 쓸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철저하게 부인하다가 믿게 된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벤허라는 영화를 만든 미국의 소설가 Lew Walace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신이 존재하는가? 인간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오셨던 것은 사실인가? 이런 의구심을 갖고 성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던 중 성경은 진리이며 예수님을 100%확신하면서 그의 소설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가 바로 벤허라는 영화입니다(1959).
찰튼 헤스턴이 벤허로 나오는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제1의 부호인 벤허는 신임 총독이 부임하는 날 지붕위에 올라가 구경하다 실수로 기왓장이 떨어짐으로 행차 중이던 총독이 기왓장에 맞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총독을 보좌하는 사람이 벤허의 어린 친구였던 멧살라는 장차 이지역의 총독을 이어갈 사람인데 하필이면 총독이 부임하여 행차하던 날 자기의 어릴적 친구가 이런 짓을 한 것에 대해 멧살라는 자신의 앞길을 망친 친구를 용서할 수 없어 함선 노예로 멀리 보냈는데 어느 날 함선이 해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벤허는 함장인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해준 일을 계기로 선장 아리우스는 벤허를 양자로 삼고, 섹스투스 아리우스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전 재산을 물려주고 죽으면서 로마 시민으로 거듭난 벤허는 복수를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자유의 몸이 되어 귀향하나 집은 폐허가 되었고 어머니와 누이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섹스투스 아리우스'란 로마 인으로 다시 태어난 벤허는 폐허가 된 옛집을 사들이고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멧살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벤허는 유월절에 열리는 전차 경주에서 멧살라를 제거할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멧살라는 차기 총독으로 내정돼 아버지 아그리파 의원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전차경주에 참가하였다가 전차경주에서 벤허의 고의적인 사고로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벤허는 가문의 원한을 갚는다. 나병자들이 사는 골짜기에서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 기적을 행한다는 예수께로 함께 가는 날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가는 날인데 벤허는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받는 예수님에게 물을 떠다 드리면서부터 마음속에 들끓던 증오심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리고 어머니와 누이의 나병이 깨끗이 치유된다는 이 줄거리는 원제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영화 벤허로 각색한 것으로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미국영화상 경이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이 소설은 라볼드 잉그솔이라는 무신론자가 역시 무신론자인 친구 류 월리스장군에게 기독교를 반박하는 책을 쓰라고 권면해서 쓴 책이다. 월리스는 그 책을 쓰기 위해서 성경을 여러번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성경을 읽은 후에도 미국과 유럽의 유명 도서관에 가서 예수에 관한 책을 연구할수록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너무 많지만 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란 너무 어럽다는 것을 알고서 그는 성경을 읽는 동안 성령의 감화를 받고 월리스는 결국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벤 허' 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책을 저술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철저히 예수님 반대편에 섰을 때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날조되었다고 했지만 조사 연구하다보면 후에는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이시고 이땅에 오신 메시야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만이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는 유일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에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당신이 정말 믿지 못할 아주 놀라운 말씀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정말 믿을 수 있겠는가?
3. 죽은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리라
처음에 말하였던 38년된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그 자신에게는 기적같은 사건이었을지라도 기적을 당한 당한 당사자만큼이야 우리가 감동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보니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5:25 말씀은 정말 가장 믿기 어려운 말씀인데 이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마지막 날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일어날 가장 놀라운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요5:25-29) 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것같이 아들에게도 주사 그 속에 생명이 있게 하셨고 27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또한 심판을 집행할 권위를 주셨느니라. 28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29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두 번씩이나 하신 말씀은 무덤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10:7) 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에 즉 그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그분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 같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계시해주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재림이 일어날 계시에 대해 고린도전서에는 그 때 일어날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났습니다.
(고전15:51-55) 51 보나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에 눈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53 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했으니 그러므로 마지막 일곱째 나팔소리가 날 때 하나님의 신비가 대언자들에게 말했던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이 무덤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무덤 밖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무덤 속에서 수십년 동안 있었던 죽은 자들은 다 흙이 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날이 오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듣고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예가 에스겔서에는 마른 뼈들이 큰 군대로 일어서는 것을 보여주셨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곳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겔37:1-10 말씀은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선지자 에스겔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환상가운데 어느 날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셨는데 에스겔은 그곳의 광경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 골짜기에는 심히 많은 마른 뼈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던 광경을 보면서 망연자실해서 넋을 잃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3)? 그때 에스겔은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 “주 하나님이여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오직 주께서 아십니다." 참으로 위대한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참으로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에스겔이 대언해야 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5)."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른 뼈 일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쳤습니다. "오 너희 마른 뼈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 그러자 덜그럭거리면서 뼈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서로 자기 짝을 찾아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서 뼈들이 맞추어졌습니다. 그 뼈에 힘줄이 붙었고 살이 생겼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아직은 숨을 쉬지 않으므로 아직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때 에스겔 선지자는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이번에는 생기를 향하여 바람에게 대언하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숨아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이 살게 하라. 그러자 숨이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서 일어서는데 심히 큰 군대더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것도 의미하지만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무덤속에서 그의 음성을 들은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증언한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 질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물론 무덤속에 있는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살아난다는 그 말씀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무덤속에 있는 자들이 부활 하지만 생명의 부활로 하는 사람도 있고 정죄의 부활로 나오는 자들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으므로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도 그분께서 지나가는 상여를 멈추시고 "청년아 일어나라"하시니 곧 관속의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이 일어났고 베다니에서는 죽은 지 나흘되어 무덤속에 있던 시체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하시니 무덤속에서 그 죽은 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들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 하였는데 청년아 또는 나사로야 하는 이름을 들을 때 각자가 자기 이름을 듣게 되면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도 집에서 누가 이름을 부를 때 네 하고 뛰어 나가듯이 무덤속에서 나사로야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사로가 듣고 무덤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무덤속에서야 잠자느라고 아무 느낌도 없지만 잠을 깨우는 소리가 들리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덤속에 있는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을 통해 주님의 가장 소망스런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갈 뿐이지 연옥이니 극락세계니 그런 말은 불교나 천주교에서 지어낸 가짜교리입니다. 절대로 그런 곳은 없습니다. 인생을 지으시고 인생의 영혼을 책임지시는 분은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 가장 놀라운 일은 무덤속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는 사람을 가리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라고 증언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누구일까요?
4.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시고 사람으로서 첫 번째 부활은 주님 강림하실 때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성경은 부활에 차례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재림하시기 직전에 부활해서 주님과 같이 내려 오는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다(계20:5).
그러면 첫째 부활 자의 대상이 누구일까?
(계20:4-5)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자들이 천년이 차기 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환란시대에 예수를 증언하다가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들인데 이들은 대환난 기간동안에 짐승정부에서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데 이를 거부한 자들은 모두 처형당하게 된 자들입니다.
(계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
*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미혹을 하고 박해했지만 목베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어린 양과 함께 땅에서 속량을 받은 144.000이 부활한 모습으로 시온 산에 서 있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며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계7:4-14)
* 11장의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하여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두 증인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의 대표들입니다. 이들은 짐승의 정부 때, 전 삼년 반 동안(42달) 복음을 전한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의 성전이 된 사람들이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진 자요 부활의 첫 열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 대하여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들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❶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산 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❷ 어린 양이 어디로 이끌든지 죽기까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❸ 하나님과 어린 양께 속한 자들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5. 세상을 사랑하다가 영생을 잃은 사람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을 들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다 주셨으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심판자가 되신다는 정보를 모르고 살면 정말로 헛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와 방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순종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또 세상의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며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면서도 1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사는 삶도 있습니다. 인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결과에 따라 최후의 백보좌 심판때에는 생명의 부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판의 부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어야만 생명의 부활로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보고도 믿지 못하는 놀랄만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았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파수군들은 예수님의 부활 현장을 목격한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덤을 지켰으므로 부활의 현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지진이 나면서 무덤문의 돌이 옮겨지는 것으로부터 예수님이 시체가 없어진 것이며 천사들이 그곳에 있었던 사실이며 여자들과 제자들이 그곳에 와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며 누구보다 그 부활의 현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파수군들은 유대장로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말했습니다. 뭐라고 말했을까?
(마28:13)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 하러 갔다 하라.
이렇게 파수군들은 유대장로들이 시키는 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퍼뜨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기가 어디라고 로마군병인 파수군들이 경계하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잡혔을 때도 제 목숨 살고자 도망갔던 나약한 제자들인데 죽은 예수를 위해 자기들 목숨을 걸고 로마군병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간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요? 그럼에도 파수군들은 돈에 매수되어 부활진리를 그렇게 거짓으로 전했으니 정말 불쌍하지요.
또 돈을 준 유대장로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즉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가서 파수군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도록 의뢰했던 당사자들이고 파수꾼들로부터 사흘만에 예수가 부활한 것을 들었음에도 돈을 주면서 까지 이 부활의 진리를 거짓으로 퍼뜨리니 정말 구원받을 기회를 외면한 것입니다. 그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과 로마 파순군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5:39-40)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랍비라는 존칭을 받으며 옷에 큰 술을 달고 옷소매에는 경문을 차므로 아주 경건하게 보이며 영생을 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싫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과 세상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다보면 그렇게 된다고 요한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구원과는 멀어집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주변에는 잘못된 이론들이 잘못된 철학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진리도 아닌데 진리라고 유혹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거기에다 종교는 다 똑같은데 아무종교나 하나 가지고 선하게 살면 되지 하면서 이렇게 유혹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종교중의 하나가 아니고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간에게 시작과 끝을 알려주고 모든 만물이 어떻게 만들어 졌고 모든 만물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또 인간이 죽은 다음에 어디를 가는 것인지 영원한 삶까지도 알려주는 것은 성경만이 진리인 줄로 믿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종교끼리 서로 소통하며 싸우지 말고 서로 연합하라고 하지만 종교는 연합하는게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른 종교와 연합할 수가 없습니다. 주 하나님과 바알신이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불로서 응답하였지만 바알신은 불로써 응답을 할 수 없는 신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소통이 안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기독교를 모르고서 하는 말입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친구로 대할 수는 있지만 믿는 대상은 하나님 한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종교는 다 똑같다고 하는데 하나님이나 세상 종교의 교주들이나 다 똑같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단의 교주하고 하나님이 똑같다는 이런 유혹에서 벗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친히 그가 보여주신 수많은 기적들이 그분께서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번도 부도난 적이 없습니다. 파도를 향하여 잔잔하라 하면 파도가 즉시 잔잔하여 졌고 마귀들을 향하여 나가라하면 마귀들이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피조물이 순종하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도 있지만 예수님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만은 말할 수 없는 마귀는 오직 거짓말만을 행하는 영물입니다. 마귀의 거짓 속삭임에 미혹 된다면 이 땅에서만 고생하는 것만이 아니고 죽어서도 영원히 지옥고통받는 것입니다. 그들도 심판을 위해 부활 하지만 그들의 모든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행한대로 댓가를 받게 되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흰눈보다 더 희게 씻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에게 가장 놀랄만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아니하리라는 비밀정보를 듣고 믿어야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어도 산다는데 두려울게 뭐 있어요. 매일밤 잠자는 것은 장차 천국에서 부활할 것을 연습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순간 아 주님 제가 10년간 아니면 100년간 잤나요? 이 땅에서 잠잔 후에는 천국에서 깨어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자 오늘의 주제는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날의 영광의 순간에 우리 모두가 함께 부활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